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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4) 백자청화 ‘성화3년명’ 황수신묘지

경기도박물관 기증유물 이야기

〈경기도박물관 기증유물 이야기〉시리즈는 경기도박물관과 경기신문(강경묵 기자)이 기증 유물의 가치와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특별 기획한 연재 시리즈입니다. 경기도박물관 전시실의 기증 유물을 중심으로, 유물의 기증절차와 보존처리과정, 문화재 등록, 전시 과정 등 경기도박물관 학예사가 여러분에게 기증 유물의 모든 것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드립니다.


시리즈 원문은 경기신문(kgnews.co.kr)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지지씨에서도〈경기도박물관 기증유물 이야기〉시리즈를 총 10회에 걸쳐 만나볼 수 있습니다.


2019년 8월 조선의 명재상 황희(黃喜, 1363-1452)의 셋째 아들인 황수신(黃守身, 1407-1467)의 묘에서 수습된 백자청화 ‘성화3년명’ 황수신묘지(白磁靑畵 '成化3年'銘 黃守身 墓誌)’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58호로 지정됐다.


▲ 2012년 9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황수신묘역 정리 중 묘지를 수습하는 모습이다. 상석 밑에 보이는 장방형의 큰 판석을 걷어내니 두 장씩 포개져 있는 묘지가 있었고, 그 사이에는 고운 마사토가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사진=장수황씨 열성공파 종회 제공) 


지난 2012년 박물관에 기증된 이후 7년 만의 큰 경사였다. 제일 먼저 장수황씨 열성공파 문중의 황준하총무님께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 오랫동안 기다리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무님, 문중에서 기증해주신 황수신 할아버님의 묘지가 드디어 경기도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나의 달뜬 목소리에 '좋은 소식을 전해주어 고맙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화답해주시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도 기쁨이 가득했다. 기증 담당자로서 덩달아 기분 좋고, 보람된 순간이었다.


열성공 황수신묘지(烈成公 黃守身墓誌), 박물관에 오다


황수신묘지는 2012년 9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황수신의 묘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습됐고, 장수황씨 열성공파종회가 그해 11월 우리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렇게 황수신묘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우선 그 크기와 무게에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묘지는 죽은 사람의 본관과 성명, 조상의 계보, 생년월일, 그리고 관직과 평생의 행적 등을 적어 무덤 속이나 주변 땅 속에 묻은 것으로 훗날에도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있도록 묘를 조성할 때 함께 넣는다.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58호 백자청화 ‘성화3년명’ 황수신묘지(白磁靑畵 '成化3年'銘 黃守身墓誌). 모두 4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 장마다 제일 오른편에 순서가 매겨져 있다. 셋째 장 중간부분에서 글이 끝나고, 마지막 장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황수신묘지는 모두 4장이며 가로 28.6cm, 세로 38.9cm로 대략 A3 용지에 해당하는 큰 직사각 형태의 판형이다. 도자기 묘지가 많이 만들어지는 조선 후기의 백자 묘지보다 약 두 배 정도 크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각 장마다 제일 오른편에 순서가 매겨져 있는데, 셋째 장 중간 부분에서 글이 끝나고 마지막 장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우선 파악이 가능한 묘지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마지막 부분에 적힌 ‘성화3년 8월’로 제작 시기를 가늠해 볼 때, 1467년 5월에 돌아가셨으니 그 후 3개월 뒤 묘지가 제작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시대 청화백자묘지 가운데 두 번째로 이른 시기의 묘지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 제3장 묘지 일부. 환원분위기로 번조되어 전체적으로 옅은 회백색을 띠며, 청화안료의 색이 보다 푸르다.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박물관에서는 보존처리를 진행하는 한편 한문 번역 작업으로 구체적인 내용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조선 초 도자기로 만들어진 기존의 묘지 자료를 조사하고 어느 곳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도자사적으로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황수신 묘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효성 지극한 아들, 백관의 표상이 되다
어느 집안이 덕 있는 집안인가 孰爲德門
오직 남원이라네 惟南原兮
대대로 그 선행을 쌓아 世積其慶
널리 알려졌네 有顯聞兮 훌륭하다,
우리 공이여 赫矣我公
남은 향기 붙잡았네 把餘芬兮
젊어서부터 큰 충절이 있었고 少有大忠
학문을 닦았네 旣學文兮  

묘지문의 일부로 묘지명의 주인공인 황수신의 성품을 잘 표현하고 있다. 대대로 훌륭한 선조들이 있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가문으로, 선조들이 남긴 명성과 업적을 이었으며, 타고난 성품이 충성스럽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는 내용이다.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장수황씨 열성공 황수신 묘역은 아버지 방촌 황희 묘역의 맞은편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2015년 파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2호로 지정됐다.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영의정에 오른 황수신의 묘지(墓誌)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관직 생활에서의 주요 업적 등 그의 품성과 행적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적혀 있다.

대여섯 살 때 여러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한 아이가 우물에 빠지자 모두 놀라 달아났지만 혼자 침착하게 친구를 구해 그 부모가 감사를 표하자, 그런 아들을 보고 “우리 집안에 재상이 또 있었구나”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남원으로 유배됐을 때 곁에서 음식을 직접 구해 봉양하는 등 효성을 다했다는 대목에서는 그의 지극한 효심을 엿볼 수 있다.

열 살 무렵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왕후이자 세조의 할머니인 신덕왕후 강 씨를 모신 흥천사(興天寺)에서 수양대군을 만났는데, 당시 시 암송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소위 눈도장을 찍어 훗날 크게 등용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또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 수양대군이 여러 차례에 걸쳐 상가(喪家)를 직접 조문했다는 내용도 보인다. 이외에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례와 제도를 정비하는 등 조선 전기 제천의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내용이 적혀 있어 주목된다.  


▲ 제일 첫 장의 뒷면.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묘지의 글은 당시 뛰어난 문장가로 잘 알려진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썼다. 그는 황수신과 친밀한 관계였던 강석덕(姜碩德, 1395∼1459)의 아들이자 황수신의 아들인 황신의 처남이다. 강희맹은 황신의 부탁을 받아 묘지명을 쓰게 됐음을 밝히고 있다.

푸른 빛 청화백자로 묘지를 빚다

경기도 광주 분원에 왕실용 도자기를 굽는 전용 가마인 관요가 설치된 시기는 1467~68년 즈음으로, 묘지의 제작 시기가 관요 성립 시기와 맞물려 있어 도자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 전기 하얀 백자 태토 위에 푸른 안료를 사용해 붓으로 그림이나 글씨를 쓴 청화백자는 매우 귀한 자기였다. 산화코발트가 주성분인 청화안료는 멀리 페르시아 지방에서 생산돼 회회청(回回靑)으로 불렸는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수입품으로 매우 값비싼 재료였다.

따라서 청화백자는 특별한 용도로 드물게 제작됐고, 당시의 묘지는 분청사기나 음각으로 글씨를 새긴 백자 묘지가 대부분이다.  


▲ 제1장 묘지 일부. 산화분위기에서 번조되어 전체적으로 갈색조를 띤다. 글씨가 진한 부분은 청화안료에 철 등의 불순물이 섞인 탓에 짙은 갈색으로 보인다.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묘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장마다 색상이 조금씩 다르고, 일부분 휘어져 있으며 표면이 부풀어 오른 곳도 눈에 띤다. 이는 원 재료의 차이보다는 가마 안에서의 분위기와 번조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 풀이된다.

또 언뜻 보면 철화안료인가 싶을 만큼 진한 갈색의 글자가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페르시아산 청화안료의 특징이기도 하고, 당시 청화안료가 워낙 구하기 어려운 탓에 철 등의 불순물이 섞여 있어도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글씨가 번진 것처럼 또렷하지 않은 것은 유약이 유리화될 때 청화안료가 확산된 것으로, 유약이 없는 부분에서는 태토 위에 또렷하게 쓰여진 원래의 글씨 상태가 확인된다.

따라서 귀한 청화로 쓰여진 황수신묘지는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관요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백자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단계의 일면을 보여준다. 영의정을 지낸 황수신이었기에, 그리고 효와 예를 다하고자 하는 자손들의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 이영은 경기도박물관 책임학예사. (사진=황준선 기자)  

지금까지 우리 박물관에 기증된 청화백자묘지는 모두 32건 360여 점에 달하는데, 그 시작은 박물관이 건립되기 전 향토사료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주이씨 국당공파 정익공 종중과 동래정씨 흥곡공파 종중 등을 비롯해 모두 19개 종중에서 선뜻 기증해 줬다. 특히 남양주, 안성, 포천 등 경기도 전역에 걸쳐 있으며,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조선의 전 시기를 아우른다.

이 유물들은 조선시대 사대부 문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박물관에서는 전시와 교육, 연구자료로 귀중하게 활용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박물관에 와서 하얀 바탕에 푸른빛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삶의 기록과 그 안에 담긴 효와 예의 정신을 마주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이영은 경기도박물관 책임학예사)

[ 정리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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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박물관 기증유물 이야기(4)] 백자청화 ‘성화3년명’ 황수신묘지

    / 이영은 경기도박물관 책임학예사

    정리/ 경기신문=강경묵 기자

    등록/ 2020.12.07

    출처/ 경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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