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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시장에서 예술하기, 안양시 석수동

경기학광장Vol.3 _ Village & History

< 시장에서 예술하기, 안양시 석수동 >


- 경기학광장Vol.3 _ Village & History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06 석수시장

안양(安養)이라는 지명은 불교문화의 상상계인 극락정토(極樂 淨土)와 연관성이 깊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삼성산을 지날 때 풍광을 보고 안양사(安養寺, 전통사찰 제 10호,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산27번지)를 건축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사찰의 이름을 따서 안양으로 명명된다. 수많은 산을 병풍 삼고 사이사이 천이 흐르는 형상이 당시 정토(淨土)신앙에서 비롯된 낙원의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대승불교에서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중 아미타경(阿彌陀經)의 안양은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불토 (無量光佛土)·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와 같은 말이다. 다시 말해 안양은 영생과 불사, 무한한 빛의 세계이자 지난한 윤회의 고리에서 해방된 천국이란 의미이다. 특히, 안양에서 만안구는 오래도록 공동체가 모여 ‘만안(萬安) : 수만 번 안녕’ 한 삶을 영위해온 원도심이다. 만안구 석수(石水)동은 주변에 삼성산과 관악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안양천이 관통하는 지리적 특징을 지닌다. 본래 석공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고 하여 석수(石手)라 불렸으나, 1932년 석수동 수영장이 개관할 때 누군가의 실수로 수가 물수(水)로 표기되었다. 석수동은 서울과 안양을 경계하는 지역으로 조선의 정조대왕이 ‘능행차’를 거행할 때 지나던 만안교(萬安橋)가 위치하며, 안양예술공원(구 안양유원지), 삼막사, 안양사, 염불암 등 문화재가 다수 소재한 지역이다.

석수시장 80년대초반 풍경

80년대 석수시장

석수동의 애물단지 ‘석수시장’

만안구 석수동에 위치한 석수시장은 기존의 재래시장이 아닌 새로운 종합시장형태로 1979년 정부정책에 의해 개장한 야채도매시장이다. 지역의 기대와 달리 석수시장은 개장과 동시에 개점휴업상 태가 이어진다. 당시 안양 남부시장에서 대거 이전을 기대했던 상인들이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전통재래시장과 현대식 마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기묘한 범주의 시장으로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5년여간의 잠정 휴업 이후 1985년 청과물 도매시장으로 재개점 하였으나, 이번에는 가락동 청과물시장과의 마찰, 압력으로 다시 정체기에 선다. 90년대 이후에는 현대식 대형마트가 곳곳에 개업하면서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더욱 축소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120여 개의 점포 중 20여 개의 소규모 점포와 중형마트 한 개 정도만 운영되는 실정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는 안양에도 심각한 경제적 위기상황을 불러왔다. 폐업한 각종 산업시설들은 유휴공간으로 전락했는데 안양역 광장에 건설 중 부도 처리된 ‘현대코아’, 구 안양경찰서, 유유산업, 삼덕제지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위기가 지나고 훗날 삼덕제지는 굴뚝만 남기고 시민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유유산업은 안양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공간재생 되었다.
당시 석수시장은 IMF의 여파에 맞물려 끝없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멀쩡하던 산업시설들도 유휴공간으로 바뀌는 마당에 희망 없이 유사재래시장이던 석수시장은 지역의 애물단지이자 흉물로 인식되었다. 원도심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빈 점포들만 득실거리는 석수시장은 도시의 슬럼화를 부추기고 활력 없는 마을의 풍경을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석수시장은 (주)석수유통이라는 단일 소유주의 권한에 의해 관리되는 개인사유공간으로 공적인 영역에서의 활성화 문제로부터 제외되어 있었다.


2006 석수시장

석수시장에서 삽질하기

석수시장은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 287, 288번지에 위치한 3000여 평의 대지에 자리하며 정방형 광장을 중심으로 120여 개의 소형 점포가 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기존의 재래시장 이 난전에서 시작되어 중심상권에서 활성화에 따라 상권이 불규칙적으로 늘어나는데, 반해 석수시장은 처음부터 명확한 설계와 계획에 따라 구성된 종합상가 단지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공간적 특수성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 2005 바닥 공공미술작업

2000년대 초, 침체일로의 석수시장에 실낱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80~90년대 안양의 문예운동 부흥기를 이끌었던 활동가이자 예술가인 박찬응(현 군포그림책박물관공원 추진단장)이 자신을 품 었던 요람이자 삶의 터전인 석수동에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라는 대안미술공간을 개관한 것이다. 스톤앤워터는 ‘생활속의 예술’을 표방하고 2002년 6월에 설립되었다. 보충대리(supplement) 란 ‘부족’ 혹은 ‘결핍’을 ‘보충’하고 ‘대리’한다는 개념으로 일상과 격리된 고급예술이 아닌 공동체와 함께 숨쉬는 생활 속의 예술을 의미한다. 최근 공동체 문화에서 중요시되는 평생학습, 생활문화 운동이 석수동에서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시도되었다. 스톤앤워터가 등장하자 석수시장의 점포 곳곳에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점포들은 낡고 허름했지만 다양한 실험적 예술을 시도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석수시장이 생활 속 예술의 씨앗을 품은 생명의 습지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나 지자체 같은 관 주도의 공공정책사업이나 지역 활성화가 자행되었다면 불가능했던 자발적, 자생적 문화공동체가 구축된 것이다.

2006 프로젝트팀 인덕원-1분조각2

‘시장에서 예술하기’는 2005년부터 <석수시장 프로젝트-오픈 더 두어>를 통해 본격적으로 문을 연다. 석수아트프로젝트(Seolsu Art Project)의 영문 앞글자를 따면 SAP이 된다. ‘삽SAP질’은 시장에서 펼치는 예술의 은유적 표현이다. 지역의 활동가들과 석수시장으로 스며든 예술가들은 석수시장의 상인들과 소통하며, 삶 속의 예술을 실천했다. 2007년부터는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뉴욕, 바르셀로나, 오클랜드, 동경, 자카르타 등지의 예술가들을 석수시장으로 불러모았다. 석수시장측과 협의해 저렴하게 임대한 점포를 이들에게 제공했고, 2~3개월의 시간 동안 낯설고 열악한 석수살이를 통한 레지던시 작가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더했다. 공동체의 일상에 예술가들의 이상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레지던시 예술가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경험한 사회적 이슈들과 생활 속 예술을 실천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제안했다. 침체된 석수시장의 상인들과 지역민들 역시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처음 만난 사이들처럼 어색하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은 편견 없이 공동체에 녹아들었다.

2005 간판작업 박동수

2006 프로젝트팀 인덕원-1분조각

시장에서의 삽질은 2006년 <석수시장프로젝트-가가호호>, 2007년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 2008년 <석수아트프로젝트>, 2009년 , 2010년 등으로 이어진다. 2010년에 개최된 ‘만안하세요’는 안양시에서 주최하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와 결합해 석수동을 포함하는 만안구 전체로 장소와 개념을 확장하는 프로젝트였다. 예술이 공동체와 만나는 지점에서 생활 속 예술에 대한 시도는 최근 불고 있는 생활예술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또한 소외된 이웃과 주변의 자연환경을 배려하는 측면의 문화예술적 시도는 새로운 공공예술의 장으로서 역할을 했다. 쇠퇴한 원도심인 석수시장에서의 삽질은 그 자체로 문화재생적 차원의 활동이었다. 석수시장이라는 문화예술의 습지를 발판으 로 쇠락한 지역의 공동체와 만나는 삽질은 스톤앤워터의 설립자인 박찬응이 군포문화재단으로 둥지를 옮긴 2012년까지 지속되었다.

행사장면

석수시장 설치작품 '삽'

석수아트프로젝트 퍼포먼스 장면

석수시장의 영광을 허하라

안양은 원도심인 만안구와 신도심인 동안구로 이뤄져있다. 1번 국도를 중심으로 서울방향으로 우측이 동안구, 좌측이 만안구이다. 고래부터 이어온 안양의 중심은 만안구이나 현대에 들어 시골마을이던 동안구에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생태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안양은 서울과 마주한 지리적 이점으로 성남시와 고양시와 더불어 성공적인 신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2000년대 초 동안구의 뉴타운이 어느정도 견고해지자 정책입안자들과 자본가들은 기존의 원도심인 만안구의 재개발로 눈을 돌렸다. 2010년, 만안구의 재개발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미 수년째 미뤄왔던 일이었기에 만안구 석수동의 삼성 초등학교에 모인 성난 주민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우리의 생활권을 보장하라. 만안구 석수동의 재개발을 반대한다.”라는 구호였다. 시위현장과 안양시에서 개최한 주민공청회장은 고성이 오고 갔다. 10여 년 동안 재개발 예정지로 묶인 채 살아왔던 흥분상태의 지역공동체는 재개발을 쇠락한 원도심의 실낱같은 희망으로 여겼다. 동시에 지난 시간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보상 규모를 키우기 위해 시작된 시위는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당시 국내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단위의 재개발이 백지화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더니 ‘만안구 뉴타운사업’의 전면 철회가 발표된 것이다. 당시 시위현장에 예술가들과 함께 있었기에 석수동 주민들이 내뱉은 통탄과 눈물이 아직 눈에 선하다.

행사 장면 석수아트프로젝트

그로부터 9년이 흐르고 얼마 전 일이 있어 찾은 석수동은 예상 밖에 활기가 돌고 있었다. 재개발에 대한 우려 혹은 기대로 냉각되어있던 주변이 각자 생존의 길을 찾아가면서 만들어진 ‘생존형 활 기’였다. 곳곳에는 신축 빌라나 오피스텔이 들어섰고, 침체일로의 석수시장에 전에 없던 활기가 눈에 띄었다.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원도심에 각기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은 흔한 모습이다. 방치보다 활용을 선택한 주인들의 재투자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는 뉴타운사업 전면 철회 이후 큰 실망 속에 끝없이 버려졌던 공간에 다시 희망이라는 것이 꿈틀거리는 셈이다. 재개발로 모두 소멸될 공간들이 기존의 역사성과 공동체를 간직한 가운데 느리지만 분명 살아 움직이며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석수시장에 문화예술의 향기를 흩뿌렸던 예술가들의 후배들이 여전히 석수시장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예술하기’라는 삽질을 이어가고 있다. 안양 석수시장이 재개발 대상지에서 제외됨으로써 국내 대표적인 커뮤니티아트의 탄생지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쇠락한 원도심 안양 그 중에서도 석수시장. 다양성과 가능성을 품은 이 곳이 전국 원도심의 문화재생에 어떠한 이정표를 제시할지 지켜볼 일이다.


2009년 점포 설치작업_백정기 White light 스모그 형광등 가변설치


크리스토프 두셰 삽 퍼포먼스1

글 조두호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박사수료)을 수학하였다. 안양의 재래시장인 석수시장에서 대안예술과 공동체문화를 기획했다. 수원의 공공 기관에서 학예연구팀장으로 근무였으며, 동시에 공공예술 및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지역의 의제와 문화예술생태적 기획을 이어왔다. 최근 쇠퇴하는 원도심의 문화적 도시재생을 연구하며, 포천시 관인면의 문화재생 사업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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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경기학광장 Vol.3 _ 2019 겨울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12.18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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