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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북메우기 악기장 임선빈

지지씨가 들려주는 '경기 사람' 이야기

지지씨에서는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한 도서를 한 걸음 더 가까이 살펴보는' 경기학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경기학 시리즈는 [역사문화편], [현대인물편], [역사인물편], [근대유산편] 총 4부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본 시리즈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발간도서는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및 경기도메모리 홈페이지에서 원문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북메우기 악기장 임선빈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북소리가 나야”

60년 외길, 북메우기 악기장 임선빈



어릴 때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를 장애를 입었다. 10살 때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에게 버려졌다. 이 때 넝마주이패의 구타로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됐다. 11살 스승을 만나 북을 만들 수 있었지만, 남은 왼쪽 귀도 좁은 작업실에서 북을 두드리며 소리를 맞추다 소리를 잃게 됐다.


양쪽 모두 소리를 듣기 어렵지만 그는 북통에 가죽을 대고 켕기며 마지막 북메우기를 할 때면 끼고 있던 보청기도 빼놓다. 북소리의 울림을 가슴과 손으로 잰다고 한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30호 북메우기 장인 임선빈 씨의 이야기다. 임선빈 장인은 어떤 북울림을 전하고 싶은지를 묻자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북소리가 나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북소리가 나와 줘야 해요. 듣는 사람이나 치는 사람으로 하여금 북소리가 한 바퀴 돌아서 가슴에 와 닿아주고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나와 줘야 좋은 소리하고 할 수 있죠.”


임선빈 장인이 북메우기를 할 때 마지막 북울림을 잡는 걸 가슴으로 느낀다.


▲ 임선빈 장인 (사진 = 『경기도의 예인과 장인』)


임선빈 장인의 일생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1949년 6·25 한국전쟁을 1년을 앞두고 청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하던 운수업이 실패하자 서울로 올라왔다. 임선빈 장인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철공장 사업을 하다 다시 부도가 났다. 아버지는 새벽에 식구들을 깨워 짐을 싸게 하고는 서부 이촌동 다리 밑에 식구들을 버려두고 큰 형과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이 때 임선빈 장인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넝마주의 소굴로 들어가 폐품을 줍는 넝마주이로 살다 탈출해 무작정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이 여수였다. 여기서 임선빈 장인은 첫 스승인 황용옥 선생을 만났다.


황용옥 선생을 따라가 북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19세 때까지 황용옥 선생 밑에서 북을 만들었다. 스승이 작고한 후 6~7년 방황하다가 임선빈 장인이 찾은 곳은 대구 김종문 선생의 공방이었다. 이때부터 다시 북에 대한 배움을 시작했다. 31세 때는 부산의 김갑득 선생을 찾아 가죽 다루는 법을 배웠다. 처음 3개월 동안은 무보수로 일을 했다고 한다.


가죽을 다루는 법을 배우려면 소가죽이 있어야 했지만, 당시 소가죽을 사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임선빈 장인은 당시 좋은 가죽을 구하기 위해 도살장을 찾아가 지키고 앉아 있어야 했다. 풍년초 담배 몇 갑을 사다가 도살꾼에게 뇌물을 주면 그나마 칼집을 조금만 내고서 가죽을 내어 주었다. 그렇게 어렵게 가죽을 구해오면 김갑득 선생이 가죽을 다루는 전 과정을 가르쳐 주었다.


임선빈 장인이 가죽을 다루는 과정을 배우고 공방을 나오자 1년 뒤 김갑득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김갑득 선생에서 가죽을 배운 마지막 제자가 된 셈이다.


▲ 임선빈 장인이 만든 대고 (사진 = 『경기도의 예인과 장인』)


이후 대구 북 공방에서 일하다 대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옮긴 곳이 김관식 씨의 공장이었다. 10년을 일하면 북 공장을 차려준다는 말에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87년 88올림픽 개막식에 사용할 대북 제작에도 참여하게 됐다. 북의 울림판이 2미터 20센티미터, 통길이 2미터 30센티미터로 당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대북이었다. 이후 임선빈 장인은 청와대 춘추관 북, 통일전망대 북, 대전엑스포 북 등 여러 대북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9년 6개월을 일하다 자리를 옮긴 곳이 안양이었다. 유기장인 이봉주 선생의 공방에서 북을 만들었다. 그러던 중 이봉주 선생이 공방을 안산으로 옮기게 되면서 안양에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을 전해 주고자 대북을 만들기를 권했다. 이렇게 해서 올림픽 대북의 기록을 넘어서는 ‘안양시민의 소리북’이 만들어지게 된다. 안양시민의 소리북은 1997년 3월 작업을 시작해 11월에 완성되었다. 준비 과정까지 합치면 약 2년 6개월 정도가 소요됐다. 본래 울림판이 2미터 40센티미터, 통길이 2미터 60센티의 북을 만들려고 했지만 통이 너무 길어 안양시청 로비에 들어가지를 못해 길이를 2미터 20센티미터로 줄였다. 제작을 위해 6백㎏이 넘는 소 2마리의 가죽이 들었다고 한다.


임선빈 장인은 1999년 10월 18일 경기도 무형문화재(제30호, 악기장 북메우기)로 선정됐다. 선정이 되면서 이봉주 선생의 공방을 나왔다. 무형문화재가 남의 공방에서 상품을 만들어 판다는 현실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선빈 장인이 자신의 공방을 차리고 처음으로 만든 대북이 2018년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 행사에 사용된 대북이다. 임선빈 장인은 이를 1년여의 작업 끝에 이 대북을 만들어 기증했다. 그 자신도 2급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꿋꿋하게 이겨내고 이렇게 큰 북을 만드는 문화재가 되었다는 것을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경기도의 예인과 장인』은 경기도메모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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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의 예인과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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