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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29호 | 고삐 푸는 야생성, 고삐를 쥔 존재 -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의 야생성(inner wildness) 다시 읽기

지지봄봄 10주년,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2014년 7월, 《지지봄봄》 담당자로서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를 만났다. ‘2014년의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의 이야기가 ‘2020년의 나’의 삶에는 어떠한 의미로 발화했을까.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의 강연 이야기와 나의 두달예술학교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야생성(inner wildness)’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의 초청 포럼 현장 ⓒ 지지봄봄 11호



#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사회


내게 ‘2014년’이란, 저릿한 슬픔이 덩어리처럼 둘러 쌓여있는 단어이다. 그 한가운데 ‘세월호 참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해에 이 슬픔의 문을 두드리듯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사회, 아이들의 야생성을 어떻게 되살려줄까>라는 주제를 다룬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의 강연이 열렸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이하 크리스)는 미국 알바니 프리스쿨 교사이자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살아있는 학교는 어떻게 만들까』, 『길들여지는 아이들』 등의 저자이다.


크리스는 강연에 앞서 “세월호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이 참사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이 있음을 못 박고 강연을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청중에게 어떤 질문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청중은 ’어떻게 아이들의 오감을 기를 수 있을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고 싶은 게 없는 청소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관해 알고 싶다고 했다. 크리스는 청중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강연을 시작했다.


크리스는 가장 먼저,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이 전부 처음이어서 모든 감각이 폭발적으로 살아 있으며, 이 감각을 동원해서 세상을 익힌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이 굳이 아이들의 감각을 깨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핵심적인 질문은 ‘왜 아이들의 깨어있던 감각이 잠들어 버리는가’라고 짚었다. 크리스는 모든 사람이 내면의 혼이자 불씨를 지니고 태어나며, 이를 ‘내면의 야생성’으로 부른다고 했다. 이 야생성은 굉장히 생명력이 강하고 끈질기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취약해서 야생성을 굶기면 이내 잠들어 버린다고 덧붙였다. 이 야생성의 먹이는 ‘풍부한 경험’인데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한국과 미국 등 세계 어디서나 ‘길들여진 아이들’을 ‘수동적인 아이들’로 대량생산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크리스는 아이들이 놀면서 어떻게 위험을 감지해야 하는지 스스로 배우고 도전하는 ‘진짜 경험’을 해야 하고, 부모는 아이들이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며 도전하고 시험하는 정신을 발휘하지 못하면 야생성은 잠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가정이 아이에게 많은 통제를 가하는 원인은 ‘부모의 두려움’에 있으며, 이 사회가 두려움의 메시지를 폭탄처럼 쏟아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를 규명하려고 만든 꼬리표이며,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수동적으로 변했다면 이는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의 문제라고 짚었다. 청소년들의 수동적인 태도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앓기 시작한 증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청중의 이야기를 듣는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 지지봄봄 11호



# 아이들의 야생성을 어떻게 되살려줄까


사회가 출생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는 인생길을 순탄하게 닦아놓았다고 가정한다면, 오늘날 이토록 많은 청소년이 자동조종에 이끌려 공항을 맴도는 비행기의 승객처럼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공항 상공을 맴돌다 마침내 연료가 바닥나는 지경에 이르도록 빙빙 도는 삶에서 벗어날 방법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길들여지는 아이들』, p. 265)


오늘날 길들여지는 아이들이 ‘자동조종에 이끌려 빙빙 도는 삶’을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크리스는 아이들이 신체적, 정서적으로 자유를 누려야 하며 아이 스스로 배움을 이끌고 갈등을 풀어나갈 힘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나누어 주었다. 크리스는 야생성을 지닌 아이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놀이’이며, 그냥 놀이가 아니라 ‘참된 놀이’라고 했다. ‘참된 놀이’란 아이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주도하는 놀이, 아이가 자발적이고 자생적으로 만드는 놀이, 그냥 재밌고 신나서 하는 놀이, 대자연을 동원하여 노는 놀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는 오늘날 아이들에게 참된 놀이의 경험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크리스는 배움과 놀이의 과정 자체가 스스로 조직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에게 배우려는 본능은 매우 강력하지만 이러한 본능을 잃은 아이들이 존재한다. 크리스가 운영하는 미국 알바니 프리스쿨에서는 이러한 아이의 본능을 되살리기 위해 ‘참된 놀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최대한 자연을 접하게 하고,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놀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책 『길들여지는 아이들』을 통해, 알바니 프리스쿨에는 아이들이 마음껏 조합하여 만드는 다양한 장난감 재료들, 상상력을 담은 놀이와 규칙을 만드는 자유, 몰입할 수 있는 시간, 놀다가 다치면서 얻는 경험의 의미를 견지하는 학교의 철학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이들이 시와 소설을 쓸 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능력을 활용해서 쓴다는 것과 학교가 주제와 소재를 절대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창의력’이란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점이 흥미로웠다.


크리스는 야생성이란 스스로 되고자 하는 존재, 자기 자신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에너지와 힘이라고 했다. 나는 ‘야생성’에 대해 생각할수록, 이 힘은 아동기와 청소년기만이 아니라 성인기에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나 또한 여느 아이들처럼 야생성이 잠든 아동기를 겪고 ‘어쩌다 어른’이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자동조종에 이끌려 빙빙 도는 삶 대신 ‘나의 나됨’을 찾아 내 길 위에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야생성을 어떻게 되살려줄까.


두달예술학교 시간표 ⓒ 장혜윤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두달예술학교’의 놀이


나를 무심히 소개한다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유심히 소개한다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늘 막연하게 ‘예술학교에 가서 예술가 선생님과 동료를 만나 예술을 배우고 싶어’했다. 그러다가 나는 ‘두달예술학교’의 유일한 졸업생이 되었다.


2019년, 두달예술학교에는 단 한 명의 학생과 교장이 있었다. 모두 나였다. 그렇다. 두달예술학교는 내가 다니고 싶어서 만든 ‘팝업예술학교’이다. 처음부터 학교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내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두 달(안식월) 동안 ‘예술학교’ 근처라도 경험하고 싶어서 국내외의 예술대학과 시민학교, 단체 등의 프로그램과 워크숍을 찾아봤다. 그런데, 딱히 타이밍이 맞거나 끌리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예술학교를 만들어 보자’고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하나의 농담 같지만, 매우 진지한 ‘나만의 놀이’를 시작했다. 두달예술학교는 내게 주어진 ‘두 달’이란 시간과 배우고 싶은 ‘예술’, 가고 싶은 ‘학교’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었다. 이 학교를 짓는 재료는 내 주변에 있는 것이었다. 내 욕구와 관심사, 정해진 기간과 티끌로 모아둔 예산, 관련 책들, 친구들의 정보와 도움 등이었다.

이 재료에 내 상상력을 조합하여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먼저, 학교의 큰 규칙(새로운 곳 여행하기, 다양한 작품 보기, 마음껏 그리기, 내 마음 알아차리기, 할 수 있는 만큼 하기 등)을 정했다. 2학기(여행학기, 일상학기)를 구성하고 과목도 만들었다. 내가 여행하는 도시 이름과 좋아하는 단어로 과목명(마드리드, 리옹, 런던, 두터운 순간 등)을 지었고, 과목이 끝날 때마다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 과제를 만들었고 과제를 했다.


특별한 선생님도 모셨다. ‘마드리드’ 과목의 선생님은 예술계에서 유명한 ‘프라도미술관’이었다. 바르셀로나의 ‘후안미로미술관’, 바젤의 ‘팅겔리미술관’, 런던의 ‘테이트모던’ 선생님 등을 찾아가서 다양한 예술가와 작품을 만났다. 또한, 프랑스 리옹과 독일 슈타르탈의 자연 속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 몇 권의 책 등이 모두 많은 영감과 질문을 주었지만, 결코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었다.


여행에서는 새로운 도시를 경험하며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나고, 일상에서는 내 삶의 리듬을 고민하며 할 수 있는 만큼 실험하며 지냈다. 그림을 그리던 어느 순간에는 내가 그림과 ‘씨름 한판’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내 생에 처음 느낀 감정이라 무척 신기하고 재밌었다. 이렇게 두 달의 모든 과정을 마친 후, 친구가 직접 만들어준 학사모를 쓰고 ‘세상에 단 한번 뿐인 졸업식’까지 마쳤다.


나는 두달예술학교를 통해서 크리스가 말하는 ‘자유 속에서 꽃피는 놀이(p150)’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걸 살펴보고 기획하고 실험하는 시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성과에 대한 증명 없이, 타인의 평가와 인정과는 상관없이, 오롯이 나의 경험으로 즐기고 배울 수 있는 ‘놀이’의 힘은 무척 강했다. 나는 두달예술학교란 놀이를 통해, 예술에 관한 정답 대신 나의 대답만큼은 선명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내 몫의 예술을 하면 돼!!!’



살아가는 감각, 생활-력 기르기 ⓒ 장혜윤



# 지금 여기, 야생성 다시 읽기


2014년으로부터 6년이 지났다.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이 반드시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먼저 강조하고, 몇 가지 질문을 나누고 싶다.

6년이 지난 지금,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던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 사회의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길들여지지 않고 자유로워졌을까. 두려움으로 길들여진 아이들을 만드는, 두려움으로 길들여진 어른들은 어떠한가. 우리는 이전보다 더 자유로워졌을까.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어서 자라거라. 그렇지만 사실 네 안의 야생성은 자랄 필요가 없단다.' 라는 모순된 주문(p24)’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에게, 어른에게,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향해서 말이다. 나는 크리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며 작은 용기를 얻는다. 비록 나는 ‘어쩌다 어른’이 되었으나, 야생성이 충분히 자랄 수 있는 아동기를 보내지 못했더라도, 우리의 내면에 살아있는 작은 불씨, 내면의 혼, 잠들어있는 ‘야생성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크리스의 말과 문장 어디에도 야생성이 죽었다거나 사라졌다는 표현이 없다는 게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주듯, 내면의 야생성을 깨우고 되살리는 기회와 경험을 마련하고 만끽하고 싶다. 온 감각으로 느끼고 배우며 살아가고 싶다. 또한, 내 주변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자신의 야생성을 깨우고 되살리는 크고 작은 모험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종종, 같이 놀 수 있는 벗으로 만나길!


나는 아동기로부터 성인기까지 한 사람의 내면에서 환한 빛을 내뿜으며 일렁이는 야생성(inner wildness)을 상상한다. 그리고 내 안에 두려움의 고삐를 푸는 야생성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직 나만이, 내 삶의 방향과 속력을 조절하는 나의 고삐를 쥘 수 있길 바란다.


To. 말썽꾸러기 동료여! 앞으로도 재밌게 사시오! - 크리스 ⓒ 장혜윤





-참고-



▶1. <2014 지지봄봄 코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초청강연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사회, 아이들이 야생성을 어떻게 되살려줄까?”> 다시보기 (클릭)◀




2. 두달예술학교는 처음이라 (http://www.wasuwon.net/138520)


3. <책> 길들여지는 아이들 /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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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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