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다산의 숲, 열수의 강

남양주시로 떠난 자전거 여행

푸르고 또 푸르다

겨울의 남양주를 상상하기 어렵다. 남양주는 내내 여름이어야 할 것만 같다. 초록으로 만발하는 여름의 기운이 마음까지 푸르게 물들이는 고장이다. 자연의 푸름으로 따지면 남양주와 이웃한 가평과 양평, 포천도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 남양주는 초록의 선이 좀 더 굵고 호방한 기세를 가졌다고 할까. 남양주의 강변길을 시속 15km로 페달을 굴리고 숲길을 시속 4km로 명랑하게 걸어본 이라면 그 느낌을 잘 알 것이다. 남양주를 두 단어로 표현하면 숲과 강이다. 전국토의 70%가 산지인 대한민국에서 어느 땅에 숲과 강이 없겠냐마는 남양주의 숲과 강은 더욱 특별하고 조금 더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으로 찬탄할 뿐이다. 기왕이면 남양주에서 나고 자라 묻힌 인물이 고향 자랑을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리하여 남양주의 산천 소개는 필자가 아니라 다산 선생에게 부탁할 작정이다.

현대에 와서 정약용의 호 다산茶山은 정약용이라는 이름 석 자보다 더 유명하다. 다산이 누군가의 호인지 모른 채 단지 지형지물의 이름으로 부르는 이도 부지기수일 테다. 다산길, 다산생태공원, 다산신도시, 다산초등학교 등 조금 비약하면 남양주시 내 오만 곳의 이름이 다산이다. 물론 신도시가 들어선 다산동에 국한되긴 하지만 한때 남양주시의 명칭을 다산시로 바꾸자는 여론이 있었을 만큼 다산은 이름 그 자체로, 또 이름의 주인공인 정약용이라는 실존 인물로 남양주시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사실 타 지자체명에 방위가 붙은 시명市名은 전국에서 남양주가 유일하다보니 개명 여론에 좀 더 힘이 실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남양주가 양주의 하위 지역으로 여겨진다거나 양주보다 지명도가 낮진 않다.


여하튼 명칭 개정은 시민들 간의 의견이 나뉘고 행정, 재정적으로 여러 절차와 문제가 동반되는 일이라서 현재로선 이행 가능성이 낮다. 따지고 보면 실제 다산은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의 만덕산을 가리킨다. 정약용은 만덕산 기슭, 다산초당이라 편액을 써 붙인 작은 초가에서 책을 쓰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만덕산을 다산이라 한 것은 산에 야생 차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그 자신도 차를 즐겨마셨고 특히 아들처럼 친구처럼 지냈던 초의선사에게 다도의 세계를 열어준 이였다. 그러니 다산이란 호가 정약용에게 딱히 어색하진 않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정약용 스스로가 자신을 다산이라 칭한 적은 많지 않다. 정약용이 회갑 때 직접 쓴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도 다산 정약용이 아니라 사암俟菴 정약용이라고 쓰여 있고 후손들이 정리한 정약용의 연보는 다산연보가 아니라 사암연보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다산이 정약용의 대표적인 호로 불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정약용이 다산초당에서 머물던 시기는 그의 75년 인생에서 10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다산도 사암도 아닌 ‘열수洌水’로 정약용을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열수는 정약용이 기록한 한강의 본래 이름이다. 한강의 한은 한나라 한자를 쓰는데 정약용의 고증에 따르면 원래 한강은 열수, 북한강은 저수, 남한강은 습수였다고 한다. 이 고증이 맞고 틀림을 떠나 정약용 인생에 한강은 꽤 특별한 의미여서 열수 정약용도 퍽 어울린다는 의견이 있다. 다산으로 공고해진 정약용의 호가 다른 명칭으로 대중화되긴 어렵겠지만 어찌됐든 그의 호에 산도 있고 물도 있어 반갑다. 남양주의 숲을 말할 땐 다산을, 강을 이야기할 땐 열수를 떠올리면 되겠다. 덧붙이면 정약용의 호는 스무 개가 넘는다. 대부분 자신이 지은 것으로 때와 상황에 맞춰 수시로 바꿔 썼고 또 그렇게 불렸다. 그가 시류의 변화를 늘 주시하고 대응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다산의 물길, 두 바퀴로 달리다

‘가이드’ 정약용과 만날 장소는 팔당역이다. 팔당역 주변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여러 곳이다. 자전거는 다산이 세상을 등지고도 거의 반세기가 지나서야 조선 땅에 들어왔으므로 그에게는 낯선 신문물이다. 그러나 정약용은 신문물과 신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받아들여 발전시키는 능력 또한 탁월했으니 자전거 타기쯤은 금방 익히고 즐길 듯하다. 남양주는 ‘자전거 라이더들의 성지’다. 무장한 라이더들에게 주눅들 필요는 없다. 그저 물길 따라 강바람 따라 즐겁게 페달을 굴리면 그만이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잠시 역전 박물관에 들러도 좋겠다. 팔당역 앞에 자리한 남양주시립박물관이 남양주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당연히 남양주의 마스코트 정약용에 대한 소개도 자세히 되어 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풍경도 사람도 알고 만나면 더욱 사랑스러운 법이다.

자전거는 내내 강을 따라간다. 정약용과 함께 선 출발지 팔당역은 남한강자전거길의 출발점 혹은 도착점이다. 남한강자전거길은 팔당대교(팔당역)를 출발해 능내역–북한강철교–양평군립미술관–이포보–여주보–강천보–비내섬–목행교를 지나 충북 충주 탄금대까지 이어지는 136km의 짧지 않은 코스다. 이 장에서는 남양주를 소개하기 위해, 그리고 가이드 정약용 선생의 안내에 따라 초반 10km만 달리려 한다. 팔당역에서 능내역을 거쳐 운길산역까지 이르는 길이다.

사실 이 구간이야말로 팔당호의 수려한 경치를 품고 있는, 남한강자전거길의 하이라이트이자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길은 남양주8경 중 1경에 해당하는 정약용유적지를 지나고 남양주의 ‘올레길’로 불리는 20.1km의 다산길과 겹친다. 볼거리가 많고 역사적 지층이 두터운 곳이라 시속 15km의 자전거가 아니라 시속 4km의 두 발로 걸어도 좋은 길이다. 10km의 구간이 끝나는 운길산역에서 핸들을 틀면 남양주8경 중 3경인 북한강자전거길이 이어진다.

햇빛 머금은 한강이 유난히 찬란하다. 강 양쪽으로는 울울한 산들이 이어진다. 남양주의 한강은 남양주만의 한강이다. 서울의 한강과 김포의 한강과는 그 풍경이 다르다. 일단 건물들이 보이지 않으니 숨통이 트인다. 이대로 달리면 충주는 물론 춘천까지도 금방 닿을 것만 같다. 회색빛 인공구조물은 7km 쯤 달리면 보이는 팔당댐뿐이다. 자전거길이 어쩌면 이리도 완만하게 잘 트였을까 싶을 때 터널과 작은 폐역이 나타나 실은 이 길이 철로였다는 힌트를 준다. 한때 경춘선 기차가 지나던 봉안터널, 그 긴 그늘을 지나면 얼굴에 맺혔던 땀이 식는다.

터널에서 10분 쯤 더 달리면 옛 기차역의 정취를 간직한 능내역이 보인다. 초행자라면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폐역은 50년 넘게 달렸다던 기차의 일부 차량과 함께 작은 휴게소가 되어 이방인을 맞이한다. 역사 안에는 1960~70년대의 능내역과 능내리 마을을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옛 기차 시간표와 낡은 의자도 그대로다. 주변에는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는 식당과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도 있지만 이곳에 바퀴가 멈추는 이유는 시간의 더께가 앉은 능내역 덕분이다. 가이드 정약용은 즐겁게 자전거를 타다가도 이내 아쉬운 표정을 짓곤 했다. 내심 강변이 아니라 강 위를 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고향과 한양을 잇는 한강 뱃길은 특별했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남양주시 : 다산의 숲, 열수의 강>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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