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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을 꿈꾸는 사람들, 포천시 관인면

경기학광장Vol.1 _ Village & history

< 문화재생을 꿈꾸는 사람들, 포천시 관인면 >


- 경기학광장Vol.1 _ Village & history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8선 넘어 경기도 최북단의 마을


해방 이후 남북의 분계선이었던 ‘38선’을 한참 지나 북쪽으로 올 라가다 보면 강원도 철원군청보다도 더 위에 포천시 관인면이 있 다. 삼엄한 군사지역일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비록 농로 하 나를 경계로 군사지역인 신철원과 인접하고 있지만, 관인은 따뜻한 볕이 드는 풍요로운 농촌의 풍광을 간직한 마을이다. 철원군의 동 송읍과 포천시의 관인면, 영중면, 영북면 등 일명 철원평야로 불리 며 무수한 곡식이 자라나는 곡창지대로 ‘6.25-한국전쟁’ 당시 치열 한 각축전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중 남한에 의해 수복 된 관인을 빼앗긴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은 원통하여

보름을 통곡했다는 설이 전해질 정도다.



관인이라는 지역명은 후삼국시대 궁예(?~918년)가 철원을 도 읍으로 하는 태봉국(901년∼918년)을 세웠을 때, 폭정에 못 이겨 관직을 버린 관리들이 모여 이룬 마을에서 유래한다. 초과리, 탄동 리, 삼율리, 냉정리 등 11개의 마을로 이뤄져 있는데, 각 마을을 부 르는 명칭의 유래가 재미나다. 어느 곳을 파도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시원한 물이 난다하여 ‘냉정리(冷井)’, 본래 밤나무가 많아서 밤나 무골로 불리던 ‘삼율리(三栗)’, 배와 복숭아가 많이 나고 매년 처음 열린 과일을 진상했다하여 ‘초과리(初果)’, 숯가마가 많아서 ‘탄동 리(炭洞)’ 등 전통적 유래를 지닌다. 관인면은 역사적으로 소속이 자주 바뀌던 지역이다. 삼국초기에는 백제, 396년(광개토왕6)에는 고구려, 551년(진흥왕12)에는 신라였다. 1896년(고종33)에는 강원도 철원군에 속했다가 1909년(순종3)에 경기도 연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북한 치하에 들어갔다가 한국 전쟁 이후 수복되면서 경기도 연천군 관인면이 되었다. 1983년, 비 로소 포천군에 편입되는데 2003년 포천시로 승격되면서 현재에 이 른다. 관인면의 주민들은 연천군에서 포천군으로의 편입에 대해 당 시 상황을 증언한다. 주민들의 편의에 의한 것으로 당시에 행정적 업무를 보기위해 군청에 찾아가려면 걸어서 꼬박 2일이 걸렸다고 하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지역의 피난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한 실향민들은 수복지역인 관인면을 정 착지로 삼았다. 당시를 기억하는 마을 어르신들의 관인면 정착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하고 극적이다. 이 지역에 주둔 중이던 미군 40사단의 도움을 통해 마을이 조성되었는데, 미군이 사용하고 남은 천막과 나무기둥을 이용해 임시 주거지를 조성하고 인접한 불모지를 농토로 개간했다고 한다. 지금의 관인면사무소 중 심지역의 구조는 미군 40사단(일명 썬버스트sunburst)의 사단 로 고인 구름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모양에서 따온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방사형의 구조로 펼쳐진 길의 모양새가 태양의 빛을 시각화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관인면사무소를 중심으로 좌우에 초과리와 탄동리로 나뉘는데 중앙에 로터리를 중심으로 방사형 길 이 뻗어 나가고 사이사이에 골목들이 모세혈관처럼 연결되어 어느 지역을 들어가도 순환하여 돌아 나올 수 있는 구조가 특징적이다.

 

관인은 전후 대한민국의 아픔을 치유하고 북한과 남한의 사이에 서 새롭게 계획된 도시이다. 1960~70년대의 관인을 기억하는 주민 들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활기로 넘쳐나던 그때를 생생히 증언한 다.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장터의 풍경이며, 중고등학교 전교 생이 모이면 운동장에 발 디딜 틈도 없었던 이야기로 가득하다.




쇠락한 마을, 그러나 지속가능한 공동체


관인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거리는 조용하고 잔잔한 바람은 비료 냄새를 가득 싣고 코끝을 자극했다. 가게들은 대부분 비어있 거나 살림집으로 변해버린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눈에 들어온 것 은 손으로 깎아서 만든 간판들의 흔적이다. 뜯어지고 빛바랜 글자 들 사이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오래됨과 친숙함이 주는 다정하고 따뜻한 감정은 동시대를 살며 마모돼 날카로워진 감정을 무디게 하 는 힘을 지닌다. 60~70년대가 멈춰버린 마을의 풍경은 자체가 살 아있는 박물관이며, 도시의 시간성과 역사를 내포하는 중요한 사료 이기도 하다. 과도한 물질문명과 소비사회가 부추긴 지금의 도시 가 천편일률로 찍어낸 마천루라면, 관인의 그것은 꾸준히 살아 숨 쉬는 유기체적 마을의 모습으로 다양성의 보루이자 ‘오래된 미래’ 이다.


 마을의 쇠락이 방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관인은 골목 어디 를 가도 쓰레기가 떨어져 있거나 훼손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사 람 손길이 닿는 마을 곳곳에는 삶의 터를 아끼고 사랑하는 주민들 의 애정이 넘친다. 오히려 수도권 도심에서 나타나는 버려지고 노 후화된 마을의 경우처럼 공동체 의식의 결여나 불특정적인 외부요 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쇠퇴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관인의 경 우 오랫동안 지속한 공동체의 참여와 화합의 문제가 아닌 산업기반 시설과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젊은 세대의 이탈과 기성세대의 초고 령화로 인한 생산인구손실이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기존의 구도심을 정리하고 신도시를 만들어 아파트를 세우고 주 변에 공장이나 산업시설을 유치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복제된 도시 를 양산하는 개발중심의 논리이다. 그리고 사회 자본은 더이상 복 제된 신도시를 증설할 정도의 여유를 지니고 있지 않다. 소비지향 의 도시가 포화상태에 도달한 현재를 사는 시점에서 문화를 통한 마을재생에 대한 시도가 필요하다. 전국 각지에서 자본을 투입해 관 광·축제형 마을을 양산하기도 한다. 홍보·마케팅을 통해 단기간에 마을을 주변에 알리고 성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소중하게 가꿔온 자연을 순식간에 훼손하거나 경제적 이익의 배분 과정에서 공동체 붕괴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문화적 도시재생은 지속 가능한 공 동체의 존속을 염두에 둔 느리지만 무겁고 단단한 공동체의 재생을 의미한다. 공동체가 문화를 통해 과거를 공부하고, 일상에 새로움 을 더해 다양성의 가치와 공존의 방식을 인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