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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전성부원군 이준선생 영정 全城府院君 李準先生 影幀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1호




이준李準(1545~1624)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평숙平叔, 호는 뇌진자懶眞子·서파西坡,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1589년(선조22)에 일어난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진압하는 공을 세워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에 책록되고 전성군全城君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운향사運餉使가 되어 명군明軍의 군량미 조달책임을 맡았고, 광해군 때에는 이조판서에 이르렀으나 대북일파에 의한 계축옥사癸丑獄事를 계기로 은퇴하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전성부원군 이준선생 영정,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이 초상은 이준이 공신으로 책록될 당시 제작된 것으로, 사모를 쓰고 단령을 입고 교의에 앉은 모습의 좌상이다. 광국공신光國功臣·호성공신扈聖功臣·청난공신淸難功臣 등 16세기 후반~17세기에 제작된 대부분의 공신초상들은 사모는 모정帽頂 높이가 낮으며 비교적 짧은 뿔角과 분명한 구름문양을 지니고, 단령은 좁은 목둘레와 큰 흉배, 의복의 너비를 넓히기 위해 옷감조각을 의복의 옆선에 붙인 무가 특징이다. 이준의 초상 역시 17세기 공신 초상의 의복표현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만 바탕에 채전菜氈이 그려지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2품의 직위를 의미하는 쌍학의 흉배와 학정금대鶴頂金帶를 통해 단종 이후 정착된 흉배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전성부원군 이준선생 영정 안면부,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전성부원군 이준선생 영정 쌍학흉배,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얼굴은 같은 시기의 공신초상들처럼 좌안 7분면左顔 7分面을 하고 있다. 선묘를 중심으로 한 17세기 화풍이 잘 남아 있으나, 근래의 수리과정에서 더해진 흔적도 찾을 수 있다. 빛에 오래 노출되어 안료의 색은 많이 잃었지만, 풍성하고 세밀하게 표현된 수염의 묘사 등은 공신책록 당시 40대인 이준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

이 초상은 의복구성에서 화법에 이르기까지 조선중기 공신초상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준과 같은 평난공신이지만 다른 양식을 지닌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53호 한응인韓應寅 초상과 함께 다양했던 조선의 초상문화를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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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폭 160×85cm

    재질/ 비단

    주소/ 양주시 남면 개나리21길 16-8

    지정일/ 1990.09.06

    소유자/ 전성부원군 종회

    관리자/ 전성부원군 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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