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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1호 | [기술너머] 우리를 르네상스인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한 발 벗어나기







한 철학자의 흥미로운 표현을 보았다.


'지금은 르네상스 시대이다'. GPT-31)라는, 파괴적일 정도의 가능성을 지닌 자연어 처리 인공지능 모델에 대해 언급하는 글에서였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서 의미하는 '르네상스'는 인간의 르네상스가 아니라는 것. 우리에게 익숙한 르네상스란 사실 인간 해방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신에 포박되어 있던 인간 정신이 개성과 합리, 욕망과 함께 약동하기 시작한 그런 시대 말이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르네상스는 기술과 함께 더욱 약진할 인간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는 처음으로 인간이 마주하고 있는 '지능적 객체', 그것들의 도약을 바라보며 나온 표현일 것이다. 즉 비인간(non-human, 여기서는 인공지능)의 르네상스를 이야기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대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되어 단순히 지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뿐이라 해도 말이다. (결국 쿠크다스처럼 연약한 인간의 정신에는 실제 '기계가 생각하는가'의 문제 보다는,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문제이지 않겠는가)



기계 기술 시대에 인간이 짜둔 알고리즘으로만 움직이던 것들이 이제는 자유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니, 그 철학자의 표현이 더없이 적절하다면 적절하다. 우리는 이렇게 웃프게도 존재론적으로 인간을 직접 겨냥하는 기술적 쇄도와 인류사적인 거대한 재난의 시대를 동시에 통과하고 있다. 언제 격변기가 아닌 적이 있었겠냐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는 사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분열적 우울감에 빠져든다.



이런 상황들은 그동안 인간이 만들어 온 이제까지의 역사와 비견해 본다면 비인간의 존재를 너무나 뚜렷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우면서도 기존과 다른 지점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흔히 '인식의 전환'이라고 얘기되는 흐름까지도 실시간으로 겪고 있다.



근 미래 교육에 대한 담론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1년이 넘게 지속되는 느린 재난2)이 무감한 일상이 되어 가는 속에도, 여전히 (기술적 토대 위에서) '밝은 미래'를 상상하며 함의를 드러내는 언어들은 약간의 투덜거림 마저 불러온다. '이런 재난의 시대에 미래는 무슨. 파국을 견디는 법을 교육하는 게 낫지. 온갖 아포칼립스 영화와 소설을 놓고 읽게 하고 생존 키트를 만들며 파국에 탄력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한 거 아냐?' 같은 약간 냉소적인 척, 허세 가득한 생각 같은 것 말이다.



부정하기 어렵게도 이런 서로 다른 미래상의 발화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정확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교육에서는 이들을 서로 별개의 세계라도 되는 듯 경계 지어 놓는다. 팬데믹, 기후위기라는 느린 재난이 예고하는 생태적 디스토피아, 그리고 신기술이 가져올 낙관적 전망 속에 스민 유토피아적 담론은 늘 서로 겉돈다.



그것에는 여전히 생태적인 것을 자연 보호의 감각에 맞추어 놓고 있는 것, 더 나아가 생태예술 교육이 미적 체험이나 자연 재료를 통한 감수성의 표현 이후로 폭넓게 확장하지 못하는 것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즉 생태예술 교육이 변화하고 있는 과학·정보 기술 차원의 인식과 감각, 심화되는 생태적 재난을 함께 생각 할 수 있도록 하는 관점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반대편에서는 기술예술 교육이 기술인문적 교육이나 깊이 있는 매커니즘적 틀을 질문하는 교육을 향하기보다는 계속 기능 교육적인 것과 결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속에서 다양한 재난 상황은 이렇게 일상이 되고 범속한 것이 되어 가고 있음에도, 가장 긴밀하게 질문해야 하는 영역들에서 외따로 각자의 재난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간극에서 문화예술교육은 그 둘을 어떻게 불러볼 수 있을까. 생태를 자연적 대상으로만 한정하여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문, 기술적 측면에서 행위자들과 어떠한 교차성을 가지며 관계하는지 고민을 담아 생태성을 다시 해석해 볼 수는 없을까.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라는 이분법적 시선을 지우고, 자연권과 기술권이 분리하기 어려운 네트워크가 되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 말이다.



이를테면 '자연 기계'3)적 관점 -이는 생태(Ecology)에 대한 생각을 자연의 대상으로만 한정해서 보지 않고 자연 생태를 넘어 기술 생태까지 포함한 관계성-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생태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과 이해의 기술이 필요하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는 전환적 태도 말이다.또한 기술권이 인간이 둘러싸여 있던 환경인 자연권 만큼이나 인간의 삶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자연에 가까운 환경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각은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 미친 생태적 재난에 대해 다시 사고하기를 촉구하는 ‘인류세의 관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혁신 기술이 지금의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으로 점철되어 현실에서 마주하고 직시해야 할 재난의 위기를 가리지 않게 해야 한다. 이미 삶의 조건이 된 기술권 속에서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는지, 어떤 삶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지, 그리고 생태와 어떻게 연결해서 봐야 하는지 우리는 그 생각의 서두에 서 있다. 아마도 우리는 마치 중세 이후 르네상스를 맞이한 인간들처럼 존재적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기를 꽤 보낼지도 모르겠다. 이제까지 강고하던 가치체계와 가치분할도 조정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새로운 인문적 가능성과 배설적 혐오가 서로를 덮고 덮는 상황을 하루하루 위태롭게 지켜보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예술교육은 인간이 세상과 사물, 주변 환경을 다른 시각과 감각으로 경험하고 생각하는 수행을 지속해서 시도해 왔지 않나. 이것 역시 다른 일이 아니다. 느린 재난을 축으로 생태적 감각과 기술을 연결 짓는 시도를 해 보자. 새로운 인문을 만들어 내는 일,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수행할 수 있는 르네상스가 아닐까?



1) GPT-3 : openAI에서 2020년 발표한 자연어 처리 인공지능. 소설, 기사, 대화, 코딩 등 다양한 상황에 대해 자연스러운 문장 생성과 답변으로 상당히 파괴적인 가능성을 가질 것으로 생각되어 발표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완전 공개되어 있지는 않으며 곧 마이크로소프트 라이선스를 통해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2) 느린 재난 : 태풍과 같이 즉각적인 타격과 피해를 주는 빠른 재난에 비해 가뭄, 기후위기 그로 인한 이주의 문제 같이 피해가 천천히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재난을 일반적으로 이야기 한다.


3) 자연 기계 : 리처드 화이트의 동명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강을 중심으로 인간이 개입해 만들어진 여러 인공적 사물과 자연의 형태 (댐, 인공 부화장의 연어, 컴퓨터로 모델링한 가상의 강)를 드러낸다. 즉 수많은 혼합물로의 자연의 모습을 통해 인간-자연의 이분법적인 시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여러 힘들이 혼합으로의 자연 기계의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보기를 촉구한다. 이 글에서는 이 책의 관점을 가지고 와 여러 자연적 인공적 요인이 혼성된 상태로의 자연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한다. 자연 기계 : 인간과 자연, 환경과 과학기술에 대한 거대한 질문, 리처드 화이트 지음, 이두갑 , 김주희 옮김, 이음, 2018






최빛나 / 언메이크랩

인간, 기술, 자연, 사회 사이에 새롭게 나타나는 현상에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전시, 교육, 연구의 형태로 만들어활동하고 있는 언메이크랩의 일원이다.

온갖 사회적 맥락이 들러붙어 있는 데이터를 특정 알고리즘에통과시켜다른 서사를 출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매년 포킹룸을 진행하며 기술-예술-사회 사이의 한 접점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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