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보기

경기문화재단

경기도 옛길 역사문화탐방로의 시작

경기학광장Vol.1 _ Column & study

< 경기도 옛길 역사문화탐방로의 시작 >


- 경기학광장Vol.1 _ Column & study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가히 열풍이라 할 만 했다. ‘걷기여행 열풍’이었다. 2019년 현재, 이제는 열풍이라 할 수 없지만 이는 인기가 사그라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걷기 인구가 한계치까지 증가했기 때문에 ‘폭증’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산티아고 순례길의 순례자

제주올레 마스코트 ‘간세’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는 단 하나의 트레킹 코스도 존재하지 않았다. 취미로 걷기를 한다는 사람조차 없었다. 한국인의 일등 취미는 언제나 ‘등산’이 차지했다. 그러던 중 몇몇 여행작가들의 책을 통해 한국에 ‘까미노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 일명 ‘산티아고 순례길’이 소개된다. 명상과 치유를 통해 자아를 성찰하는 순례자들의 길, 수천km에 달하는 이 길을 걷는 이들은 이 길 위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했다. 그리고 그 평온한 자아성찰의 경험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전달된다. 일부러 그 길을 걷기 위해 스페인 여행에 나서는 사람도 늘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성찰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2007년 걷기여행길 ‘제주올레’가 탄생한다. 그리고 열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제주의 매력적인 경관을 느린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오로지 걷기만을 통해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빨리빨리에 지친 한국인들에게 강력하게 와 닿았고 제주올레의 개통을 기점으로 드디어 ‘걷기여행 트레킹(trekking)’을 취미로 삼는 인구가 증가한다. 그것도 폭발적으로! 하지만 트레킹을 즐기기 위해서는 ‘걸을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걷기여행길, 즉 트레일(trail)이 있어야 걷기여행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걷기여행인구와 이들이 원하는 트레일 수요는 사회의 여러 분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걷기를 레포츠로 취급하면서 전문 피복과 신발, 그리고 보조 장비의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부족한 트레일 숫자는 민간단체와 각 기초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조성하며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2000년대 초반까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던 걷기 여행길은 제주올레 개통이후 2016년까지 약 10년간 단위코스 기준 무려 1,790개까지 증가하기에 이른다.(2019년 현재는 어느정도 통합 정리되어 약 1,600개의 코스로 수렴되는 추세이다.)

유래 없는 걷기여행 인구 증가 현상에 정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정부에서는 각 부처마다 각각 걷기여행길을 나름 정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데 조금씩 상이하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분류 의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제주올레 마스코트 ‘간세’

정부 부처와 지자체마다 걷기여행길을 각각 여러 형태로 분류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분류는 걷기여행길이 집중하고 있는 자원이 무엇인가에 따른 분류로 볼 수 있다. 크게 보자면 두 개의 방향성으로 나뉘는데 ‘경관·생태’라는 자연자원에 무게를 두는 방향성과 ‘문화’라는 인위적 자원에 무게를 두는 방향성이다.

주관주처별 도보길 정의 및 분류

이정도 즈음의 지점에서 ‘경기도 옛길 역사문화탐방로’의 방향성, 줄여서 ‘경기옛길’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짚어 볼 수 있다. 사실 경기옛길 사업은 제주올레 런칭 이후의 걷기열풍에 편승하여 시작된 일반적인 트레일 조성 사업과는 그 시작의 결이 많이 다르다. ‘경기도 옛길 개발 및 조성 사업’(이하 경기옛길 또는 경기옛길 조성 사업)은 2011년에 경기도청 문화유산과의 경기도 문화재 활용에 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2010년 무렵까지 문화재는 문화재관리법에 의한 보호와 보존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인지도가 높은 특정한 일부 문화재를 제외하고는 시민들의 관광 대상 자원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경기도는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문화재를 일종의 관광 자원으로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기에 이른다.
이러한 기획의도 아래서 경기도는 경기문화재단에 연구를 위탁하고 우선적으로 경기도 남부 권역에 넓게 산포되어 있는 문화재를 대상으로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여 시민들에게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조사 연구를 시작하였다. 수개월에 걸친 조사 결과 관광지화 되어있는 일부 문화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문화재들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차량 접근이 불가능한 산지에 위치하거나 평지에 위치한 경우도 도로와 같은시설이 부재하여 차량을 이용한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것이 대다수였으며 더불어서 의미가 큰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역 사적 사실에 대한 홍보가 미비하여 해당 문화재가 어떤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엽서에 인쇄된 일제 강점기 지지대비

이 외에도 흥미로운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관리법상의 지정 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하여 방치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고 일부는 주거 지역이나 도심지에 위치하여 훼손과 파손이 빈번하게 발생되어도 아무도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관리의 대상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또한 가치적 측면에서는 국보, 보물급의 유형문화재에서 민속자료급의 무형문화재에 이르기까지 문화재의 층위가 매우 넓고 다양하여 무엇을 어떻게 관광자원으로 시민들에게 제공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방식은 ① 문화재를 권역별(경기도 동부, 서부, 남부, 북부 등)로 나누어 시민들에게 특정 시간대에 한번에 즐길 수 있도록 해당 권역의 문화재를 서비스 하는 것, 그리고 ② 권역별 문화재를 선형(線形)으로 연결하여 순차적으로 문화재를 서비스 하는 것, ③ 차량 접근이 불가한 경우 도보를 이용해 접근하는 방향을 고려하는 것, 마지막으로 ④ 시민의 입장에서 문화재를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콘텐츠로 가공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이 시점까지는 명확하게 도보탐방로 사업으로서의 관점을 지니지는 않았으나 위 방식들을 종합해 보면 일련의 트레일 노선 개념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문화재를 선형으로 연결하여 관광자원화한 후 시민들에게 콘텐츠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개념은 곧 ‘걷기여행길’의 개념과 직결되었다. 2010년 당시는 이미 제주도의 도보탐방로인 제주올레가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전국민에게 인지되어 있는 상황이었으며 도보를 이용하는 걷기 여행을 즐기는 여가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에 있었다. 더불어 제주올레의 성공에 고무된 전국의 기초자치단체와 민간단체들은 다양한 도보탐방로를 조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기도는 이 점에 착안하여 경기문화재단에 시민들이 ‘길을 걸으며 역사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를 알린다.
더불어 당시 경기도에서 추진되었던 경기남부 문화콘텐츠 조사 사업을 분석한 결과 많은 역사문화유산이 주로 옛길(특히 조선 시대 주요 간선도로망)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음이 파악되었으며 조사연구 사업의 대상지였던 수원·화성·오산은 특히 조선 정조 임금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문화유산이 산재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은 ‘정조의 동선(動線)’과 관련이 있다. 정조는 즉위 후 아버지 사도세자의 천봉(薦奉)을 결정하고 당시의 수원부 화산에 현륭원을 건설하였고 그 결과 이 지역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정조는 수원부의 치소(治所)를 팔달산 동쪽 기슭으로 옮겨 화성 신도시를 건설하고 해마다 능행 참배에 나서면서 이 지역을 비롯한 능행차길 주변에 많은 흔적과 이야기를 남긴 것이다. 당시 정조의 능행차 동선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옛길(조선의 도로망)중 하나인 삼남(대)로三南(大)路(또는 제주로, 해남로)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으며 자연스럽게 삼남로 인근에 능행차와 관련된 많은 역사문화자원들이 산재하게 된다. 결국 이와 같은 조사 결과로 인해 경기남부 문화콘텐츠 조사 사업은 탐방로 조성사업으로 그 방향을 전환·확정하게 된다.

효행공원의 정조대왕상

2011년 말 탐방로 조성을 골자로 사업의 성격이 확정되었을 때 중요하게 고려된 지점은 경기도의 역사적·지리적 특수성이다. 경기도는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수도를 감싸 안고 있는 지리적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약 1천년에 걸쳐 수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기 때문에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형성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지역이 되었다.
경기도는 한강 유역을 비록한 한반도의 중심지역이었기에 이 지역을 차지한 정치세력이 한반도의 패권과 역사의 주도권을 획득해 왔다. 고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쟁투를 벌였으며 그 결과 삼국의 문화는 경기도 지역에서 융합되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송악(개성)을 수도로 정하고 개방적이며 통합성을 갖춘 민족통일국가로 발전하였는데 이때부터 경기도는 정치적·군사적으로 수도를 보호하고 국가를 유지하는 중심 지역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 경제적으로 경기도는 물자유통의 중심지로 성장한다. 고려는 중국의 교통·통신 제도인 역참제도를 도입하고 수로를 이용하여 세곡을 운송하는 조운제도 역시 확립시킨다. 고려시대의 조운제과 역참제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승되어 조선 역시 고려의 제도를 바탕으로 도로망을 확립하게되며 이는 곧 조선시대의 한양에서 한반도의 각지로 퍼지며 그물처럼 얽혀있는 6대로 체제로 이어지게 된다.

경기옛길의 6대로 체제

또 고려와 조선을 관통하여 확립된 중앙집권과 지방제도는 수도와 각 지방의 요충지나 대처로 향하는 길(교통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이에 주요 도로에는 역참(驛站)이 일정 간격으로 설치되어 공적인 교통·통신을 지원하였으며 중앙과 지방간의 왕명과 군령의 전달, 조세의 운송, 사신의 왕래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도로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사례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기록된 도로규정이다. 조선은 경국대전에 대로(大路), 중로(中路), 소로(小路)의 규모를 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활용하여 조선의 도로망을 확충한다. 다만 이 규정은 수도 한양을 조금만 벗어나면 정확하게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기는 했다. 도로망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나 정비와 관리의 중요성이 함께 발전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난 이후 1700년대에 이르러 상업과 유통이 발달하고 교통과 통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자 결국 도로망의 유지 관리에 큰 힘을 기울이게 되며 이 결과로 여러 지리 관련 서적들이 편찬된다. 대표적인 예가 신경준의 『도로고(道路考)』이며 『도로고』에 이어 조선의 국책 백과사전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도 전국의 도로망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에 확립된 도로는 기본적으로 수도 한양에서 중국(의주), 함경도(함흥), 강원도(평해), 영남(동래), 호남(제주), 경기만(강화)으로 향하는 노선을 가지고 있으며 각 노선은 의주로 향하는 노선을 제1로로 칭하여 시계방향으로 노선에 번호를 붙여 경기만으로 향하는 노선이 마지막 제6로가 되었다. 제1로부터 제6로까지 노선번호 외에 공식적은 명칭을 부여하지는 않았으나 각 노선의 종착지 또는 노선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노선마다 각각의 이름이 생겨난다. 제1로는 ‘의주로’, 제2로는 ‘경흥로’, 제3로는 ‘평해로’, 제 4로는 ‘영남로(동래로)’, 제5로는 ‘제주로(삼남로)’, 제6로는 ‘강화로’로 통칭되었으며 이것이 조선시대 6대로 도로체제이다. 이후 노선이 더욱 분화 발전되어 최종적으로 10대로 체제로까지 발전하게 되지만 기본적인 틀은 6대로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6대로가 한양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 각 지방으로 퍼져나가는 구조를 지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6대로 모두 경기도를 지날 수밖에 없는 부분이 ‘경기옛길’ 사업의 핵심이다. 한양에서 전국으로 통하는 모든 길은 경기도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이에 경기도는 조선 6대로의 흔적이 모두 남아 있는 유일한 지역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의 역사문화탐방로 사업은 바로 조선 6대로를 기반으로 경기도의 역사성을 도보탐방로 사업으로 드러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첫 번째 역사문화탐방로 조성 대상으 로 제5로인 제주로(삼남로, 해남로)를 선정하여 비로소 ‘경기옛 길’이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글 남찬원 경희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옛 것과 오늘의 것이 조화된 민속과 지역문화에 관심을 두고 <파주 금촌마을의 회상과 기록>, <김포 군하리 마을지>, <고양시의 자연마을들> 등 저서를 집필 했으며, 현재 경기문화재단에서 조선시대 옛길을 도보탐방로로 재해석하는 경기옛길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더 많은 경기학광장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바로가기]




information

  • 경기학광장 Vol.1 _ 2019 여름창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08.16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