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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쓰는사람

절밥 먹으러 연주대에 오른다

과천 관악산 연주암으로 향하는 길



연주대를 향해 관악산을 오른다. 최종 목적지는 연주대지만 그 아래 있는 연주암을 먼저 둘러보고 맛있는 점심 식사도 할 요량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르내리는 관악산답게 등산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일명 깔딱고개라 불리는 힘든 구간도 오르막길이 이어질 뿐 급경사나 험한 암릉은 없다. 전체 구간의 3분의 1쯤 걸으면 동글동글한 서체로 석각한 ‘나무아미타불’ 바위가 보인다. 같은 사람이 새긴 것으로 보이는 두 번째 나무아미타불 바위가 보이면 연주암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다. 수풀 사이로 염불 소리가 은은하게 퍼졌다. 요즘 세상에 차로 접근할 수 없는, 오롯이 두 다리로 걸어야 닿을 수 있는 산사는 드물다. 그렇기에 진정한 산문(山門)으로 접어든 이방인의 가쁜 숨과 뜨거운 땀은 더욱 값지다. 산행을 필수로 해야 닿을 수 있는 사찰로는 고양시의 북한산 중흥사도 있는데 산행 난이도는 연주암이 한 수 위다.



상공에서 바라본 관악산 연주대와 연주암 풍경


연주암은 관악산 봉우리 바로 아래, 해발 629m의 산중 사찰이지만 낮 동안은 대체로 북적거린다. 연주대에 오르는 사람, 연주대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쉼터로 삼는 절이라 그렇다. 매점과 자판기가 절마당 안에 있는 데다 도량 입구 쪽에 있는 천수관음전과 요사채의 툇마루는 등산객들의 전용석이 된 지 오래다. 종교시설이니 다들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하는 분위기지만 여러 명이 모이면 속삭임도 까치발도 큰 소리가 된다. 산사의 고요는 하룻밤을 묵어갈 때 체감할 수 있다. 산을 넘나들며 지역 간 이동을 했던 옛사람들은 산길을 걷다 날이 어두워지면 절을 역원驛院 삼아 묵어가곤 했다. 밤의 연주암은 예나지나 그 고적한 분위기가 비슷할 듯싶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산 아래 펼쳐진 화려하고도 광활한 도심 야경일 것이다.



연주암 템플스테이 이용자는 추가금액을 내고 케이블카를 탑승해 절을 오르내릴 수 있다. 


그렇다고 구태여 야간 산행을 할 필요는 없다. 연주암은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어서 관악산 절집에서의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등산객 끊길 일 없는 관악산이어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절이다 보니 사찰에서도 템플스테이와 여러 행사로 포교에 신경 쓰는 모양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방문객에게는 나름 특별한 ‘우대권’이 주어지는 데 바로 케이블카 이용이다. 과천향교코스 초입에 KBS 송신소와 케이블카 정거장이 있다. 케이블카는 본래 KBS와 기상관측소, 연주암 관계자만 이용하는 미니 케이블카로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는데 템플스테이 이용자에 한 해 탑승할 수 있다. 무료는 아니지만 서울대공원 리프트 가격보다 훨씬 합리적인 금액이기에 등산을 포기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좋다!)



조촐하지만 건강하고 든든한 한 끼, 연주암 공양 


사실 연주암은 무료 점심공양으로 이름난 절이었다. 절밥 축내러 관악산에 오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많은 절이 공양 시간에 맞춰 가면 눈칫밥 주지 않고 공짜밥을 내어준다. 그렇다 해도 차가 오르지 못하는 산꼭대기 암자에서, 그것도 연중 등산객이 붐비는 명산에서 누구에게나 밥을 거저 주는 일은 쉽지 않다. 산나물과 제철 채소가 버무려진 비빔밥 한 그릇에 국 한 대접. 소박한 한 끼지만 땀 흘리고 먹는 절밥은 극락의 성찬으로 비유해도 과함이 없다. 1989년부터 주지스님의 보시정신에서 시작된 연주암 무료 공양은 이후 공양을 통해 일회용 도시락 쓰레기를 줄이자는 자연 보호의 의미가 더해졌다. 그러자 공양하러 올 때 쌀이며 과일, 떡을 이고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는 법, 얻어먹지만 못하는 한국인 심성 덕에 보시도 늘고 덩달아 신도도 늘었다고 한다. (연주암 무료 점심공양은 코로나 이후 중단되었다.)



과천향교  © 과천시


앞서 과천향교가 불이 자주 나서 자리를 옮겼다고 적었는데 풍수학자들에 따르면 관악산은 불火기운이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뜨거운(?) 산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자리가 연주암 터라는 설이 있다. 677년 절을 창건했다는 의상대사가 명당자리를 제대로 알아본 모양이다. 그런데 풍수학상의 명당을 떠나 연주암은 관악산의 상징적인 풍경인 연주대 바로 아래 골짜기에 둥지처럼 자리하고 있어서 풍수지리에 문외한 나도 ‘좋은 자리’라는 걸 알겠다.



연주암 전경 


연주암은 흔히 생각하는 산중 암자처럼 작은 규모는 아니다. 전각도 여러 채고 절마당도 꽤 넓다. 절마당 가운데에는 삼층석탑이 다소곳한 자태로 자리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현대에 새로 지은 전각들 사이에서 홀로 고고히 절의 오랜 역사를 증명한다. 의상대사 창건설은 구전일 뿐이라 확인할 길이 없지만 고려 후기 양식의 삼층석탑이 남아있는 덕분에 천년의 세월을 가늠할 수 있다. 대웅전을 마주 봤을 때 왼편에는 종각과 효령각이, 오른편에는 요사채가 있으며 대웅전 뒤편의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삼성각과 근래에 세운 삼층석탑이 있다. 이 삼층석탑은 연주대에서도 잘 보인다.


효령각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효령대군영정이 모셔져 있다. 효령대군은 불심이 깊어 공공연히 불제자임을 드러내고 다녔던, 태종의 둘째아들이자 세종의 둘째형이다. 불심은 무학대사와 친분이 깊었던 할아버지 태조 이성계로부터 이어받은 모양이다. 효령대군은 첫째형 양녕대군과 함께 연주암에 머물렀다고도 전해지고 1411년(태종11년)에 직접 중건을 명했다고도 전해진다.



연주대와 응진전 풍경 


효령각과 범종각 사이 등산로를 따라가면 도량의 가장 신축 건물인 템플체험관이 있고 템플체험관에서 500m만 더 오르면 연주대다. 연주대에 이르기 전에 연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연주대 절벽과 응진전의 수려한 풍경 아래로 수풀에 가려진 연주암과 관악사가 보인다. 에펠탑에 오르면 에펠탑이 보이지 않아 파리 풍경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듯, 연주대에 오르면 연주대 자체가 보이지 않아 서울과 과천 일대의 도시 풍광을 마주하면서도 조금은 밋밋한 감이 있다. 그러니까 전망대는 연주대에 이르기 전, 연주대 전망대가 사실상 관악산의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포토스폿이다. 여름은 온통 푸르지만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더욱 근사한 운치를 감상할 수 있다.

연주대戀主臺를 가리키는 곳은 정확히 관악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크고 작은 바위가 우뚝 솟아 절벽과 그 위에 축대를 쌓아 만든 평평한 집터다. 원래는 의상대사가 작은 암자를 지으면서 ‘의상대’라고 불렀는데 조선시대에 와서 연주대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연戀’은 그리워한다는 뜻이고 ‘주主’는 주군主君 즉 임금을 뜻하니 ‘임금을 그리워하는 곳’으로 풀이된다. 작명 설화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이곳에 올라 한양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이야기다. 태종이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을 세자로 정하려 하자 효령대군과 양녕대군이 궁을 나와 유람하다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 특히 효령대군은 스님이 되어 연주암에 오래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내려오니, 기실 수행자의 길을 택한 왕자가 지었을 수도 있겠다.



연주대에서 바라본 서울 일대 야경 


화강암봉인 연주대에 오르면 풍경보다 관악산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에 먼저 취한다. 인증사진을 남기려는 등산객들이 표지석 앞에서 자신의 촬영 순서를 기다린다. 불자들은 암봉 가장자리를 돌아 응진전에 먼저 들른다. 바위 사이 좁은 간격을 따라 내려가면 딱 한 칸짜리 전각이 들어설 공간에 맞춘 듯 들어앉은 응진전이 나온다.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좌우협시불로, 그 뒤로 16나한이 모셔져 있다. 혹서기나 혹한기에도 응진전을 찾는 불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도영험도량으로 이름난 연주암에서도 명당이다 보니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들이 절벽 끝으로 모인다. 하물며 가벼운 마음으로 연주대에 오른 나 같은 이도 감히 산을 정복했다 말하지는 못한다. 정상에 올랐어도 망동하지 않고 겸허해지는 까닭은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연주암이 존재하는 덕분이 아닐는지. 그래도 하산 길에 막걸리는 마시고 싶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너머의 도시들- 경기 중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과천시 : 대공원 화양연화>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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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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