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심심/ 판화/ 현장_이윤엽 작가

안성_이윤엽 작가의 작업실



이윤엽이 있다. 여기 저기에


이윤엽 작가를 세 번 만났다. 딱 세 번이다. 한 번은 지난겨울 서울시청 시민청 갤러리에서 용산참사 6주기 추모전시회 <여기, 사람이 있다>가 열리고 있을 때였다. 다른 작가에게 용무가 있어 찾아갔는데 마침 이윤엽 작가도 왔다. 처음 만났지만 첫 만남 같지 않았다. 편히 다니는 행색 때문에 가끔 남들이 자신을 노숙인으로 생각할 때도 있다며 농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어딘지 익숙하게도 여겨졌다. 시내 복판에 놓여도 스며들 듯이 보였다. 아니라고 학습을 해봐도 예술가하면 대단히 모서리지게 생각하는 몹쓸 습관이 도졌을까. 이윤엽 작가는 작가라는 이미지보다 그리 가까울 것도 없고 굳이 멀 것 없는 터실터실한 이웃처럼 보였다. 그때는 몰랐다.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이 있을 줄은.




지나서 말인데 말이 기획자이지 사실 별 기획 없었던 이윤엽 작가의 오픈 스튜디오를 맡아 준비하기 위해 두세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뭔가 해보려고 안성시 보개면 남풍리 골짜기까지 찾았는데 아, 요즘 말로,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작업실을 찾았더니 터실터실한 이웃이면 아쉬우나마 친근히 굴 텐데 이번에는 까실한 예술가가 거기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픈 스튜디온가 뭔가, 점점 뭔가 하기 위해, 뭔가 해야만 하는 일이 다가오니 서로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이윤엽 작가의 심중을 살피기 위해 본의 아니게 미묘한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다른 오픈 스튜디오에서는 이렇게 했어요, 어느 작가는 이렇게 하더라고요 등 지난 풍경을 펼쳐내었더니 불편한 기세를 보였다. 이윤엽 작가는 뭐 또 그렇게 불편한 건 아니었다 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 마주 앉은 내겐 적어도 그랬다. 그런데 작가가 하는 말들이 지극히 온당해서 다른 풍경 따윈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작업실에 누군가 찾아온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하였다. 누군가 이끌고 프로그램을 꾸리고 그럴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서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더 떠볼 것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말자 약속했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만난다는 그 의미를 덧칠하지 말고 온전히 가지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기로 다짐하자 까실하던 순간이 용해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이 있었다. 오픈 스튜디오 날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마땅히 함께 할 일도 도울 일도 딱히 없었다. 치장도 분주함도 없고 작업실 밖 터에 불을 지펴서 가을 내 흐트러진 짚더미 정도 태우는 정도였다. 작가의 지인들도 함께 하였지만 시간이 되어 도착한 이들은 예술가의 작업실에 처음 온 이들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윤엽이란 이름도 몰랐을 이들이기도 하다. 손님이 도착하기 전에 그가 한 말이 “그래도 저 사람 참 좋아해요.”였는데 작업실에 한 사람 두 사람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무언가 신비로운 일들이 펼쳐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터실한 이웃이 까실한 작가였다가 이제 그냥 이윤엽이 거기 있는 것이다. 본디 그러한 이를 내가 주위를 모로 서성이며 보았나보다.


“니들 판화 해볼래?” 그는 목판 조각을 꼬마 아이들에게 건네며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게 했다. 굵은 매직펜으로 그림을 그리고는 그 위에 옅은 색 매직펜으로 밑그림이 드러나도록 칠을 하게 했다. 원리는 단순했다. 우선 볼록하게 남겨둘 곳과 오목하게 파야할 곳을 구별케 하고 그 위에 칠을 하게 만드는 것은 파야할 곳과 파낸 곳을 구별케 하는 담박한 일이었다. 아이들부터 시작한 이 놀이는 이내 어른들의 놀이로 번지기 시작했다. 길쭉한 나무 책상에는 목판 하나씩을 놓고 매직펜을 움켜쥐고 집중하는 이들로 붐볐다. 꽃, 강아지, 사람, 집, 차......소소하고 익숙한 대상을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선택이다. 너를 남길 것인가 너를 파낼 것인가. 밑그림만을 파내는 것은 몸이 좀 수월하겠지만 배경이 깜깜한 밤하늘처럼 남을 것이고 배경을 파내는 것은 다소 고생스럽더라도 대상이 또렷해지는 거다. 물론 몸은 고되겠지만 명징한 세상에 대해 의욕을 부려볼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말자.’ 이윤엽 작가와 약속할 때 그가 나른하게 했던 말이 뭐 누군가는 작업실을 구경하고 그러다 심심하면 판화 좀 해보고 그러다 밖에도 좀 둘러보는 정도였는데 손 한 뼘만한 목판 조각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다니 그 전이의 순간이 놀라웠다. 몰두가 놀라웠다. 그림은 그리운 것을 그리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판화가 찍어 만들어내는 그림이라면 그냥 그림보다 더 그리운 것을 그리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칼을 쥐어들고 파내는 지난한 과정은 순전히 그리고서는 이내 두고 마는 어떤 그림보다 내 그림, 내 대상에 몸으로 시간으로 책임을 다해야하는 작업이었다.



누군가는 대상에다가 글귀도 남기고 싶은데 이건 또 생각과는 다른 경로가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판화에서는 좌우가 뒤바뀐다는 이치를 분명 어린 시절 배웠을 텐데 그 배움은 시간 속에 어느새 허물어져 가물가물해진 것이다. 좌우가 뒤바뀐 글귀를 구상하여 옮겨 적고 제대로 찍혀 나올까 찍는 순간까지 반신반의해야하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짧은 인터뷰 시간에 이렇게 세상을 한번 뒤바꾸어 생각해야지만 제 상이 나오는 판화 과정이 작가에게 미친 영향이 있는지 물었더니 이제는 인이 박혔다고 할까, 익숙한 과정이라 한다. 그렇지만 입문자에게는 뒤집어보는 이 과정이 필시 옷 뒤집어보는 것 마냥 물리적 절차로 그치는 게 아니라 머리를, 생각을 흔드는 생소한 절차이기도 했다. 몸의 수행으로 축적되는 짧은 이 시간은 이제 긴 기억으로 남겨지길 바라본다. 분명 그럴 테다.


모두 판화에 빠져있을 무렵 작업실 밖 한편에서 영상으로 기록될 인터뷰가 진행됐다. 그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인간 이윤엽과 작가 이윤엽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였다. 이윤엽 작가하면 수식어로 따라붙는 어휘로 현장예술가, 파견미술가가 있다. 대추리, 밀양, 강정에서 벌어지는 거대 논리에 약자의 이웃이 되고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노동자 투쟁 등 노동자의 목소리가 다급한 장소마다 그가 있다. 물론 그만이 그곳에서 함께하는 건 아니다. 몇몇의 이름을 더 소환할 수도 있다. 그들과 더불어 이윤엽 작가는 예술가로 현장에 연대해왔다. 많은 수식 중에 어떻게 불리고 싶은가 물었을 때 그는 ‘목판화가 이윤엽’이라고 대답했다. 이러저러한 작업을 해왔지만 요즘은 목판화 하나만이라도 잘하고 싶다 얘기한다.



극장 간판부터 그렸다는 과거, 민중미술의 궤적으로부터의 행보에서 오늘의 목판화가 이윤엽이 “목판화로 남은건 유하다”고 말할 때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짧은 시간이어서 미처 다 묻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 탓보다 진심을 얘기하는 그 순간의 자장을 훼방하고 싶지도 않았다. 목판화의 유함을 토로할 때 그 말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청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헤아리는 것이 내 몫이 되었다. 그가 말하는 유함은 그림에 빗대어 목판화가 지닌 특징으로 들린다. 판화 중에서도 목판화라면 석판화나 동판화 등 여타 판화에 비해 표현의 섬세함보다는 메시지의 명징성에 특징이 있을 텐데 그렇다면 그가 유함을 얘기하는 것은 다른 판화에 비춘 목판화의 특성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그에겐 판화보다 그림이 강한 것일까. 부드러움에 대척한다면 그림은 거친 것일까.


짧은 단서가 있다면 그건 그가 “판화는 구호에 가깝다”고 말한 것이다. 발언이나 호소문이 아닌 구호. 가능한 한 많은 감정과 정보를 전달하려는 시도보다는 추려내고 걸러내어 한 결에 쉽게 다가설 수 있게 만드는 통로. 그의 판화 앞에서 잰체하지 않고 유순해지는 게 그가 말하는 유함일까. 복잡하게 꼬아보지 않고 그가 주는 만큼 받는 감응이 유함일까. 그렇다면 유하다고 얘기하는 그의 목판화는 어린 아이 같은 구석이 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나 어린아이의 영악함 말고 어린아이의 천진함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어린아이처럼 글을 쓰기도 한다. 맞춤법이라는 법보다 현실을 천진하게 옮기듯 말이다.



인터뷰 도중 남풍리 보개면의 흙길을 무리지어 뛰어다니는 꼬마 아이들이 보였다. 목판 작업이 어느 정도 정리됐나보다. 그러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동네 언덕길을 향해 오른다. 말을 잇다 말고 이윤엽 작가는 가장 결정적 순간을 만난 이처럼 오픈 스튜디오를 준비하며 가장 꿈꿨던 장면이라고 얘기했다. “그냥 저런 거 말이에요. 저게 가장 좋은 거 아닌가요?”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아이들이 새롭게 보인다는 그의 마음이 말에 묻어난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도 불러들인다. 음식 자시고 가시라고. 몇 분을 모시고 인터뷰를 담았다. 칭찬 일색이다. “전 뭐 하는 거 없어요. 그냥 젊은이가 없어 하는 것 들 뿐이에요”라고 하는, 그 하는 거 없는 일들이 왜 이윤엽 작가가 하면 뭔가 하는 일들이 되고 마는 것일까. 동네에서 하는 거 없다는데 동네에다 뭔가 하고, 아무 것도 하지 말자 하는데 뭔가 벌어지고 말이다. 세 번 만나본 이윤엽 작가는 이상하다. 그 주위엔 이상한 일투성이다.


그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아무 것도 안한다고 하는 말과 행동은 그의 세계에서는 그런가보다. 그런데 아니다. 이윤엽이 여기저기에 있어 변화가, 행동이, 실천이 싹튼다. 꾸미지 않는 사람, 온갖 데에 예술 물길을 만드는 사람. 그러면서 목판화 하나 잘하고 싶다는 사람, 그냥 인간 이윤엽이자 작가 이윤엽으로, 이윤엽이 여기저기에 있다.



글 김현주 독립기획자/미술비평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