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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슬퍼서 아파서 평화로운 곳들, 화성

경기학광장Vol.1 _ Trip & healing

< 슬퍼서 아파서 평화로운 곳들, 화성 >


- 경기학광장Vol.1 _ Trip & healing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화성(華城)은 그 이름의 뜻처럼 화려한 도시다. 적어도 번화한 신도시와 크고 작은 산업 단지들을 보면 그러하다. 산과 바다, 논밭까지 가졌으니 다채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도시는 꽃이 핀 자리의 아름다움만 보여주지 않는다. 꽃이 지고 쓸쓸했던 자리의 사연을, 그 시간의 궤적을 은근하게 품고 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도시다. 다만 그 상반된 매력이 얼른 드러나지 않기에 여행자로선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곳이 바로 화성이다 .


장조로 추존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능인 융릉

인터넷 검색사이트에 화성 여행을 검색하면 총 세 곳의 화성이 목적지로 등장한다. 행성 화성(火 星)과 성곽 수원화성(水原華城), 그리고 지명 화성(華城). 아직은 누구도 여행한 적 없는 미지의 행성 여행은 상상으로만 가능하기에 신비롭고 매혹적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명성을 자랑하는 성곽 여행은 ‘한 번쯤은 꼭 가야 할’ 명소로의 당위성을 갖는다. 우주적이고 글로벌한 ‘화성’들 사이에서 여행지로서의 도시 화성은 어쩐지 위축되는 감이 있다. 여행지로서 볼거리가 없거나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덜 알려진 까닭이다.

화성은 보기 드물게 다채로운 얼굴을 가진 지역이다. 도시와 논밭, 산과 바다, 산업 지대가 고루 분 포한다. 지하철이 지나는 동탄 신도시와 53km의 해안선으로 이어진 바닷가 풍경. 그 둘 사이는 아득하게 느껴지나 모두가 ‘화성’이라는 지명 안에 자리한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도시의 얼굴을 더듬어가는 여행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이 도시에는 오래전 옛사람들의 마음을 품은, 소위 ‘사연 많은 장소’ 들이 많다. 그 사연을 도시는 가볍게 내보이지 않는다. 허투루 보여줄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기에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야 곁을 내어준다. 언뜻 대표적인 이미지나 상징은 없어 보이지만 발이 닿는 곳마다 희로애락이 깃든 세월의 품을 가진 곳이 화성이다.
사실 전술한 다른 화성들과 견주어도 도시 화성은 전혀 작아질 이유가 없다. 숱한 도시들이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와중에 화성시는 2018년 인구 70만 명을 돌파하며 대도시로 입지를 굳혔다. 생명체의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행성 화성보다는 덜 외로운 여행지임이 확실하다. 수원화성과 견준다면 화성이 가진 비장의 카드 ‘융릉’을 꺼내 들어야 할 것이다. 융릉이 있기 전에 수원화성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썰물 때의 궁평항 풍경


융릉이 천장된 이듬해인 1790년 조성된 원형 연못 곤신지. 풍수지리적으로 묘지에서 처음 보이는 물을 지칭하는 '생방(生方)'에 해당한다.

뒤주의 비극, 꽃산의 해피엔딩으로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던 열 살 소년 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길이 없다. 애달프다, 비통하다는 표현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무게였으리라. 소년은 자라 왕이 되었고 권력이 생기자 비로소 가슴에 묻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공고히 한다. 그가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한 일이 아버지의 존호를 장헌(莊獻)으로 올리고 묘소를 볕 좋은 명당지로 옮기는 것이었다. 정조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이야기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조선왕조 500년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부자 관계로 일컬어진다. 그렇기에 할아버지 영조와 아버지 사도세자 사이에서 상처와 결핍이 컸을 정조가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성군으로 성장한 역사적 사실은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결국 아버지와 함께 ‘꽃산’에 나란히 묻힌 정조의 일대기는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부자의 능은 연꽃이 봉우리를 감싼 형태라 해서 ‘화산(花山)’이라 불리는 명당지에 자리한다. 정조가 아버지의 능 주변에 꽃나무를 많이 심으라는 명을 한 덕에 산은 그 이름처럼 진정한 꽃산이 되 었다. 사도세자의 능이 융릉, 정조의 능이 건릉이다. 정확히는 추존 황제 장조(사도세자)와 헌경의황후(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 융릉이며 정조와 효의선황후의 합장릉이 건릉이다.

융릉과 홍살문 전경

정조는 융릉을 열두 차례나 참배했다. 동행되는 인원만 6천명이 넘는 거국적인 행사를 열두 번이나 치른 것이다. 거리나 가까운가. 임금의 원행이 80리를 넘을 수 없던 때, 88리나 되는 길을 80리라 명명하면서까지 아버지를 뵈러 갔으니 능에 들인 정성은 지극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그래서 융릉은 감상 포인트가 많다. 융릉은 본래 세자의 묘인 원이었지만 정조는 국왕의 지위에 준하도록 방풍석과 문·무인석, 팔각 장명등을 설치하고 중계 공간과 하계 공간을 나누도록 했다. 능침을 둘러싼 병풍석 덮개의 12방위 연꽃 조각과 인석 (병풍석 위에 얹은 돌) 끝에 조각된 연꽃은 조선시대 연꽃 조각 중 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병풍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석물에 국화, 목단, 연꽃 등의 꽃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다만 아쉽게도 방문자들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능침 가까이에 다가갈 수 없다.

융릉의 가장 큰 특징은 정자각과 능침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본래 조선왕릉의 능침은 정자각, 홍살문을 일직선에 배치해 참배자에게는 잘 보이지 않게 조영한다. 신성한 공간임을 의미 하는 조영인데 융릉은 정자각이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흔히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죽은 아버지의 답답함을 해소해주고 싶은 아들의 마음이 반영된 배치로 이해하지만 능침 뒤로 보이는 산봉우리가 잘 보이도록 열어둔 배치라는 의견 또한 타당해 보인다. 당시 풍수상으로 능침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곧 용이 입에 문 여의주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즉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대하고 ‘용의 자리’에 모시고자 했던 정조의 마음이 반영된 것인데 이유야 무엇이 됐든 그 모두가 아버지를 위한 것임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건릉은 융릉에서 걸어서 10분쯤 떨어진, 융릉 서쪽 구릉에 자리한다. 융릉과 비슷한 형태지만 융릉처럼 화려한 병풍석은 없고 다만 난간석만 있다. 합장릉이지만 혼유석이 하나이고 팔각의 장명 등석도 융릉과 같다. 두 기의 능 중에서 시선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융릉일 테지만 이는 또한 정조가 바랐던 바였을 것이다. 정조는 이미 능이 아닌 곳, 대표적으로는 수원화성에서 숱하게 불리는 이름이다. 후대에도 죽음이 아닌 꿈으로 이야기 되는 임금이 정조다. 사도세자의 이장 직후 그가 축성한 수원화성의 근본에는 정치적 포부 이전에 ‘효심’이 있다. 융릉이 존재치 아니했다면 수원 화성 또한 없었을 것이라 단정하는 이유다.
융릉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고자 창건한 용주사가 있다. 전통적 가람 배치가 아닌 궁궐의 전각 배치 방식을 채택한 사찰인데 그 이유는 앞선 설명에서 납득할 수 있다.

무명의 순교자들을 위한 평화의 성지

정조 재위 때인 1791년, 어머니 제사를 지내지 않은 양반 윤지충과 권상연에 대한 처형이 있었다. 천주교인의 첫 번째 처형으로 알려진 신해박해다. 그래도 정조는 천주교에 대해 다소 미온적인 반 응을 보였다. 본격적인 박해는 정조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부터 시작되었다. 1801년 일어난 신유박해로 신자 100여명이 처형되고 400여 명이 유배형에 내려진다. 그 절정이 1866년 일어난 병인박 해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9명을 포함한 8,000여 명이 처형당했다. 많은 희생이 있었던 만큼 우리나라 곳곳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에 성당과 묘소 등을 마련한 성지가 있다. 화성 남양성모성지도 그 중 한 곳이다.


남양성모성지의 산책로 일대

남양성모성지는 특정한 천주교인이 아닌 이름 없이 순교한 신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순례지다. 또한 한국 천주교회가 성모성지(聖母聖地)로 공식 선포한 곳이다.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과 너른 잔디밭이 어우러진 성지에는 어느 하나 모나거나 시선을 앗아가도록 지어진 건물이나 조형물이 없다. 그저 너르고 평평한 품으로 모든 이들을 맞이할 뿐이다. 단지 곳곳에 세워진 성모상과 성 요셉상, 예수상, 비오 신부상 등의 동상이 이곳이 성지임을 증명한다. 야트막한 언덕과 아름다운 정원을 돌아드는 1km의 묵주기도의 길과 십자가의 길을 가만히 걷다 보면 어디선가 잔잔한 성가가 들려온다. 때론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의 기도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평온이 깃드는 순간이다.


남양성모성지 묵주기도의 길 입구

사람들이 스러진 자리, 풀잎은 희망으로 돋고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웠을 작은 교회당이 일시에 지옥으로 변했다. 일본군은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마을주민 30명을 교회당으로 몰아놓은 후 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사격을 퍼부었 다. 그도 모자라 교회당에 불을 지르고 근처 민가까지 불태워 무고한 양민 39명을 학살했다. 화성 제암리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단지 사실을 적은 문장만으로도 현장의 참혹함이 느껴진다. 국권을 강탈 당한 35년의 일제강점기는 그 모든 시간이 비극이지만 제암리 학살 사건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잔인했던 일제의 만행이었다. 일본군은 1919년 3월, 제암리를 비롯한 화성시 전역에서 일어났던 주민들의 거국적인 독립운동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그토록 잔인할 줄은 몰랐다. 어린아이마저 찔러 죽인 그들의 광기 서린 학살은 당시 현장을 사진으로 남긴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 스코필드에 의해 여론화되었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은 무고한 양민들이 스러져간 그 자리에 세워졌다.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슬픔과 분노의 어제를 기억하며 평화의 오늘을, 희망의 내일을 꿈꾸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기념관은 화성지역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한 역사적 자료와 생존자의 증언을 전시하고 있다. 시청각실에서 관련 영상을 관람한 후 제1전시관과 제2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다. 야외공원에는 3‧1운동 순국기념탑과 희생자 23인의 합동묘지가 있으며 제암리 사건을 통해 일제의 포악상을 외국으로 알린 스코필드 박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일본군이 마을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던 제암리 교회와 이후 세워진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앞 정원에 꽂혀진 태극기들

일제의 만행을 세계 언론에 알렸던 선교사 스코필드의 동상

견학 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기념관 정원 위로 흘러든다. 기념비와 잔디밭, 정원수들로 말끔하게 정돈된 기념관 주변 공원은 태곳적부터 공원이었을 것만 같다. 하물며 교회당이 학살지가 될 것 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희생으로 되찾은 평화에 마음이 숙연해진지는 곳이다.


낙조를 감상하기 좋은 궁평항의 썰물 때 풍경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 세워진 3·1운동 순국기념탑

모든 지는 것들은 아름다워서

서쪽 바다를 낀 도시 여행의 대미는 역시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감상하는 것이다. 화성 해안에서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은 궁평항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피싱피어(낚시데크)가 있어 더욱 인기가 많은 항구다. 광활한 바다 위에서 낚시를 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사계절 낚시꾼들로 북적인다. 바다 위로 길게 나 있는 나무데크 위는 수상 낚시터인 동시에 바다를 감상하거나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여행자들의 놀이터다. 일몰 시간이 되면 고기도 낚고 시간도 낚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한 곳을 향한다. 바다 아래로 조금씩 사라져가는 태양을 바라본다. 바다도, 하늘도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색으로 물든다. 대체로 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떨어지는 꽃송이, 별똥별, 태양 그 모두가 아름답다. 곧 사라질 것을 알기에 쓸쓸하고 덧없으나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앞서 소개한 화성의 여행지들은 모두 명과 암의 사연을 함께 가진 곳들이다. 어둠이 있어 밝음이 있고 슬픔이 있어 행복이 있듯 지었으므로 피고, 또 피었으므로 지는 이치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장소들이다. 그런 면에서 화성의 명소들은 갖은 풍파를 겪고 이윽고 어떤 경지에 오른 선인을 보는 듯하다.


궁평항을 찾은 나들이객들


궁평항에 설치된 수상 데크

글 유승혜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국내외 곳곳을 걷고 문장으로 적는 일을 한다. 지은 책으로 『쉼표,앙코르와트』, 『쉼표,경주』, 『쉼표,제주』, 『같이 오길 잘했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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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학광장 Vol.1 _ 2019 여름창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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