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연천, 시간여행자가 되는 신비로운 고장

태초의 한탄강, 연천 재인폭포를 찾아서

마치 제주도 온 듯했다. 폭포로 향하는 산책로와 그 주변 풍경이 쇠소깍이나 정방폭포, 정확히 어디와 비슷하다고 콕 짚어 말할 순 없어도 제주도의 지질 명승지 주변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대한민국 최북단에서 최남단 제주도가 떠오른 까닭은 왜일까. 먼저 내륙에서는 보기 드문 지형, 즉 협곡 아래로 흐르는 강과 그 가장자리를 따라 난 산책로 때문인 듯했다. 협곡 지형이 바다로 향하는 하천 절벽이나 해안 절벽을 따라 둘러보는 제주의 명승지와 닮았다. 갖가지 꽃나무를 심은 산책지 주변 조경과 평일에도 붐비는 관광객 또한 이유가 될 것 같다.


연천에는 여러 관광 명소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재인폭포가 제1명소로 꼽힌다. 대중교통 이용자는 방문이 어려운 외진 산자락에 자리함에도 주중, 주말 늘 북적인다. 주변에 상업시설은 전무하지만 폭포 입구에 커피트럭과 푸드트럭 여러 대가 줄지어 서 있다. 협곡 절벽 위, 목재 데크길을 조금 걸으니 수풀 사이로 한줄기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지막한 감탄이 나온다. 한탄강이 아니라 감탄강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나, 실없는 농담이 튀어나올 만큼 아름다운 폭포다. 한탄강의 한탄은 ‘큰 여울’을 의미한다. 부정적 의미의 한탄과는 다른 이름이다.


한탄은 사실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국내외 명승지 이곳저곳 많이 돌았지만 이제껏 재인폭포의 존재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내 견문이 좁았음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남탓을 하면 연천의 대부분 땅은 오랫동안 군사시설보호지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더뎠고 관광지 홍보도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재인폭포를 포함한 한탄강 일대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때도 2020년 7월로, 현재 글을 쓰는 시점에서 작년의 일이다. 재인폭포 역시 군사지역 내에 속했고 오랜 세월 주말에만 외부에 개방해왔다. 폭포 앞을 가로질러 강을 건너는 출렁다리도, 주변 산책로와 안내 팻말도 모두 최근에 설치되었다. 접촉을 차단해 자연이 훼손되지 않는 것이 좋은지 개방이 되어 사람들이 경관의 가치를 아는 것이 좋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허나 내 발은 폭포 앞에 닿았고 나는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좋다’를 연발 중이었다.


재인폭포는 어린 시절 보던 그림동화 속 폭포와 닮았다. 높고 웅장한 협곡 사이에 원형으로 패인 웅덩이, 그곳으로 길고 곧게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 물줄기는 직선으로 맵시있게 빠졌고 웅덩이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웅숭깊다. 폭포의 뒤편은 짙고 울창한 숲이, 지장봉을 비롯한 첩첩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태초의 자연을 표현할 때 등장할법한 풍경이다. 폭포 뒤쪽으로 ‘선녀탕’이라 명명된 작은 소가 있지만 아무래도 폭포의 큰 소가 선녀탕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길이 18m의 폭포는 길고 강한 물줄기로 인해 침식된 폭포 아래의 수심이 5m나 된다. 침식작용은 폭포 아래만 일어나지 않았다.

수십만 년 전, 폭포는 원래 한탄강에 곧바로 물줄기를 떨어뜨렸으나 오랜 세월 침식작용으로 인해 개울의 상류 쪽으로 300m 가량 밀려났다. 또다시 수십만 년이 흐르면 폭포의 위치는 지금보다 더 상류로 올라갈 테고 폭포 뒤쪽의 작은 물웅덩이인 선녀탕이 큰 폭포가 될 것이다. 이 ‘과학적 사실’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아니 환생을 거듭한다 해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할 것만 같은 폭포가 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물이 떨어져 돌을 깎고 돌이 깎여 길이 나는 자연의 순리다.

다만 자전, 공전하는 지구의 움직임을 몸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듯 우리 눈에 얼른 들어오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름의 유래가 된 전설, 폭포 앞에서 줄을 타다 줄이 끊어져 죽었다는 재인才人의 이야기는 가까운 과거의 소식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연천여행은 장장 50만 년 전의 화산활동을 인정하지 않으면 연천의 존재도, 여행의 의미도 무효가 되어버린다.

재인폭포를 시작으로 연천군을 횡으로 흐르는 한탄강을 따라가는 여정 내내, 이윽고 종으로 내려오는 임진강을 만날 때까지 이 땅의 시간은 수십, 수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인공섬과 간척지를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대지가 지구의 역사와 함께 층층이 쌓이고 또 깎여나갔겠으나 그 궤적이 오롯하게 표면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나처럼 눈이 어둡고 암석에 과문하면 바위도 돌멩이도 죄다 비슷해 보여 도통 그 차이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현무암 절벽과 주상절리, 폭포가 곳곳에 있는 한탄강변에선 누구라도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재인폭포의 강렬했던 첫인상처럼 말이다.


폭포에 시선을 주느라 한동안 출렁다리 위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다리가 흔들려 어지럽지만 폭포를 가장 근사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다. 사실 출렁다리 자체로 보면 그다지 반가운 설치물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국내의 바다, 산, 강, 호수 등 온갖 자연 관광지에 출렁다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 천편일률적인 설치물은 해당 장소의 개성을 깎아먹고 자연도 훼손한다. 자연 지형에 다리를 걸고 그 위로 사람들이 오가니 필연적인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인폭포의 출렁다리는 폭포와 그 주변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라서 마냥 비난할 수도 없다. 출렁다리의 유행과 별개로 폭포를 관광지로 알리기에 이것 이상의 시설물이 또 있을까 싶다. 구름다리나 높은 전망대 빌딩을 세우거나 짚라인을 걸어두는 것과 비교해도 훨씬 나은 선택이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폭포는 맑고 고아하다. 자연이 내게 폭포 소안으로 들어가도 좋다고 허락한대도 사양해야 마땅한 아름다움이다. 이곳에는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와 천연기념물 어름치가 산다. 폭포도 그 안에 사는 생명도 모두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기후변화 문제가 그렇듯 지난 100여 년간 인간은 부와 편의를 위해 너무 많은 자연을 훼손했다. 인간이 제아무리 지능과 기술로 무장했대도 자연을 파괴한 대가는 자연의 순리로 돌아온다. 우리는 이미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폭포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덕분에 폭포의 앞통수, 뒤통수, 옆통수를 고루 구경할 수 있어 좋다. 안전 문제로 개방을 미룬 산책로도 있어서 앞으로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구역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산책로는 폭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어서 일부 구간은 나무와 절벽에 가려져 있다. 그래도 답답하진 않고 오히려 폭포에 대한 신비감이 증폭되는 듯하다. 검은 현무암 절벽은 제주를 방문했던 이들이라면 새로운 느낌은 없겠지만 이곳이 제주가 아닌 연천이란 사실을 상기하면 새삼 또 흥미롭다. 현무암은 잘 알려진 대로 용암이 굳은 암석이다. 대한민국에서 화산하면 휴화산으로 알려진 한라산(그러나 현재의 학계에서는 활화산으로 분류한다)이 먼저 떠오르고 ‘화산 폭발’은 남의 나라 얘기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과거 언젠가 연천과 가까운 곳에서 화산이 폭발했고 마그마가 산천을 뒤덮었음을 재인폭포의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이 증명한다. 오각, 육각의 주상절리 기둥들로 이루어진 현무암 절벽은 폭포 뒤편으로도 이어진다.


폭포 상류는 다른 곳보다 풍화와 침식이 빨리 진행되어 작은 소가 생겼다. 전술한 선녀탕이다. 지금은 작은 웅덩이지만 그 아담한 형태가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선녀탕의 안내 팻말에는 다음과 같은 소개 문구가 쓰여 있다. ‘선녀탕은 현재는 작지만 지금의 재인폭포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침식되어 붕괴되면 미래의 재인폭포가 형성될 곳이다. 그때가 되면 또 다른 선녀탕이 새로운 재인폭포의 상류에 생겨날 것이다.’ 이는 수십만 년 후에 일어날 일의 예측이다. 100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는 확실한 사실만큼 여지 없이 단호한 과학적 추론이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사는 내게 이 몇 줄의 문장은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연천군 : 오래된 미래>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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