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정상화》개최





◇ 한국 단색조 추상의 대표 화가 정상화의 대규모 개인전

◇ ‘뜯어내고 메우기’라는 독창적인 수행(修行)적 조형 방법론 창안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한국 단색조 추상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정상화의 대규모 개인전 《정상화》를 5월 22일부터 9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정상화》는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에 있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일궈온 정상화(1932~)의 화업을 총망라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이다. 정상화는 회화를 근간으로 판화, 드로잉, 데콜라주(décollage), 프로타주(frottage) 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며 평면작업의 가능성을 탐색해왔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작가 특유의 수행(修行)적 방법론을 창안하여 독보적인 단색조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토대를 확장하는 시도로써 정상화의 작품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동시대적 맥락을 살펴본다.


정상화는 1932년 경북 영덕 출생으로 1953년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하여 1957년 대학 졸업 후 《한국현대작가초대전》(1960), 《악뛰엘 그룹전》(1962), 《세계문화자유회의초대전》(1963) 등 다수의 정기전, 그룹전에 참여하였고, 제4회 파리비엔날레(1965), 제9회 상파울루비엔날레(1967) 등에 한국 작가로 출품하였다. 1967년 프랑스 파리로 갔다가 1년 후 귀국한 작가는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일본 고베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이후 1977년부터 1992년까지 다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작업에 몰두하였다.


1992년 11월 영구 귀국하여 1996년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마련한 후에는 줄곧 한국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창 시절 대상을 재현하는 구상 회화를 주로 그렸던 정상화는 1950년대 중후반이 지나면서 앵포르멜 경향의 표현주의적 추상을 실험하였다. 이후 일본 고베로 건너갈 무렵부터 작가는 앵포르멜에서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1970-80년대 고베와 파리에서 작업 활동으로 그를 대변하는 단색조의 격자형 화면 구조가 확립되었다. 정상화는 다양한 기법과 매체 실험을 통해 종국에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뜯어내고 메우기”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방법론을 발견해냈다.


정상화만의 추상실험의 결실인 격자 구조 화면은 치밀하게 계획된 정신적 공력의 결과인 동시에 고된 육체적 수고의 결정체이다. 우선 캔버스 윗면 전체에 붓을 사용하여 고령토 약 3-5mm를 덮어 바르는데, 이를 일주일 이상 작업하고 난 다음, 캔버스 뒷면에 미리 그은 수직 수평의 실선 또는 대각선을 따라 주름잡듯이 접는다. 그 과정에서 화면의 균열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조각이나 공예 작업에서 볼 법한 도구와 재료, 그리고 행위를 통해 정상화는 자신의 화면을 직조해 나갔다. 꺾어 접거나 칼로 그어 만든 균열은 작가의 “뜯어내고 메우는” 독특한 행위를 통해 깊이를 더하게 된다. 작은 사각형들에서 고령토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아크릴 물감 메우기를 수차례 반복함으로써 화면은 서로 다른 운율을 가진 격자들의 합이 된다. 단조롭고 수고스러운 반복을 축적하는 과정을 통해 정상화는 독자적인 조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머물며 작업했던 여러 공간(서울, 고베, 파리, 여주)과 시간을 잇고 연대기적 흐름을 큰 축으로 하여 그의 독특한 조형 체계가 정립된 과정을 추적한다. 동시에 종이와 프로타주 작업 등 국내에서 자주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과 미발표작들로 작가의 조형 연구와 매체 실험을 조명한다.


전시는 ‘추상실험’,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 ‘격자화의 완성’, ‘모노크롬을 넘어서’ 등 4개의 주제와 특별 주제 공간인 ‘종이와 프로타주’, 그리고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영상 자료와 기록물을 비롯해 작가의 초기 종이 작업을 소개하는 아카이브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추상실험’은 1953년부터 1968년까지 학업과 작품 활동이 이어지는 시기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며 재현적 구상회화에서 벗어나 전후 1세대 청년작가로서 시대적 상실과 불안을 반영한 표현주의적 추상 작품 <작품 64-7>(1964), <작품 65-B>(1965) 등을 선보인다.


두 번째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에서는 작가가 일본 고베에서 활동한 1969년부터 1977년까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표현주의적 추상에서 벗어나 단색조 추상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던 시기로 <작품 G-3>(1972), <무제 74-F6-B>(1974) 등이 소개된다.


세 번째 특별 주제공간인 ‘종이와 프로타주’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캔버스보다 비교적 다루기 쉬웠던 종이를 이용해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던 시기로, 국내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당시의 종이 작업과 프로타주 작업 등을 선보인다.


네 번째 ‘격자화의 완성’에서는 1977년부터 1992년까지, 즉 일본 고베 시기 이후 이어진 파리 시기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작가는 고베에서 발견해낸 “뜯어내고 메우기” 방법을 통한 단색조 추상의 완성도를 높이고 다양한 변주를 드러낸다.


다섯 번째 ‘모노크롬을 넘어서’에서는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1993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소개한다. <무제 95-9-10>(1995), <무제 07-09-15>(2007) 등의 작품을 통해 그의 단색조 추상의 정수, 균열과 지층의 깊이를 통한 작가의 예술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관객들은 자신의 시각 뿐아니라 촉각적 감각이 일깨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정상화의 60여 년 화업을 총망라한 이번 전시는 한국 추상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작가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 “한국 미술사의 맥락에서 작가의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Chung Sang Hwa

기간 2021년 5월 22일(금) ~ 2021년 9월 26일(일)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3, 4전시실 및 복도 공간

출품작  회화 및 자료 100여 점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이만홍.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상화(1932~) | 정상화(Chung Sang Hwa)는 1932년 경상북도 영덕에서 출생했다. 195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1957년 졸업 이후 한국현대미술가협회(1956~1961)와 악뛰엘(1962~1964)의 멤버로 한국 전위미술 단체에서 활동했다. 1967년 프랑스 파리로 1년간 떠나있었던 정상화는 1969년부터 8년 간 일본 고베에서 체류하며 활동했고, 1977년부터 13년간 다시 파리에 머물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1992년 영구 귀국 후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는데, 2011년부터 최근까지 유럽, 미국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2011년에는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도쿄현대미술관,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주제별 주요 출품작 소개


1. 추상실험(1953~1968)  

정상화, <작품 64-7>, 1964,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53년부터 1968년까지는 정상화가 대학 입학 이후 일본 고베로 이주하기 전까지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던 시기이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사물이나 인물, 풍경 등을 재현하기 위한 기초 훈련을 받아 정물화나 인물 크로키와 같은 구상회화를 주로 그렸지만, 1957년 졸업 이후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국현대미술가협회(1956–1961)와 악뛰엘(1962–1964) 등에서 당대 젊은 작가들과 함께 비정형의 표현주의적 추상에 몰두했던 정상화는 전후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화폭에 담을 수 있을지 주목했다. 그는 강렬한 몸짓으로 역동적인 화면을 구사하고, 물감을 던지고 뭉개버림으로써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로서의 뜨거운 에너지를 표출했다. 1960년대 중반 무렵부터 앵포르멜의 후기적 요소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1967년 1차 도불 후 1969년 일본 고베로 건너가기 전까지 그의 화면에서는 점차 격정의 에너지가 사라지고 갈색이나 회색 위주의 어두운 색조가 나타났다. 《정상화 도불전》(신문회관, 1967) 리플릿 표지로도 등장했던 <작품 65-B>(1965)는 앵포르멜 특유의 두터운 마티에르 효과는 그대로였으나, 화면 위의 힘이 보다 정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1969~1977)

정상화,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69년부터 1977년까지는 정상화가 일본 고베로 이주하여 활동하던 고베 시기에 해당한다. 1년 남짓 파리로 떠났다가 고베로 건너가 체류했던 8년이라는 기간은 그의 작품 세계에 있어 가장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던 시기였다. 작가 스스로도 일본에서 그림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 만큼 이 시기에는 다양한 기법이 실험되었으며, 앵포르멜 화풍에서 벗어나 단색조 회화로의 변모가 나타났다. 1972년부터는 화면 위에 기하학적 도형의 사용은 줄고 백색의 범위가 점차 화면 전체로 넓어져 올 오버 페인팅(all-over painting) 작품이 등장했다. 1973년부터는 백색 위주의 단색조 회화가 다수 제작되었고, 이후 그의 작품에 있어 격자형 구조가 주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1967년 ≪제9회 상파울루비엔날레≫(상파울루 비엔날레, 상파울루, 브라질)에 출품하기 위해 방문했던 브라질에서 네모난 작은 돌로 넓은 대로를 메우고 있던 노동자의 모습을 본 경험은 당시 조형적 변화를 겪던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1973년을 전후로 나타난 그리드(grid) 기법은 캔버스보다 비교적 다루기 쉬웠던 종이를 바탕으로 실험됐다. 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974)과 같이 바탕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긁어내는 ‘프로타주(frottage)’ 기법을 사용했다. 이외에도 1970년대 전반적으로 목판, 콜라주(collage), 데콜라주(décollage) 작품을 집중적으로 제작했다.


[특별 주제] 종이와 프로타주


정상화, <무제 79-B>, 1979, 종이에 흑연, 155x122cm. 작가 소장. 사진 이만홍.



작가 정상화는 일본 고베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당시(1969-1977) 캔버스보다 비교적 다루기 쉬웠던 종이를 가지고 재료와 기법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다. 그의 특징적인 조형 구조인 격자형 그리드(grid)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종이 작업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종이를 수직과 수평 혹은 사선으로 잘라 붙이고 떼어내며 다양한 격자 구조를 실험했던 작가는 캔버스 작품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이나 펜 등으로 울퉁불퉁한 표면을 긁어 베끼는 ‘프로타주(frottage)’ 기법을 이용해 화면의 깊이감을 더해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정상화의 종이 작업과 프로타주 작업을 선보임으로써 그의 작품 세계를 보다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자 했다.


3. 격자화의 완성(1977~1992)

정상화, <무제>, 1987,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97cm. 개인 소장. 사진 이만홍.



1977년부터 1992년까지는 일본 고베 체류를 마치고 파리로 이주하여 작업했던 시기이다. 파리에서의 생활이 더욱 긴장되고, 작품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게 느꼈다는 정상화는 작가로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격자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몰두했다. 고베에서 이미 격자형 단색조 추상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파리에서는 격자화 표면의 구조와 밀도, 그리고 색채에 있어 다채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이 시기에는 정상화만의 독특한 작품 제작 방식인 “뜯어내기와 메우기” 기법이 완성도를 더해갔다. 물감을 캔버스에 바로 칠하는 회화적 전통에서 벗어나 고령토를 뜯어내고 빈 곳을 물감으로 채우는 작가의 노동 집약적인 방식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왔으나, 1980년대에 들어 다양하게 탐구됐다. 캔버스에 3-5mm 두께로 바른 고령토를 네모꼴로 뜯어내고, 고령토가 떨어진 자리를 유채나 아크릴 물감으로 채워 넣는 행위는 그리드의 간격이나 방향, 바탕 안료의 두께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4. 모노크롬을 넘어서(1993~현재)


정상화, <무제 95-9-10>, 1995, 캔버스에 아크릴릭, 228×18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92년 11월, 정상화는 20여 년이 넘는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귀국 후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마련한 1996년부터 현재까지를 여주 시기로 볼 수 있다. 2010년 들어 국내외적으로 높아진 단색조 회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그 또한 개인전 및 단체전 참여 횟수가 많아졌고, 2011년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Musee d’Art Moderne Saint-Etienne)에서는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다. 여주에 완전히 정착한 이후 정상화는 백색 단색조 회화를 주로 제작하며 작품의 완숙미를 극대화해나갔다.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정의내리는 정상화의 작품에는 지난한 노동의 행위가 집약되어 있다.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1년의 시간이 걸리는 이러한 노동 집약적인 행위는 고도의 정신적 인내심과 육체적 몰입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조수를 한 번도 둔 적이 없다는 그는 작품 제작의 모든 과정을 온전히 본인 스스로 해나간다. 그래서 매일같이 생활 속에서 묵묵히 예술을 실천하며 과정 자체를 반복하는 정상화만의 독특한 창작 방식은 “되풀이되는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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