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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의발견] (16) 토종 씨앗에서 움튼 새싹 농부 - 생태농업활동가 우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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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 두물뭍 농장에는 한결같이 미소가 자연스러운 이가 있다. 따뜻한 눈빛은 의성배추에게도 인사하고 광주무에게도 안부를 건네는 듯하고 옹기종기 병에 담겨 있는 토종 씨앗들에게는 마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지닌 듯하다. 알록달록 컨테이너 쉼터가 있고 퇴비 생산으로 이어지는 생태화장실을 사용하면서 자연과 하나인 양 마음이 더욱 푸근해지는 두물뭍 농장에 찾아가 생태농부의 삶을 꿈꾸는 우재욱 생태농업 활동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




Q. 간단히 자기소개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양평에 살고 있는 우재욱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살다가 올해 2월에 양평으로 이사를 왔어요. 지금은 이전보다는 일하는 날수를 줄여서 서울로 일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양평에서는 제가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농사를 짓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양평으로 오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농사짓는 삶을 살고 싶어서 서울에서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 장소는 꼭 양평이 아니어도 됐었어요. 예를 들어, 이천이나 가평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양평 강하면에 한 2년 반 정도 왔다 갔다 하면서 농사를 배웠던 적이 있거든요. 1년 정도는 토요일마다 매주 왔었고 그 이듬해에는 비정기적으로 왔었어요. 지역을 결정할 때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양평을 선택하게 됐어요.


우프코리아라는 단체가 있어요. 우프(WWOOF)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 호스트와 유기농 농사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글로벌 커뮤니티인데 우리나라에도 유기농 호스트분들이 있고 우프코리아를 통해서 호스트분들의 집에 묵으면서 농사일을 함께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우프코리아에서 이런 연결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의 농사 공동체도 진행했었어요.


제가 제일 처음에 접했던 건 2021년 청년토종농사공동체였어요. 그리고 2022년도에는 퍼머컬처 학교가 같은 곳에서 진행됐었는데 저는 이 퍼머컬처 학교를 1년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참석해서 수료했어요. 이어서 2023년에도 지금껏 배운 퍼머컬처를 실천하고자 하는 멤버들이 같은 장소에서 활동을 이어 나갔는데 저도 그 멤버 중 한 명이었어요. 이때는 한 달에 한 번씩 정도 참여했었지요. 이렇게 우프코리아 덕분에 2년 반 동안 양평에서 농사지을 기회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양평이 다른 지역보다 익숙했어요.


2021년 청년토종농사공동체에서 만난 분이 계세요. 지금까지도 인연을 맺고 있는 분이에요. 이분께 양평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씀을 드렸을 때 어떤 이유로 양평에 가냐고 물으셔서 농사를 좀 잘 지어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는 사람들이 있냐고 물으셨고 제가 없다고 하니 양평에 터를 잡고 계신 종합재미농장의 농부 두 분을 소개해 주셨어요. 이분들이 안내자로 계시는 두물뭍 농장에 참여하는 걸 제안해 주시면서 가서 농사도 배우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셨죠. 그렇게 두물뭍 농장에 대해 찾아보고 결이 잘 맞을 것 같아서 지원하게 됐고, 올해부터 시작하게 되었어요.


두물뭍 농장의 농사 방식은 퍼머컬처와도 닿아있지만 제 생각에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토종 농사인 것 같아요. 두물뭍 농장을 비닐 멀칭을 안 하고, 화학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다는 특징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토종 농사, 씨앗 받는 농사를 짓는 곳으로도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런 결이 저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두물뭍 농장을 매주 토요일 오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양수리에 매주 토요일마다 오고 있는 거죠.



Q. 어떻게 토종 씨앗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처음 농사를 접하게 됐을 때는 토종 씨앗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지금 두물뭍 농장에서 짓고 있는 농사 방식을 경험하면서 전적으로 토종 농사를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토종 씨앗으로 작물을 키워냈을 때 지속하는 힘이 더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른 씨앗들, 예를 들어서 교배된 종자들은 심어서 열매를 맺고 거기서 나온 씨앗을 다시 심었을 때 똑같은 열매가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토종 농사는 계속해서 씨앗을 이어서 같은 작물을 키울 수 있어요. 그렇게 씨앗을 다른 사람에게 구매하는 게 아니라 내가 씨앗을 관리하고 그것을 이어 나가는 게 자본에 기대지 않는 방법의 농사라고 생각했어요.


서울 살 때 마음이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뭔가를 돈을 내고 사지 않으면 저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거였어요. 더욱이 그런 제 한계를 계속 깨지 못하는 환경에 점점 익숙해지는 게 별로였어요. 그래서 제가 돈이 없을 때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었고 그 방법의 하나가 농사였어요. 자급자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제가 먹는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마음이 이제는 농사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까지 확장이 되었어요. 물건을 고쳐 쓴다거나 쉽게 사고 쉽게 버리지 않는다거나. 스스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기반이 된 거죠. 누군가에게 기대도 되지만, 그 대상이 돈밖에 없는 삶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것도 이런 결과 맞닿아있는 것 같아요.




Q. 지역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다른 두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우선 두물뭍 농장이 있어요. 두물뭍 농장은 공동 농사를 하는 밭이에요. 종합재미농장의 두 농부님이 안내자가 되어서 사람들과 같이 농사를 짓는데, 농사법을 알려주고 시키는 걸 한다기보다는 다 함께 가꾸어 나가는 방식의 농사 공동체예요. 그래서 원하는 작물이 있거나 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면 얼마든지 얘기해서 해보자고 할 수 있는 농장이에요. 매주 화요일, 토요일이 활동 요일이고 사람들은 각자 시간이 되는 요일에 와서 함께 농사일을 해요. 원래 두물뭍 농장은 두물뭍 농부시장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졌었는데, 두물뭍 농부시장이 농사 시작 시기보다 늦게 열려서 몇 년 전부터는 자원봉사자분들이 아닌 분들도 대상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대요. 그래서 두물뭍 농장 인스타그램을 보고 오신 분들도 있고 저처럼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아서 온 분들도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읍내의 대안학교에서 공간을 내주셔서 개인적으로도 작은 밭을 가꾸고 있어요. 여기에는 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퍼머컬처 수업을 진행했었기 때문에 퍼머컬처 디자인 밭이 많이 있어요. 여기에서는 지금껏 경험한 농사와 두물뭍 농장에서 새로 배운 것들을 토대로 계획을 세워 농사를 짓고 있어요.







Q. 지역 생활의 장점이나 단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서울은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원하는 활동이나 커뮤니티를 되게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활동을 해보면 그게 그렇게 지속적이지는 않았어요. 반면, 양평과 양수리는 관계들이 계속 잘 이어지는 것 같아요. 두물뭍 농장 사람들도 그렇고 대안학교도 그렇고 지역에서 각자의 색깔을 잘 드러내면서 사시는 분들이 알음알음 다 연결되어 있어서 그 속을 잘 들여다볼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한 관계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느껴져요.


그리고 저는 농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사를 했다 보니, 농사 이야기를 더 잘 나눌 수 있는 분들이 지역에 많은 것도 제가 느끼는 장점 중 하나에요. 직접 농사를 짓는 분들이 계시고 그분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도움받을 때도 많아요. 지식을 주고받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에요. 그리고 꼭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계절과 절기에 따라 지금 어떤 작물을 심는지 또 크고 있는지 보이는데, 이렇게 생활에서 농사가 가까이 있다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에요.


또 사소하게는, 서울에서는 자동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안 기다려주는 경우가 많은데 양평에서는 안전하게 기다려주세요. 이런 것들부터 하나하나 인간적인 느낌이 많이 들어요. 저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서울에서는 교통량이 많아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쉽지 않고 또 자동차가 많아서 위험하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배려받은 적이 많아서 더 안전하다고 느껴요. 그리고 처음엔 대중교통이 불편한 게 단점이라고 여겼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경의중앙선의 경우, 덕소까지 다니는 열차는 많아도 양평까지 다니는 열차는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시간을 맞춰서 다녀야 했는데 이제는 습관이 됐고 적응하니까 괜찮아요. 요즘에는 시간 보고 언제쯤 출발하면 되겠다 하죠.




Q. 지역에서 살면서 생긴 나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어디서 사는지가 변화를 가져다준다기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기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조금 더 흙과 식물에 가깝게 살고 있고, 계절의 변화를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또 시기에 맞게 작물을 심고 키우기 위해서 더 계획적이고 부지런해졌어요. 바깥 음식을 줄이고 직접 키운 채소들로 요리해 먹다 보니 더 건강해지기도 했고요.


작은 면적일지라도 이렇게 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삶이 제게 잘 맞을지 계속 관찰하고 있어요. 서울에 살면서 몇 년간 고민만 하고 실천하지 않았었는데 올해는 고민하던 그 삶을 살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지역에 살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입니다.




Q. 실학박물관은 알고 계셨나요? 실학박물관에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사실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몰랐어요. 실학박물관에서 생활 기술을 알려줄 수 있는 워크샵이나 클래스가 있으면 좋겠어요. 앞서 이야기했던 농사를 짓는 마음이랑도 닿아있는데,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모두 돈을 주고 살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만들거나 해결하는 방법도 배우고 싶어요. 그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고, 점차 그 영역을 넓힐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필요한 물건을 쉽게 살 수 있고 또 서비스를 제공 받을 방법이 많지만, 언제까지나 원할 때 빠르게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 생활 기술이 쌓이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내년에도 지금처럼 서울에서의 직장 일과 양평에서의 농사일을 병행할 거예요. 올해 확인해 본 건, 흙을 만지고 작물을 키워내고 요리해서 먹는 이 삶을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는 거예요.

두물뭍 농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농사짓는 건 지금처럼 계속할 거예요. 다만, 개인적으로 가꾸던 밭을 계속할지, 아니면 이어가지 않을지는 계속 고민 중이에요. 올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고 방향이 잡힌 것처럼, 내년에도 또 새로운 생각들과 새로운 방향들이 나타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내년도 올해처럼 여실히 살아보려고요.


** 내년에도 농사짓는 우재욱 생태농업 활동가의 모습을 양평에서 볼 수 있다니 흐뭇하다. 농사를 지으며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본의 굴레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우재욱 생태농업 활동가의 씨앗 농사, 인간 농사가 길을 잘 찾아가길 바란다.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모종의 발견>

조선 후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던 학자들을 실학자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활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모종의 발견>은 지역 곳곳에서 싹트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 숨겨진 가능성과 가치를 세상에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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