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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청화백자 사기장 한상구

지지씨가 들려주는 '경기 사람' 이야기

지지씨에서는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한 도서를 한 걸음 더 가까이 살펴보는' 경기학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경기학 시리즈는 [역사문화편], [현대인물편], [역사인물편], [근대유산편] 총 4부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본 시리즈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발간도서는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및 경기도메모리 홈페이지에서 원문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청화백자 사기장 한상구


50년 도공의 길... 목물레를 둘리며 전통 장작가마만 고집

흙이 표현할 수 있는 감동, 청화백자 사기장 한상구



경기도 무형문화재 41호 청화백자 분야 사기장 백웅 한상구 장인은 조선시대 청화백자를 복원하고 있다. 조부 한호석, 부친 한용수로 이어지는 도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늦깎이로 도공의 길에 들어서면서 조부나 부친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 한상구 사기장은 오로지 독학으로 흙을 고르고 다지고, 유약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성형하는 일을 터득했다. 이러한 노력은 2005년 무형문화재 41호로 지정되면서 결실을 맺었다.


서른 넘어 입문한 도공의 길이 오십년이 넘어선 지금, 한상구 사기장은 여든을 넘겼다. 한상구 사기장은 청화백자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전통적인 방식에 따른다. 목물레로 성형하고 전통장작가마에서 구워낸다. 그림은 밑그림 없이 바로 그려낸다. 그래서 청화백자의 형태와 색감을 가장 잘 재현한다는 평가를 전문가들에게 받고 있다. 하지만 한상구 사기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찬란한 도예문화를 복원하기위해 흙을 찾아 산을 헤매고 새로운 유약을 실험하고 있다.


▲ 한상구 청화백자 사기장 (사진 = 『경기도의 예인과 장인』)


지난 1989년의 일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한상구 사기장을 일본으로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서다.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드릴겁니다. 모든 재료는 한국으로부터 들여올 계획입니다” 일본 손님이 한 말이다. 가마에 불을 지필 땔감을 사기 위해 그나마 남아있던 조금만 땅이라도 팔아야 하는 현실에서 한상구 사기장은 고민을 했다. 당시 한상구 사기장은 지금처럼 무형문화재 보유자도 아니었고, 유명작가도 아니었다. 가족, 특히 아내가 겪고 있는 생활고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지만 조선 도자를 향한 자부심이 발걸음을 잡았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된장찌개에 밥 말아 먹을 수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게 없다고...” 한상구 사기장의 아내가 한 말이다. 그래서 한상구 사기장은 마음을 다잡았다. “전수해도 내가 태어난 이 땅에서 해야, 바다 건너 남의 땅에서 전수하면 안 되지”


일제강점기 자기시험연구소가 여주 오금리에 있었다. 연구소가 세워졌을 때 한상구 사기장의 조부 한호석 옹이 이천의 해강 유근형 선생과 함께 근무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처참한 지경에서도 조선 도자의 맥을 잇고자 노력했던 조부와 선생들을 보고 자란 그였기 일본의 유혹의 뿌리칠 수 있었다.


▲ 한상구 사기장의 작업 모습 (사진 = 『경기도의 예인과 장인』)


한상구 사기장은 흙에 대한 집요함, 집착이 있다. 한상구 사기장의 흙에 대한 집착은 조선 백자의 계승과 재현을 향한 가장 근본적 갈망이라 할 수 있다. 이 집착은 한상구 장인을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흙을 찾아 헤매는 떠돌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여주는 말할 것도 없고 북쪽 양구부터 경상남도 산청, 합천, 하동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깊은 산골짜기 가보지 않은 백토 광산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흙은 찾아 헤매는 순간순간마다 한상구 사기장의 아내가 함께 했다. 운보 김기창과 도스또에프스크의 위대한 예술에 아내의 내조가 꼬리처럼 따라 다니듯 한상구 사기장의 청화백자 재현에는 그의 아내 서옥선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했던 여정을 아들 한윤희 씨가 대신하고 있다.


한상구 사기장은 조선백자의 빛깔을 가장 잘 재현하고 있다는 평가 받고 있다. 한상구 사기장의 조선백자의 빛깔은 바로 유약에서 나온다. 유약은 흙과 돌의 종류인 여러 가지의 도석을 섞어서 만든다. 흙과 도석이 높은 온도에서 유리질처럼 잘 녹아들 수 있도록 재도 섞는다. 여기에 장인의 비법이 있다. 어떤 흙과 도석을 섞느냐에 다라 빛깔이 변한다.


수백 년 전 조선백자에 어떤 흙을 어떻게 썼는지 어떤 유약을 어떻게 입혔는지 불은 어떠했는지 남아있는 기록도 없고, 구전돼 내려온 바도 없다. 이는 비단 조선백자 뿐 아니라 고려시대 청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든이 넘은 한상구 사기장은 여전히 실험에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좀 이상하다 싶은 흙이나 도석을 발견하면 소지(도자를 만드는 원료 흙)로도 실험해보고 유약 실험을 하기도 한다. 또 적정할 비율을 찾기 위해 실험을 거듭한다. 이는 한상구 사기장이 여전히 흙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한상구 사기장의 작품, 청화백자진사운룡문호 (사진 = 『경기도 예인과 장인』)




『경기도의 예인과 장인』은 경기도메모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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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의 예인과 장인』

    원문 서비스/ 경기도메모리(memory.libr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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