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도박물관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 박물관 5

2020-08-09 ~ 2020-12-31 / 새로움이 시작된 곳, 경기… 1천년 전 경기인은 '얼리어답터'

2020 중부일보 연재 시리즈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 박물관〉은 개관 25주년을 맞이하여 전시실 전면 개편을 진행한 경기도박물관이 중부일보와 함께 2020.06.28부터 2020.09.20까지 총 10회 시리즈로 제작한 콘텐츠입니다. 더 자세한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 박물관〉을 만나보고 싶으시다면, 중부일보 홈페이지에서 원문으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새로움이 시작된 곳, 경기


대한민국 많은 도의 이름이 지역 내 대표 고을의 앞 글자를 합하여 만든 것에 반해 경기도는 그 자체로 수도의 주변지역, 수도를 아우른 지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경기’가 등장한 것이 고려 현종 9년(1018)이었으니 고려~조선의 경기는 수도와 뗄 수 없는 관계로 1,000여년의 인연을 맺어온 셈이다. 경기 앞에 자주 따라 붙는 한반도의 중심, 사통팔달의 땅,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 등등의 수식어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경기 지역은 서해의 발달한 해상교통을 통해 세계와 교류한 곳이었다. 삼한·삼국시대부터 이어진 바다를 통한 교류는 고려가 들어서자 더욱 활발해졌다. 서해와 가까운 개성에서 오랫동안 해상 활동으로 부(富)를 축적한 호족이 세운 나라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세계 지도 속 코리아 국토지리정보원

1641년경 제작된 혼디우스의 아시아지도이다. 한국을 일컫는 ‘코리아’는 고려에서 유래하였는데 여러 나라와 교류했던 고려는 1300년경 발표된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카울리Caule, 솔랑가Solanga 등으로 소개되었다.


육로로는 나라 안, 해로로는 나라 밖과 통하였던 개경과 경기는 요즘 말로 ‘얼리 어답터(Early-adopter)’가 되었다. 개경과 경기에는 새로운 문화와 풍습, 문물과 기술이 먼저 전해졌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중국을 통해 전해진 도자기 제작 기술로 고려만의 청자와 백자를 만들었고, 주로 개경과 경기에서 사용하였다. 송과 거란의 대장경을 수입하고 국내외 경전과의 비교를 통해 고려대장경을 제작하였다. 또한 인쇄술을 발전시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전국으로 퍼져 고려문화가 되었다.



청자 상감 꽃과 새 무늬 의자

원통형의 몸통에 여러 가지 문양을 투각, 상감, 양각, 음각 등의 수법으로 장식한 청자의자이다. 고려청자의 독특하고 세련된 수준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 천하제일, 고려청자

10세기경 고려에서는 중국의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청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 경기를 중심으로 한 서해안 지역이다. 황해도의 배천 원산리, 경기도의 고양 원흥동, 용인 서리, 시흥 방산동 등에서는 당시 불교문화로 유행하던 차茶 관련 그릇을 주로 생산하였다.


청자는 개경과 경기의 왕실·관청·사찰 등에서 사용되었고, 수요는 갈수록 늘어났다. 11세기 무렵 청자 제작의 중심지가 전라도 강진, 부안 쪽으로 옮겨지고 제작기술도 발전되었다. 12세기에 이르러 제작된 비색청자는 중국에 뒤지지 않는 ‘천하제일’이라는 평을 받았다. 또 13세기에는 고려만의 독특한 상감청자가 유행하여 세계적인 수준의 도자기로 자리 잡았다.


중국 정주의 백자 등과 함께 고려 비색(秘色, 비색청자)이 천하제일이다. 다른 곳에서 따라 하려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 송나라의 책 『수중금』



백자 사발

고려백자의 발생과 변화 과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여주 중암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사발이다.

해무리 굽의 접지면에 백색 내화토를 4곳 정도 받쳐 구웠다.



◇ 청자와 함께 시작된 고려백자

백자는 삼국시대에도 중국의 것을 수입해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이다. 백자를 만드는 기술은 청자 제작 방법이 전해질 무렵 고려에 함께 들어왔다. 경기 지역의 초기 가마에서는 청자와 백자를 같이 만들었다. 그러다 용인 서리, 여주 중암리 등 백자를 주로 생산하는 가마도 나타났다. 처음에는 찻그릇으로 만들었으나 경기지역에서는 차츰 더욱 정교한 백자 제기를 생산하였다. 백자 제기는 왕실과 지방의 제사에 사용하였다. 


개경과 경기의 왕실, 관청, 사찰 등에서는 백자를 꾸준히 썼지만 적은 양이었다. 고려는 중국 송의 백자를 수입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12세기 무렵에는 전라도 강진·부안에서 백자 제작 기술을 발전시켜 고려의 특성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백자를 만들었다.



초조대장경 화엄경 권제1 국보 제256호

고려 현종(재위 1011~1031) 때 거란이 침입하자 이를 물리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이다. 중국 북송시기에 만들어져 고려에 수입된 대장경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목판본으로 인쇄된 초조본 중 한국에 남아있는 유일한 권 제1로, 11세기에 찍어낸 대장경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최고 수준에 이르렀던 고려 인쇄술을 잘 보여준다.



◇ 세계 최고의 인쇄문화

삼국시대 불교 전래와 함께 발달하게 된 인쇄문화는 고려에 와서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그 중 경기는 인쇄의 중심지로 대장경 목판과 금속활자가 제작된 곳이다.


대장경은 고려에서 크게 두 번에 걸쳐 만들어졌다. 거란이 침입해오자 불교의 힘으로 이를 막기 위해 만든 초조대장경, 초조대장경 목판이 몽골군 침략으로 불타 사라지자 이번엔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이 그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바로 재조대장경이다.


또한 농업 관련 책과 『향약구급방』 등의 의학서가 목판으로 만들어지고 전국에 보급되면서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금속활자는 13세기 초에 발명되어 개경과 경기에서 널리 쓰이다가 점차 지방에까지 퍼져 고려 말까지 사용되었다. 목판에 비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면서도 신속한 인쇄가 가능했다. 현재까지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는 개성에서만 소량 발견되었다.


이소희(경기문화재연구원 학예연구사)




2020 중부일보 연재 시리즈〈새롭게 만나는 경기도박물관〉이 궁금하다면? [바로가기]

 

세부정보

  •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박물관〉

    기획 및 발간/ 경기도박물관, 중부일보

    원문 제공/ 중부일보(http://www.joongboo.com/)

글쓴이
경기도박물관
자기소개
경기도박물관은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밝히고 계승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