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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월산대군 사당 月山大君 祠堂

경기도문화재자료 제79호




사당은 월산대군 묘역에서 북쪽으로 230미터 정도 떨어져 위치하며, 삼문三門을 세우고 네모난 담장으로 둘러친 중앙에 사당을 모셨다. 담장은 일반 사당에서는 드물게 장대석長臺石으로 3단을 쌓아 하단을 축조하였으며 삼문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한 곳씩 석조 배수구까지 갖추었다.

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다. 왕실사묘王室祠廟의 경우 문을 삼중三重으로 하기도 하는데, 문을 하나만 두는 대신 솟을대문 형식으로 위계를 높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민도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면에 툇간을 두고 개방한 것은 제례의 기능을 고려한 것이다. 정면의 중앙 정칸이 크고 좌우 측칸이 그에 비해 매우 좁은 점이 특징이다.


월산대군 사당,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기단은 전후면 모두 장대석 한 단의 외벌대로 하여 높지 않으나, 전면 기둥의 장주초석으로 장중한 외관을 갖는다. 기단 상면 중 측면과 후면은 강회剛灰다짐으로 마감하였으나, 전면 퇴칸 부분은 좁고 긴 박석으로 마감한 점도 특징적이다. 사당 내에는 신주를 운반할 때 사용하던 작은 가마인 요여腰輿가 전해내려져오다가 현재는 고양600년기념전시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월산대군 사당 '석광사' 현판,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담장과 배수구,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사당 지붕에 ‛강희32년康熙三十二年(1693, 숙종19)’이라 새겨진 망와望瓦가 있어 1693년(숙종19) 이전에 이미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문중 자료 등을 종합하면 현 위치의 사당은 영조의 하명에 의해 1756년(영조32)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당 완공과 신주 이안移安 후 영조는 ‛석광사錫光祠’라 사액하였다. 이후 1780년(정조4)에 다시 사당이 퇴락하여 수리를 명한 기록이 있고, 1808년(순조8)에는 홍주목사를 역임한 종손 이헌규李憲圭가 다시 중건重建하였으며, 1875년(고종12)에는 12대손 이봉규李鳳圭가 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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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곽 사당 3×2칸 외삼문 3×1칸

    재질/ 목재

    주소/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427

    지정일/ 1989.12.29

    소유자/ 전주이씨 월산대군파 종친회

    관리자/ 전주이씨 월산대군파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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