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어떤 박물관은 한 편의 시 같다

남한강변 여주박물관을 찾아서

까맣고 반짝이는 저 거대한 오브제는 무엇일까. 여강 변에 묵직하게 들어 앉은 여주박물관의 첫인상은 몹시 강렬했다. 사면체 건물의 남서쪽 모서리는 잘려 나간 듯 삼각형의 단면이 드러나 있는데 얼핏 보면 강물로 곧 나아갈 듯 한 뱃머리 같기도 하다. 기하학적인 형태,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검은 유리 외 피. 하마터면 박물관인 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민간이 운영하는 현대미술 관이라면 모를까, 그간 숱하게 봐왔던 국공립 박물관 디자인과 견주면 개성 넘치는 외관이다.



여주박물관 여마관 외관


요즘 새로 건립하는 박물관들은 설계에 무던히도 신경 쓴다지만 여주박물관은 앞으로 개관할 종합박물관들과 비교해도 도드라진 생김일 것 같다. 그렇다고 주변 환경과 조화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옛사람들에 게 강에서 길었다고 해도 믿을지 모른다. 황마와 여마가 나온 곳이 맞은편 마 암이 아니라 이 건물이라 해도 수긍할 것이다. 검지만 투명한 이 건물은 푸른 하늘과 여강을 반영한다. 자연을 그대로 흡수한 것처럼, 건물 외벽으로 구름 이 지나가고 물결이 찰랑인다. 박물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한 동의 건물에 여 주를 담아내기 위해 고민했을 건축가와 건축주의 결과물에 박수를 보냈다. 잘 지은 건물은 때때로 오랫동안 눈으로 음미하고 싶은 한 편의 시詩와 같다.



여주박물관 여마관의 측면. 박물관 광장에는 여마관의 잘린 듯한 모서리가 분수대로 연출되었다.


여주박물관의 전신은 1997년 문을 연 여주군향토사료관이다. 2010년 여주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2016년 건물 한 동을 새로 올려 본관으로 삼 고 ‘여마관’이라 이름 붙였다. 원래 있던 박물관 건물은 ‘황마관’으로 부른다. 여주박물관을 마암의 현대식 버전으로 봐도 좋겠다. 심지어 원조 마암보다 훨 씬 크고 친절하다. 마암의 가치를 격하시키려 하는 말은 아니고 그만큼 이 박물관이 여주의 상징적인 장소로서 손색없다는 의미다. 거기에 어수선한 마암 주변이 정비되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



여주박물관의 옛 건물. 현재는 '황마관'으로 별도의 기획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여주박물관 여마관 내부에 들어서고 또 한 번 기분 좋은 시각적 충격을 받았다. 박물관은 강가에 있지만 건축가는 건물이 실제로 물에 떠 있는 느낌 을 연출하기 위해 건물 기단부를 풀장처럼 만들어 물을 채웠다. 로비에 들어 서면 마주하는 바깥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통창 밖 수면은 거울이 되어 하늘을 그대로 비추고 반영된 하늘은 여강의 물길과 이어지는 착시를 일으킨다. 인공의 시설물이 자연을 끌어들인 영리한 방식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창가에 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 전시 관람을 미룬 채 긴 시간을 그곳에 머물렀다. 여주박물관은 특정 용도를 수행하는 건물이기 앞서 풍경 속 조형물이다.



창밖으로 하늘을 반영하는 수면이 조성된 여마관의 로비 풍경이 근사하다. 


로비 중앙에는 커다란 비신도 자리하고 있다. 고려 초 국사 원종대사 찬유 를 기리기 위해 975년 고달사에 세운 원종대사탑비다. 1915년에 무너져 여덟 조각으로 깨진 비신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 오다 2016년 여주로 귀향했다. 비신을 감싼 귀부받침돌와 이수머릿돌는 고달사지에 남겨져 있다. 복원을 거 친 비신은 비록 귀부과 이수 없이 누워 있는 신세지만 장엄한 분위기가 서려 있어 관람객을 맞이하는 로비 전시물로는 꽤 어울려 보인다.



여마관 로비에 전시된 원종대사탑비의 깨진 비신 


주 전시실은 여마관 2층이다. 상설전시 <여주, 여강에 새긴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여주 역사를 여강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흔암 리 선사유적지, 고달사지, 파사성, 신륵사 등 여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적에 대한 설명과 그간 발굴된 가마터를 통해 여주 도자의 역사도 살펴볼 수 있다. 여주에서 꽃 피운 불교문화와 원경왕후 민씨, 정순왕후 김씨, 명성황후 민씨 등 여주 출신의 조선 왕비들에 대한 소개도 흥미롭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 인 영녕릉에 대한 전시는 구관인 황마관에서 둘러볼 수 있다.


여주박물관 여마관 전시실 내부


여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지만 지명을 건 종합박물관은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기 전 탁월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땅의 윤곽과 내력을 더듬고 그 안에 서도 땅심, 인심이 솟는 자리를 알고 톺아보기에 박물관만한 곳이 또 없다.

여주 여행의 안내자는 당연히 여주박물관이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1권 『우리들의 캠퍼스- 경기 남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여주시 : 왕과 강>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여주박물관

    주소/ 경기 여주시 신륵사길 6-12

    운영시간/ 9:00~18:00 월 휴관

    누리집 / www.yeoju.go.kr/museum

    입장료/ 무료

글쓴이
걷고쓰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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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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