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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

백남준아트센터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



정윤회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 작품 이미지 백남준아트센터 



음악가 백남준 

지난 4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존 케이지의 작품 한 곡이 무대에 올랐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이 교향악축제를 위해 준비한 공연으로, 한국의 대형 음악당에서 케이지의 곡이 연주된 것은 수년만이었다. 여느 공연에서처럼 연주를 시작하기 전 관현악단과 바이올린 협연자는 세심하게 악기를 조율했다. 지휘자는 악장이 끝날 때마다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하지만 연주가 진행되는 4분 33초 동안에는 아무런 악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케이지의 <4분 33초>는 음악사에 전환점을 만든 작품으로 여겨진다. 케이지는 모든 악장에 연주를 멈추고 쉬라는 뜻의 ‘TACET’만을 적어 놓았다. 악기 연주가 멈춘 음악의 시간은 관객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로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1950년대 아방가르드의 흐름 속에 있던 젊은 예술가들은 케이지가 제시한 새로운 작곡의 개념에 주목했으며, 그를 선구자나 모범으로 여기곤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당시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청년 백남준도 있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 전시 영상 | 출처: 백남준아트센터 유튜브 


‘비디오 아티스트의 아버지’라는 이명으로 잘 알려진 백남준은 다채로운 면모를 가진 인물이다. 전위적인 이론가이자 동시에 기술자였고, 행정가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야인의 풍모를 숨기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되기 이전에 그는 작곡가였으며, 연주자였다. 1950년대까지도 백남준은 다소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올린 변주곡 따위를 작곡한 바 있으며, 이후에도 전위적인 형식의 교향곡과 기악곡 등을 여러 편 남겼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의 형식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오랜 기간 이어갔던 것이다.


케이지를 넘어 ‘음악의 전시’로

올해는 백남준이 태어난 지 90년이 된 해이다. 동시에 <4분 33초>가 처음 발표된 때로부터 꼭 70년이 흐른 해이기도 하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지난 3월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을 통해 백남준의 교향곡 2번을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아트센터 2층 전시실에서 열린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은 백남준이 1961년에 만든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을 국내 최초로 시연하는 전시이다.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은 백남준의 예술적 시원이라고도 평가받는다. 그 규모와 복잡함에서는 젊은 백남준이 구상했던 새로운 음악의 방대함을 엿볼 수 있다. 비록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한 번도 연주되지 못했지만, 이후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과 위성방송 〈바이바이 키플링〉에서 이 작품의 개념들이 변주되어 나타난다.


아트센터는 올해 초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5대 목표를 공표한 바 있다. 심층 학예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전위적인 전시 기획, 공생과 공유의 가치를 나누고 즐기는 페스티벌 기획, 국내외 작가 및 기관과의 협업 경로와 방식 다각화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야심 찬 목표에 걸맞게 지난 1월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를 열고 아트센터가 보유한 방대한 아카이브를 대중에 공개했다. 올해 첫 전시였던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는 백남준의 2000년대 레이저 작업으로부터 시작해 1960년대 활동까지를 되짚어갔으며, 《함께 만드는 음악의 전시》에서는 1963년 열렸던 그의 첫 개인전을 VR로 재현하며 연구자들의 협업을 더했다. 차례로 이어진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는 그보다 더 앞선 시기,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가던 백남준에게 주목한다.


백남준은 독일에서 머물던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유럽과 미국의 여러 예술가를 만나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가 케이지를 만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백남준은 당시 새로운 음악의 형식을 찾으려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1959년에 선보였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는 이 같은 그의 노력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백남준은 무대를 위에 올라 달걀을 던지고 유리를 깨는 등의 행위를 이어갔는데, 이는 소리와 물리적 행위를 함께 엮어 콜라주 하는 것이었다. 공연은 앞서서 길을 갔던 케이지에 대한 백남준의 찬사인 동시에, 그를 넘어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 전시 전경


전시 《완벽한 최후의 1초》가 구현한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은 그로부터 2년 뒤에 작곡되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악보는 후에 백남준이 다시 적은 것으로, 글자와 도형만이 빼곡한 한 장의 종이이다. 악보에는 마치 방처럼 보이는 16개의 사각형이 그려져 있으며, 거기에 더해 방의 구성하는 요소들을 글로 적었다. 각각의 방에는 여러 소리와 사물, 감각을 자극하는 장치나 살아 있는 생물 등이 다채롭게 배치되어 있거나, 혹은 아무것도 없다. 백남준의 표현을 따르자면 “만지기, 놀기, 듣기, 발차기, 채찍으로 때리기가 모두 포함된 토털 매체”를 교향곡으로 그려낸 것이다.


관객이 만드는 ‘완벽한 최후의 1초’

아트센터는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의 악보를 전시로 만들기 위해 7명의 동시대 예술가들과 함께 협업했다. 악보에 그려진 16개의 방 중 15개는 변칙적인 형태로 전시장 곳곳에 충실하게 구현되었다. 송선혁은 백남준이 글로 지시한 여러 소리를 모아 전시장 전반에 배치했고, 권용주, 김다움, 문해주, 송선혁, 지박, OC.m 등은 백남준이 남긴 불분명한 기호와 지시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작업을 구축해 각각의 방을 채웠다. 백남준이 악보에 아무런 표시도 없이 빈 사각형으로 둔 나머지 하나의 방은 전시장 곳곳에 녹여냈다. 무엇이든 가능하기에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이 방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의 자유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 전시 전경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악보의 구성과 지시가 모호한 만큼, 이를 관객의 눈앞에 만들어낸 아트센터의 해석은 전시에서 더욱 부각된다. 백남준은 이 곡의 악보 한곳에 ‘더 필요할까? (Need more?)’라고 자문하듯 적어두었는데, 아트센터가 전시장 안에 작품을 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와 같은 질문들에 답해야만 했을 것이다. 복잡한 텍스트를 읽어내야 했으며, 국기와 속옷이 걸린 방 벽에 거울을 붙이는 편이 옳다고 판단해야 했고, 살아 있는 닭을 전시장에 두지 않기로 결정해야 했다. 그 모든 과감한 판단을 이끈 것은 올해 14번째 돌을 맞는 아트센터의 고민이며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백남준이 ‘sutra(?)’라고만 적어둔 낭독의 텍스트를 그가 2년 뒤에 쓴 「음악의 신존재론」으로 대치한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아트센터가 전시를 구현하며 “소리도 움직이고 청중도 움직이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 전시 전경


백남준은 1962년 «데콜라주» 제3호에 게재한 글에서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대해 언급하며 “관객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즐기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앉아서 듣는 연주회에서 관객은 필연적으로 수동적이며,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선택지는 선형적이다. 오직 공간 안에서만 가능한 자유를 위해 백남준은 ‘연주를 포기’했으며 ‘음악을 전시’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아트센터가 《완벽한 최후의 1초》를 통해 제안하는 것처럼, 이 곡을 즐기며 서로 다른 상대적 개념의 ‘완벽한 최후의 1초’를 찾는 것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 전시 전경


지난 4월 교향악축제에서 케이지의 <4분 33초>가 연주될 때 그 자리에 있었던 관객들의 반응은 자못 다채로웠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어떤 이들은 손뼉을 쳤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화벨 소리나 아리랑 노랫소리와 같은 소음을 만들어냈다. 대다수 관객은 뜻 모를 웅성거림으로 연주에 참여하며 곡을 즐겼다. 반세기 전 예술가들의 부단한 노력이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완벽한 최후의 1초》는 아트센터가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의 지휘이자 연주이다. 관객들이 함께 발맞추어 참여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지만, 혹여 그렇지 못하더라도 아직 실망하기는 이르다. 그조차도 자신의 미술관이 2032년까지는 할 일이 있을 것이라 믿었으니 말이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의 리뷰를 지지씨 플랫폼에 소개합니다. 자세한 정보는 아트센터 누리집과 지지씨를 참고하세요.  지지씨 보러가기 


information

  •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

    장소 / 백남준아트센터 제2전시실

    기간 / 2022.3.24-6.19

    참여작가 / 계수정, 권용주, 김다움, 문해주, 송선혁, 지박, OC.m

    낭독 / 백현진, 선우정아, 양혜규, 이랑, 이창섭, 장기하

    기획 / 한누리

    주최 및 주관 /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문화재단

    협찬 / 노루표페인트

    문의 / 031-201-8545

    누리집 / njp.ggc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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