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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29호 │ 로컬-되기

삶과 공간의 변화 - 앞당겨진 초연결 사회 속으로의 ㅋㄹㄴ ㅅㅍㅇㅅ의 모험

조인한(실험영상 필름메이커, AAMP 공동대표)


코로나19가 야기한 삶의 변화 정도와 속도는 크고 빠르고 직접적이다.

지리적 위치나 사회적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 코로나 사태의 영향권 아래 있는데 문화예술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간과 무대가 필요한 많은 전시 및 공연이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전시의 경우 소규모 공간은 제한적으로나마 운영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미술관의 경우 전시 일정의 절반 이상 동안 관객을 받지 못한 경우도 상당했다. 여기에는 어떤 징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누구도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기존에 관객과 만나는 방법과 더불어 작품을 생산하는 방법론까지 그 유용성과 효과를 다시 한번 재고해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물론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상황은 개인의 삶의 방식은 물론이고 동시대 문제시되는 이슈들에 대한 국가 혹은 인류 전체의 대응 방식에도 변화를 초래한다. 2020년이 인류사의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예측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배적인 개념, 담론, 질서, 체계에 대한 비판적 사유와 반성이라는 실천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실천을 시작하는 하나의 가능한 방법으로서 로컬을 제안하고, 관련된 워크숍 및 연대라는 수행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흔히 로컬을 연상할 때 떠오르는 주제어로 몸, 가정, 이웃, 지방, 도시, 국가, 공동체 등이 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연구 혹은 작업 방향이 달라지는 만큼 로컬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범위가 넓다고 할 수 있다.


로컬이 물리적, 사회적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며, 구체적인 공간 혹은 장소성과 연결이 되기도 한다. 또한 로컬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소수성, 주변성, 혼종성에 주목한다면 로컬의 경계는 더욱 확장한다. 로컬의 범위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지리적인 범위만 생각해도 기준에 따라 로컬이라 부를 수 있는 범위가 상대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로컬은 어떤 상황에 놓이는가에 따라 개념적으로 변하는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즉 로컬이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다양한 실천들이 얽혀서 구성된다는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유용하다. 그 얽힘의 과정에서 로컬은 유동적이며 끊임없이 생산-재생산을 반복한다.



구성적 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로컬은 구체적인 활동이나 연구를 통해서 사후에 구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로컬의 구성 요소 및 방법이 중요해지고, 여기에는 관련된 연구자, 활동가, 예술가의 현재가 필연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자기반영성은 결국 현재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이어지면서 비판적 사유의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로컬을 경유해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사유한다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전지구적인 상황에서는 한 개인이 두 발을 딛고 있는 지금-여기의 성찰이 필요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담론들과 교차하면서 로컬 개념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여기까지가 로컬을 거칠게 하나의 가능한 방향으로 개념화하는 과정이었다.



개인이 속해 있는 삶의 자리, 지금-여기에 대한 성찰은 사실 새로운 관점이 아닐 것이나 다급하게 요청되는 태도인 것은 맞다. 필자가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 아티스트 무빙 이미지 플랫폼 (Asia Artist Moving Image Platform, 이하 AAMP)은 이러한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로컬-되기’라는 주제 아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이 워크숍은 일반적인 교육 목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참여 작가들이 앞서 설명한 로컬에 대한 관점을 공유하면서 예술적 실천을 통해 동시대 상황에 대한 나름의 반성과 지배적인 담론들을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참여 작가 각자의 개성과 방법론을 존중하되 자발적이고 열린 태도를 기반으로 하는 느슨한 협업을 강조한다. 협업을 통해서 참여 작가는 기존의 현실 인식 및 창작 방법론을 자연스럽게 갱신할 수 있고 나아가 로컬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생산할 수도 있다. 사실 워크숍을 진행하는 특별한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참여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자신이 속한 공간, 장소, 지역에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며 벌어지는 사건과 현상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리서치 내용을 함께 공유하면서 토론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토론이 현장 탐방이나 간단한 퍼포먼스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리서치 내용을 참여 작가는 충분히 숙지하게 되고 서로가 풍부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각각의 리서치 내용은 혼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물론 워크숍이 언제나 열띤 토론의 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종종 코로나19로 인해 변해버린 환경에 대한 탄식과 개인적으로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소소한 잡담까지 포함하는 이 워크숍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연대’이다.



연대를 하나의 예술적 수행 방식으로 삼고 활동하는 단체나 그룹은 언제나 존재했다. AAMP 역시 그러한 연대를 위한 플랫폼이다. 단체명이 의미하는 것처럼 아시아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무빙 이미지 작품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개인의 이해를 넘어서는 동시대 이슈들, 거대 담론들, 묻힌 역사를 함께 사유하는 것이 그 목적인 것이다. 연대의 방식으로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는 단체 중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영감을 받는 곳은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필름 랩 (Artist-run film lab)이다.


필름 랩은 영화용 아날로그 필름을 이용해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써 각종 장비와 암실을 제공한다. 또한 이러한 작업 방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과 작품을 상영하는 스크리닝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필름 랩은 1960년대 뉴욕과 런던의 필름메이커스 조합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지금의 필름 랩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이다.

당시 비디오의 등장과 함께 아날로그 필름의 영역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상징적인 사건은 1990년 네덜란드 아른헴 예술대학에서 비디오 장비들을 구입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모든 필름 장비들을 처분하기로 한 결정을 학생 세 명이 거부한 사태이다. 슈퍼8미리 필름 작업을 원했던 그들은 영업을 종료하게 된 랩에서 버려진 장비들을 가지고 “스튜디오 이엔 (Studio Een)”을 시작했다. 또한 1992년 독일 하노버에서는 브라운슈바이그의 몇몇 학생들이 “16광구 (Sector 16)”을 만들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가능했던 배경은 비디오 사용의 증가에 따라 상업적으로 운영되던 규모 있는 필름 랩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필름 장비들을 싸게 확보할 기회가 생겼던 데에 있다. 이후 아날로그 필름의 사용을 원하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필름 랩은 자생적으로 생겨났고, 지속적인 미팅을 통해서 작가들은 필름 랩의 운영 철학을 만들어갔다. 또한 기존에 필름 랩을 운영하던 작가들은 다른 곳에서 랩을 만들기 위해 도움을 원할 경우 적극적으로 그 요청에 응답했다.



현재 필름 랩을 지탱하는 중요한 특징은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결속이다. 각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필름 랩들은 자체적으로 운영되면서 동시에 다른 나라의 필름 랩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유지한다. 이와 같은 개방적인 콜렉티브 성격은 60년대 필름메이커스 조합에서부터 지금의 필름 랩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다. 사실 아날로그 필름과 관련된 대부분의 리소스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필름 랩 환경에 있어서 이러한 교류는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이 사용되는 16mm 필름의 상영을 위한 프로젝터의 경우 오래전에 생산이 종료되었고 남아 있는 기기들 역시 지속적인 보수가 필요하다. 또한 보수 및 수리 역시 해당 기기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경험을 지니고 있는 기술자만이 가능하다. (때로는 오래된 필름 장비들을 지금의 전자기기들과 결합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DIY 특성 역시 필름 랩의 전통이다) 자가 필름 현상 역시 필름 종류, 온도, 화학약품 등에 대해 경험으로 축적된 데이터가 필요하다. 네트워크를 통한 교류를 통해서 이와 같은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필름 랩의 생태이자 생존 전략이다. 그리고 지금이 예술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이러한 자발적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다시 AAMP 워크숍 로컬-되기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워크숍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리핀의 존 토레스 작가는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 상황에서의 온라인 물물교환이라는 행위를 통해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로지 핸드폰 문자, 화상 채팅, 우편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교환 행위는 현재 상황에 대한 공적이고 사적인 흔적들과 함께 기록되면서 로컬의 가장 작은 단위라 할 수 있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태국의 타이키 삭피싯 작가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는 태국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치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태국 북동부의 고대 도시에서 의례 형식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심령술사 모람 피파(Mor Lam Phi Fa)의 오래된 역사를 되짚으면서 태국의 정치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규정하고 동시에 그 도시의 장소성을 구축하려 한다. 한국의 안효주 작가는 생성적 적대 신경망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존재하지 않는 장소로서의 로컬을 만든다. 유동적인 로컬의 개념을 적극 경유하여 일종의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오류 같은 것으로 로컬을 규정하는 것이다. 로컬이 구성적이라는 관점을 공유하는 참여 작가들의 시각은 이처럼 다양하게 뻗어 나가고 있고, 앞서 소개한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총 여섯 가지의 프로젝트가 워크숍을 통해 2021년 상반기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필자가 속한 문화예술계는 급속히 온라인으로 활동 영역을 옮겨가고 있다. 많은 행사가 온라인 진행으로 대체되고 온라인 프로젝트를 위한 다양한 긴급 지원금이 편성되었다. 당장 2021년을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지금의 상황이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 변화가 갑작스럽고 예측 불가능하기에 각자가 속한 지금-여기에 대한 성찰과 그러한 사유의 실천에 있어서 필요한 연대에 대해 짧게나마 기술하였다. 끝으로 파리 근교에 있는 라보미나블(L'Abominable) 필름 랩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짧은 성명서를 공유하고자 한다. 어디까지나 필름 랩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코로나19 상황과 연대라는 태도와 맞물려 생각한다면 여러 가지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Anne Fave and Emmanuel Carquille, 1995-2002)


우리는 그르노블에서의 주말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 당시의 에너지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유토피아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첫 만남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름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스크래치’ 상영회가 끝난 후 열두 명이 카페 테이블에 둘러앉아 회의를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모든 질문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각각 50프랑이었던 임대료와 저렴한 운영비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지하실의 습기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추위와 먼지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석고와 그림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열띤 논쟁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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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지봄봄/ 웹진 '지지봄봄'/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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