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스페셜호 | 낯선 경험의 레퍼런스가 필요해

온라인 고민공유 집담회 - 고민빨래방

모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코로나 19, 그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피로감도 쌓이지만 삶의 방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듯합니다. 마스크는 얼굴의 일부가 되어가고 거리를 지나갈 때, 버스와 지하철을 타서 자리를 잡을 때면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살펴 떨어져 서거나 앉는 것도 익숙해져 갑니다.


연초, 코로나 19가 막 확산될 때 느꼈던 두려움과 낭패감 같은 감정을 한동안 매일 경신하는 기분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코로나를 대하는 생활이 안정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일도 그래요. 많은 일들이 멈추고, 미뤄지고, 조금 진전되다가 다시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회의, 강의, 멘토링, 심사도 줌과 같은 플랫폼을 활용하여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 이동의 시간이 줄어 효율적인 것 같지만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풍성해지는, 문화적 경험으로서의 것들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듯합니다. 이전과 다른 상황에서 오는 낯설음 탓인지, 아니면 정말 만남과 관계를 통해서 얻어지는, 문화적 관계로서의 완성도의 미진함 탓인지 확언할 수 없어 여전히 유보적이지만, 온라인만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알아가며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루틴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 불확정적이고, 예측하기에 너무 많은 변수, 즉흥의 변수가 많아 결국 예측할 수 없는 지금의 사태는 개인과 사회 모두를 멈추게 한 듯합니다.


예술가의 작업, 활동은 꼭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이뤄지지 않지만, 예술을 통해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문화예술교육은 필연적으로 멈춤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6월에서 7월 초까지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주관으로 열린 화상 컨설팅, 고민빨래방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언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에 관한 고민을 갖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이는 그저 한 시공간에 모이는 것을 멈추었을 뿐이기도 합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고 만나는 아이들의 실체가 관계로서 존재한다면, ‘우리 팀’의 ‘기획’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은 당연히 유연한 접근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기획을 통해 도모한 일이 나의 마음과 오랜 생각, 많은 자료를 찾고 공부하며 만들어낸 나의 열망을 반영한, 일종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변화하는 주변의 상황에 따라 플랜 B, 플랜 C가 불가능한지 이리저리 재보며 방법을 찾아가겠지요. 만나려고 했던 아이들이나 그들의 보호자와 함께 상황을 지켜보며 이후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다릅니다. 고민빨래방에서도 많은 단체들이 재단에, 교육지원센터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애들을 몇 명 모집해야 하나, 언제부터 해야 하나, 프로그램을 바꿔야 하나, 비접촉 체온계를 살 수 있나, 정확한 지침을 내려달라 등. 지원기관에 의견을 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지원기관과의 소통을 통해 함께 방안을 만들어가기 위한 물음과는 많이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기획자로서의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주체성을 상실한 질문이 아니었는지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럴까 생각이 이어집니다.


이는 지원금과 지원체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현장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지원체계가 매우 위계적이지만 권위는 없는, 지침처럼 행정에 의해서만 지시하고 따르는 사무적 소통채널로서만 작동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현장의 예술가, 기획자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생각과 판단, 언어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지원체계가 원하는 것에 자신을 맞추게 됩니다. 멈추고 생각해야 할 순간에 멈추지 못하는 셈입니다. “이 김에 하고 싶었던 것 해보세요.”라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고 “아! 정말이요? 그래도 되나요?”라며 그 말을 이해했지만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는 난처함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근본적인 의미,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스스로, 서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고민빨래방을 통해 다시 확인된 이슈입니다. 멈추어 생각할 때, 힘들지만 붙잡아야 할 것과 수정되어야 할 것, 변용될 수 있는 것들을 서로 부딪치고 타협하면서 방안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 기준을 무엇에 둘 것인지, 무엇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세계관이 내 기획에 담겨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전문가는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꽤 오래 현장을 보면서, 외부자라는 태생적 한계가 그저 제스처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느슨한 관찰자가 되려고 애써왔는데 온라인을 통해 현장에 접속하니 어느 때보다 위계가 강력하게 작동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단체별, 개별적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 서로 화면 넘어 다른 곳에 있다는 것만 확인시켜 줄 뿐 대화에 몰입하기 어려운 점도 그렇습니다. 유튜브 방송을 본 지인들이 소수 남성 전문가들이 발언을 주도하는 태도들을 지적했을 때는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는 ‘화면 안 자리’들이 만들어질 때 더 섬세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의 불편함과 주변의 피드백은 다음에 무엇을 더 신경 써야 하는지 경험의 레퍼런스로 쌓였습니다.


전문가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문제’라는 단어일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문제’라는 표현에는 궁금함(호기심), 질문(제기), 위기(인식)와 같은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코로나는 인류와 평생 함께할 것이라고 합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2020년 상반기 내내 겪었던 일들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 예상됩니다. 이것이 위기라면 무엇에 대한 위기일까요. 제출된 기획서의 상단에 세련되게 기술된 아이들의 창의성이 아닌 우리 각자의 생계와 생존의 위기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현장에서 “이걸 왜 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정말 하고 싶으신 걸 하는 게 맞나요?”와 같은 질문을 자주 건네곤 합니다.


바로 나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고민하고 궁리하는 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은 그런 노력을 하는 나라는 존재를 통해 세상과 삶의 모습을 만나고 닮으려고 합니다. 그게 배움이지 않았던가요? 이것이 각자가 추구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적 사유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불확실한 시대의 삶은 용기와 배움을 자양분으로 나아갑니다. 문화예술인들의 삶이 불확실했던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죠. 그래서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나다운 질문을 할 절호의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예술가는 무엇으로 사나. 






세부정보

  • 웹진 '지지봄봄'/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 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글쓴이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자기소개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문화예술교육으로 함께 고민하고, 상상하며 성장하는 ‘사람과 지역, 예술과 생활을 잇는’ 플랫폼으로 여러분의 삶과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