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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삼각산 북한산성

지지씨가 들려주는 '경기학' 이야기

지지씨에서는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한 도서를 한 걸음 더 가까이 살펴보는' 경기학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경기학 시리즈는 [역사문화편], [현대인물편], [역사인물편], [근대유산편] 총 4부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본 시리즈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발간도서는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및 경기도메모리 홈페이지에서 원문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삼각산 북한산성


북한산성의 모든 걸 담은 책 『삼각산 북한산성』

300년 전 책임시공제, 북한산성 건설에 얼마나 걸렸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는 2010년 『삼각산 북한산성』을 펴냈다. 경기학연구센터는 “우리나라 명승 제10호인 삼각산을 품고 있고,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성곽은 금성탕지라는 말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험준한 지형에 견고하게 축조되어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산성인 북한산성의 가치를 모두 담고자 기획하여 발간했다”고 밝혔다.


책은 말 그대로 북한산성에 대한 모든 걸 담고 있다. 북한산성의 유산적 가치부터 ▲도성방위체계와 북한산성 ▲축성배경 ▲축성과정 ▲운영과 관리 ▲부정부패 ▲축성 공정 ▲수문과 수구 ▲돈대 ▲곡성과 치성 등 북한산성의 역사적 가치에서부터 군사적 가치, 건축학적 측면까지 모든 부분을 다루었다.


▲ 도서 『삼각산 북한산성』


책임시공제로 공기를 단축한 북한산성, 쌓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북한산성은 1711년 4월에 착공해 10월에 완공을 했다. 11.6km에 달하는 산성을 단 6개월 만에 완성한 셈이다. 이후 행궁을 비롯하여 삼군문 군영 3개소, 창고 7개소, 승영사찰 13개소, 성문 14개소, 성랑 143개소 등의 건물이 들어서는 데 3년이 걸렸다.


『삼각산 북한산성』은 6개월 만에 10km가 넘는 산성을 완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도성의 무너진 부분을 보수하고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는 수축공사의 경험을 꼽았다. 북한산성의 공사를 맡았던 삼군문은 산성을 축조하기 4년 전인 1707년(숙종 33년) 도성 수축공사를 주관했고 이 경험이 북한산성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 대성문의 문루 하단 성돌의 새겨진 글. 감독관과 책임기술자의 이름을 명기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했다. (사진 = 『삼각산 북한산성』)


두 번째 이유는 합리적인 축성 설계에 있다는 분석이다. 지형을 고려해 험준한 지역은 성곽을 낮게 쌓고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은 높게 쌓는 설계에 힘썼다.


또 축성재료인 성돌을 현지 공급할 수 있었고, 체계적으로 효율적인 축성 조직을 운영해 효율적인 조직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또 여기에 임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조직된 의승병이 성곽 건설을 도왔다.


마지막으로 가장 놀라운 점은 당시도 책임시공제를 했다는 점이다. 성벽의 성돌(城石)을 만들어 쌓는 공사 담당자의 소속·직위·성명·작업 구역·작업 기간 등을 표시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놓았다. 조선 초기엔 주로 작업 구간과 작업 기간을 돌에 새겼지만 중기 이후엔 감독관과 책임기술자의 이름까지 명기해 책임 여부를 한층 분명하게 했다. 북한산성 남측에 위치한 대성문의 문루 하단부 성돌에는 ‘금영 감조패장 장태흥(禁營 監造牌將 張泰興)’, ‘석수편수 김선운(石手邊首 金善云)’이란 명문이 보인다. 수구(水口)와 서암문(西暗門)의 중간쯤에 ‘4패말(四牌末)’이라는 명문(銘文)도 확인됐다. 작업 분담 조직의 단위가 ‘패(牌)’였다고 한다. 책은 “철저한 책임시공제를 실시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분담 조직 간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작업 효율을 극대화하였다”고 강조했다.



임란과 호란 이후 조선의 변모된 모습을 보여준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축성을 결정하고 축성을 시작하는 데까지 2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숙종 때 행정조직이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운영됐다는 점과 함께 강화된 왕권, 숙종의 정책 추진력 등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숙종시대에 강화된 왕권과 숙종의 정책 추진력 또한 효율적인 협조와 지원을 이끌어내고 정책을 발 빠르게 추진하는데 큰 몫을 했다”고 평가했다.


또 대규모 산성 축성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과 인력 등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조선 경제력을 대변한다. 책은 “북한산성은 당대의 사회 경제력이라는 토대 위에서 지배층의 통찰과 축적된 기술력이 결합돼 이뤄낸 사회적 역량의 증거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왜? 삼각산 북한산성일까?


삼각산하면 옛 시조에 나오는 옛 이름처럼 생각된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까지도 삼각산이라고 불렀다. 북한산이라는 지명은 조선 중기 들어와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때부터 북한산과 삼각산이 혼용돼왔다. 산성을 가리킬 때에는 북한산으로 우리나라 5대 명산대천으로 국가 제사의 대상이 될 때는 삼각산으로 불렸다. 삼각산이 옛 지명이 된 데는 일제 강점기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책 『삼각산 북한산성』은 “1915년 이마니시 류가 「조선고적조사보고서」에서 북한산 일대에 대한 유적조사 결과를 ‘경기도고양군북한산유적조사보고서(京畿道高陽郡北漢山遺蹟調査報告書)’라고 보고하면서 북한산으로 일반적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 책은 “1983년 삼각산과 도봉산 일대를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 명명하게 되면서 삼각산이란 본명은 사라지고 북한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면서 “본명 이외에 불리던 이명(異名)이 본명을 대신하게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 『여지도(輿地圖)』「도성도(都城圖)」 중 현재의 북한산국립공원 부분.

도봉산과 삼각산으로 구분되어 있다. (사진 = 『삼각산 북한산성』)


삼각산과 북한산 어떻게 구분할까? 책은 “북한산은 유개념으로 사용하고 삼각산과 도봉산을 종개념으로 나눠 부는 것이 학술용어로 적합하다”고 밝히고 있다. 도봉산과 삼각산을 포괄한 개념으로 지칭할 때만 북한산이라 불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기도는 삼각산 북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은 “축성 이후 증개축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북한산국립공원 지구 내에 위치하여 주변 환경도 빼어나다”며 “북한산성은 세계유산적 가치가 결코 부족하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산성은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북한산성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때문에 책은 북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남한산성의 확장등재로 추진되든가, 한양도성과 함께 등재하는 전략이 요구된다"고 조언하고 있다.



『삼각산 북한산성』은 경기도메모리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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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각산 북한산성』

    원문 서비스/ 경기도메모리(https://memory.libr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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