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1호 | [표류기] 흔들리는 자신 속에서 내 존재감이 느껴진 거야

한 발 벗어나기






당신, 지금 표류하고 있나요?


‘단단한, 매끈한, 편안한, 안정적인, 효율적인, 순조로운….’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형용사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흔들림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감각인 ‘어지러움’을 기꺼이 감수하기에는 우리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복잡하므로. 하지만 내 몸을 구성하는 기관들이 보다 생생히 느껴지고, 어딘가 불편했던 마음들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 ‘어지러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거기에서부터 질문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무언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잠시 멈춰 서고 싶기도 하고, 뒤돌아 정반대의 방향을 바라보고 싶은 상태라면 아마 당신도 나처럼 ‘표류중’이어서 그럴 것이라고 전하고 싶다. 흔들리며 떠다니는 존재가 나 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서로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6월의 어느 날, 각자의 세계에서 표류 중이던 4명이 한 지점에 닿았다. 이 만남 이후로 각자 표류의 시간을 기록하게 될 4명의 이야기에서 더 많이, 더 멀리 흔들려도 괜찮다는 응원이 당신에게 전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났다.



표류기 첫 번째 만남 풍경




표류하며 알게 되는 것들


장정아 :

2017년부터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분야에는 생계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따면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올해 처음으로 공모사업 같은 활동을 시도해 보고 있다. 그런데 시작할 즈음에 ‘내가 과연 누군가를 지도하거나 이끌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생겨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다. 이 질문은 ‘내가 왜 연극을 하게 되었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을까?’로 이어졌다가 ‘문화예술교육으로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게 뭘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현재의 생각은 삶의 힘든 순간들마다 나를 위로해 주었던 것이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나를 구한 것처럼 당신을 살아가게 할 것이라는 경험을, 나의 예술과 예술교육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하반기에 공모사업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인데 설렘과 두려움이 딱 반반씩 있다. 예술교육가로서는 이제 걸음을 떼는 단계라 앞으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을 예정인데 지금 시기에 기쁨과 좌절의 순간들, 그 좌충우돌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나에게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다.



김 민 :

올해 4년 차가 된 단체 ‘초록놀이터’에서 문화예술교육 기획을 하고 있다. 작년을 계기로 내가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초록놀이터’는 활동하는 3년 동안 공모사업을 많이 한 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기획서를 기계처럼 쓴다는 자각이 있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보다도 ‘이 지원사업에서 무엇을 요구하는가?’에 포커스를 맞춰서 쓰게 되었다. 단체를 이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중간 중간 드는 아쉬움들은 밀어두곤 했다. 그런데 작년에 컨설팅 해주시는 분으로부터 “김민씨를 꼭 만나고 싶었다. 기획서를 뽑지 않을 수 없게 잘 쓰셨는데 거기서 인간의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김민이라는 사람, 본인을 표현해 봤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내가 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서 프로그램을 하는 목표가 무엇이고, 내가 가져가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나의 시간들 속에서 찾아보았다. 딱 떠오른 것이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하던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악기를 잘 다루던 아빠와 노래를 잘 부르던 엄마, 함께 노래하거나 책을 읽던 언니와 나…. 친구는 이런 집을 처음 봤다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문화예술 활동 중에 가장 기쁘고 풍요로웠던 순간이 그때였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뭔가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작품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었지만, 문화예술이 나의 일상에 녹아 있다는 점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사람들에게도 심어주고 싶은 것이 나의 목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소영 :

‘표류기’라는 코너의 이름을 듣고 단어 자체가 나랑 좀 맞는 것 같은데? 나 지금 난민인데? 섬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작년부터 올해까지 재단의 공모사업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처음에 재단의 공모사업을 시작할 때는 나름대로 포부가 있었고 잘 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다음에도 선정 되고 이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있는 것보다 더 크게 보이려 발버둥 쳤다. 능력 밖으로 애를 썼기 때문에 지치고 피로해서 도저히 할 수 없고 쉬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러면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좀 더 우연성 있고 즉흥적인 작업들이나 가볍게 할 수 있는 작업들을 고민하게 되었고 추구하는 방향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금 밖으로 나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그것을 계속 검증한다면 나는 그 안에서 계속 발버둥 칠 테니까. 심플하게 생각해서 참여 인원이 적더라도 나의 노동을 인정해 주고, 나의 작업을 원하는 사람들과 작은 워크숍들을 1년 반 정도 운영해 보고 있다. 그런 과정 중에 드는 생각은 ‘아카이빙’ 이다. 프로그램을 설계해서 앞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들을 기록하는 것, 한 번 하고 나면 보완에 대해 생각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글로 남겨서 누구든지 아이디어를 얻고 이후에 다른 사람에게 적용해 볼 수 있도록 자료를 쌓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 말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문화예술교육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데이터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현재는 내가 봐야 할 것, 시도해봐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시간과 조력자는 한정된 상황이다.



윤가연 :

8년 정도 무용단 생활을 하다가 2019년에 그만 두었다. 사는 곳이 성남인데, 10년을 살았는데도 그 곳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동네로 나가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몇 살이야? 나는 이 동네 사는데 아는 게 없어서 그러는데 어디가 제일 핫해? 나랑 춤출래?” 그런데 아이들에게 자꾸 말을 거니 학부모들로부터 민원이 들어와서 나에게도 뭔가 배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꿈다락’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선정되어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3년째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아무 곳에서도 공간을 빌려주지 않았다. 특히 숨을 나누고, 함께 호흡하는 무용 프로그램은 갈 곳이 없었다. 그야말로 표류했다. 길로 나가고 놀이터로 나가 선생님들끼리 춤을 추다 보면 아이들이 함께 하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같이하자고 아이들에게 질척거리기도 했다. 놀이터마저 폐쇄되고 나서는 그 날 아이들과 어디로 갈지 정하고, 무엇을 할지 정하면서 수업을 했다. 그렇게 표류하면서 알게 된 것은 첫해에 수업할 때, 기획자이기보다도 안무가로서의 습관이 앞으로 튀어나와 모든 가능성과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촘촘하게 수업을 짰다. 그게 가능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면서 그동안의 방식이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의 방향으로 아이들을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요즘의 고민은 내가 점점 사회화되는 것 같은 감각이다. 어떤 경우에 그냥 들이받고 표현하던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싫어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공모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분들의 언어를 배워 비슷한 말을 사용하게 될 때 ‘내가 왜 말을 이렇게 하고 있지?’라는 물음이 생기면서, 마치 이상한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표류하는 존재간의 연대


각자 표류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왔기 때문일까? 더 많은 고민과 질문, 발견이 오고간 만남이었다.



표류기 첫 번째 만남 풍경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보다, 내 철학과 생각을 드러냈을 때 나의 기획서는 어떻게 될까?’,


‘지금의 문화예술교육이 과정보다 결과물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쓰다, 그리다, 춤추다와 같은 행위 이전의 예술적 감수성이란 무엇일까?’,


‘자기 경험을 기록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주변에 또 표류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부유하는 물음들의 답은 모두 다르겠지만,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눔으로써 우리의 표류는 덜 고독하고, 더 안전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번 지면에 미처 싣지 못한 이야기들은 앞으로 이어질 ‘표류기’에서 각자의 경험과 각자의 언어로 기록될 것이다.



만남 이후, ‘표류’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와중에 길거리에서 어느 가수의 노래가 들렸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문득, 어지러워도 우리가 흔들려야만 하는 이유를 찾은 것만 같았다. 모든 움직임에는 어떤 감각이 남는다. 그리고 감각함을 통해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또렷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표류한다는 것은 떠도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은 표류기가 기록될수록 더 많은 존재들이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본다.




* 표류기 / 표류기 첫 만남 - 지지봄봄의 개편취지인 ‘다양한 분들의 목소리가 실리는’, ‘현장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자리’를 위하여 개설되었다. 각자 활동에 대한 기록,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프로젝트로써 32호, 33호에 글을 싣기 전 함께 모여 프로젝트의 소개와 서로의 근황을 공유한 자리이다.






장정아 / 극작가

나, 너, 우리와 세상 사이의 이야기를 찾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발견한 이야기를 희곡으로 쓰기도 하고,사람들과 나눠 볼 궁리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바르고 예쁜 사람이 되라는 이름의 뜻 대신에 장난기를 잃지 않는,

정답만을 좇지 않는, 아침에 잘 일어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글쓴이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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