*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우리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나리!

수원_고창선, 무늬만 커뮤니티(김월식,곽동렬, 박영균, 이아람), 천원진, 류승징, 유혜민 작가의 작업실



우리 그때 거기에서 만났음을 기억하리!


수원 팔달구 지동 창룡문로 29-33번지 일대. 지동시장 순대타운을 벗어나 비스듬히 난 나지막한 오르막길을 5분여 걸어 오르면 작가들의 작업실이 모여 있다. 골목길 왼편 언덕 위엔 동남각루가 있고 안타깝게도 그 언덕 아래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가옥의 철거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군데군데 부수어진 집들을 일별하고서야 이들 작가들의 작업실에 도달한다. 고창선, 무늬만 커뮤니티, 천원진, 류승진, 유혜민 이렇게 다섯 팀의 작가가 정한 오픈 스튜디오의 제목은 ‘우리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나리!’이다. 느낌표가 붙은 이 예스런 제목에는 여러 의미가 얽히어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먼저, ‘우리’. 이 다섯 작가팀은 대부분 같은 학교에 다녔거나 그 작가들의 친구이다. 이곳에 흘러들어 온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몇 발자국 뜨면 연이어 작업실이 나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업하다 함께 놀며 지내는 ‘우리’들이다. 그것만도 각별한데 제목에서의 우리는 더 넓다. 동네 형님들, 동네 아주머니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 동네 아이들. 오픈 스튜디오는 이틀 동안 진행되었는데 단 하루 혹은 단 한 두 시간만 구경하고 있어도 동네분들이 오며가며 인사하고 말 걸고 기웃하다 앉았다가곤 하시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첫날 동네 형님댁 3층 닭장에서 탈출한 오골계가 전신줄 위에서 오갈 데를 찾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안타깝고 신기하게만 보는 관객들과 달리 작가들은 그 닭이 또 탈출했구나 한다. 옆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것이다. 이들의 ‘우리’는 이처럼 넓고 각별했다. (다행히 닭은 무사히 내려왔다.)


‘언제’. 몇 해 동안 정들어 지냈지만 이제 이들은 떠나야만 한다. 되도록 다섯 팀이 함께 움직이려고 한단다. 다행인가 싶다가 그런데 ‘우리’가 그런 ‘우리’가 아니었지 않나. 켜켜이 쌓은 시간축에는 ‘우리’가 함께였다. 처음 이 동네를 찾았을 때 눈에 띤 사물은 골목길 군데군데 놓여있는 의자들이었다. 천원진 작가가 동네 어르신들이 오르막길에서 쉬어가시라고 만들어놓은 마음씀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밖에 놓인 의자라면 누군가 이내 들고 가기 십상인데 이 골목에 놓인 의자는 암묵적으로 우리의 의자로, 쉼터로 거기에 있다. 이런 마음씀이 축적된 곳에서 떠나면 그 언제라는 게, 도대체 언제 있을까. 이제 동네분들의 기억엔 그 언제 이 골목에 예술한다는 젊은이들이 살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이들이 있어서 퍽 살만했다 떠올리실지 모르겠다. 아직은 알 길 없는 그 언제만이 남았다.



‘어디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다섯팀은 커뮤니티 아트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두텁다. 오픈 스튜디오를 기획한 고창선 작가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얘기했지만 면면을 살펴보니 또 그렇게 도려내어 생각해 볼 것도 아니다. 무늬만 커뮤니티와 천원진 작가팀은 커뮤니티 아트에 소신을 가지고 활동을 꾸려가고 있고 이들이 하는 프로젝트에 뜻이 맞으면 유연하게 결합하는 과정이 바로 이곳 지동 골목길 작가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인(in) 아니면 아웃(out)처럼 범주에 속하거나 배제하거나 그런 양상 대신 들어왔다 나갔다 그 모습이 물 같고 공기 같다. 마침 오픈 스튜디오 프로그램도 그렇다. 작가들에게 오픈 스튜디오는 생각이상 번거롭고 번거로운 것 이상 단조롭기도 한데, 말하자면 작업실을 기웃거리며 작가와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전시의 형태로 대체하여 작가는 물러나곤 하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평소 작업을 들고 동네 분들과 직접 만나려한다. 국수를, 자장면을, 무도장을 소신껏 제공하고 꾸렸다. 그곳엔 작가와 지인만이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여기서’ 함께 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 좀 어렵다. 다시 한 번은 안 될 듯하다. 그 아쉬움이 제목에서 묻어난다. 그 아쉬움은 소금을 이용하여 스크린을 만들고, 물로 조금씩 소금을 녹이는 ‘사라지는 스크린’을 제작하여 지동의 영상과 오픈 스튜디오에 참여한 이들의 즉석 뮤직비디오를 진행한 유혜민 작가의 작업에 드러난다. 오픈 스튜디오의 마무리는 사라지는 스크린 작업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진부한 말이지만 ‘다시’는 이곳, 지동의 정든 작업실에서가 아닌, 다시 꾸려질 그곳에서 기약할 수밖에. 더불어 ‘만나리.’ 만나다라는 동사에 ‘리’가 붙어 말하는 이의 의지를 나타내고 현재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추측하는 의미를 파생했다. 하나씩 뜯어보니 만나고 싶다는 희망과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포개어진다. 사람과,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거듭됨에 대한 의지가 복합적으로 작동했던 오픈 스튜디오를 떠올리며 그 자리에 함께했던 순간의 의문과 그 의문에 대한 고민의 궤적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겠다.


작가의 작업실은 생각보다 맹숭할 때도 있다. 회화나 조각 작업이 아니고선 컴퓨터 한 대면 족할 경우도 있다. 작업실을 사전 답사했을 때 이 골목도 맹숭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늘 작업실을 지키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언제 누가와도 보기 좋게 꾸며놓을 필요도 없다. ‘우리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나리!’를 찾을 때에도 혹시 그러면 어떡하나 갸웃했는데 여실히 기우였다. 무엇보다 이 얘기를 해야겠다. 건강한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는 점. 작업이라는 예술과 삶이 점성 있게 함께 가고 있다는 점. 서로가 서로를 받치고 닿아있다는 점. 찾으면 열거할 꺼리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시작해 보자.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 경기도 지역의 여러 작가들의 작업실을 순회했다. 생각보다 예술가 마을이라는 것이 명시적으로 조성된 사례가 많지 않다고 들었다. 차로 5분여 가면 만나는 정도가 이웃 예술가 아닐까. 고립과 면벽이 다수의 예술가들의 조건이라면 이 다섯 작가팀은 달랐다. 이들이 다만 가까이 지낸다고 혹은 커뮤니티 아트에 기반하는 바가 있다고서 가능한 일일까. 그동안 정책적으로 시도했던 마을미술 프로젝트, 재래시장 살리기 프로젝트 등 커뮤니티 아트의 철학에서 어떤 수혈을 받았을지 사례마다 분명치는 않지만, 그간 이루어졌던 프로젝트들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일정 정도 긴 시간을 지역을 기반으로 일원들이 함께 일구어냈다고 표방해 왔다. ‘사업’이 되도록 기획을 꾸리고 ‘사업’이 되도록 실행하여 ‘사업’으로 정리해 낸 다수의 그 작업들에서 종종 창백함을 마주할 때 적잖게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렇다면 건강함은 이들이 지닌 한 작가마다의 미덕일까. 각 작가마다의 건강함으로 치환해서는 이곳의 활기를 설명하기 힘들다. 오픈 스튜디오를 찾은 학생 관객들, 그 동안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는 아시아 지역 작가들, 동네 이웃들은 하루의 관객으로 보인다기 보다 다섯 작가팀의 일상에 결부되어 있는, 마치 부목 같은 존재로 보였다. 적당한 각재로 힘을 받게 해주고 그러면서도 곧은 방향과 결정은 본디 지닌 골격으로부터 힘을 받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고 느꼈다. 더불어 다섯 작가팀은 서로의 작업을 일상에서 공유하고 응원하며 인력의 산술적 투입아닌, 흥미와 이해가 동반된 동조자로 살고 있었다. 단적으로 오픈 스튜디오는 오후부터 저녁까지 긴 시간에 걸쳐 전개되었는데 시간대마다 방점을 나누어 가지면서 서로를 독려하고 관객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어쩌면 쓸데없을 확대 해석이겠지만, 인력거처럼 생겼지만 자전거로 끄는 설치 작품이 무늬만 커뮤니티 작업실 앞에 놓여있었는데 우두커니 있던 이 작품이 오픈 스튜디오 마지막 순간에 잠시 등장했다. 천원진 작가가 직접 자전거를 끌어 짧은 거리를 질주할 때 모든 사람들이 치던 박수와 던진 환호는 몇 초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일상적 삶에 순간 드리우는 예술의 자취와 같았다. 예술로 잘 노는 것, 예술로 잘 먹는 것, 예술로 잘 웃는 것이 지동 골목길에 있었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웃는 그 시간이 지닌 페이소스가 이제 곧 떠날 거라는 확정된 조건에서 비롯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오픈 스튜디오를 마치고서 심경이 복잡했다. 하루 그곳을 찾은 적극적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러한데 다섯 작가팀은 어떨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이라서 더 열심히 보람차게를 외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머지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더라도 그곳에서 다시 건강하게, 점성있게, 서로 서로 받쳐주며 잘 지내시길.


어릴 때 본 애니메이션이 오래 기억에 남고, 어릴 때 만든 모래성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또 어릴 때 그려서 상이라도 탄 그림이 있다면 돌이켜볼 때 뭐 그리 잘 그렸겠냐마는 그럼에도 기특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예술이 지닌 쓸모없음의 쓸모랄까. 예술은 몰두해서 놀 수 있는 구체적 행위로 몸에 축적된다. 이렇게 그리고 만들고 보는 예술 구성의 기초적 단위와 과정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 예술이 삶의 영역까지 확장되어 있다면? 지동에 쌓은 그 기운이 이제 작가들은 옮겨가도 누군가를 미래의 예술가로, 혹은 이미 준비된 눈밝은 관객으로 변모시켰을 것이다. 이 만큼,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우리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나리!’에 대한 화답이다. ‘우리 그때 거기에서 만났음을 기억하리!’



글 김현주 독립기획자/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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