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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옛 소래염전 소금창고

지지씨가 들려주는 '경기도 근대유산' 이야기

지지씨에서는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한 도서를 한 걸음 더 가까이 살펴보는' 경기학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경기학 시리즈는 [역사문화편], [현대인물편], [역사인물편], [근대유산편] 총 4부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본 시리즈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발간도서는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및 경기도메모리 홈페이지에서 원문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옛 소래염전 소금창고


1950년대, 국내 천일염 30%를 생산했던 대형 염전


이제는 단 2동만 남은 소금창고



소래염전은 한때 여의도 2배 면적에 달하는 대규모의 염전이었습니다. 한창 때는 국내 소금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천일염이 이곳에서 생산되었습니다. 특히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는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소금 산출량을 자랑했던, 이른바 소래염전의 전성기였습니다.


염전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제는 1910년대부터 한반도 서해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염전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일제는 단순 식용뿐만 아니라 화약 원료의 필수 성분으로 쓰이는 소금의 생산량을 늘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인천과 시흥 지역의 염전 조성은 1912년경 본격화하기 시작해 점차 면적을 확장해갔고 이 가운데 소래염전은 1930년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소래는 갯벌이 완만하고 일조량이 크며 바람이 많이 불고 운송 교통망이 좋아 염전의 조건에 딱 들어맞는 입지입니다. 염전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에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생산하는 전통적인 전오제염법으로 소금을 생산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전오제염법을 통해 전오염, 즉 자염을 생산하는 방식은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전오제염법은 비용이 많이 들고 생산효율이 낮기 때문에 일제는 당시 청나라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인 천일제염법을 조선에 들여왔습니다.


이로써 조선에서도 많은 양의 천일염이 생산되기 시작했고 염전이 생긴 지역은 어업이 쇠퇴했습니다. 이에 염전으로 노동력이 대거 이동하면서 주민들의 삶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소래염전에서 생산한 대부분의 소금은 수인선과 경부선 열차로 부산항에 옮겨진 후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비록 해방 후에도 천일염을 지속적으로 생산했지만 태생적으로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염전 부지에는 소금을 출하하기 위해 이용했던 녹슨 레일이 남아 있습니다.


▲ 소래습지생태공원의 소금창고


천일염은 밀물 때 들어온 바닷물을 가두고 3단계로 나누어 증발시키는 과정을 통해 얻습니다. 이 방식은 현재 소래염전 방문자를 위해 운영 중인 체험 염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전 과정을 오롯하게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방인들에게 체험 염전은 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소량이지만 소금을 생산하기 때문에 소래염전의 명분을 지키는 의미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최고품질의 천일염으로도 널리 알려져 직판장도 두고 소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체험 염전에는 방문자들의 체험 시설로 천일염을 이용한 소금찜질장도 있습니다.


체험 염전과 2동의 소금창고를 제외한 나머지 염전 부지는 허허벌판의 공터로 남아있습니다. 소래염전을 비롯한 서해안의 염전들은 1960년 이후 소금이 과잉생산 되자 염전 폐쇄정책으로 인해 서서히 사라져갔습니다. 또한 1980년대 이후 천일염 수입자유화와 염전지대 도시개발 등으로 염전 폐쇄는 가속화되었습니다. 소래염전은 규모가 계속 축소되면서도 1996년까지 소금을 생산했는데 결국 2007년, 남아있던 40동의 소금창고 중 38동이 철거되고 현재는 단 2동만의 소금창고가 남게 되었습니다. 소금창고가 남아있던 부지가 사유화되면서 소유자 측의 부지 개발 의지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소금창고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었던 건축물이었기에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소금창고는 소금을 외부로 보내기 전의 필수적인 보관처입니다. 산출한 소금은 곧바로 자루에 넣지 않고 창고 안에 산처럼 쌓아두는데 이는 간수를 빼내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창고의 내부 벽면은 소금이 가장자리로 흘러내릴 때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며 외부는 콜타르로 방수처리를 해 시커먼 색을 띕니다.


이후 2014년, 사유지 외의 폐염전 부지는 생태보호와 관광화를 위해 시흥시가 나서 시흥갯골생태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갯골은 갯가의 고랑을 뜻합니다. 이름 그대로 간석지에 패인 골로 물이 빠졌을 때 바닷물이 흐르는 수로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은 이 갯골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공원입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갯골은 내만갯골로 밀물 때면 바닷물이 육지 안까지 고랑을 따라 밀려들어오는 ‘갯벌골짜기’입니다. 경기도 내에서 유일한 갯골로, 갯골의 전체적인 윤곽은 높이 22m의 흔들전망대에 오르면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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