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2호 | [표류기] 디어루스

생태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낮이


‘루스’, 친한 친구에게 하듯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저는 지금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무인도 같은 작업실에 있습니다. 어느 날은 별로 생산적일 듯이 보이지 않는 걸레질로 시간을 보냅니다. 홀로 표류하는 이 시간은 끝없는 자기 최면을 요구하기에 이곳에서의 걸레질은 단순한 청소가 아닌 소생하기 위한 중요한 일과가 됩니다. 오늘은 먼지를 닦아내다 이모젠 커닝햄(Imogen Cunningham)이 60년대 후반, 흑백으로 촬영한 당신의 사진 한 장을 발견합니다.



루스 아사와 무엇이든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편지의 수신자인 루스 아사와의 사진이다. 이모젠 커닝햄이 촬영한 이 사진 속의 아사와는 거실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안소영 



저는 당신을 봅니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수수하고 동그란 얼굴, 조각 안에 들어가서 내부로부터 외부로 작업하는 몸, 공간을 드로잉하는 손. 루스 당신이라면 연금술을 부려 제 손에 들려 있는 보잘것없는 먼지로도 이토록 신비로운 형체를 만들 것만 같습니다.



며칠째 무겁던 하늘에서 구름이 걷히자 햇살 한 줄기가 창으로 스며듭니다. 저는 환영하는 듯한 빛에 이끌려 당신의 공간에 조심스레 발을 들입니다. 안과 밖이 하나로 이어진 곡선진 형태의 조각들이 큰 곡물창고처럼 생긴 건물의 높은 서까래 아래 신비로운 자태로 매달려 있습니다. 열린 문 사이로 풀 내음 풍기는 바람이 스며들자 그것들이 서서히 움직입니다. 저는 조각들 사이를 걷습니다. 작업 재료인 철사에 찔려 상처 아물 날이 없던 굳은살 박힌 두 손으로 농부처럼 정직하게 일군 먼 세계에 제 몸을 맡깁니다. 어느새 저는 그것과 짝을 지어 춤을 춥니다. 저의 실루엣은 옛 벨기에 여자들이 뜬 레이스나 솜털 구름이 드리울 법한 조각의 환상적인 그림자의 움직임과 하나가 되었다가 흩어집니다. 커다란 털 뭉치 먼지 덩어리처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사막을 굴러다닐 듯 보이는 개성 있는 형상 하나가 나타나 제 발걸음을 따라 몸을 흔듭니다. 바람이 멈추자 그것은 사막에서 물을 찾아 뿌리를 내린 식물과 같이 안정을 취합니다.



이제 당신이 여섯 아이 가운데 앉아 작업하고 있는 거실로 이동합니다. 멈춤 없이 일하는 당신은 여덟 개나 되는 손을 바삐 움직이는 거미 같습니다. 가느다란 철사를 구부리고 이어 만든, 이토록 부드럽고 반투명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조각은 아침 이슬을 머금은 거미의 피조물처럼 신선합니다. 곁의 아이들은 차분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삶이자 이 아이들의 그것입니다. 여기에는 소더비 경매사의 흥분에 가득 찬 낙찰봉이 불러일으키는 탄성이나 그들 세계의 자부심 같은 세속적인 것은 없습니다. 당신은 “나, 이렇게 살아요!” 하고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그 사이에서 작업하는 시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겉이 속이고 속이 겉이기도 한 당신의 조각과 당신의 삶은 완전한 일체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인생 역시도, 안과 밖, 앞과 뒤가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로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커닝햄은 없는 듯 주변에 머물다가 카메라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 사진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우리의 대화 역시 상상조차 불가능하게 되었겠지요. 이건 분명히 삶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쇼핑 태그가 여러 개 달린 유명인의 인스타그램 이미지처럼 한참 빠져서 보다 보면 속이 허해지는 그런 종류의 사진이 아닙니다. 화면 속 아이들은 부지런한 당신의 손놀림을 응시하거나 또 각자의 놀이에 몰두할 뿐입니다. 벌거벗은 통통한 아가는 스스로 젖병을 입에 물어 만족해하고 당신은 늘 그렇듯 철사를 잇습니다. 이 마법 같은 평화와 몰입의 이미지는 영원히 제 가슴 속에서 아름답게 울립니다. 왜냐하면 이 이미지는 삶의 자세야말로 하나의 예술 행위임을 뚜렷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믿는 바를 몸소 실행하는 삶의 태도, 그 자체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가르침의 정수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당신의 조각과, 그다음에는 당신의 삶과, 마지막에는 당신의 그림자와도 사랑에 빠진 나머지 당신에 관한 책을 번역하기에 이른 누군가가 제게 “아사와의 책을 읽으면서 당신이 떠올랐어요.” 하고 열띤 음성으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저와 닮았다니요, 무엇 때문에요?” 반문하며 저 역시 당신의 발자취를 쫒을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당신의 이미지에, 놀라운 삶에, 발자국에까지 차례차례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겨우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내고는 안도합니다. 그것은 바로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 둘 다 느낀 실망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이렇게 그 일화를 소개합니다. 당신이 직접 낳고 입양한 여섯 아이들은 자라서 어느덧 하나둘 공립학교에 다닙니다. 아이들은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가, 부활절에는 토끼가 그려진 종이들을 집으로 가지고 오기 시작합니다. 엄마인 당신은 크게 실망합니다. 수용소(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은 자국에 거주하는 일본 출신 국민을 잠재적 위험 요소라 여겼고 그들을 한데 모아 수용소로 보냈다) 생활 중에서조차 그곳에서 함께 살던 일본계 미국인 예술가들로부터 전문적인 가르침을 받았고, 독일 바우하우스 출신의 요셉 알버스 (Josef Albers)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스승으로 있었던 실험적인 블랙마운틴 대학 (Black Mountain Collage)에서 배움을 이어갔기에, 40대의 루스는 60년대에도 여전히 구태의연한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학교 예술 교육의 현실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쁘게 색칠이나 하라고 준 미술교재에서 당신은 전쟁을 상기시키는 철사라는 날카롭고 강한 재료의 연약한 힘에 매료된 작가이자 여섯 아이의 엄마에서 더 나아가 어린이 예술 교육에 몸을 던져야 하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안타깝지만 밀레니엄을 20년이나 훌쩍 지난 지금의 한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지에서 비롯된 경직된 공교육의 토대 위에 입시 지상주의와 상업주의까지 가세해 혼탁합니다. 물을 흐리는 목록에 앞으로 어떤 단어들이 더 추가될지 알지 못하는 채로 이곳에서 저 역시도 과거의 그곳에서 당신이 그러했듯 뻔하고 피상적인 것들이 만연한 교육 현실에 종종 실망했습니다. 그 실망감이 저 같은 사람까지도 교육이라는 낯선 세계에 뛰어들도록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게 당신처럼 크게 빛나는 별과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자칫 과대망상증으로 오해 살 만하지만, 표류 상태를 이어가는 꼭 필요한 일종의 자기 최면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해하실는지요. 하지만 당신을 알아갈수록 우리의 공통점은 단 여기까지일까 걱정됩니다. 저는 길을 영영 잃은 건 아닌지 문득문득 불안합니다.



당신에게는 밸리 걸스(Valley Girls)라는 든든한 지지자이자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술가나 재주 많은 동네 친구들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가르칠 만한 기술을 새롭게 익혀서 들어온 아줌마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의 무리였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고작 몇 푼 안 되는 예산으로 학교에서 저질 예술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아마추어 정신으로 무장한 그들은 단호하고 드세게 교육청에, 돈 있는 사람들에게 공립학교 예술 교육을 지원해달라고 도움을 청합니다. 교사들이 소위 교사 자격증도 없는 밸리 걸스 자원봉사자들에게 눈을 흘기며 불평해도 개의치 않고 교실을 점유해서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지나치게 활발하고 산만한 아이들조차 쉬는 시간을 반납하고 작업에 몰두하는 기적 같은 일도 생깁니다. 이 용감한 아줌마 걸스와 루스 당신은 삶의 많은 부분을 자신들의 자녀들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에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제게도 경험과 지혜를 아낌없이 나누어줍니다. 그들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저는 자신이 누구인지, 도대체 누구를 닮아야 할지조차 알지 못하는 채로 고독하게 홀로 길을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일회용 기저귀도 없던 시절, 여섯이나 되는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밤낮으로 그림을 그리고 조각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공립학교의 예술 교육을 혁신했습니다. 저도 젖을 물리고 부엌일을 하면서 펜과 철사를 손에서 놓지 않는 흑백의 얼굴을 떠올리며 용기를 냅니다. 로봇 청소기와 식기세척기, 빨래 건조기, 아이폰에 맥북까지 어깨와 가슴, 허리춤에, 등짝에 단단히 차고 무장합니다. 이쯤 됐으니 이제 남편과 자식, 두 조카와 개 한 마리, 마지막으로 다섯 마리의 닭 식구까지 전투적으로 돌볼 자세가 되었습니다. 부지런히 작은 텃밭을 일궈 수확하고 밀가루 묻은 거친 손으로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을 꺼냅니다. 오후에는 반가운 꼬마들이 단비처럼 지저귀면서 작업실로 들어옵니다. 자식 하나 좀 다르게 키워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조카 둘에 동네 아이들까지 여러 무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걸레를 구석에 집어 던지고 엄마에서 고모로, 이제 또 다른 이름으로 변신합니다. 어린이들의 에너지로 섬에는 무지개가 떴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상태에 따라 비가 올 수도 있으니 잘 준비하되 가변적인 상황에 대비하는 즉흥성과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잘 풀리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개념적인 주제도 참으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날도 있습니다. 추상적이고, 충분히 실험적이지만 움직이기에 안전한 틀을 갖춘 과제, 그건 우리 모두를 활짝 웃게 합니다. 이런 걸 만들고 실행해보는 게 저에게는 최고의 놀이입니다. 잘 지은 절묘한 과제는 놀라운 발견을 낳기 마련입니다. 어린이들은 그 안에서 실수를 경험하고, 작업은 애초 계획에서 벗어나 옆길로 빠집니다. 흥미로운 대화가 일어납니다. 어쩌다 보니 결국 각기 다른 것을 실험하고 발견하고 있습니다. 퍼포먼스의 요소를 다분히 포함하는 동시대 미술 현상처럼 이 살아있는 작업실에서 그들은 모두 퍼포머가 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이때 저의 역할은 훌륭한 관객이자 예리한 비평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온전한 존재로 보는 최고의 관찰자가 되어, 하나하나 의미를 찾아 이름을 붙여보려 애씁니다. 그렇지 않으면 빛나는 보물은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1분짜리 조각 워크숍  어윈 웜 (Erwin Wurm)의 작업 <1분짜리조각>에 영감을 받아 실행한 워크숍이다. 일상적인 재료 몇 가지와 몸을 이용해 1분 동안만 존재하는 조각을 만들었다. 아이디어와 즐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무한히 많은 종류의 재미난 조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평소에 손재주가 없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은 이 시간을 더욱 즐겼다. 사진 안소영 



결국 여행을 떠난 후에야 집의 참 의미를 찾는 것처럼 저는 조금 멀리서 제 과거와 미래에 대해 많은 걸 조망할 만한 시선을 가집니다. 멈췄나 싶었지만 흔들거리는 여정은 불확실성 속에서 더 가볍고 부드러워졌습니다. 가장 큰 수확은 든든한 지지자들을 만날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이 년 전 저였다면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를 그들은, 모두 과거에서 또는 먼 곳에서 왔지만 하나같이 당신의, 그리고 ‘밸리 걸스’의 친근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루스, 제게 나만의 밸리 걸스도 언젠가 나타날까요? 아니면 제가 누군가의 밸리 걸스가 될 수도 있을까요? 당신의 유산에 감명받고 행동하고자 하는 그런 사람이 여기에도 있을까요? 분명 우리 말고도 학교에서 인쇄해 주는 도안에 색칠해서 가져오는 우리 아이들의 어버이날 기념 카드에 적잖이 실망했던 학부모들이 있을 텐데요.



바이, 이제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걸레질을 멈추고 행동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당신이 어린이들과 하곤 했던 베이커스 클레이 (baker’s clay)를 재료로 사용하면서 루스, 당신의 삶과 작업을 이 꼬마들에게 소개하려 합니다. 이 시간이 제2의, 제3의 루스를 탄생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소홀히 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시간이 지체되기 전에 밀가루와 소금을 구하러 나가야겠습니다.


2021년 8월 27일

파주에서

안소영


추신.

고릴라 걸스, 쌍둥이 걸스, 양념 걸스, 드림 걸스…… 루스, 앞으로 만나게 될 우리는 과연 어떤 이름으로 불릴는지요. * 루스는 미국 출신의 예술가, 루스 아사와 (Ruth Asawa 1926-2013)를 말한다.






안소영 / 프로젝트제로 | 파주에 위치한 ‘짓거리’라는 대안공간에서 워크숍을 통해 사람들과 만난다. 코로나19 이후 ‘랄랄라예술학교’라는 이름의 워크숍에 전념하며 어린이들과 예술적 행위를 통해 실험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계정 @projectzero.pa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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