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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쓰는사람

560년 된 연밭과 호조벌 산책

시흥 관곡지를 돌아보며


시흥의 여름은 관곡지에서 피운다. 후끈한 열기에도 아랑곳 없이 저 혼자 분칠한 듯 붉고 흰 꽃잎을 피운 연꽃은 우아하기 그지없다. 한 방울 땀은 꽃봉오리를 호위한 커다란 연잎 안에 고여 구슬인 듯 영롱하다. 연꽃이 만개한 7~8월이면 시흥 안팎에서 많은 이들이 관곡지로 몰려든다. 그들은 꽃놀이를 즐기는 진정한 낭만파이다. 불볕더위를 감당하고서라도 꽃을 보기 위해 그늘 없는 연밭에 모여든 사람들이다. 그에 비하면 따뜻한 봄날의 벚꽃놀이는 얼마나 쉽고 가벼운지! 땡볕 아래 서서 진흙 위로 올라온 꽃봉오리를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 연꽃처럼 갸륵하다.




관곡지官谷池는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연못이다. 1463년(세조 9년)에 문신 강희맹이 명나라의 연 씨앗을 가져와 이곳에 연을 재배했다. 이때 그가 들여온 전당홍이라는 연은 우리나라에 없는 품종이었다. 꽃잎은 뾰족하고 그 색은 흰데 꽃잎의 끝부분은 담홍색인 이 연꽃은 발아에 성공해 한반도 땅 널리 퍼졌다. 현재도 관곡지의 연꽃은 대부분 전당홍이다.




강희맹은 조선의 중앙 행정기관인 육조 중 예조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문신이다. 굵직굵직한 국가 편찬사업에서 활약했는데 『국조오례의』, 『신찬국조보감』,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등 조선 초기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주요 서적의 책임을 맡았다. 강희맹의 대표적인 저술서가 『농사직설』과 함께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농서로 꼽히는 『금양잡록』이다. 금양은 경기도 금양현, 지금의 시흥을 가리킨다. 그는 시흥 논밭에서 직접 체험하고 보고 들은 것을 모아 작물의 품종에서부터 농사법, 농사정책, 풍수해 대비 등 농사에 관한 종합적인 실용서를 서술했다.




관곡지는 강희맹의 후손들이 관리를 해온 덕분에 오늘날까지 매년 여름 꽃밭을 이룰 수 있었다. 강희맹은 연밭 옆에 묻혔고 연지 사적비와 정자, 문중 가옥이 연지 주변에 세워졌다. 관곡지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연못으로 담장이 쳐져 있다. 담장 밖으로 후세에 확장한 연밭이 너르게 펼쳐져 있는데 연밭에서 볼 수 있는 연꽃 품종만 100여 가지에 이른다. 가장 흔한 꽃은 백련과 홍련이다. 넓고 둥근 연잎이 물결처럼 빽빽하게 일렁이고 그 사이로 청초한 연꽃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신비로울 만큼 고운 빛깔에 척박한 땅에서 자랐음이 믿기지 않는 보드라운 꽃잎이다. 고랑을 따라 걸으며 수려한 연꽃의 자태를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관곡지 옆 연밭은 연꽃테마파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관곡지는 사유지라서 열린 공간으로써 연밭을 넓혀 테마파크로 조성한 것이다. 테마파크 안에는 시흥시생명농업기술센터가 있고 내부에는 연특산품 전시판매장이 있다. 판매장 안에는 연근가루, 연잎가루, 연잎차, 연잎국수, 연근국수, 연떡, 연한과, 연잎밥, 연식혜 등 시흥에서 생산한 연 가공품이 진열돼 있다. 뿌리부터 머리까지 가공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아낌없이 주는 연이라 할 만하다.




연밭의 성수기는 극명해서 여름이 지나면 꼬박 1년을 기다려야 연꽃을 볼 수 있다. 겨울의 연밭은 마른 연가지만 뒹굴고 있어 황량하다. 겉보기에 그럴 뿐 그네들은 여름만큼 치열하게 또 한 계절을 살아내는 중이다. 여름이 끝난 후에도 시흥의 축제는 이어진다. 갯골과 연밭에 비하면 덜 알려졌지만 시흥에는 호조벌이 있고 늦은 가을에 너른 호조 벌판에서 축제가 열린다. 관곡지와 연꽃테마파크는 호조벌의 일부이기도 하다. 연꽃테마파크 주변은 온통 논밭이다.


호조벌축제는 매화동 주민자치회가 주관하는 마을 축제다. 아무래도 시가 대대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떠들썩하게 홍보하는 축제가 아니다 보니 외부에는 덜 알려졌지만 개최한 지는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2005년 ‘매화축제’로 매화동의 한 교회에서 시작된 축제는 2009년에 호조벌축제로 이름을 바꾸고 한동안 호조벌 걷기와 동네 먹거리 잔치 등으로 소박하게 진행되다가 2016년에 이르러 농경문화축제로 콘셉트를 잡고 행사장도 논으로 옮겼다.




호조벌은 1721년(경종 1년) 때 간석지에 제방을 쌓아 만든 간척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농토가 황폐해지고 백성의 굶주림이 심각해지자 조정은 황무지를 농토로 되살리는 국가사업에 집중했다. 제방을 쌓는 일은 조선의 중앙 행정기관 중 하나였던 호조戶曹가 주관했다. 이들은 지금의 시흥시 포동 ‘걸뚝’부터 하중동 ‘돌장재’에 이르는 약 720m 구간에 둑을 쌓아 바닷물을 막았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농토는 주관 부서의 이름을 따 호조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조벌은 축제가 열리는 매화동뿐만 아니라 미산동, 은행동 등 시흥시 10개 동에 걸쳐있고 축구장 크기의 600배가 넘는 드넓은 면적이다. 호조벌에서 수확한 쌀은 나라 곡간으로 들어가 임금에게 진상되고 백성과 군사의 식량으로 쓰였다. 갯벌에서 논이 된 호조벌은 오늘날에도 시흥의 특산미 ‘햇토미’를 생산한다. 호조벌은 축제장인 매화동뿐만 아니라 미산동과 은행동 등 시흥시 10개 동에 걸쳐있는, 축구장 크기의 600배가 넘는 시흥시 최대의 곡창지대다. 늦을 가을에 호조벌에 서면 드넓은 황금벌판을 만날 수 있다.




호조벌축제는 지난 300년간 이어져 온 호조벌의 역사와 간척사업을 지시한 임금 경종을 기리는 의미를 담아 열린다. 축제는 경종과 호조판서, 사또, 포졸 등으로 분장한 배우들과 취타대, 농악대 등으로 이루어진 거리행진으로 시작한다. 농경문화 체험, 사랑의 쌀 나누기, 주민 노래자랑 등 이런저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허수아비 경연대회’가 인상적이다. 대회에 참가한 주민들이 각자 개성 있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논 위에 세워놓고 그중 제일 독창적이고 재밌는 허수아비를 주민투표로 가린다. 어린이가 만든 것도 있고 농부가 만든 것도 있다. 논 위에 서 있는 각양각색의 허수아비들이 웃음을 유발한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너머의 도시들- 경기 중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시흥시 : 소래, 소금, 호조, 조개>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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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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