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29호 |열린 마음으로 세상읽기

삶과 공간의 변화 - 앞당겨진 초연결 사회 속으로의 ㅋㄹㄴ ㅅㅍㅇㅅ의 모험

문미희(나누미촉각연구소 소장)



“이 책을 봐도 될까요?”

나누미촉각연구소 한쪽에 자리한 나무 선반 위에는 촉각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촉각도서를 직접 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해 정보를 얻어 가는데, 선뜻 책을 꺼내지 못하고 던지는 질문에 “네 만져보셔도 돼요.”라고 답을 한다. 촉각도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제작된, 손끝으로 만져서 보는 그림책으로 2010년부터 지금까지 나와 동행하고 있다.




[보다] 기본의미로 ‘눈으로 인식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시각을 잃은 사람들은 볼 수가 없다. 즉, 눈으로 인식할 수가 없다. 우리의 뇌 중 후두엽은 눈을 통해 전달되는 시각 정보 처리 담당을 하고 있는데, 과거에 인지했던 것을 기억할 때면 이 시각영역의 뉴런이 활동해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볼 수 없어 뇌로 전달되는 정보가 없다고 하여 그 기능을 상실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각영역의 뉴런들이 주변의 코, 입, 귀, 피부에서 전달되는 감각에 반응하게 되어 새롭게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뇌의 가소성이라 하는데, 인간의 뇌는 고정되지 않고 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감각 중 하나가 상실되면 다른 감각이 발달하는 것은 이와 같은 원리 때문이다.

시각을 잃게 되면 청각이나 촉각 등이 발달하게 되고, 특히 눈을 대신해 사물을 손으로 만져 인지하기 때문에 손끝을 눈이라고 이야기한다. [보다]는 앞서 제시한 기본의미 외에 ‘생각하거나 평가하다, 나타나거나 발생하다, 살피거나 헤아리다’ 등 20여 개의 다양한 사전적 의미가 있다. 이렇듯 꼭 눈으로 인식하지 않더라도 본다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사실 제대로 보지 못한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던 헬렌 켈러도 사람들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는데 뜻밖에도 아주 조금밖에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다른 감각으로 볼 때 세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출근길에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길 위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힘쓰지 않는다. 길 위에 그것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도 않는다. 큰 이슈가 생기지 않는 한 오로지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전진할 뿐이다.


숲속에 있는 헬렌의 집에 친구가 놀러 왔다. 친구와 함께 한 시간 동안 산책한 후 헬렌은 친구에게 무엇을 보았냐고 물었지만, 친구는 별거 없었다고 말한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자신도 단순한 촉감만으로 흥미로운 것을 몇 백 가지나 찾아낼 수 있는데 어찌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까 하며 사람들의 눈은 게으르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철학자 존 버로스(John Burroughs)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으면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라”고 말했고, 현대소설의 창시자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참된 발견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고 말했다. 마르셀처럼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존처럼 보고 또다시 바라보는 것, 헬렌처럼 다른 감각으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내가 촉각도서를 제작하고 연구할 때 끊임없이 되새기는 부분이다.



2010년 다큐멘터리 감독님이 촉각도서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일본에서 촉각도서 관련 촬영이 있었는데, 한 단체에서 만든 도서를 선물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 받아 본 촉각도서는 섬세하고 무척 흥미로웠다. 그러나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시각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손으로 만져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경험하기로 했다. 광주광역시 한 시설을 찾아 봉사하며 다양한 친구를 만났고, 자원 활동가 어머니들과 함께 촉각도서를 만들었다. 촉각도서를 만들면서 시행착오도 겪고 그들과 만남도 길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나의 작업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좀 더 다양한 시각(감각)으로 각 지역 어머니들과 나누미촉각연구소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촉각 관련 연구와 작업이 이루어졌다. 촉각 연구는 촉각도서 뿐만 아니라 교육, 워크숍, 놀이교구, 촉지도, 촉각벽, 촉각색 등 다양한 관점에서 진행되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고민했던 부분은 ‘시각장애인’이란 명칭이었다. 예부터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맹인, 소경, 봉사, 참봉, 장님이라 불렀다.


소경은 고려 때 종4품 벼슬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많은 맹인이 ‘소경’ 벼슬을 받아 주위 사람들이 ‘소경님’하고 불렀던 것이 호칭으로 전칭되었다고 한다.


봉사는 조선 시대 종8품과 종9품의 관직명이다. 조선시대 명과학(천문, 지리)을 담당하는 맹인을 ‘봉사님’이라고 불렀고 경기도, 황해도, 평남에서는 ‘참봉’이라고 부르던 것이 맹인을 부르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변화된 것이다. 조선 중기 이후 맹인들은 맹청이라는 단체를 설립해서 활동했는데, 맹청 내에서 ‘길 장(長)’에 높임말 ‘님’을 써서 장님이라 불렀다 한다. 맹청 내에서는 존칭으로 사용되었으나 이후 놀림말로 사용되면서 맹인과 관계된 호칭들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시각장애인(자)’이란 명칭은 1970년대 초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편견 없이 부를 수 있는 명칭이 무엇이 있을까 논의 끝에 정안인, 시각장애인이 아닌 ‘보이는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이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명칭 또한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단어 하나에도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 상호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누미촉각연구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촉각도서를 제작해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만들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사람의 시각과 보이지 않는 사람의 시각을 서로 나누고 보완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간혹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책이니 색은 필요 없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다. 시각장애자 교육을 위해 노력한 프랑스 특수교육학자 발랑탱 아우이(Valentin Haüy)는 ‘맹교육은 보는 아동의 교육 형태를 따라야 한다.’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시각적인 요소를 생략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나 약간의 형태 그리고 색을 구별할 수 있는 약시인 아이들을 위해, 중도 실명자인 부모가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시각적인 요소는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지적 발달은 보이는 아이들과 동일하다. 아이들의 발달이나 학습은 기본적으로 보고, 모방하는 데에 있는데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시각적 학습을 할 수가 없어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대신 촉각이나 청각을 이용해 정보를 얻지만, 이 또한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시각은 한 번에 인지할 수 있는 반면, 촉각은 부분적으로 인식하거나 만지기 어려운 생물, 직접 만질 수 없는 무기체, 쉽게 훼손되기 쉬운 것, 위험물 등 인지하기 어려운 것이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대신 청각을 이용하여 정보를 얻는 기회가 많아 소리로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사람의 목소리로 첫인상을 기억한다거나 공간의 높낮이, 폭, 거리 등을 소리의 울림 정도로 파악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혼자 길을 나설 때 흰 지팡이와 함께한다.

지팡이를 이용해서 걷는 것을 ‘지팡이 보행’이라고 하는데, 몸 앞에 지팡이를 내밀고 좌우로 점을 콕콕 찍어 호를 그리며 길을 확인한다. 확신이 안 설 때는 지팡이나 발로 바닥을 쓸어보기도 한다.


수많은 연습과 보행으로 공간이 파악되었을 때에는 지팡이를 이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보행하기도 한다. 건물이나 벽은 공간의 기준점이 되어준다. 우리가 눈을 가리고 길을 걸을 때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걷는 것처럼 공간을 탐색하며 만든 것을 심리학 용어로 인지지도(cognitive map)라고 부르는데, 보이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경험에 의해 환경의 대상을 파악하고, 그 의식을 바탕으로 익숙해진 공간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도 기준점을 잡고 그리는 ‘인지지도’ 때문이다.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에는 촉지도식 안내판을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 한다. 하지만 형식적인 안내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찬밥신세가 되어 있다. 실제 지도를 만져서 길을 찾아가기엔 역부족이며 길 또한 비효율적으로 안내되어있는 것이 대다수이다. 하지만 공간을 해석하는 기준점이나 범위 등 인지지도에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이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미 곳곳에 설치된 촉지도식 안내판마저도 없다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공간을 파악하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더군다나 건물 내부에는 존재하지만, 야외에서는 촉지도식 안내판을 찾아보기가 더욱더 힘들다. 바닥에 점자 블록이 없다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것이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입체촉지도는 경기도청 북부청사 앞에 있는 평화광장을 연구해서 제작하였다. 누구는 세계 최초라고 명명하기도 하지만 완전체라고는 할 수 없다.

평화광장은 시각적으로는 훌륭한 디자인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굴곡진 바닥과 기하학적 형태의 좁은 계단, 울퉁불퉁한 잔디밭, 얼기설기 복잡한 형태의 놀이터, 듬성듬성 놓인 나무들.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다니기에는 무척 불편한 곳이었다.


특히 광장에는 기준점으로 삼을만한 건물이나 벽 그리고 디자인적으로 불편을 주는 점자나 유도블록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 설치한 입체촉지도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으로 제작되다 보니 불편함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공장소에 예쁘고 보기 좋게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검증되지 않는 지도, 시각적으로 큰 호기심을 주지 않는 입체촉지도는 불필요하다고 치부한다.


하지만 그 쓰임새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효과를 주지 못한다고 하여 불필요하다 여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 특히 길을 걷다 보면 점자블록이나 유도블록 위에 커다란 화분을 놓아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길을 안내해주는 블록인데도 보편적인 쓰임이 없다 하여 아무렇게나 여겨버리는 것이다.


이번 입체촉지도 작업은 연구시기, 제작과정, 관계자와의 관계 등 지난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 과정들은 헛된 것이 하나도 없다. 포크레인으로 빠르고 편안한 길을 만들어 갈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 많은 것들을 놓치고 만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단풍으로 붉게 물든 산처럼 조금씩 아름답게 변화돼야 한다. 단 한 사람의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만족할지라도 그 개별성이 존중되는 사회, 느리지만 소중함을 담은 따스한 세상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세부정보

  • 지지봄봄/ 웹진 '지지봄봄'/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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