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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길게 흥하길 바라 장흥(長興), 양주시 장흥면

경기학광장Vol.2 _ Village & History

< 길게 흥하길 바라 장흥(長興), 양주시 장흥면 >


- 경기학광장Vol.2 _ Village & History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신문기사 한 꼭지를 읽었다. <15년째 중단된 '추억의 교외선' 열차…운행재개 가능성 열려>라는 제하의 중앙일보 2019년 9월 4일자 기사다. 교외선 덕분에 흥했다가 운행이 중단되면서 급격하게 쇠락의 길로 접어든 장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토리재생_박응분 할머니와 나전칠기 장인 김정렬의 소반 만들기

청춘 문화 중심지의 추락

장흥은 서울의 북서부에 인접해 조선 시대부터 퇴직한 관리들이 휴식을 위해 모였던 곳이다. 역사적으로 한양에서 가까워 상대적으로 쉬거나 다시 일하러 나서기에 수월한 도시인 동시에 수려하고 고즈넉한 자연 풍광이 매혹적인 마을이었음을 방증한다. 장흥은 또 왕비를 여러 번 배출한 고장인 동시에 권율장군묘와 온릉(사적 제 210호) 등이 위치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길게 흥하다’라는 지명이 내포한 한자 뜻처럼 오랜 세월 장흥의 과거는 찬란했다. 그 흔적을 쫓아 거슬러 올라가면 이제는 많은 사람의 추억이 돼버린 교외선이 자리한다. 장흥은 7, 80년대까지만해도 젊은이들의 문화가 활짝 꽃피웠던 도시다. 60년대에 개통된 교외선이 정차하는 장흥역, 일영역, 송추역 등을 중심으로 최적의 MT 장소로 꼽히면서 유명세를 겪은 바 있다.
이처럼 화려한 과거를 견인했던 교외선은 경기도 북부의 동서를 연결하는 철도망이었다. 지난 1963년에 설치된 것으로, 고양 능곡역을 시작으로 양주 장흥역과 송추역을 거쳐 의정부역으로 향하는 31.8㎞ 구간의 철도였다. 젊은이들의 MT 거점이자 연인의 데이트 장소로 주목받으며 관광객을 실어 날러 경기 북부, 그중에서도 장흥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4년 이용 수요가 크게 줄고 적자누적을 이유로 운행을 중단하면서 역을 중심으로 한 도시 곳곳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객열차 운행이 중단된 장흥역은 폐쇄된 상태로 기찻길만 놓여 있는 상태다. 싱그러운 청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역 앞 상점은 모조리 폐점해 2000년대 초반 그 시간을 박제해 놓은 분위기다. 7080세대 혹은 그 이전세대만이 추억하는 장흥은 북적이던 인파를 대신해 러브호텔이나 모텔 등이 자리 잡았다. 요식업만 넘쳐 나고 그 흔했던 관광객을 찾기 힘든 한적한 교외지가 되었다.

지자체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말만 하면 다들 알만한 국내 굴지의 화랑이 설립한 장흥아트파크, 가나아틀리에를 시작으로 양주시가 직접 운영하는 조각공원과 아틀리에(작업장)에는 수많 은 예술가가 포진하고 있다. 고개를 넘어가면 유명 식품기업인 ‘크라운해태’가 운영하는 갤러리와 레지던시까지 그야말로 문화예술의 포화지역이다. 앞서 언급한 공간들 외에도 권율장군묘, 두리랜 드, 청양민속박물관, 나전칠기체험관 등 문화시설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교외선의 중단으로 퇴색한 장흥의 문화를 되살리고자 지자체에서 다양한 문화예술기관들을 유치했으리라 짐작된다. 의도와 달리 안타깝게도 저마다의 울타리를 치고선 배타적인 예술가와 예술품을 배양하는 형국이라 어쩌다 들리는 관객마저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성역으로 다가온다. 화려한 과거의 부활은 외형을 잘 가꿔서 관광객을 유입시켜야만 가능하다고 본 것인지, 쇠로 주조된 조형물 로 넘쳐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예술의 홍수에 빠진 느낌이다. 예술이 단순 볼거리로 전락한 탓에 장흥관광지의 풍경은 각각의 예술품이 선사하는 감동보다 앞서 기묘함이 크게 다가온다.

장흥면 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우리동네예술가 자연예술 프로그램

장흥 문화재생의 ‘빅맨Big Man’ 발굴

진지한 성찰 없이 자행된 상업적 관광 개발은 결국 지역문화를 왜곡하고 추구하는 목표 지점에서 점점 더 멀어져간 형국이다. 인문학적 토양 없이 생성된, 기계적으로 찍어낸 문화는 장흥의 오래된 가치를 변형시킨 것이다. 필자와 양주시 장흥면과의 인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기문화재단(이하 재단)은 경기도 소재 31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 연계해 진행한 문화예술사업으로 ‘새로운 주문자’를 내걸었다. 새로운 주문자(Les nouveaux commanditaires) 사업은 1991년 프랑스문화재단에서 지역사회와 공공예술을 결합하는 새로운 모델로 제시한 개념이다. 일종의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를 지향하는 프로젝트로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장소특정성을 반영한 예술의 형태를 새로운 주문자란 이름으로 치환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문자’는 기금을 제공하는 지자체 또는 재단이 아니라 장소를 점유하는 주민 혹은 그곳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누군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기존의 공공미술이 마치 입찰된 용역이 시공을 진행하듯 예술단체가 조형물이나 벽화 따위를 목적 없이 뿌리고 가는 것에 반대한 개념이라 하겠다. 결국, 새로운 주문자란 공공미술이 공공장소에 놓이는 미술품이라는 개념을 초월한다. 장소가 지니는 인문학적 가치를 분석하고 연구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영하는 것이 새롭게 추구하는 공공미술. 곧, 커뮤니티아트인 것이다. 번외로 이 지원사업을 좀 더 들여다보면 2010년에 처음으로 남양주가 선정돼 ‘논아트 밭아트(예술감독 박찬국)’라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약 2년여 동안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주변의 생태환경을 활용해 논, 밭에서 하는 예술이라는 재밌는 발상으로 지역주민과 함께한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2011년에 양주시가 두 번째 사업지로 선정됐으며 남서부에 위치한 장흥면 일대를 중심으로 ‘장흥삼색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장흥삼색프로젝트에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프로젝트가 분리와 결합을 시도했다. 이 중 공동체에 중점을 둔 프로젝트가 바로 ‘장흥오라이’ 프로젝트이다. 장흥오라이는 장흥이 모두 잘 될 것이라는 ‘Alright’ 영단어와 ‘장흥으로 오세요(오라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적극적인 지역주민의 참여와 장소특정성을 기반으 로 한다. 장흥오라이는 장흥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스토리 재생과 공간 재생이라는 두 개의 큰 줄기를 만들고 이를 구체화 시켜갔다. 일단 약 5개월에 걸친 지역탐사와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채로운 장흥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30여 차례의 지역 탐사와 인물탐사를 기초로 다양한 주민을 만났다. 장흥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이 지역의 문화를 살리고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이들의 정체성을 찾는 것인지에 무게를 실었다. 구체적인 실행법으로는 위성사진으로 찾아낼 수 없는 장흥의 인문학적 생태지도 제작이 있다. 장흥면사무소와 체육회관을 중심으로 장흥역, 석현천, 마을경로당, 나전칠기 체험관, 한국보육원 등의 장소를 더듬고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를 찾았다. 구전되는 공동체의 소소한 기억을 기록했고 주민들이 생각하는 장흥은 어떤 곳인지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했다. 또한 탐사를 통해 맺어진 인적자원과 연계하여 다양한 참여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근처 양로원에서 만난 손재주 좋은 故박응분(당시 92세) 할머니와 나전칠기 장인 김정렬을 매칭해 근사한 나전칠기 소반을 만들었고 보육원 친구들과 함께한 대지예술 체험과 영화 만들기 등을 통해 모두 ‘우리동네 예술가’가 됐다.


장흥역사 앞 폐상가 모습


15년여 방치된 장흥역 앞 상가 폐기물 처리작업

또 다른 장흥 재생의 한 축이었던 공간재생은 2004년 이후 폐허로 변해버린 간이역 장흥역을 재생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하지만 버려진 장흥역을 매개로 지역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하던 찰나 양 주시의 크나큰 반대에 부딪혔다. 이유는 중심도로에서 동떨어져 있고 기차도 다니지 않는 폐허를 고치는데 예산을 쓰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수차례의 논의와 주변 건물주와의 협상 끝에 공간재생을 할 수 있었다. 오물과 쓰레기로 뒤죽박죽이 돼버린 장흥역을 재생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건축업자도 아닌 예술가들이 폐기물을 처리하고 공간재생을 한다고 하니 주변 시선도 곱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지역주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 이장을 중심으로 토박이 주민들이 나서 예술가들과 함께 쓰레기를 치우고 공간을 재생시켜나갔다. 지역주민과 예술가가 함께하자 지자체도 별수 없었는지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대형트럭 10대는 족히 될 양의 폐기물을 무상으로 처리해주고 도로를 재정비해주는 등 말이다. 이로 인해 재생된 ‘역전다방’, ‘도깨비공방’, ‘장수사진관’ 총 3개의 커뮤니티 공간이 태어났다.


▲ 15년여 방치된 장흥역 앞 상가 폐기물 처리작업


장흥오라이 프로젝트로 재생된 도깨비공방 뒤쪽 전경

그렇게 1년, 중간점검하는 자리에서 예술가가 주도하는 격식 있는 행사가 아닌 마을 주민이 참여하는 지역문화 행사로 치러졌다. 지역의 어르신으로 구성된 민요동아리의 공연과 주부들의 난타로 이어지는 축하무대가 장흥오라이의 흥을 더했다.

무엇이 성공하고 무엇이 실패했는가. 누군가는 새로운 커뮤니티 아트의 모델을 만들었다 했고 누군가는 지속가능성이 보장될 수 있겠냐며 불안한 성공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평가와 기대를 하게 한 것은 능동적인 주민, 빅맨을 발굴 양성했기 때문이었다.
‘장흥대박협동조합’의 이사장이자 마을기업 ‘장흥오라이’의 대표로 활동하는 오명운씨가 그 주인공이다. 장흥오라이 프로젝트 진행 당시 부정적인 방관자였던 오명운씨는 기획자의 적극적인 제안 으로 전직 목수였던 경력을 살려 공방 프로그램 강사로 활약했다. 또 방치된 건물의 주인을 함께 설득해 3년 무상 임대를 이끈 주역이다. 그는 2011~2012년 장흥오라이 팀이 조성한 공간과 프로그램 등을 모두 이관받아 2013년 경기문화재단의 우리동네프로젝트에 지원해 500만원을 따내기도 했다. 이 밑천을 가지고 목공 DIY, 우쿨렐레 강습, 사진촬영 등을 진행했다. 그해 강습생들이 기차 모형 을 만들어 장흥역 앞에 설치하고, 역전다방에서는 주민이 기타 치고 노래하며, 역 앞에서 마을 주민이 모두 모여 축제도 열었다. 하지만 공간이 점차 양성화되면서 믿었던 건물주로부터 철수를 요청 받고 지자체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2014년 임시 컨테이너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 17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한 장흥대박협동조합에 이어, 2015년 마을기업을 설립했다.


재생된 구)매점_도깨비공방겸 마을 생활사 전시관 전경


마을역사 전시관 실내 모습

과거의 영광을 허하라

2012년 전문기획자가 떠나고,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장흥면 원도심의 부활, 여전히 성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장흥역 주변의 무상 임대받은 상가들은 계약기간이 끝나자 소유주가 공동체에게 임대료를 요구했다. 더 이상의 지자체의 지원도 무상임대 한 개인의 넉넉한 인심도 한계에 달했다. 거점공간을 잃은 지역공동체는 그럼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양주시가 매입한 유휴공간인 모텔을 ‘777레지던스’로 개관했고, 지하부터 지상3층까지의 공간을 ‘생활문화센터’로 명명해 운영하게 되었다. 소외된 장흥역에서 마찬가지로 버려진 모텔로 이전한 공동체는 어느때보다도 왕성한 지역문화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장흥면에는 또 하나의 희망의 불빛이 켜지고 있다. 15년째 운행이 중단된 채 방치돼 있던 교외선의 재개통과 전철 개통을 촉진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경기도가 고양시·의정부시·양주시 와 함께 교외선의 운행재개와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반영을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외선 운행재개는 장흥면 주민 뿐만 아니라 교외선 운영과 폐쇄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은 역사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염원해 왔다. 그동안 교외선 운행재개를 촉구하는 주민의 집단행동에도 경제성 부족과 개발제한구역을 비롯한 각종 규제와 안보 등의 문제로 해결될 기미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뒤처진 지역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교외선 재운행을 고려하는 지금, 공공연하게 시행하는 이 ‘인공호흡’을 통해 마을에 뿌려진 주민 공동체 ‘씨앗’이 다시 발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부디 ‘길게 흥하는’ 장흥이 이름값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때를 바라본다.


20120602_장흥오라이 프로젝트 개막식 전경


글 조두호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박사수료)을 수학하였다. 안양의 재래시장인 석수시장에서 대안예술과 공동체문화를 기획했다. 수원의 공공 기관에서 학예연구팀장으로 근무였으며, 동시에 공공예술 및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지역의 의제와 문화예술생태적 기획을 이어왔다. 최근 쇠퇴하는 원도심의 문화적 도시재생을 연구하며, 포천시 관인면의 문화재생 사업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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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경기학광장 Vol.2 _ 2019 가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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