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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최초로 신석기인과 마주하다 - 수원, 최초의 신석기시대 집자리 발굴 -

경기학광장Vol.5 _ Information & News

< 수원, 최초로 신석기인과 마주하다 >

- 수원, 최초의 신석기시대 집자리 발굴 - 


- 경기학광장Vol.5 _ Information & 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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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은 정조의 신도시 건설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도시 건설이 이루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고려시대 개성, 조선시대 한양과 더불어 가장 체계적인 도시화 모델이 적용된 곳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한 이후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근대를 지나면서 도시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주의 수탈의 중심지로 수원이 이용되면서 서울과 맞먹는 규모의 도시화가 진행되었는데 전국적으로는 군산, 부산과 같은 거점 도시로 성장하였다. 항공사진을 통해 보면 수원 시내는 녹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진해진다는 말이 있다. 고도성장을 이룬 수원의 도시화 이면에는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 유적이 파괴되는 안타까움도 공존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원 관내에서는 고고학적 유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주로 현재 들어선 화성행궁과 화 성 등 신도시 건축물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삼국시대 유적의 일부가 드러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화성행궁지 건물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신라시대 무덤이 발견된 사례가 있는데 이 또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수원 최초의 신석기시대 집자리가 발굴된 수원 인계동 176-22번지 유적

도시화가 진행된 수원 인계동 유적 주변

이와 같이 수원에서는 선사시대 유적이 이미 모두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특히 집자리를 처음 만든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은 아예 기대조차 되지 않던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수원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인계동에서 신석기시대 집자리가 발굴조사 되어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수원에서는 유적 조사 과정에서 간간히 빗살무늬토기편이 채집되면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있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곤 하였다. 대표적으로 수원 율전동 초기철기시대 마을 유적의 지표에서 빗살무늬토기 1점이 채집되었고, 삼국시대 제사유적으로 알려진 수원 꽃뫼 유적의 지표에서 역시 빗살무늬토기 1점이 채집된 사례가 있다. 수원과 인접한 광교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반쪽만 확인된 신석기시대 집자리 1동이 있으나 용인 관내(상현동)에 포함되는 유적으로 수원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집자리는 전무한 상태였다.

인계동 유적 신석기시대 집자리와 출토된 빗살무늬토기편과 석기유물(갈돌) 집자리 아래 오른쪽의 유구는 고려시대 무덤.

신석기시대 집자리가 발견된 수원 인계동 176-22번지 유적은 인계3호공원 조성을 위해 실시한 시굴조사를 통해 처음 유적의 징후가 확인되었다. 당시에는 조선시대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이후 전면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잔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신석기시대 집자리가 드러났다. 수원 인계동 176-22번지 유적은 황구지천 최상류의 수원천과 원천리천 사이의 구릉 사면에 위치한다. 주변으로는 높은 구릉이 존재하지 않고, 하천 수계가 풍부하여 신석기인들이 살기에 알맞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집자리는 구릉의 사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남북방향을 장축방향으로 한 방형의 평면형태를 하고 있다. 집자리 내부 시설로는 고도가 높은 북쪽에 2중의 굴착을 통해 집자리 벽면을 보강한 공간이 확인되었고, 중앙에서 토광을 굴착해 만든 화덕자리 하나가 조사되었다. 기둥구멍들은 집자리의 외곽을 따라 분포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집자리의 남쪽 벽면은 고려시대 무덤과 현대 교란층으로 인해 파괴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구릉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집자리로서는 깊이, 규모 등이 매우 양호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대체로 기원전 1만년부터 기원전 1,500년 전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초기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하천변과 해안가에 살면서 생업을 이어갔다. 따라서 하천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인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사람들의 터전이 얕은 구릉 등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생계방식이 다양화되고, 활동반경이 확장된 결과였다. 그리고 청동기시대에는 영동과 영서지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주로 구릉상에 집자리를 만드는 변화가 나타난다. 집자리의 형태도 하천변에서는 주로 원형의 집자리가 많은데, 구릉상에서는 방형의 집자리가 다수를 차지한다. 공통적으로 집자리의 외곽에 기둥구멍을 배치하고 중앙에 화덕을 놓은 간단한 구조였다.


구릉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집자리 복원도(시흥 능곡동 유적)

인계동 유적의 신석기시대 집자리도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볼 때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중부지역의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는 바닥이 뾰족한 역삼각형의 모양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토기의 표면에는 생선뼈무늬 등이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곤 한다. 빗살무늬토기의 발전은 토기 전체에 빗살무늬가 시문되는 것에서 점차 무늬가 사라지다가 가장 늦은 시기가 되면 아가리 부분에만 빗살무늬를 시문하는 형식으로 발전한다. 인계동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들은 무늬가 간소화된 형태로 신석기시대 가운데 늦은 단계에 해당한다.
한편, 인계동 유적에서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방무덤과 고려시대 무덤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 역시 사례가 많지 않은 점에서 인계동 유적이 우리에게 쥐어준 역사적 덤이라고 하겠다. 다행히도 유적은 공원조성이 계획되어 있는 곳으로 별도의 건축행위는 이루어지지 않고, 현재와 같이 도심속의 산책로로 사용되면서 삭막한 도시인의 쉼터로 사용될 예정이다. 조사가 완료된 집자리는 복토된 후 공원의 지하에 자연스럽게 보존될 예정이다. 인계공원이 정비되면 더 많은 시민들의 쉼터로 사용될 수 있을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코로나 블루”가 심한 요즘, 5,000년 전 선조의 숨결을 느끼며 치유의 길을 걸어보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이 운동하는 동안 땅 밑에 있는 신석기시대 집자리는 치유의 온기를 현재의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대표적인 초기 빗살무늬토기(서울 암사동)

인계동 유적에서 발견된 신라의 돌방무덤과 출토 유물


글 박경신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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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경기학광장 Vol.5 _ 2020 여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20.06.30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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