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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쓰는사람

양평 용문사, 천년목 바라보며 오래 머물고픈 절

1,100년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살아있는 역사


1,100년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살아있는 역사

절에 부처님이 아니라 나무를 보러 간대도, 한술 더 떠 나무에서 부처를 보았다고 해도 뭐라고 토를 달 사람이 있을까. 그 대상이 용문사 은행나무라면 말이다. 11월이면 나무는 황금빛으로 물든다. 불자라면 황금대불상을 떠올릴만한 수려하고도 웅장한 자태다. 이번 기사를 위해 사찰을 방문한 때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때였다.




황금빛 은행나무를 볼 수는 없었지만 거목을 두른 초록의 무성함은 그 자체로 작은 숲처럼 느껴졌다. 높이 42m, 둘레 14m의 거목이 사방으로 뻗는 푸른 기세가 등등해 노거수(老巨樹)라 부르기가 겸연쩍을 정도다. 그러나 이만큼 오래 산 생물이 주변에 전무하다. 나무의 수령은 1,100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500년 수령의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다음으로 오래 산 은행나무다. 오랜 세월 살아남아 천왕목(天王木)이라고 불렸고 조선 세종 때는 정3품보다 높은 벼슬인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받은 명목(名木)이다. 현재는 천연기념물 제30호. 그러나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인간이 붙인 타이틀 따위가 천년목 앞에서 무슨 소용일까. 1,100년 전이면 통일신라 말이다. 우주의 나이로 보면 그 세월도 찰나겠으나 현대인들에게는 박물관에 가서 유물을 접해도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아득한 옛날이다.




용문사 은행나무의 전설 중에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고 금강산으로 향하다 심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승려 의상대사가 꽃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설, 649년 사찰 창건 후 중국을 왕래하던 스님이 나무를 심었다는 설 등이 내려온다. 나무가 천 번 넘게 열매를 맺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가늠 할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얽히고설켰다. 매년 나무가 맺는 은행은 열 가마니, 즉 800kg에 가까운 양이고 한때는 삼십 가마니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의 은행을 생산해 절을 먹여 살린다고 했을 정도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천년 넘게 살아온 행자목(杏子木) 아래서 또 한 번 아연해진다.


감로수 한 모금하고 정지국사탑까지 가벼운 숲길 산책

용문사는 용문산 기슭에 자리 잡았다. 사찰의 명성이나 일찌감치 관광단지로 자리매김한 주변 환경을 고려하면 큰 규모의 절은 아니다. 창건 시기는 은행나무를 심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전란에 피해를 입고 중창과 재건을 거듭해 현재의 전각들은 나이가 많지 않다. 대부분 1970~90년대에 지은 건물들이다. 그럼에도 사찰에선 천년고찰의 예스런 품위가 느껴진다. 흙을 돋운 자리에 가람을 배치해 은행나무와 키를 맞추고 전각들의 지붕 높이를 맞춰 잔잔한 풍경을 만들어낸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용문사 은행나무가 큰 볼거리임은 분명하지만 아무리 나무의 위용이 넘친들 도량이 나무에 가려져 뒷전이 되진 않는다.




사천왕문을 통과하면 가파른 계단이 등장하는데 계단을 오르는 내내 경내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은행나무만을 우러러 보게 된다. 은행나무 앞에서도 절은 지붕들만 겨우 보이는 정도다. 한 번 더 계단을 올라야 그제야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중정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온다. 절 마당에서 보이는 은행나무는 고개를 들지 않고도 꼭대기까지 눈에 담을 수 있으며 주인공이 아닌 사찰의 수호목으로 위치한다. 다만 나무 왼편에 세운 높다란 피뢰철탑이 눈에 거슬리는데 낙뢰로부터 은행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미워할 수가 없다. 수호목도 수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경내로 들어서면 중앙에는 1984년 중건한 대웅전과 왼편에 종무소, 오른편에 지장전과 석조 약사여래좌상, 관음전이 보인다. 지장전 앞에는 수각과 연못이, 대웅전 앞에는 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본떠 현대에 만든 삼층석탑이 자리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수각에는 바가지가 사라지고 대신 간이테이블을 설치해 종이컵을 넉넉하게 놓았다. 이방인이 목을 축일 수 있게 한 배려가 엿보인다.


용문산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감로수로 갈증을 달랜 후에는 수각 뒤편에 보이는 육각의 건물, 관음전에 잠시 들러보자. 보물 제1790호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있다. 전형적인 고려 후기 양식의 관음보살좌상으로 늘씬하게 균형 잡힌 신체와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돋보이는 불상이다. 1907년 일본군이 불을 질러 절이 전소되자 강원도 횡성에 있는 봉복사에서 이 관음좌상을 모셔와 주불로 삼았다고 한다.




관음전 옆으로 난 숲 산책로는 보물 제531호 용문사 정지국사탑으로 향하는 길이다. 보물도 보물이지만 탑까지 향하는 산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삼림욕을 하며 상쾌한 기분으로 걷기에 좋다. 200m 남짓의 길로 용문산 산행을 맛보기 한다는 느낌으로 걸어보길 추천한다. 정지국사탑은 고려 후기부터 활동하다 조선 태조 4년에 입적한 정지국사의 유골을 봉안한 승탑이다. 연꽃을 새긴 팔각탑에서 80m 떨어진 자리에 스님의 업적을 기록한 정지국사비가 있다.


이렇게 두 가지를 둘러보면 용문사에서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오래된 문화재를 모두 본 것이다. 대웅전 뒤쪽 계단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미소전은 오백나한전의 다른 이름이다. 미소전이라 쓰인 한글 편액이 반갑다. 미소전의 미소는 세 가지 종류의 미소를 의미한다고 전각 앞 안내판에 적혀 있다. 자비의 미소, 이심전심의 염화미소(拈華微笑), 미소전 앞에서 기도하는 모든 이들의 미소…. 불자가 아닌 이들도 빙긋 미소 짓게 만드는 설명이다.


최선의 언택트 여행, 용문사 템플스테이

용문사는 가람만 보면 금방 둘러볼 수 있는 사찰이지만 도량에 닿기까지 걸어야 하는 길이 1.3km 정도로 짧지 않다. 일주문에서부터 천천히 걸으면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 이 길이 나름 절의 백미이기도 하다. 차량 통행을 막은 보행자 전용 산책로는 계곡과 도랑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특히 길가에 따로 낸 도랑의 맑고 경쾌한 물줄기를 따라 걷노라면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새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진 용문사 가는 길은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고픈 이들에게 추천하는 언택트 여행지다.

산사에서의 ‘힐링타임’을 여유롭게 갖고 싶다면 용문사 템플스테이도 추천한다. 산림이 울창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을 곁에 둔 용문사는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 중에서도 인기가 높은 절이다. 다도체험, 사찰요리 만들기, 숲길 산책, 디톡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이다. 





비석 하나로 남겨진 파란의 역사

용문사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에 닿기 전 길가에는 한국민족독립운동발상지 표지석과 한국독립운동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대한제국 시절 전국에서 의병활동이 일어났을 당시 용문산과 용문사는 양평 일대 의병들의 근거지였다. 독립운동가 권득수 의병장은 용문사를 본진으로 삼아 병기와 식량을 비축하고 의병들과 일제에 타격을 입혔다. 이에 일본군 중대가 용문사를 습격해 전투를 벌였고 이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러 대부분 전각들이 소실되었다. 같은 시기 권득수 의병장도 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독립운동기념비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용문산지구 전적비가 있다. 이 비석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벌어진 용문산전투의 전사자들을 위로하고자 건립한 비석이다. 당시 국군은 이곳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막으며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큰 전란이 지난 1세기 동안 두 번이나 일어났으니 용문사 경내에 오래된 전각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것은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온갖 악조건을 견디고 천년 넘게 살아온 은행나무가 경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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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천년시장 오일장은 양평군의 3대 전통시장의 하나로 끝자리 날짜가 5와 0으로 끝나는 날이 장날이다. 시장이 용문역과 가까워 서울 및 근교 수도권에서 경의중앙선을 이용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골 장터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즉석에서 만든 먹을거리와 산야초, 잡곡, 한약재, 각종 야채와 청과물, 잡화 등을 판매한다.


 


용문천년시장에는 용문의 특산물인 버섯을 주재료로 끓인 국밥을 선보이는 버섯국밥거리가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형상화한 조형물 옆에 주막촌 형태의 작은 건물 4개 동에서 버섯국밥을 판매한다. 능이, 표고, 느타리, 꽃송이, 목이 등 양평지역에서 재배한 친환경 버섯이 푸짐하게 들어가고 소고기와 오분자기까지 들어간 영양만점 국밥이다. 버섯과 고기에서 우러나온 깊은 육수의 맛과 쫄깃한 버섯 식감이 어우러져 한 끼 든든한 별미로 즐기기 좋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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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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