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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길, 조선물류의 대동맥

경기학광장Vol.1 _ Information & news


< 삼남길, 조선물류의 대동맥 >


- 경기학광장Vol.1 _ Information & news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기도 옛길 역사문화탐방로 사업’(이하 경기옛길)은 제주로(해남로)에 기반하여 조성된 삼남길로부터 시작된다. 경기도가 조선의 간선도로망을 기반으로 하여 옛 조선시대의 길을 자동차가 아닌 두 발로 걸어서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것이 경기도 옛길이다. 옛 선인의 발자취를 체험한다는 목표 아래 이름도 역사문화탐방로로 정했다. 이번 호에서는 경기옛길사업의 첫 단추인 삼남길을 먼저 소개한다. 참고로 지명에 관련한 이름들은 고유명칭의 혼동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한자를 병기한다.

1) 경기옛길 삼남길의 기반, 삼남대로(三南大路)의 개념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삼남대로는 조선시대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 이후 한양에서 삼남(三南;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지방으로 통하는 대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경기옛길 사업에서는 조선시대의 간선도로망을 표현할 때 당시의 명칭을 살려 ‘삼남로(三南路)’(또는 삼남대로三南大路)로 표현하며 현재의 도보탐방로를 칭할때는 ‘삼남길’로 부른다. 이 두 노선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삼남로의 원형을 소개한 후 밝히도록 한다. 먼저 삼남길의 기반이 되는 삼남로의 노선을 살펴보자.

도성에서 지방의 삼남지방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여러 갈래가 있었다. 대체적으로 숭례문(崇禮門)에서 출발, 이문동(里門洞)-주교(舟橋)-청파역(靑坡驛)-석우참(石隅站)[分岐]-와요현(瓦窯峴)-판전거리(飯廛巨里)-동작진(銅雀津)을 지나 과천방면을 거쳐 수원지역으로 연결되거나 석우참(石隅站)에서 분기(分岐)하여-둔지산(屯之山)-서빙고진(西氷庫津)-6리와 당현(堂峴)-만초천(蔓草川)-습진기(習陣基)-노량진(露梁津)을 통하여 시흥방면을 지나 수원지역에서 합류하여 삼남지방으로 가는 길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흥인문(興仁門)을 출발, 동묘(東廟)에서 분기하여 영도교(永渡橋)-왕십리(旺深里)-차현(車峴)-전곶(箭串) 제반교(濟礬橋)를 지나 신천, 송파를 거쳐 충청 일부를 통과하여 동래로로 연결되는 길이다. 이 동래로는 또 한강진(漢江津)을 지나 신원점(新院店)-현천점(縣川店)-판교점(板橋店)-험천(險川)과 용인을 거쳐 충청지방 일부를 통과하여 동래로로 연결되는 도로를 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숭례문을 출발, 동작진, 노량진을 건너 남태령과 과천을 지나 수원방면으로 향하는 해남로나 제주로를 소개한다. 기실 삼남지방으로 가는 모든 대로를 통칭하는 말이 삼남대로였으나 경기옛길 도보탐방로의 첫 노선을 제주로와 호남로로 정하면서 삼남대로의 명칭이 경기옛길 삼남길에 반영되어서 이와 같은 명칭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부산으로 향하는 동래로(또는 영남대로) 기반의 영남길이 별도로 도보탐방로 영남길로 조성되어 영남길은 차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경기옛길 사업에서 삼남길이라고 부르는 삼남대로 기반의 도로는 조선후기 『대동지지(大東地志)』나 『도로고(道路攷)』 등에 의하면 해남로(海南路) 또는 제주로(濟州路)로 불리는 노선 이다.

2) 삼남대로 노선과 길 위의 이야기들

삼남대로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으로 연결된 도로로서 제주로와 해남로가 이에 해당된다. 사실 제주로와 해남로의 노선은 거의 일치하는데 제주도까지 입도(入島)하는 노선은 제주로이며 전라도 해남을 목적지로 하는 경우가 해남로가 된다. 여기서는 삼남로(제주로, 해남로)의 노선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길 위에 켜켜히 남아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신경준의 『도로고(道路攷)』에 따르면 제5로 제주로는 다음과 같다. (숫자는 양 지역 간의 거리 표시)

京城-10銅雀津-20果川-13葛山店-7伐沙斤川-10沙 斤川(彌勒堂)-30水原府-20烏山 新店(徑路;彌勒堂-20 중두점-10烏梅)-2菁好驛(漢江-別院-20石隅店-20菁好 驛)-8振威縣-18葛院-12素沙店-3牙州橋-15成歡驛-10 愁歇院店-10稷山縣-7竝長栍隅-13肥土里-10天安郡-5 三巨里-15金蹄驛-10德平-10院基-5車嶺-5仁諸院-10廣 亭倉-10弓院-15毛老院-20新店-5錦江 公州-13孝家店 -15板峙-15敬天驛-12尼城縣-10草浦橋-12沙橋-10恩津 縣-30礪山府-20炭峴-20參禮驛-50金溝縣-20院橋-20 泰仁縣-20大橋-13井邑縣-22川院(大橋-30川院;사객경 유)-20院德里-20靑岩驛-10長城府-40仙岩驛-50羅州 -40夫小院-30靈岩郡(素沙-濁川-牙山後川新店-公州- 維鳩驛-定山-銀山驛-林川-咸悅-臨陂-萬頃-扶安-古阜 -興陽-茂長-靈光-咸平-務安-羅州 南倉-務安 扶南倉- 靈岩;使星分行大路) -20月南店-10石梯院-20別鎭驛-30 海南縣-25海倉-25舘頭梁-濟州

표 신경준 『도로고(道路考)』의 제주로 경로


이를 구간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경성-과천 구간 도로이다. 이 구간은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을 출발 돈령부敦寧府 전로前路-파자전把子廛 석교石橋-통운석교通雲石橋-종루鐘樓 전로前路-대광동大廣通 석교石橋-소광동小廣通 석교石橋 -동현병문銅峴屛門 전로前路-송현松峴-수각水閣 석교石橋 -숭례문崇禮門-이문동里門洞-청파靑坡 주교舟橋-청파역靑坡驛-석우참石隅站에서 분기하여 와요현瓦窯峴-반전거리飯廛巨里-동작진銅雀津을 건넌 다음 승방평僧房坪과 남태령南泰嶺을 넘어 과천果川에 이르는 길이다.
도성에서 한강을 건너는 방법은 한강의 나루(진도津渡) 설치 이후 여러 갈래였으며 그 중에서 과천 방향(과천로果川路)으로는 동작진(銅雀津)을 건너고, 시흥방면(시흥로始興路)으로는 노량진(露梁津)을 건너게 되었다.


조선시대 간선도로망


이러한 삼남로의 노선은 누가 이용했을까? 평소에는 궁 밖이나 도성 외부로 나갈 일이 많지 않은 것이 조선의 많은 왕들이지만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 도성 밖 행차를 할 때 삼남로의 노선을 이용했다. 선왕들의 능에 참배를 하기 위한 능행차(능행陵行)나 요양을 위한 온천 여행(온행溫行)에 주로 이용되었는데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도 특히 도성 밖 행차를 많이 한 인물로는 정조를 꼽을 수 있다. 과천로는 특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원인 현륭원顯隆園 조성 이후 화성 능행차 때에 사용된 도로로서 남태령 개척과 더불어 중요한 삼남로의 한 갈래였던 것이다.

삼남로를 이용한 것은 비단 왕실의 행차뿐만이 아니었다. 삼남 대로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오가는 주요 간선도로였기 때문에 양반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애용해 왔다. 민간 에서 삼남로를 이용한 기록은 판소리 「열녀춘향슈절가」(이하 춘향전) 에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후기부터 현재까지 사랑받는 판소리 작품인 춘향전에는 한양을 나서 삼남로를 이용해 남원까지 도 착하는 경로가 잘 드러난다. 춘향전에 해당 대목은 ‘이몽룡노정기’ 라는 명칭으로 별도로 자주 불리는 주요 대목이다.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집으로 돌아와 부모전에 뵈온 후에 선산에 소분하고 전라도로 내려올 제, 남대문 밖 썩 나서 청파역에 말 잡아타고 칠패 팔패 배다리를 얼른 넘어 밥전거리를 지내어 동작강 얼른 건너 남태령을 바삐 넘어 과천에 숙소하고, 상류천 하류천 대판교 떡전거리 진개울 죽산 자고 천안 김계역 말 갈아타고, 역졸에게 분부하고 금강을 얼른 건너 높은 한길 여기로다. 소개 널 티 무덤이 경천 중화하고 노성 풋개 사다리 닥다리 황화정이 여산 숙소하고 서리 불러 분부하고 전라도 땅이로구나.
- 춘향전 중 이몽룡노정기-

춘향전에는 남대문-청파역-칠패-팔패-배다리-밥전거리-동 작강-남태령으로 남대문부터 현재 서울 지역의 한강 도강(渡江)까지 후 남태령까지의 지명이 상세히 열거된다. 남태령은 도성의 관문으로서 관악산의 영로(嶺路)의 하나이며 새로이 조성된 탐방로인 경기옛길 삼남길 1코스 남태령길의 시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경기도내 삼남대로 노선의 시작점인 남태령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고 넘어가자. 남태령의 유래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에도 언제부터 개척되었는지 상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한양천도 이후 삼남지방으로 통하기 위해서는 자연지형인 관악산을 넘어 과천방향으로 가는 길목인 남태령이 유력한 교통로로서 인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의하면 남태령은 “高麗稱葉戶峴 轉稱狐峴 通京大路 峴北七里 有牧場古址”라 하여 고려시대에 엽호현(葉戶峴)으로 불리다가 언젠가 호현(狐峴)으로 개칭되었으며 개경으로 통하는 대로였다고 전하고 있다. 또 고개로부터 7리 정도에 목장터가 있다고 하였다. 이 목장터는 『경기지(京畿誌)』 3책, 과천(果川) 고적조(古蹟條)에 의하면 “관악산 북쪽 산등성이에 둘레 10리 정도의 토성을 쌓고 여기에 목장을 설치했는데 호환이 자주 발생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고 아랫마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사복시 목장을 설치 하였던 것 같다. 따라서 남태령은 고려시대부터 개경과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간선교통로로서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사복시 목장을 설치할 정도로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남태령은 정조시기 현륭원 조성과 화성축성 이후 원행에 따른 연로(輦路)로서 지역주민을 동원하여 길관리(치도治道)에 힘쓰는 등의 중요한 고갯길로서 기능하였다.

다시 삼남대로 노선 이야기로 돌아오면 숭례문에서 남태령까지의 노선은 현재 행정구역상 경기도가 아닌 서울특별시에 속하기 때문에 경기옛길 사업의 대상지는 아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노선이 현 경기도 관내에 위치한 경기옛길 삼남길의 기반이 되는 삼남대로의 노선이 된다. 우선 경기 과천-수원까지의 경로이다.


남태령 옛길


증보문헌비고

『도로고』에서는 과천果川-13갈산점葛山店-7벌사근천伐沙斤川-10사근천沙斤川(미륵당彌勒堂)-30수원부水原府, 『대동지지』에서는 과천果川-8인덕원仁德院-3갈산점葛山店-9사근평肆覲坪-5지지대遲遲臺-15수원水原, 『증보문헌비고』에서는 과천果川-10갈산참葛山站-(노량진鷺梁津경유-10노량鷺梁 -22금천衿川-28미륵당彌勒堂)-20미륵당彌勒堂-수원水原까지이며 지지地誌에 따라 조금씩 가감이 있다.

이들 세 자료를 종합해보면 과천果川-인덕원仁德院-갈산점葛山店(또는 갈산참葛山站)-벌사근천伐沙斤川-사근천沙斤 川-사근평肆覲坪-지지대遲遲臺(지지대현遲遲臺峴,미륵당彌 勒堂/미륵당원彌勒堂院)-수원水原까지이다. 과천에서 수원까지 사이의 옛길은 공수천公須川, 인덕원천仁德院川, 벌사근천伐沙斤川 및 사근천沙斤川을 지나 지지대遲遲臺(지지대현遲遲臺峴)을 넘어 수원에 연결되는 도로이다. 이 중에서 인덕원仁德院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최초로 보이고 있는 원院으로서 나그네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여관성격의 교통시설의 하나이다. 조선후기 상업 및 물자 유통의 발달에 따라 교통로에 원院과 주막酒幕이 많이 설립되었는데 인덕원과 갈산참이 그것이다. 사근천沙斤川은 정조 19년(1795) 경기감영의 보고에 따라 사근평肆覲坪으로 개칭되었으며, 지지대현遲遲臺峴은 수원부 북쪽 15리의 광주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조시대 능행차의 주필처(휴식장소) 로 지정되었고 과천, 시흥 방면에서 수원으로 가는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순조純祖 정묘면丁卯年(순조7:1807)에 이곳에 지지대 비遲遲臺碑와 비각碑閣을 건립하였다.
특히 도성에서 수원 현륭원까지는 정조의 원행로園幸路로서 과천로果川路와 별도로 시흥로始興路가 개척되었는데 대동지지의 수원별로水原別路가 그것이다. 경도京都-10노량진露梁津 (용앙봉저정龍驤鳳翥亭 행궁行宮)-15문성동文星洞-5시흥始 興(분기)-10안양행궁安養行宮-20사근평肆覲坪 행궁行宮(과천로果川路 합류)-20수원행궁水原行宮- 20건릉健陵까지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 창덕궁에서 출발하여 수원 현륭원에 이르는 원행로를 『원행정례園幸定例』 및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의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시흥로는 돈화문敦化門을 출발하여 돈령부전로敦寧府前路 → 파자전교把子廛橋 →통문교通雲橋 → 종루전로鐘樓前路 → 대광통교大廣通橋 → 소광통교小廣通橋 → 동현병문전로銅峴屛門前路 → 송현松峴 → 수각교水閣橋 → 숭례문崇禮門 → 도저동전로桃楮洞前路 → 청파전교靑坡橋 → 석우石隅 → 율원현栗園峴 → 나업산전로羅業山前路 → 만천蔓川 → 노량주교鷺粱舟橋 → 용앙봉저정龍驤鳳翥亭 → 장안현長安峴 → 장생현長生峴 → 도화참발소전로桃花站撥所前路 → 번대방천교蕃大坊川橋 → 번대방평蕃大坊坪 → 마정천교馬場川橋 → 문성동전교文星洞前路 → 수천참발소전로壽川站撥所前路 → 부장천교富壯川橋 → 시흥원행궁始興縣行宮→ 대박산전평大博山前坪 → 염불교念佛橋 → 만안교萬安橋 → 안양참발소전로安養站撥所前路 → 장산우長山隅 → 군포천교軍布川橋 → 서원천교書院川橋 → 청천평淸川坪 → 서면천교西面川橋 → 원동천院洞川 → 사근평肆覲坪 → 사근발참소전로肆覲站撥所前路 → 사근참행궁肆覲站行宮 →지지현遲遲峴 → 지지대遲遲臺 → 괴목정교槐木亭橋 → 용두전로龍頭前路 → 목욕동교沐浴洞橋 → 여의교如意橋 → 만석거萬石渠 → 여의경如意坰 → 영화정迎華亭 → 대유평大有坪 → 관길야觀吉野 → 장안문長安門 → 종가鐘街 → 화성참발소전로華城站撥所前路 → 좌우군영전로左 右軍營前路 → 신풍루전로新豊樓前橋 → 신풍루新豊樓 → 화성부행궁華城府行宮 → 신풍루新豊樓 → 신풍루전교新豊樓前橋 → 좌우군영전로左右軍營前路 → 팔달문八達門 → 매교梅橋 → 상류천점上柳川店 → 건장동健壯洞 → 황교皇橋 → 옹봉甕峯 → 대황교大皇橋 → 유첨현逌瞻峴 → 안녕리安寧里 → 유근교逌覲橋 → 만년제萬年堤 → 원소동구園所洞口 → 원소재실園所齋室.(이상 도성의 돈화문부터 원소까지 도로 83리, 교량 24처)

② 과천로는 돈화문敦化門을 출발 돈령부전로敦寧府前路 → 파자전교把子廛橋 →통운교通雲橋 → 종루전로鐘樓前路 → 대광통교大廣通橋 → 소광통교小廣通橋 → 동현병문전로銅峴屛門前路 → 송현松峴 → 수각교水閣橋 → 숭례문崇禮門 → 도저동전로桃楮洞前路 → 청파교靑坡橋 → 석우石隅 → 율원현栗園 峴 → 나업산전로羅業山前路 → 만천蔓川 → 노량주교鷺粱舟橋 → 용앙봉저정龍驤鳳翥亭 → 만안현萬安峴 → 금불암金佛 庵 → 금불현金佛峴 → 사당리社堂里 → 상암천교裳巖川橋 → 남태령南泰嶺 → 과천현행궁果川縣行宮 → 읍내전천교邑內前 川橋 → 냉정점冷井店 → 은행정銀杏亭 → 인덕원점후천교仁德院店後川橋 → 인덕원천교仁德院川橋 → 독박지禿朴只 → 갈산동葛山店 → 독동현禿洞峴 → 군보천점軍堡川店 → 자잔동自棧洞 → 원동점院洞店 → 사근평肆覲坪 → 사근참발소전로肆覲站撥所前路 → 사근참행궁肆覲站行宮 → 지지현遲遲峴 → 지지대遲遲臺 → 괴목정교槐木亭橋 → 용두전로龍頭前路 → 목욕동교沐浴洞橋 → 여의교如意橋 → 만석거萬石渠 → 여의경如意坰 → 영화정迎華亭 → 대유평大有坪 → 관길아觀吉野 → 장안문長安門 → 종가鐘街 → 화성발참소전로華城站撥所前路 → 좌우군영전로左右軍營前路 → 신풍루전교新豊樓前橋 → 신풍루新豊樓 → 화성부행궁華城府行宮 → 신풍루新豊樓 → 신풍루전교新豊樓前橋 → 좌우군영전로左右軍營前路 → 팔달문八達門 → 梅橋 → 상류천점上柳川店 → 건장동健壯洞 → 황교皇橋 → 옹봉甕峯 → 대황교大皇橋 → 유청현逌瞻峴 → 안녕리安寧里 → 유근교逌覲橋 → 만년제萬年堤 → 원소동구園所洞口 → 원소제실園所齋室.(이상 도성으로부터 원소까지 도로 85 리, 교량 21처)까지이다.

위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삼남로 노선에서 경기옛길 삼남길의 도보탐방로는 ②과천로의 남태령부터 노선을 택하고 있다. 다만 정조의 현륭원 능행차만을 다루는 위 기록들에서는 삼남대로의 나머지 노선은 딱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 수원 남부 노선은 『도로고』와 『대동지지』,『증보문헌비고』 기록들을 통해 종합적으로 살펴보자.

다음은 수원-천안 구간의 도로이다.
『도로고』에는 수원부水原府-20오산천점烏山新店(경로徑路;미륵당彌勒堂-20중두점-10오매烏梅)-2청호역菁好驛(한강漢江-별현別院-20석우점石隅店-20청호역菁好驛)-8진위현振威縣-18갈현葛院-12소사점素沙店-3아주교牙州橋-15성환역成歡驛-10수헐원점愁歇院店-10직산현稷山縣-7병장생우竝長栍隅-13비토리肥土里-10천안군天安郡
『대동지지』에는 수원水原-15하류천下柳川-15중미현中彌峴-8오산점烏山店-12진위振威-10대백치大白峙-8갈원葛院-2가천加川-10소사점素沙店-3아교牙橋-7홍경비弘慶碑-10성환역成歡驛-5수헐원愁歇院;悉音所-5직산稷山-7병장승우幷長承隅-13비토리圮土里-10천안天安
그리고 『증보문헌비고』에는 미륵당彌勒堂-유천柳川-25중저中底-10청호역菁好驛[한강진漢江津-용인읍龍仁邑-40청 호역. 작은 길小路]-8진위振威-30소사素沙-20성환역成歡驛-40천안天安까지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수원水原-유천柳川-하류천下柳川-중미현 中彌峴-오산신천烏山新店(오산점烏山店)-중저中底-청호역菁好驛-진위振威-대백치大白峙-갈원葛院-가천加川-소사점素沙店-아교牙僑(또는 아주교牙州橋)-홍경비弘慶碑-성환역成歡驛-수헐원愁歇院(실읍소悉音所)-직산稷山-병장승우幷長承隅(또는 병장생우竝長栍隅)-비토리圮土里(또는 비토리肥土里)-천안天安으로 연결되는 도로이다.
수원-천안 간에는 유천柳川, 하유천下柳川, 가천加川을 건너고 대황교大皇橋, 아주교牙州橋 등의 교량, 수원 관할의 청호역菁好驛, 직산의 성환역成歡驛을 지나고 또 오산점烏山店이나 소사점素沙店과 갈원葛院, 수헐원愁歇院을 통과한다. 특히 이 구간의 영로嶺路로서 독선산성禿城山城과 연결된 중미현中彌峴과 진위는 3도로 통하는 요충지로서 부락산(佛樂山)과 이어진 대백치(大白峙)는 삼남지방으로 통하는 대로상의 고갯길이다.

위와 같은 삼남대로의 경기도 관내 구간들은 오랜 시간동안 여러 가지 목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한 경로이다. 앞서 살폈던 정조 임금이나 고전 소설속 춘향전의 이몽룡뿐만이 아니다. 삼남대로는 목적지가 해남과 제주도이며 호남으로 향하는 가장 큰 길이다. 해남과 제주는 대표적인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이기도 하여서 유배를 떠나거나 유배에서 풀려 돌아온 많은 이들이 밟은 길이기도 하다. 전남 강진과 신안으로 유배를 갔던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가 밟은 길이며 억울한 옥살이가 끝나고 백의종군을 위해 이순신 장군이 밟았던 경로이기도 하다. 그가 옥문을 나와 숭례문에서 충남 아산에 이르기까지 밟았던 삼남대로의 경기도 관내 노선은 『난중일기(亂中日記)』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잠시 기록을 살펴보자.

정유년 4월 (1597년 4월)

4월 초1일 (신유) 맑음 [양력 5월 16일]

옥문을 나왔다. 남문(숭례문) 밖 윤간의 종의 집에 이르니, 조카 봉․ 분(芬)과 아들 울(蔚)이 윤사행(尹士行)․원경(遠卿) 과 더불어 한 대청에 같이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지사 윤자신(尹自新)이 와서 위로하고 비변랑 이순지(李純智)가 와서 봤다. 더해지는 슬픈 마음을 이길 길이 없다. 지사가 돌아갔다가 저녁 밥을 먹은 뒤에 술을 가지고 다시 왔다. 윤기헌(尹耆獻)도 왔다. 정으로 권하며 위로하기로 사양할 수 없어 억지로 마시고서 몹시 취했다. 이순신(李純信)이 술병 채로 가지고 와서 함께 취하며 위로해 주었다. 영의정(류성룡)이 종을 보내고 판부사 정탁(鄭琢)․ 판서 심희수(沈禧壽)․ 우의정 김 명원(金命元)․ 참판 이 정형(李廷馨)․대사헌 노직(盧稷)․ 동지 최원(崔遠)․ 동지 곽영(郭嶸)이 사람을 보내어 문안했다. 취하여 땀이 몸을 적셨다.

4월 2일 (임술)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5월 17일]

여러 조카들과 이야기했다. 방업(方業)이 음식을 매우 풍성하게 차려 왔다. 필공을 불러 붓을 매게 했다. 어두울 무렵 성으로 들어가 영의정과 밤 깊도록 이야기하다가 헤어져 나왔다.


4월 3일 (계해) 맑다. [양력 5월 18일]

일찍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금오랑 이사빈(李士贇)․서리 이수영(李壽永)․나장 한언향(韓彦香)은 먼저 수원부에 이르렀다. 나는 인덕원(의왕시 인덕원)에서 말을 쉬게 하고 조용히 누워서 쉬었다. 저물어서 수원에 들어가서, 경기 체찰사의 수하에서 심부름하는 병졸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집에서 잤다. 신복룡(愼伏龍) 은 나의 임시로 사는 집에 이르러 내 지나가는 걸 보고는 술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나를 위로했다. 순천부사 류영건(柳永健)이 나와서 봤다.


4월 4일 (갑자) 맑다. [양력 5월 19일]

일찍 길을 떠나, 독성(수원시 태안읍 양산리)아래에 이르니, 반자(判刺) 조발(趙撥)이 술을 준비해 놓고 막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취하도록 마시고 길을 떠나 바로 진위구로(평택군 진위 면 봉남리)를 거쳐 냇가에서 말을 쉬게 했다. 오산에 이르러 황천상(黃天祥)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황천상(黃天祥)이라는 사람은 내 짐이 무겁다고 말을 내어 실어 보내니, 고마울 뿐이다. 수탄을 거쳐 평택현 이낸손(李內隱孫)의 집에 투숙했는데, 주인이라는 사람이 대접이 매우 은근했다. 자는 방이 몹시 좁은데 따뜻하게 불까지 때어 땀이 흘렀다.


이순신 장군이 말과 함께 조용히 누워 쉬던 인덕원

삼남대로를 통한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길에는 가족과 친구, 그를 신뢰하던 수하 장수와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없는 살림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 따뜻한 방을 제공하며 길 위에 있는 그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경기옛 길 삼남길은 이렇듯 우리 선조들의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켜켜히 쌓여있는 것이다.

3) 삼남대로와 경기옛길 삼남길

삼남대로의 노선은 이후 경기도 관내를 벗어나 천안으로부터 해남까지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지만 경기옛길 삼남길은 대상지가 경기도 내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선 소개는 이것으로 일단락 짓는다. 지금까지 소개한 노선들은 글자 그대로 문헌과 고지도를 통해 고증한 자료들이다. 이를 좀 더 명확히 하는 자료로는 일제강점기 총독부에서 제작한 1:50000 수치지형도에 해당 노선들이 근대 지도에 가깝게 표현되어 있어 원형로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해당 노선들의 상당 부분이 현대에도 여전히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점이 무엇이 문제인가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의 도로는 사람이 아닌 자동차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와 닿을 것이다. 즉, 조선시대에는 걸어갈 수 있는 길이었으나 현재는 자동차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대다수이다. 결국 경기도가 구상했던 도보탐방로는 일종의 대체(代替) 노선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경기도의 행정구역에도 큰 변화가 있어 조선시대에는 과천(또는 시흥)-수원-성환 등의 부(府) 또는 현(縣)이었으나 현재는 7개 시군으로 나뉘어져 있는 상태이다. 삼남길의 대체로는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원형로 노선에 해당하는 현재 7개 시군과 경기도의 협력의 결과물로 조성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기옛길 삼남길의 대체로 노선은 삼남대로 원형의 경로와 동일하기도 하고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남태령 부터의 삼남대로의 대체로 제안 노선을 간략히 살펴보자.

① 과천대로와 남태령 옛길을 이용하여 남태령 횡단
② 기조성된 남태령 옛길 및 온온사 탐방로 활용
③ 소로를 활용하여 안양까지 진행
④ 인덕원에서 시작하여, 주로 학의천을 따라 길이 이어짐
⑤ 백운로와 문화예술로 및 산길을 이용하여 임영대군묘 도착
⑥ 오매기마을과 김징 묘역을 경유
⑦ 사근행궁터 경유 코스
⑧ 사근행궁터 미경유 코스
⑨ 골사그내에서 산길을 따라 지지대비에 도착
⑩ 맑음터공원에서 농로 및 소로를 이용하여 평택으로 진입
⑪ 진위면사무소부터는 농로와 마을길을 이용
⑫ 산길을 이용해 소백치와 대백치를 통과
⑬ 원균장군묘에서 볼보자동차를 지나 옥관자정으로 진행
⑭ 대동법시행기념비를 전후하여 마을길 경유 안성천교까지

위와 같은 대체로 노선 제안에 따라 경기옛길 삼남길은 남태령부터 평택과 충청도의 경계인 안성천교까지 총 10개의 코스로 구성된다. 다음은 삼남길의 각 코스와 노선을 지도에 표시하여 소개 하면서 경기옛길에 대한 첫 번째 글을 마무리한다. 삼남길의 각 코스를 따라가며 경기도의 옛길을 지났던 수많은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자신을 성찰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제1길 한양관문길 (남태령~인덕원 표석)

제2길 인덕원길 (인덕원 옛터~백운호수 입구)

제3길 모락산길(백운호수 입구~지지대비)

제4길 서호천길 (지지대비~서호공원 입구)

제5길 중복들길 (서호공원 입구~배양교)

제6길 화성효행길 (배양교~세마교)

제7길 독산성길 (세마교~휴먼시아 7단지)

제8길 오나리길 (휴먼시아 7단지~맑음터 공원)

제9길 진위고을길 (맑음터 공원~원균장군묘)

제10길 소사원길 (원균장군묘~안성천교)


글 남찬원

경희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옛 것과 오늘의 것이 조화된 민속과 지역문화에 관심을 두고 <파주 금촌마을의 회상과 기록>, <김포 군하리 마을지>, <고양시의 자연마을들> 등 저서를 집필했으며, 현재 경기문화재단에서 조선시대 옛길을 도보탐방로로 재해석하는 경기옛길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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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학광장 Vol.1 _ 2019 여름창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08.16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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