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자료’에 미쳤고 ‘수집’에 열정을 바친 이한기의 삶

경기학광장Vol.2 _ People & Life


< ‘자료’에 미쳤고 ‘수집’에 열정을 바친 이한기의 삶 >

- 경기학광장Vol.2 _ People & Life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그를 회고하는 이유

이승언으로 알려진 이한기(1945∼2002)는 생전에 자료에 대한 관심과 수집 순간의 성취감을 자랑스럽게 언급한 적이 많았다. 필요한 자료라고 여기면 수중에 넣을 때까지 그 어디라도 전화를 걸거나 직접 방문하여 자료를 발간한 기관의 담당자나 개별 소장자를 수도 없이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는 수집한 자료를 꼼꼼히 분류하고 기록했고, 자료 수집과 향토사와 관련하여 끝없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자료수집과 관련된 영웅담과 그 즐거움을 나열한(episode) 것이지만 항시 일관된 주제(topic)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록을 남기고 수집에 모든 것을 바친 열정 그 자체였다.
선생의 웃음과 이야기는 오래 전 멈추었지만 그의 삶 속에 관철된 자료수집 열정과 그 의미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선생은 학계에서 통용되는 ‘시민권’ 밖에 있었지만, 향토사의 중앙에서 한 순간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선생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자료의 규모와 그 실체를 한 발자국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그의 삶을 따라가 본다.

2. 주요 이력과 활동 - 향토사는 문화정책으로 자료는 수집하고

이한기의 삶은 몸에 밴 ‘기록정신’과 ‘자료수집’을 통한 향토사연구로 압축된다. 본명은 이한기(李漢基), 필명은 이승언(李承彦)으로 1945년 4월 10일 생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상오재(尙五齋) 이다. 그의 이력과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학력은 안산초등학교, 안양중학교, 안양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서라벌 예술대학 방송과를 졸업하였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은 시흥군지 상임위원 및 필자로 참여한 1985년 무렵이었다. 이후 내고장 안산(安山) 상임위원(1988∼1990),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1988∼2002), 과천향토사 상임위원(1991∼1993), 서울문화사학회 이사(1994∼2002), 수원성(화성) 축성200주년기념사업회 기획조사부장(1995∼1996), 안양시 지명위원(1999∼2002)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대표 경력은 고향인 시흥시에서 역임한 향토사료실과 전통문화유산보호위원회 상임위원(1989∼2002)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남긴 저서로는 <왜 안산시이어야 하는가>(1984), <의왕의 전통과 문화>(의왕시, 1992), <시흥의 문화재와 유적>(시흥시, 1995), <한말· 일제하 수원기사색인집>(수원문화원, 1996), <안양시 지명유래집>(새안양회, 1996) 등 10여 권이 있다. 논문은 「금양잡록(衿陽雜錄) 과 강희맹(姜希孟)」(<안양문화>2, 1983), 「안양의 유래」(<안양문화>4, 1985), 「황월선전(黃月仙傳) 해제」(<기전문화>9, 1992) 등이 있다. 이외에 수원 화성행궁, 금석문, 지명, 지방사료 수집과 관련하여 수십 차례 학술발표자로 나선 적이 있었다.
이한기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40년 넘게 꾸준히 수집한 자료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근현대 시기의 변화상을 담고 있는 확실한 물증이라는 점이다. 또한 자료수집과 향토사 분야에서 한 우물을 제대로 깊고 넓게 팠던 ‘지정되지 않은 국보급 인간문화재’ 였음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3. 이한기 수집자료 현황과 그 의미

이한기의 수집자료는 필자가 본 향토사 자료 중 가장 방대하고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는 ‘근현대 지역자료의 전형(典型)’에 가까웠다. 근현대 지역자료의 ‘전형’을 구비하려면 적어도 ‘자료 유형의 다 양함’(전국적인 보편성), ‘지역변동의 구체적인 물증’(지역의 특수성), ‘개별 개별의 자료가 아니라 사연(story)이 담긴’(지역의 공간과 시간 축을 동시에 설명) 자료원이라는 필요충분조건을 구비해야 할 것이다.
각지에 산재한 향토자료 중 특히 지난 100년 시기에 해당하는 근현대 지역자료의 경우 그 실체가 파악된 적이 거의 없었다. 그 까닭은 ‘자료의 유형, 분포, 소장처, 성격’ 등에 대한 선행 작업이 없었던 관계로 ‘보물찾기식 자료수집’에 오랫동안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수집한 자료는 『故 이한기 수집 자료 목록집』과 『故 이한기 수집 자료 학술조사보고서』(시흥문화원, 2004)에서 그 전체상이 드러났다. 책임연구원 주혁을 비롯하여 역사학, 민속학, 기록학 분야 15명의 연구자가 14개월에 걸쳐 조사한 결과, 총 1만 9,836종, 4만 4,915점의 자료목록이 확인되었다. 목록집에 수록된 자료의 대분류와 세부항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단행본 - 연감, 연보, 향토지, 교과서, 일반 도서, 자료집
• 신문류 - 일반 신문, 창간호, 경기지역 신문, 호외류
• 일반 문서류 - 행정, 교육, 방송, 증빙 및 영수증, 기타
• 행정 문서류 - 법령 · 법규·지침서, 예산서, (업무, 사업)계획서, 기본계획, 업무보고 및 환경평가서, 회의 및 설명자료, 지도류· 현황도, 신고서·신청서
• 잡지류 - 일반 잡지, 창간호, 경기지역 잡지
• 홍보 · 선전물류 - 팜플랫, 포스터, 표어, 전단지
• 박물류 - 시상 및 수상물, 사무용품, 간판 및 안내판, 생활용품 (담배, 동전)
• 고문헌류 - 고문서, 고서, 탁본, 기관 소장 복사본
• 이한기 집필 및 자료 - 집필 저서류, 원고 및 수고, 일기 및 일지, 수집 목록 및 메모, 학습 노트 및 장부
• 서간류 - 편지, 연하장, 초청장, 엽서, 기타

▲ 자신의 수입품을 설명하는 이승언(맨 왼쪽)

4. 이한기 수집자료의 대표 유형과 특징

1) 향토사 일반 자료

그가 소장했던 향토사 자료는 평생에 걸쳐 수집했던 만큼 방대한 양이다. 멀리는 조선후기의 교지, 읍지류, 고문서 등을 비롯하여 근현대 시기 시군지, 읍면동지, 지명유래집, 금석문집, 보고서 및 문화 유적 관련 책자, 지도류 등 각종 향토지를 망라하고 있다. 주로 경기도에서 활동했던 만큼 경기도 관련 자료가 많다.
선생의 고향이자 주 활동무대가 경기도 시흥이었던 만큼 소장 자료 중에서 시흥시 관련 부분이 많다. 그 유형을 살펴보면 반회보, 공보를 비롯하여 각종 군정 홍보물, 읍․면 통계자료집, 1960∼1990년대 시군 통계연보, 화보집, 학교 및 단체의 페넌트, 명패, 해방 이후 시흥시 관련 각종 선거자료 등 실로 다양하다.

2) 근현대 생활사 자료

근현대 생활사 자료는 한마디로 지난 100년 동안 서민의 삶을 상징, 압축한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 성장하면서 학교 입학과 계속되는 시험을 치르면서 졸업을 맞이한다. 또한 각종 기관에서 떼는 증 빙서류와 영수증, 사고 팔 때 오가는 지폐와 동전, 성인들의 대표적인 기호품인 담배 등은 희로애락이 담긴 생활용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빠름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인 1930년대의 빛바랜 우편엽서와 편지를 통해 느리지만 조부모 세대의 진솔한 정서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중요 국면마다 발행되던 호외를 통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돌이켜 볼 수 있고, 10월 유신의 팜플랫에는 당시 권위주의적 정권의 조국 근대화의 홍보방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근현대 생활사 자료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전 과정과 근현대 변화상을 생생히 보여준다.

3) 각종 창간호

‘정보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보고 즐겼던 잡지, 신문 등 정기간행물은 수없이 많다. 각종 인쇄물의 창간호는 ‘시대의 전환점과 그 의미’ 를 담고 있다. 그가 소장한 창간호는 멀리는 구한 말 계몽단체의 협회지, 일제강점기 신문 및 잡지류, 해방 이후 각종 문헌 등 수천 권에 이른다. 창간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문학>(1955년 1월), <자유문학>(1956년 6월)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 문학계가 재편성된 상황을 담고 있고, <선데이 서울>(1968년 9월)은 도시화, 산업화에 적응해야 가는 서민들의 피곤한 삶을 달래주던 매체였다. <기전문화연구>(1972년 12월)는 경기도에서 향토사연구의 시작을 알렸다. <한겨레신문>(1988년 1월)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운동의 결과물이며, <여행과 건강>(1992년 12월)은 서민들의 생활 속에 여행과 건강이 주요 화두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4) 삶의 발자취

그가 수집한 자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삶을 시계열적으로 충실히 모아 놓았다는 점이다. 해방둥이로서 학교에 입학하고 향토사가로서 살아왔던 보통사람으로서의 인생과정을 파노라마와 같이 보여준다.
먼저 신변 관련자료는 통장, 주민등록증, 신분증명서, 공무원 응시원서, 병역수첩, 향토사 관련 위촉장을 비롯하여 초·중·고 시절의 교과서, 공책, 졸업장, 각종 사진 등이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 사망 전날까지 매일 작성한 일기이다. 그 내용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교생활, 친구, 학업에서 작가지망생으로서의 전망, 시흥시 농사일기, 인간관계, 그리고 세세한 자료수집 일지 등 일개인이 작성한 완벽한 자서전에 가깝다.
이러한 자료는 민속학 또는 인류학에서 주목하는 개인 생애사의 충실한 자료원이며, 일 개인이 개인·가정·사회·국가와 관련되는 인생의 전 과정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생생한 물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한기 수집 자료의 특징은 먼저 수집한 자료의 유형이나 양이 매우 다양하고 방대하다는 점이다. 둘째 개인·가족·마을·시군 단위의 사회적 관계망(공간)과 함께 구한말에서 최근까지의 변화상(시간)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셋째, 근현대 시기의 ‘보편적인 서민생활사’ 라는 측면과 함께 원(元) 시흥군의 정치·경제·사회·문화상을 아래로부터 담보한 ‘지역 특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1990년대 이후 인문학의 새로운 경향으로 대두된 ‘미시사·생활사·문화사·지역사’라는 영역에 이보다 더 충실한 기초자료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 1999년 kbs 뉴스에 수집광으로 소개된 이승언

5. 남은 이야기

이한기는 매일 빠짐없이 무엇인가를 ‘일관되게 기록하고 수집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까닭인지 선생은 주변사람들로부터 ‘자료에 미친 사람’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등으로 회자되었다. 그가 남긴 자료는 한 개인이 수집했다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혹자는 ‘깊이 없는 종합 자료박물관’ 정도로 평가절하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생이 남긴 자료들은 학계는 물론 일반에서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원으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눈을 부릅뜨고 모은 것은 개별적·파편적 자료였지만, 그 안에는 ‘역동적인 대중의 삶’이 녹아있고 ‘시대의 변화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부활한 지방자치제도, 문화의 시대, 그리고 인문학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분위기이다.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향토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활용할 수 있는 호조건들이 속속 자리잡았다. 기록물 관리법 제정 및 시행(1999∼2000), 한국향 토문화전자대전 편찬(2000∼2019), 국사편찬위원회의 근현대 지역 자료 수집(2004∼2019), 240여개 기초단체의 시립박물관 건립 증가, 시·군과 도 단위의 문화재단 창단, 연구자의 지역사 관심 증폭 등이 그것이다.
그의 수집 자료 전체는 오랫동안 시청 문서고에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 2010년 들어 다행히 시흥시청에서는 향토자료 아카이브 작업의 일환으로 자료 전체에 대한 디지털작업을 실시하였고, 이후 시청 홈페이지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자료가 활용되고 있다.
그가 평생 수집한 자료는 보다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 본격적인 분석에 이은 사료적 가치와 평가, 그리고 활용의 문제가 남아있다. 지방자치단제의 문화 성숙도는 ‘각지에 산재한 향토 자료를 얼마나 잘 효율적으로 수집, 분류할 것인가’의 문제로 모아져야 한다. 그 자료들을 무한한 정신적·물질적 부가가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남아있는 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어깨가 무겁다. 역사 문제이자 우리 삶을 진지하게 되새겨야 하기 때문에.


글 주혁

한양대 대학원에서 ‘朝鮮事情硏究會의 硏究 ’로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사 편찬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광주시사 편찬작업을 진두지휘 하는 등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와 관련된 조사와 연구, 그리고 대중화에 공헌한 바 크다. 현재는 한양대 강의교수이다.

더 많은 경기학광장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바로가기]




세부정보

  • 경기학광장 Vol.2 _ 2019 가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10.18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