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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택리지, 삶을 모아 팔도를 잇다

연재(1) 말로 보는 전시 ‘택리지’ _ 택리지 편찬까지의 시대적 배경


본 글은 “택리지, 삶을 모아 팔도를 잇다” 기획전시(이후 택리지 전시) 내용을 보다 잘 전달하고자 작성되었다. ‘18년 올해는 고려 현종이 ’경기‘라는 명칭을 붙인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무엇인가를 기념할 때 우리는 연원과 과정을 살펴보고 의미를 되짚어 본다.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큰 맥락에서 살펴보면 천년이라도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할 것들이 있다. 박물관에서는 그것이 땅이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실학자의 저서는 택리지이다.




택리지, 개인소장 



현대인들의 인식에서 생각하자면 우리는 한반도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온 한민족이다. 그러나 민족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연원을 살펴보면 복잡한 이야기이다. 현재 헌법 제3조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한국 국민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경기천년의 연원인 고려 현종 무렵 나라의 북쪽 경계는 의주에서 영흥만까지였다. 즉 현재 말하는 한반도, 그 안의 행정구역인 팔도에 대한 인식은 조선시대부터 생긴 것이다. 한민족이라는 인식도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등장한 개념이다.





부연하면 19세기 이후 동아시아 3국, 중국, 일본, 한국에서 급진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겪은 전통문화와의 단절에서부터 비롯된 이야기이다. 일본은 19세기 말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으로 대변되는 급속한 서구화, 20세기 초반 한국과 중국은 각각 일제강점기와 문화혁명으로 대표되는 전통문화의 굴절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탈냉전과 경제위기, 남북관계 개선을 겪으며 민족주의가 다시금 강조되었고,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사상 등 서구중심주의에 대해 도전하는 동아시아 담론(East Asian discourse)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증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읽혀진 것이 우리 전통문화의 주역, 즉 한민족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세종실록지리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그러면 한민족이 한반도에 살아온 때는 언제였을까? 살펴보면 현재 국경과 유사한 영역 안에서 백성을 파악하고자 한 시도는 조선시대 초에 발간된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부터 한반도를 팔도로 나누어 고을의 경계, 호수(인구), 성씨, 토질과 전결, 역, 봉수 등을 순서대로 기록하였다. 조선은 이때를 기점으로 지리지를 편찬하고 전국 모든 고을의 조세 수취, 군역 징발 등의 제반 사항을 중앙에서 직접 통제했다. 지리지를 통해 모든 고을에 지방관을 파견하였고 중앙에 바치는 조세와 군역 등을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각 지방의 문화, 백성들의 생활과 처한 상황까지 전부 보고해 올리도록 했다. 다시 말하자면 중앙에서 행정적·군사적 통치의 일환으로서 국토를 파악하고 각 고을의 공물, 조세, 군역 등 국가가 징발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위정자 입장에서 편찬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평양지平壤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16세기 후반부터 지방단위로 지리지가 편찬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읍지邑誌이다. 수령과 지방의 유림이 공동으로 편찬했다하여 ‘사찬읍지’로도 분류된다. 이들 읍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후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란이 후 변화한 지방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통치정보의 수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읍지는 통치 자료적 측면과 함께 지방으로 확산했던 유교문화의 전파과정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조선후기 지방의 정보는 더욱 풍부하게 정리되었고, 18세기 영조 연간(1757~1765)에 전국의 읍지를 모아 『여지도서輿地圖書』로 종합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1618년, 실학박물관 소장





이후 일부 사찬지리지는 실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주제의식으로 나아갔다. 한백겸의 동국지리지를 필두로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이중환의 택리지, 신경준의 강계고, 정약용의 강역고 등 실학정신에 입각한 비판적인 목적의 사찬지리서들이 속속 쓰여졌다. 이들 지리지들은 도덕이나 교화적 측면을 강조하려던 관찬지리지의 성격에서 벗어나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영웅적인 개인이 아니라 지리적 요소와 국방정책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기존의 백과전서식의 나열식 분류방식에서 벗어나 국가의 강역이나, 형세, 지리, 환경, 경제 등 새로운 분류방식을 적용하였다. 이들 실학 지리서들은 조선후기의 사회 변화를 반영한 지리서들로 조선 사회에 직면한 문제를 실증적인 방법으로 나름대로의 해결방안을 제시한 지리서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대동수경大東水經 1814년 , 정약용 편, 4책,실학박물관





이중에서도 택리지는 앞서 사람과 땅에 대한 인식, 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디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 최초의 지리서로 평가 받고 있다. 택리지는 당대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이본이 있었고, 문외한이라도 적어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적게는 어디에 살아야 이득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유도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중환은 택리지의 말미에 “살만한 곳이 없다我瞻四方 蹙蹙靡所聘”고 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혹자는 당대의 세태와 시대적인 분위기에 하고 싶은 말을 글 속에 숨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 회에서는 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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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학박물관/ 뉴스레터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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