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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창작 불화’로 시대를 그리다.

경기학광장Vol.3 _ People & Life

< ‘창작 불화’로 시대를 그리다. >


- 경기학광장Vol.3 _ People & Life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경기 천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 <경기 아카이브_지금>에서 단연 주목받은 화가가 있다. 창작 불화 <경기천년 감로도>를 출품한 도야 김현자다. 그녀는 이 작품에 제암리 만세 운동부터 세월호 사건 등 경기도에서 벌어진 굵직한 현대사를 그리며 도민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0년 이상 시대를 기록하는 불화 화가로 활약 중인 김현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탱화 무서워하며 만화 그렸던 불화 화가

수십 년 동안 불화 화가로 활약하며 독자적인 ‘창작 불화’ 작업으로 주목받는 도야 김현자. 하지만 대학생 시절 불화와의 만남을 떠올리는 그의 입에서는 “무서웠어요. 탱화가, 불교 그림이…”라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단상이 흘러나온다. 불화를 무서워했던 여대생은 어떻게 불화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도야 김현자는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80학번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 치열하고도 암울했던 시절에 미대생이 된 그는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운명처럼 불화를 마주했다. 당시 사회의 비극을 신심으로 치유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섰던 지선스님과 평화 통일운동을 이끈 법타스님이 지도 법사였다. 새내기 대학생 시절 김현자는 학교에서 금속, 목공, 포장 등 공예를 배우고 3학년이 되어서는 광고디자인을 전공했다. 하지만 학생 시절 불교학생회 일원으로 불교 미술을 자주 접하는 동시에 불교 입체카드를 만들었던 전공 교수를 도우면서 불교 미술과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김 씨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직업 ‘만화가’, ‘만화 학원 원장’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처음 서울에 직장을 구하러 올라왔다가 건설사 인테리어 업체에서 일했어요. 종로의 지하상가를 만드는 등 정부 사업을 하던 꽤 큰 회사였는데 부도가 났어요. 방황 중에 고향 친구와 함께 조계사를 갔는데 그때 친구가 데려온 이가 유명 만화가의 데생맨이었어요.”
친구의 지인 소개로 새롭게 하게 된 일은 출판물 중에서도 만화책의 표지를 채색하는 것이었다. 이 일로 인연을 맺은 출판사 사장의 권유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 우리나라 대표적인 무협만화가인 하승남 팀에 소속돼 3~4년 동안 배경을 그렸다. 이후 직접 순정만화를 그려 데뷔하고 인기 만화 잡지에 작품을 연재하며 직업인 만화가로 살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정만화 전문 잡지로 서화에서 발행했던 월간지 ‘르네상스’(1988~1994년)와 대원에서 격주로 선보였던 ‘터치’(1993~1995년) 등에 <세 마녀와 고양이>, <후레쉬 러버> 등을 연재했다. 이러한 가운데 간간이 단행본 <백유경 이야기>와 <붓다 석가모니>와 같은 불교 만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만화가 지망생을 배출하고 유명 만화가들에게 취업도 연결해주는 등 규모 있는 만화 학원을 차리고 원장으로 나섰다. 90년대 초반 대학에 만화과가 등장했을 때부터 만화 입시 학원으로 방향을 바꿔 운영하는 등 시대의 변화에 재빠르게 반응하는 등 사업가로서의 수완도 남달랐다. 그렇게 세를 불려 서울에서만 3곳의 입시 학원을 운영했고 마지막에는 미술 유치원까지 개원하기에 이른다.
“젊었을 때 너무 많이 돈 벌지 말라던데 당시 너무 많이 벌었던 것 같아요. 미술 유치원까지 사업을 확장했는데 아이들이 탄 차량에 사고가 나서…. 그나마 그때 죽은 아이가 없어서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거죠. 번 돈을 모두 보상금으로 쓰고 정신 나간 상태에서 점점 몸이 아파 죽을 것 같더라고요.”
김현자 그의 나이 39세에 벌어진 일이다. 사고 이후 좀처럼 추스르기 힘들었던 고단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찾아간 사찰에서 그는 다시 일어선다. 한 스님에게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해라”라는 말에 고개를 들어 사찰 곳곳의 전통 단청 무늬와 그 색, 그리고 여대생 시절 무서워했던 불화를 마음에 담는 것이 새로운 시작의 첫발이었다.



불혹을 넘어 다시서기

김 씨는 그의 나이 41살에 다시 일어섰다. 이후 행보를 살펴보면 긴 시간 돌고 돌아 제자리 찾기에 나선 셈이다. 김현자는 2004년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전통공예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한 이후 2009년 2월에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재과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쉼 없이 정진해 2012년 원광대학교대학원 회화문화재 수리회화복원학 박사과정을 이수, 2015년에는 명지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뒤늦게 전통회화, 그중에서도 탱화와 단청에 빠져 이를 배우고 연마하는 시간을 거치며 단단하게 내공을 쌓았다.
2001년에는 경기무형문화재 단청장 이수자가 됐다. 이듬해인 2002년 <수월관음도> 모사본으로 불교미술대전 장려상을 거머쥔 이후 전승 공예전과 불교미술대전 등에서 화려한 수상 이력을 쌓아 나갔다. 2005년에는 문화재 수리기능자 화공 자격을 획득했다. 현재는 도야불교미술 단청문양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서울한옥캠프 전통문양 체험강사, 국제작은작품미술제 운영위원, 한국미술협회 정회원, 산업인력관리공단 문화재수리기능자시험 출제위원 등 다양하고도 역동적인 활약을 벌이고 있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쇠약해졌던 심신이 단청과 탱화를 그리며 회복됐으니, 그야말로 제자리를 제대로 찾았다라고 할 수 밖에….



“작업하지 않으면 아파서 살 수가 없더라고요. 운명처럼 시작한 불화를, 사는 내내 그 무서워하던 저 그림(탱화)을 그릴 텐데 어떻게 하면 무섭지 않고 부드럽고 온화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지난 17년 동안 석박사 과정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지요. 그래서 참 오래 걸렸죠.(웃음)”
도야 김현자의 인생, 직업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역시나 ‘작품’이다. 그는 석사 논문 ‘영조법식 建築彩畫(건축채화)연구 -「五彩編纂(오색편찬)」 단청문양을 중심으로’를 발표하면서 자신만의 작업 방향성을 찾아 나갔다. 영조법식 문양을 구현하는 동시에 단청 안료로 그렸던 탱화에 석채를 사용함으로써 좀 더 부드러운 색감을 구현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공부하고 아낌없이 재료를 배합하고 실제로 채색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김현자 스타일’의 독자적인 불화, 단청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제자 양성에 있어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 역시 ‘밥은 굶어도 재료는 아끼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또 한지 배접부터 밑그림, 삼배와 비단 등의 천 잇기, 천 배접, 아교풀 바르기, 채색 순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 전통적이면서 정통성을 지켜나가고 있음을 자부한다.
“탱화 작업의 시작은 작품 주문과 동시에 직접 초를 만드는데 기존에 있는 것을 카피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균형을 맞춰 각각 작업해요. 이쪽 계통에서는 흔치 않은 독자적인 초 작업인데 젊은 시절 만화 작업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기존의 카피본은 균형이나 색감 등에서 원본과 다른, 카메라 왜곡이나 시간의 흐름을 겪으면서 전승된 것인데 실제 전통 불화에 불균형이 있었을까요? 초점을 제대로 맞춰 다시 초 작업을 하는 것이야말로 전통을 정통으로 계승 보존하는 것 아닐까요?!”
보존 전승돼 온 탱화가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으로 내려오다 보니 기술적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그것이 마치 전통으로 여겨져 잘못 이어져 왔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으로 초 작업부터 다른 이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공들이는 그다.



나는 ‘전통 회화 화가’



그의 손에서 탄생한 탱화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지만, 대표작을 꼽자면 동국대학교 정각원에 있는 창작 탱화 <통일 찰해도>(2010년)가 있다. 이 작품은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창작 만다라’다. 분단 현실에서 남북이 <화엄경> 화장세계품에서 설명하는 비로자나불(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춰 가득하다는 뜻)의 정토 사상을 반영하면서 불교에서 추구하는 평화로운 세계처럼 평화롭게 하나의 국가가 되기를 소원하는 것을 형상화했다. 또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로고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고대부터 현대인이 믿는 믿음의 대상을 모두 그려 넣는 등 작가적 고민 끝에 특별한 탱화가 탄생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13년 종교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의 첫 창작 탱화였어요. 기존 원본을 그대로 모사하면 시간과 기술력의 한계에 변형된 형태나 색감을 잘못 전달하는 꼴이어서 제대로 된 초(밑그림) 작업에 집중했고 두 번째로 원본이 없고 문헌에 있는 형태와 문양을 구현하면서 지금 이 시대의 탱화를 그리는데 매달렸죠. 죽을 때까지 대형 창작 불화를 10점 발표하는 것이 제 인생 목표에요.”
첫 창착 탱화 <통일 찰해도>를 시작으로 창작 탱화 10점 완성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옛 그림이 없는 상황에서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의 설화를 기반으로 창작해 봉안한 <36문수보살 천상의 세계> 등 경기도는 물론 서울 조계사와 대구 동화사 등 전국 60여 개 사찰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가운데 작가 스스로 만족할 만한 내용과 규모를 갖춘 창작 탱화는 아직 서너 점에 불과하다. 그나마 스스로 꼽는 창작 불화는 지난해 ‘경기 천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 <경기아카이브_지금>에 출품한 <경기천년 감로도>가 근작이다. ‘감로도’는 불교에서 망자를 극락으로 천도하는 의례에 사용되는 전통 탱화다. 작가는 해당 작품에 안성미리내 성지, 제암리 만세 운동, 평택 미군 기지 확장 반대, 세월호 사건 등 도내 굵직한 사건들을 그려 넣어 시대상을 기록하는 동시에 이 시대의 비극을 겪은 모든 이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랐다. 또 죽은 영혼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감로도로 그리면서 ‘경기도에 살았던 현대인 희생자’ 모두의 평온한 사후세계를 기도한 셈이다.



이제 김현자는 독자적 스타일로 창조하는 창작 탱화를 선보이는 동시에 박사 논문을 정리 발표하고 ‘단청문양용어사전(가칭)’ 제작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일련의 작업을 환갑이 되는 해에 종류별로 전시하는 것도 그가 꿈꾸는 미래상이다.
이처럼 불화 화가로 명성을 쌓고 유의미한 작품을 발표하는 그를 두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전통 불화의 현대적 계승을 꾀하는 그의 작품에서는 종종 ‘드론’ 처럼 현대인에게 익숙하면서 시대를 암시하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를 두고 전통 화가가 아니라 ‘현대 작가’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변 시선에도 김 씨는 당당하다. ‘전통’이라는 개념을 대하는 남다른 가치관에서 비롯한다.
“전통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옛것을 베끼는 것은 틀린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은 기법적인 것이지, 그림 내용에 있어서 전통은 따로 있지 않아요. 채색만큼은 가장 전통적인 기법을 고집하면서도 이 그림이 완성된 시기를 알려주기 위해 현대적 이미지를 그리는 내용적인 고민이야말로 과거 시대의 화가들이 고민했던 ‘정통’을 따르는 것이라 생각해요. 지금에 맞는 현대 불화를 창작하면서 전통은 이어가는 것,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이런 측면에서 스스로 만족할만한 불화작업을 해야죠. 제 이름 걸고 그린 불화가 100년 후, 수백 년 후 ‘전통 불화’로 남겨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글 류설아

수원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지식재산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신문과 방송사에서 15년 동안 취재기자로 활동,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고 인간 의 삶에 주목하는 다양한 저술을 펴냈다. 현재 구술사 채록 등 프리랜서 인터 뷰어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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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경기학광장 Vol.3 _ 2019 겨울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12.18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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