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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자연생태보전지역 포천 청계산

경기학광장Vol.5 _ Trip & Healing


< 자연생태보전지역 포천 청계산 >


- 경기학광장Vol.5 _ Trip & Healing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청계산의 개요

수도권 일대에 청계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3개 있다. 과천시와 양평군에 각각 하나씩 있고, 포천시와 가평군 경계에 있는데, 이 중 여기에 소개하고자 하는 청계산은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과 가평군 하면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북쪽으로는 광덕산과 백운산, 국망봉, 강씨봉이 있고, 남쪽으로는 운악산으로 이어진다.

높이는 849.1m로 수도권 인근의 여타 산들에 비해 비교적 높은 편으로 수목이 울창하고 수량도 풍부하다. 이러한 청계산 자락에 위치한 일동면 기산리에서 50년 이상을 살아온 필자에게 청계산 하면은 초등학교 시절 소풍코스로 자주 다녀오던 곳, 겨울에는 얼어붙은 저수지의 빙판에서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던 곳, 또 나무를 연료로 하던 시절 땔나무를 해오던 단골 코스로 기억이 되는 곳이다.

청계산 표지

그 후 나이를 먹어가며 등산코스로 부담 없이 다녔던 곳이며, 2004년부터 자연생태보전지역 관리요원으로 5∼6년 정도 드나들었고, 요즘은 등산이나 여름에 계곡으로 더위를 식히러 가끔씩 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청계산의 자랑거리는 마을에서 차로 10여 분만 가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과 그냥 마셔도 될 만큼 맑은 물이 흐른다는 것이고, 거기에 금상첨화로 전국 7대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식생 또한 다양한 곳이다. 그런데 식목 행사로 잣나무를 심어 지금은 키가 10m 이상 아름드리로 훌쩍 커 그늘이 햇빛을 가리고, 70년대에 조성된 저수지, 근래에는 펜션단지가 조성되며 생활 패턴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청계계곡

청계산 계곡은 크게 큰골과 작은골 두 개로 부르는데, 그 기준점은 청계 저수지 상류에 있는 마당바위라고 하는 곳이며, 산을 향해서 좌측 오뚜기령 방향에서 발원하는 곳이 큰골이며, 우측 질마재 하부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것이 작은골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이름이 생긴 이유는 계곡이 두 개이고, 단순하게 크고 작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이라 생각한다.
큰골은 입구에서 거의 평지라 할 만큼 경사도가 낮아 한 시간 반 정도 트레킹을 하면 발원지에 다다를 수가 있는데, 긴 골짜기 만큼이나, 중간에 작은 웅덩이가 곳곳에 산재하며, 펜션구역만 벗어나면 인적이라곤 없어 조용한 사색이나 피서지로서 적격이다.
큰골에는 몇 개의 발원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크고 직접 가본 곳은 산에서 크고 작은 돌들이 사태 난 것 같이 흘러내려 마치 밀양의 얼음골을 연상시킬만한 곳으로, 콸콸 소리가 날 정도로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은 한여름에도 물병에 금방 이슬이 맺힐 정도로 시원하며, 또한 골이 깊어 원시림과 다양한 식생이 또 다른 흥미를 자아낸다.
이와 대비하여 작은 골은 큰골에 비해 경사도는 있지만 발원지를 가물 때는 찾기도 쉽지 않을 만큼 큰 특색은 없지만 정상인 실우봉과 질마재와 연결이 되어 등산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초보자라도 크게 힘들지 않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작은골발원지


큰골발원지


작은골


큰골

청계(淸溪)마을

청계는 일동면 기산7리 청계산 자락의 큰골과 질마재 계곡, 노채 계곡을 말하며 행정구역으로는 일동면 기산 7리에 속하나 지역적 특성상 독립된 취락이 형성된 곳이다. 이 마을에 주민이 처음 정착하게 된 것은 약 240∼250년 전에 철원군 김화읍 사곡리에서 평해 황씨(平海黃氏), 진주 강씨(晉州姜氏), 연일정씨(延日鄭氏) 등이 이주하여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부터라고 한다.
근대에는 6.25 이후 피난 나온 사람들이 골짜기마다 거주할 정도로 인구가 밀집하였다. 그 당시 사람들의 주된 소득원은 숯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었는데, 질마재 고개 넘어 상판리에서 숯을 만들어 한 짐을 져다 시장에 팔면 국수 한줌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상판리는 가평군에 속하면서 피난지라고 부를 정도로 골이 깊어 당시 일동면 쪽보다는 숯의 재료가 풍부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다가 76년∼78에 삼호주택이라는 회사에 의하여 축조된 저수지 공사는 진흙과 모래에 방수제를 섞어서 통나무로 내리치며 다지는 방식으로 공사를 했다. 공사에는 가평이나 현리에서 온 석공 전문가와 일동지역 주민들이 참여하였다. 이 공사로 수몰지역 약 30가구 정도가 가구당 20만 원 정도의 보상을 받아 일동 시내로 나가 내집 마련하거나 장사밑천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70년대 말 전국적으로 시행된 사방공사 붐이 일어났는데 청계에는 잣나무와 낙엽송이 주로 식재되었다. 품값으로는 밀가루를 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저수지 바로 아래에는 그 이전에 지역주민에 의해 축조된 둑이 있었는데 수압에 의해 무너져 현재는 가장자리 일부 흔적이 남아있다.
1975년대 초반 화전민이 많던 시절은 말뚝 박는 게 내 땅이라고 할 정도로 땅임자도 없었는데 일을 하러 새벽에 올라가 저녁에 해가 져야 내려왔는데 일동시내 사람들이 몰려와 길이 꽉 찰 정도였다고 한다.
화전 밭은 콩 세 되의 권리금을 주면 경작권을 얻을 수 있었다. 화전 밭에서는 일 년에 콩 5가마나, 옥수수 7가마 정도를 수확했는데 쌀 한 가마와 바꾸었다. 이 당시에는 화전 밭에 불을 내면 벌금을 내던 시절로, 벌금을 내지 못하면 교도소에도 갔다. 또 산림간수에게 리어카, 지게, 낫, 톱 등을 몰수당하고 벌금을 물기도 했다. 산림간수는 권총도 소지하고 산림경찰 사법권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또 다른 수입원으로는 지역이 산골이다 보니 임산물이 빠질 수가 없었다. 주된 품목으로는 천마, 봉영, 더덕, 두릅 등이었다. 이외에도 토끼를 잡아 갈대로 빨대를 만들어 발목에 끼고 불어 가죽을 벗겨 말려서 서울에 있는 경동시장에 가서 팔아 수익을 챙겼다고 한다.
2000년경에 펜션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현재 19개소에 달한다. 어쨌든 전체 주거 가구 수가 30여 호이며, 약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된 소득원으로는 청계계곡을 이용한 음식장사와 펜션, 민박업 등이다.

펜션지구

토속신앙

이 지역의 신앙관련 시설로는 사찰 한 곳, 굿당 한 곳, 토속신앙 관련시설 두 곳이 있다. 그중 마당바위 삼거리 인근에 위치한 산신당이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60년 대부터 건물 근처에 샘터가 있어 대감신, 상위급신 엄마로 불리던 할머니 무속인이 거주하였는데 그 당시 작두도 타고, 통돼지를 잡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항상 손님과 과일, 고기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샘도 말라 명맥이 끊어졌다고 한다.
노채고개 인근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절벽 아래에 위치한 곳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석고로 만든 산신상, 불상 등을 가져다 놓고 무속인들이 정성을 드리고 있다. 사찰로는 마을 입구에 대원사라는 절이 있는데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풍습으로는 음력 9월 초에 주민의 안녕을 위해 지내던 산신제가 약 50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는 깊은 골짜기인 만큼 재미있는 전래지명이 많다. 질마재 계곡에는 질마재, 마당바위, 소 말뚝바위, 귀웅소, 달밭골, 복홰골, 삼단폭포, 칡나무골, 실우봉 등이 있다. 큰골 쪽에는 망구대, 설통바위 골, 삿갓봉, 첫새골, 둘째 새골, 셋째 새골, 작은 음터골, 큰 음터골, 새 목 두란지, 새 목 고개, 삼선탕 등의 지명이 전해온다.
큰골에는 70년대에 개발되던 광산이 있었는데 금과 철, 형석 등을 채광하였으며, 특히 형석은 알루미늄과 유리 등을 제조하는데 사용되는 광물로 5-6명 정도의 일꾼이 작업을 하였는데 경제성이 없어 2∼3년 정도 운영하다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형석광산

▲ 토속신앙

산신당

풍수지리학으로 해석한 청계산(淸溪山)과 관련된 지명(地名)

▶ 청계(淸溪)
청계산 자락 서쪽지역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며 소의 마구간에 있는 닭장을 말하는 것으로 청계의 의미는 푸른 닭 즉 靑鷄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닭의 색깔은 실재의 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동시내에서 볼 때 이곳의 위치가 동쪽이며 동쪽은 청룡(靑龍)을 말하는 것으로 靑鷄라는 말이 맑은 시내라는 즉 청계(淸溪)로 잘못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대동여지도》에는 靑溪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靑鷄와 淸溪의 중간단계의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청계저수지 아래에 위치한 대원사(大願寺) 절 뒤의 뾰족한 바위봉우리가 닭의 벼슬에 해당된다.

▶ 질마재
청계산 실우봉(失牛峰) 옆에 위치한 고개로 고개의 모양이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한 도구인 길마를 닮았다고 하여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길마재가 표준발음이며 고개 넘어는 가평군 상면 상판리라는 마을이 위치한다.


질마재

▶ 실우봉(失牛峰)
청계산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실우는 소(牛)를 잃어버렸다는 의미로 이것은 실우봉 자락에 풍수지리학적 용어로 소가 누워있는 형상, 즉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실우봉 자체에는 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산자락 어디엔가 와우형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암시하는 지명이라 할 수 있으며 현재에는 발음이 변하여 시루봉(甑峰)이란 아무 의미도 없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 마당바위
청계저수지 상류에 위치한 마당같이 넓은 면적의 바위를 말하는 것으로 소가 여물을 먹는 장소를 상징하는 것이며 이러한 내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자문(千字文)에 白(흰백) 駒(망아지구), 食(밥식, 먹을 식) 場(마당 장, 장터 장)이란 글귀가 나온다.
이곳 마당바위에는 오랜 예날 누군가에 의해 새겨진 소의 여물통을 의미하는 조계(槽溪)라는 글이 있는데, 저수지의 물속에 잠겨있어 가물 때나, 봄 농사철로 물을 빼낼 때만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아쉬움이 있다.

마당바위

암각문

▶ 싸리고개
일동시내의 기산리와 화대리의 경계에는 청계산에서 내려오는 하나의 산줄기가 있고 그 중간에는 세 개의 고개가 있는데 그 중 청계 방향으로부터 두 곳의 고개는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정도의 비포장도로인데 비하여 가장 아래에 위치한 일동시내를 관통하는 47번 도로의 고개는 가장 크고 개발이 잘 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47번 국도가 지나는 가장 큰 고개를 싸리고개라고 알고 있는데 싸리고개의 원조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고개라고 전해온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청계산에서 내려오는 냇물을 건넌 다음,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풍양 조씨 조성하의 묘 일명 '돼지산소'라 부르는 곳으로 넘어서 왕래를 하였다고 한다. 조선 초대임금인 태조 이성계도 함흥에서 한양으로 돌아올 때 이곳으로 지나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고개를 싸리고개라 부르게 된 것은 이 산줄기가 청계산 실우봉이 상징하는 소의 고삐에 해당되는 곳으로 고삐를 옛날에는 사리라 불렀는데 이 발음이 변하여 싸리나무 고개란 전혀 다른 의미로 불리게 된 것이다.
싸리고개는 일동 시내의 등뼈 역할을 하면서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아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으며 예전부터 일동면(一東面)에는 상사(喪事)가 나면 꼭 삼초상(三初喪)이 나는데, 바로 이 싸리고개가 세 번 끊어졌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칡나무골
실우봉 아래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칡은 소의 먹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와우형(臥牛形)을 상징하는 지명의 하나이며, 실재로도 이곳에는 칡이 많아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해준다.

▶ 노채고개
청계저수지 우측으로 약수터를 지나 가평군 상판리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이 고개를 노채고개라 부르게 된 것은 이 고개 맞은편에 금반옥배형(金盤玉盃形), 즉 술상과 술잔모양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안주를 집어 먹는 놋쇠 젓가락 즉 놋저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신학약수(神鶴藥水)
노채고개로 오르는 중턱에 위치한 약수 이름으로 삼십여 년 전 한대사(한동준-필자의 부친)라는 분이 이곳을 개발하고 약수터의 뒷 봉우리가 학(鶴)의 부리처럼 생겼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지금도 약수터 상단에는 그분의 친필로 새겨진 조그만 비석이 새겨져 있으며 물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서 지금은 일동지역은 물론 서울, 인천 등지에서 약수물을 마시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청계저수지
일동면 기산리에서 동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청계산이 있고 그 계곡 밑에 자리 잡고있는 호수를 청계호(淸溪湖)라 한다. 1979년에 완공한 이 호수의 제방 길이는 150m에 이르며 높이는 25.8m, 만수시(滿水時) 저수량이 100여 만 톤이나 되는 호수이다. 수정같이 맑고 오염 없는 물은 보는 사람마다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가 하면 물에 잠긴 청계산 그림자는, 아름답고 웅장한 한 폭의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이 호수의 수원(水源)을 이루고 있는 청계산은 일동면 동쪽을 남북으로 병풍처럼 가로막아 가평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울창한 숲과 계곡마다 흐르는 맑은 물은 옥수(玉水) 그 자체이다. 산자락에 펼쳐진 기산 벌의 농업용수로 이용되어 풍요로운 수자원으로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청계산과 청계호의 천혜적(天惠的) 자원을 일동주민 모두가 아끼고 보전하여 항상 깨끗하고 맑은 환경으로 간직하여야 할 것이다.


청계저수지


그 이전에 막았던 둑 일부

청계산보전협의회 생태조사

필자가 이러한 청계산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답사와 조사를 하게 된 시점은 2004년 경으로 생각된다. 청계산이 가평의 명지산과 함께 전국 7대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경기도와 포천시에서 일정금액의 보조를 하여 관리의뢰를 받으면서부터이다.
이른바 청계산보전협의회라는 단체가 조직되고 청계산 입구에 초소를 만들어 출입자를 관리하여 생태보전지역을 보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주로 하는 일은 입산을 통제하여, 자연생태를 보전하고, 산불예방, 산나물 및 약초 채취 등을 금지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1∼2년 이라는 시간을 보내던 중 그냥 무의미하게 시간만 보내는 것보다 청계산에 자생하는 야생화와 나비, 나방, 자연경치 등의 사진을 찍어 자료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에 담기 시작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아생화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카메라에 담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촬영한 자료를 가지고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이름을 아는 것도 몇 가지 되지 않고 피는 시기와 장소도 몰라 사진만 올려놓고 이름을 찾느라 새벽까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인터넷을 뒤졌다. 또 관련 책자를 구입하여 탐독하느라 손가락과 팔의 힘줄에 염증이 생겨 6개월 진단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400여종의 야생화와 90여 종의 나비, 나방, 기타 자료를 촬영하여 문화원의 협조를 받아 6회 정도의 야생화 사진전시회도 가졌고, 주민자치센터와 협력하여 자료집을 만들어 우리방송과 YTN방송에도 소개되는 성과를 올렸으며, 1,500여 쪽의 야생화 강의 PPT자료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다음 쪽의 사진은 필자가 청계산에서 촬영한 야생화 중 일부이다.

청계산의 야생화


▶ 바위채송화
바위채송화는 7∼8월경에 작은골 7부 능선 가파른 바위에 자생하며, 노란색 꽃이 핀다. 일반 채송화와 모양은 같으나 바위에 자생한다는 특징이 있다. 어린순은 식용이 가능하며 생명력이 강하다.


▶ 족두리풀
족두리풀은 4∼5월경에 큰골 및 작은골 초입에 주로 자생하며 청계산에는 족도리풀, 개족두리풀, 황록선운족두리풀이 자생한다. 특이한 점은 꽃은 땅바닥에 붙어 피고 잎은 10cm정도 위에 나는 특이한 점이 있으며 꽃 모양이 옛날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족두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천마
천마는 6∼7월경에 작은골 2∼3부 골짜기 물가에서 피며, 잎이 없는 줄기에 꽃이 피는 것이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참나무류 또는 뽕나무가 쓰러져 썩은 곳에서 자라며, 땅속 덩이줄기는 약용으로 쓰인다. 1년에 4∼5포기 정도 발견된다.


▶ 참당귀
참당귀는 작은 골 7∼8부 이상에서 주로 발견되며 개체수는 극히 드믈며, 당귀라는 이름과 같이 날로 먹으면 단맛이 난다.
한약재로 거의 빠지는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 용도로 사용되며, 어린잎은 쌈이나 겉절이, 데침, 장아찌, 묵나물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



▶ 자주조희풀
자주조희풀은 7∼8월경에 작은골 2∼3부 골짜기에서 발견되며, 1년에 서너 포기 정도 발견된다. 자주색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계산의 나비



▶ 모시나비
봄에 작은 골 3∼4부 능선에서 주로 발견되며 모시같이 흰색 바탕에 반투명 날개에서 그 이름이 붙여졌으며, 엉겅퀴, 자운영, 토끼풀, 기린초, 나무딸기 등에서 주로 꿀을 채취한다.



▶ 연푸른부전나비
부전나비과에 속하며, 수컷의 날개는 청색이고 암컷의 날개는 갈색이다. 7∼8월에 청계산 하단부나 인근 들에서 주로 발견된다.



▶ 북방거꾸로여덟팔나비
거꾸로여덟팔나비와 유사하여 구별하기 어려우나 보다 높은 산지에 서식하며 발생 시기도 약간 늦은 편이다. 계곡 길가의 밝은 곳에서 흡수하거나 쉬땅나무, 개망초, 큰까치수영 등의 흰 꽃에서 잘 모인다.

청계산의 나방



▶ 노랑띠알락가지나방
몸은 귤빛이며, 더듬이는 수컷이 미모상이고, 암컷은 실 모양이다. 이마, 경판, 어깨판에는 암갈색 무늬가 있다. 다리는 암갈색으로 회백색의 알락 무늬가 있다. 배의 등쪽 면과 배쪽면은 암갈색을 띤다.



▶ 먹세줄흰가지나방
남한 전역과 제주도에 분포하며, 성충은 7월 말부터 10월에 걸쳐 나타나고 낮에 활동하며 쑥부쟁이 등에서 꽃꿀을 빨아먹는다. 앞날개에는 암갈색의 빗줄무늬가 3개 있다.



▶ 왕갈고리나방
남한 전역에 분포하고 성충은 5~6월과 7~8월에 걸쳐 나타난다. 낮 동안 나무그늘 사이를 천천히 날아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등불에도 모인다. 채집하기도 쉽고 개체수도 많다.

※ 야생화와 나비에 대한 설명은 인터넷 자료를 인용했음


글 한웅

현재 성균관유도회포천지부 사무국장과 경기도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풍수지리와 지명의 관계에 대하여 35년 이상 연구, 기존의 지명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글을 쓰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설을 풍수지리학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역대 도읍지 전설을 풍수로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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