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수만 년 후 우리의 후손은 여전히 폭포를 감상할까

포천 비둘기낭폭포를 바라보며


한탄강 하늘다리에서 비둘기낭폭포는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하늘다리가 ‘여기 좀 보세요’하고 개방적으로 열린 모양새라면 비둘기낭폭포는 안내 팻말을 따라 골짜기 깊숙이 들어가야만 보이는 폐쇄적인 위치다. 걸어왔던 평지에서 한참을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그 모습이 드러난다. 깊고, 또 깊다. 그래서 예전에 전쟁이 나거나 도적 떼가 몰려오면 마을주민들이 비둘기낭폭포로 대피했다고 한다. 주변 절벽이 둥그렇게 침식되어 웅덩이가 우물처럼 패어 있고 주상절리 절벽 사이로 폭포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폭포 옆 절벽은 좀 더 안쪽으로 침식되어 동굴이 형성되어 있고 동굴 입구 천장에서도 가는 물줄기가 직선으로 떨어진다.




인공적으로 못을 만든다 해도 이런 아름다움은 모방할 수 없다. 짙은 에메랄드빛 물과 숯으로 장식한 듯 첩첩이 소沼를 둘러싼 현무암 절벽, 일부러 물길을 낸 듯 갈라진 절벽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 그리고 얼굴에 점을 찍듯 멋을 부린 한 가닥 물줄기까지…. 깊은 골짜기에 숨겨진 폭포는 신비로움의 극치다. 이 아름다움을 높은 산에 오르지 않고도 마주하다니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실은 비둘기낭폭포가 초면은 아니다. 오래 전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 본 적이 있다. 화면 속 인물들이 서 있는 배경이 아름다워 어디인지 궁금했는데 검은 절벽을 보고 제주도 어디겠지 하고 말았다. 알고 보니 제주도가 아니라 포천 비둘기낭폭포였다. 비둘기낭폭포는 불무산에서 발원한 대회산천의 끄트머리에 현무암이 침식되어 만들어진 협곡이다. 이 물은 흘러서 곧 한탄강과 합류한다. 원래 한탄강변에 있던 폭포가 수십만 년 동안 침식으로 인해 뒤로 물러나면서 깊은 계곡과 함께 아늑한 보금자리를 형성한 것이다. 연천 재인폭포의 형성 과정과 동일하다.




비둘기낭폭포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겨울마다 수백 마리의 산비둘기가 이곳에 서식했기 때문이라는 설, 지형이 비둘기 둥지처럼 움푹 들어간 주머니 모양이라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나는 비둘기 서식의 여부보다 이곳을 찾았을 옛 사람들이 궁금하다. 폭포에 뛰어들어 몸을 씻고 동굴 안에 들어가 민물생선을 구워먹었을 구석기인들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실제로 비둘기낭폭포 일원에서는 4만 년 전부터 구석기인들이 살았다는 여러 증거가 발견되었다. 폭포의 지층 사이에서 약 1,200점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중 1,000여 점이 연대적으로 4만 년 전에서 2만 5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중생대 화산 쇄설물이 굳어져 만들어진 응회암은 이 일대에만 분포하는 암석으로 돌이 물러 가공이 쉽다. 구석기인들은 응회암을 갈아 도끼, 찍개, 긁개, 밀개 등 다양한 석기를 만들었다. 그들에게 비둘기낭폭포는 주거지나 다름없었을 테니 ‘아름답다’는 감흥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항상 마주하는 일상 풍경에 감탄하는 일이 흔치 않듯 말이다. 그들은 비둘기낭폭포의 일부였을 것이다. 폭포를 오가는 새들, 물 안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물가에 살아가는 단지 하나의 개체였을 것이다. 폭포에 날아든 비둘기가 어색하지 않듯, 폭포 옆에서 먹고 자는 인간의 모습도 아주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이제 폭포를 갤러리의 정물화처럼 바라본다. 비둘기낭폭포 저 안쪽 동굴에서 돌을 갈던 인간이 수만 년이 흘러 폭포 밖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서 폭포를 ‘감상’한다는 사실이 퍽 흥미롭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바위는 계속 깎여나가고 있다. 폭포는 시나브로 뒤로 밀려가는 중이며 인간은 그보다 빠른 속도로 진화 중이다. 수만 년이 또 흘렀을 때 비둘기낭폭포는 여전히 아름다운지, 그 앞에 선 인간은 여전히 감상 중인지 궁금하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포천시 : 자연 속의 인간, 인간 손의 자연>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포천 비둘기낭폭포

    주소/ 경기 포천시 영북면 대회산리 415-2

    입장시간/ 매일 09:0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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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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