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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스페셜호 |문화예술교육의 유토피아를 위하여, 우리의 정치지형은 바뀌어야 한다.

온라인 고민공유 집담회 - 고민빨래방



유토피아는 미래의 이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 섬광처럼 번쩍이는 기억 속에 있는 것이다.

- 발터 벤야민



고민빨래방. 나는 왜 마이크를 쥐고 카메라 앞에 앉아 있게 되었을까. ‘'앞에서 말하는 사람', 그런데 누구 앞인가.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은 눈앞이 아니라 저 멀리 혹은 저 높은 곳에 있다.


아래가 아니라 위에 있다. 물론, 청취자는 예술 강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발화자는 그들만을 향해있지 않다. 스피커가 된다는 것은 권력 앞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아침마당 방송처럼 온화하게 꾸며진 세트장에는 쿠션과 가짜식물이 나에게 연극을 할 수 있겠냐고 묻는 듯 싶었다. 다행히도 동석한 패널들의 입담과 재치 그리고 경험의 노하우에 은근슬쩍 묻어갈 수 있었지만, 돌이켜 보건데 너무 얌전했다.


코로나 때문에 고민빨래방이라는 문제제기 공간이 열렸으나, 곧 나아질 거라는 안일함이 케케묵은 것들에 대해서 후벼 파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템포 늦었지만 이제라도 막 던져본다.


[코로나 세상의 교육]


마지막 5회차에 재단 대표가 무대에 등장했다. 커다란 스피커가 출현한 것이다. 그는 무슨 말을 했었나. 가물가물한 기억의 편린 하나는 실패를 두려워말고 과감히 실행해 보란 멘트가 떠오른다.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하듯이 위험요소를 가지쳐준 듯싶었다. 끄덕끄덕 할 수밖에 없는 대사다. 성과주의에 매몰돼 추구하는 바를 놓치지 말라는 의미다.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데로 저질러 보라고 권한다. 실제로 학교 밖 예술교육은 자유로움을 실행할 수 있는 가장 실험적인 장소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기만적인 구석이 있다.


왜냐하면,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의지와 능력의 문제로 치환시키기 때문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교묘함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구조적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는 화술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하는 사람’은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보다는 높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향해 마이크를 들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대표의 위에는 누가 있는가. 아르떼와 기재부가 있다.


그래서 질문은 되돌려져야 한다. 지금의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도의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정체성과 다양성을 위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하고 있는 정책이 있는가.


아르떼의 지침으로부터 얼마나 저항하고 있는가. 할 수 있는 부분만 하고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관료적 성향을 혁신할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가.  모양 빠지지 않게 개혁하는 시늉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물음에 문제개선의 태도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문화예술교육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내 멜랑콜리 해지거나 냉소주의자로 돌아서게 된다. 그리곤 썩소를 날리며 좌절과 우울증의 무대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새로움을 찾으려는 의지를 잃어갈 것이다.


죽은 물고기만 강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말처럼 이미 문화좀비의 세상은 만연해 있다.




[실패를 부추기는 구름빵]



논의를 한 두 걸음 더 나아가보자. 나는 지자체 문화재단 대표뿐만 아니라 진흥원장을 직선제로 뽑는 세상을 꿈꾼다. 경쟁 후보간 공약을 내세우고 당선자의 행보에 따라 연임의 권한이 주어지는 선거제가 문화예술교육계에도 필요하다고 본다.


현실가능성의 척도에서만 타진하는 습성은 탄탄하지만 느리다. 지금은 한가한 때가 아니다. 예술의 힘은 도약력에 있다. 우리의 상상력은 너무 작고 볼품없어졌다. 결코, 코로나 때문에 위축된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유토피아를 그려보고 실험한 일이 없다.


지특과 꿈다락은 교육현장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기에 작은 단위의 새로운 교육모델을 실험하기 좋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활동의 제한을 받고 있다. 기획력의 부족인가 제도의 울타리가 좁은가. 문화예술교육은 보편복지 차원의 서비스 정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인드]


올해 비정규직 신입사원들이 대거 합류했다. 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내년엔 누가 가고 또 누가 올까.


뭔가를 습득하기엔 매우 짧은 시간이다. 과연 10개월이라는 시한부 일터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은 초원의 유목민이 아니라 정처 없이 떠도는 난민과 닮아있다.


존재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뒤 버림받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두꺼운 빙판 위에서 칼날신발 없이 미끄러지는 존재, 불안정성의 토대 위에서 이들이 지원하는 행정서비스가 얼마나 안전하고 또 이타적일 수 있겠는가.

이들의 처우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민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경기문화재단은 정규직 채용시험부터 없애야 한다. 우리의 세계에서 암기과목 기억력 테스팅으로 선별된 인자들이 얼마나 유용할까. 지금은 지식정보 소유자가 아니라 사유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답 없는 문제에 대처하는 태도가 중요한 시대다. 그럼에도 근대적 방식의 인적구성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직이 미래를 준비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가. 현실안주주의자들 뿐인가. 술자리 뒷담화의 불평불만으로만 떠돌고 있는 이 문제를 개선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밀실이 아닌 공론의 장에서 토론해보긴 했는가.


예전에 사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출근하던 용감한 비정규직 여성이 있었다. 일의 명분을 스스로 부여하고,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을 믿으며, 자신의 가치판단에 충실한 사명감을 갖고 오랫동안 일했다. 그러나 퇴사했다. 비정규직이란 소모품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물화시켜 소비재로 전락시킨 제도가 바로 비정규직이다. 단순 저임금 노동력의 문제가 아니다. 마모되면 새로운 대체 인력으로 충원하면 그만이라고 업신여기는 사고의 문제다. 사람이 자원으로 둔갑한, 인권 존중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제도를 모든 기관이 수용하고 지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문화와 예술과 교육을 논한다. 위선적이지 않은가.


아무튼, 잔다르크 같던 그녀가 근래 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언이랍시고, 이제 소신발언을 멈추고 버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욱 하지 말고 참으라고. 현실적 방안이 타협안일까 굴종의 미덕일까.


이런! 나는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뇌가 늙어버렸다는 것을. 감이 떨어졌다는 것을.


그때 그 시절의 건강한 정신성을 주변에 퍼뜨리라고 말했어야 했다. 다시 강한 자아로 거듭나라고 응원했어야 했다. 그리고 경고도 해줬어야 했다. 시나브로 철밥통으로 변신할지 모르니 자기 안에 심어져 자라고 있는 바오밥나무 뿌리를 캐내야 한다고. 매일매일.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예술강사는 어디에 있는가. 변두리, 앞 다투어 모이지 않는 곳,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곳, 사회적 존경을 받을 수 없는 곳, 장래성이 없는 곳, 임금이 적은 곳,


그러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사용법은 어떤가. 처우 개선에 관한 담론이 있기는 한가. 꿈다락과 지특을 수행하는 예술강사는 교육시간만 인정받아 시급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아왔다. 그나마 한두 해 전에 생긴 기획비가 눈곱만큼 추가됐을 뿐이다. 대학 강사법 개정처럼 학교 밖 예술 강사를 위한 개선책도 필요하다. 예술교육의 하향평준화는 강사의 능력이 아니라 제도의 불협화음이 만든 결과다.


편의점 알바처럼 제도화했기 때문에 질적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예술교육은 대우받는 만큼만 일하는 다른 무엇이 되었다. 뜻을 높이 세우지 않아 평범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 대학을 취업학원으로 바꿔놨기 때문에 우리들까지도 후져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 우리의 민감한 문제는 행정가와 강사가 부딪히는 영역, 양쪽 모두의 스트레스와 업무지연 및 이해충돌이 일어나는 곳, 바로 e나라 정산이다.


이 시스템을 가동시키면서 발생한 노동착취를 어느 순간 모두가 감내하고 있다. “우리를 멈춰 세우는 거대한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 그래서 고개는 뻣뻣해지고, 어깨는 딱딱해지고, 등은 굽어가고 있다. 왜 연말연초는 축제기간이 아니라 고난의 계절이 되었는가.


정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서 제로섬게임처럼 통장 숫자를 ‘0’으로 맞추는데 여념이 없게 되었는가. 예술강사는 세금 탈루 혐의를 벗기 위해 끊임없이 증빙해야 되고, 행정인력은 비교-검토-확인 하느라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못한다. 일의 보람과 삶의 자존감을 빼앗는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이제라도 학교 밖 예술교육자는 프로젝트 용역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육활동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고급인력들이 저급한 업무에 매진하도록 설계한 사람은 누구인가. 행정은 복잡한 절차를 따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노동을 줄이는 단순함으로 발전해야 한다. 의미 없는 업무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야 창의적 환경이 만들어진다.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아이디어를 갉아먹고 있다.





[비극의 기원, 정산]


인간에 의한 인간의 사회적 혁명이 안 되니까 재난혁명이 온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코로나는 비대면을 강제하고 있다.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의 정화기능이 코로나로 이뤄지고 있다. 이동제한으로 세상의 소음이 줄어들고 하늘이 맑아지고 있다.


이상기후 변화로 인한 재해는 앞으로 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우리를 주저 앉힐지도 모른다. 폐허에서 다시 일어선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지 근본적인 변화를 꿈꿔야 한다. 기득권의 특권 의식과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면, 흩어져 있어서 연대가 쉽지 않더라도 기본권이라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말해야 한다. 침묵은 암묵적인 동의니까. 더불어 새롭게 저항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히피처럼, 촛불처럼, 우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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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진 '지지봄봄'/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 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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