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실학박물관

[모종의 발견] (18) 붓에 깃든 다정한 화해의 삶 - 그리며 생각하며 실천하는 사람 해빛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햇빛이 아니고 해빛이다. 마치 높고 푸른 맑은 하늘에 새털구름이 뜨고 그 속에 해가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우리는 마음껏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공기는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럽다. 사람을 사랑하는 이의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혼자 있는 외로움보다는 같이 사는 괴로움을 택한 자, 싸우면서도 서로 돌보며 사는 삶의 경이를 발견한 자, 더불어 사는 삶의 엄청난 힘과 보물을 알아낸 자, 거기에서 샘솟는 기쁨을 길어내는 자의 말에 귀 기울인다면 바로 해빛을 느낄 수 있다.





Q. 간단히 소개 좀 해주세요. 어떻게 남양주에 오시게 되었어요?


      

(좌) 동네에서 아이들과 그림 그리는 해빛 / (우) 사랑하는 송촌 풍경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사람 해빛입니다. 송촌에 온 지는 어느새 5년이 되었어요! 저는 미술 전공하고 서울 성북 지역에서 문화예술 관련한 기획 일을 하고 사업을 진행하며 지냈었습니다. 그래도 막연하게나마 나이 들면 농사짓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어요. 그러다 하던 일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그때 제게는 두 갈래 갈림길이 있었어요. 하나는 부모님 계신 곳으로 가거나 하나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굳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있다가 농사를 지으러 갈 거 없이 시기를 조금 앞당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귀촌을 선택했던 거예요.

성북에서는 마음이 맞거나 지향이 같은 사람들을 못 만나서 기운이 점점 소진되고 있었어요. 대학생 시절까지 하면 4년 정도를 일했는데 마음 맞는 사람이 없으니 쉽지 않더라고요. 활동가한테는 외로움이 좀 치명적인 것 같아요. 경제적인 보상을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을 주로 하게 되는데, 그것을 같이 봐주는 관계가 없으면 무척 외로워지거든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에 대한 대답 같은 거죠. 주변에 힘 있는 기관 같은 데서는 도와주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그 경우에는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우선되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치명적인 외로움에 시달렸고 그래서 사람이 더 필요했어요.


그때 기회 좋게 지향이 맞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어요. 여기 친구들이 저처럼 문화기획을 하는 공통점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지향은 같았기 때문에 이 동네를 선택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남양주가 좋아서, 이 지역의 지역성을 선택해서 왔다기보다는 그냥 사람들 따라서 왔다고 해도 좋겠어요.


사랑하는 '없이있는마을' 사들



Q. 작년에 <화해>라는 개인전을 여셨는데 어떻게, 왜 여셨는지 궁금해요.


실은 남양주에 오기 전에는 저와 그림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어요. 그림 안에서 가장 자유로웠고 그래서 뗄 수 없는 관계였지만, 미대 입시를 거치면서 그림과 나의 관계가 깨어지고 어느새 그림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거든요. 과거처럼 그림과 한몸이고 싶은 마음, 반면에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여전히 그림을 이용해 큰 인정을 맛보고픈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다가 홀로 지쳐갔어요. 이런 고통이 있으니 대학 시절에는 줄곧 ‘나는 그림 그리며 살지 않겠다!, 나는 작가를 하지 않을 거다!’ 이렇게 외치며 사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런 말을 내뱉는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런 현실에 가슴 아파하는 또다른 제가 있었어요.


그러다가 남양주에 오면서 친구들을 만나서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이 제 일상에 스며들게 되었어요. 입시 때 경험한 인정과 우열을 가리는 그림이 아니라 나, 너와 같은 관계가 깃들어 있는 사랑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으니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랜 세월 엉키고 곰팡이 끼어 있었던 그림과의 관계가 풀려갔어요.


공동육아 '둥굴레 놀이터' 그림 선생님


이런 개인적인 흐름에서‘ 앞으로 그림을 계속 그려가겠다!’는 선포와 선언의 의미가 담긴 <화해>전을 꾸렸어요. 부제는 ‘상한 마음’이예요. 상한 마음과의 ‘화해’. 최소 10년 동안 헤맸던 그림과의 관계를 잊지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선포이기도 해요.


    

(좌) <화해>전 소개 영상 / (우) <화해>전 포스터


이 회복됨을 잊지 않겠다! 그리고 이런 회복이 가능했던 것은 옆에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은 제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영혼의 집>이라는 작품에 담겨있어요. <화해>전은 실은 지금 ‘영혼의 집’이 되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그림 그리며 살아가겠다!는 저의 다짐이 담긴 제목이지요.


해빛, <영혼의 집>, 2024, 마사천에 아크릴, 68.5 X 60.5cm


2023년에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어요. ‘사람은 모두가 영혼의 집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영혼의 집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였지요. 거기에서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지금 내 곁에 있으면서 ‘영혼의 집’이 되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 감사한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다른 작품처럼 비유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 싶어서 일러스트 느낌으로 작업했어요. 소재도 일반 캔버스가 아니라 씨실과 날실이 보이는 직조물이에요. 여러 관계들 속에 얽혀서 우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마사천’이라는 것이 대단히 민중적이기도 하고 씨실과 날실이 엮여 있는 형태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관계망과 유사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마사천’ 위에 아크릴과 아크릴 펜으로 ‘영혼의 집’을 구현해서 표현해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지역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개인전 장소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세련된 전문적인 거리가 있는 전시 공간이 아니라 저희 집 근처에 있는 용진정미소를 선택했어요. 용진정미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하고 제 그림을 봐주셨으면 좋겠는 분들은 저는 마을 할머니, 동네 꼬마들, 저와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이었거든요. <화해>전은 제 개인전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삶터를 꾸려준 동네 사람들에게 드리는 선물이기도 했어요. ‘동네에서, 정미소에서 그림 전시가 열리다니! 우리 동네 재미있군!’ 이렇게 같은 동네에서 살아가는 삶에 약간의 재미와 자부심이 되었다면 그걸로 저는 족해요.


    

(좌) 용진정미소에서 진행 중인 전시 / (우) 전시장에 놀러온 동네 꼬마들


그리고 제 개인전은 일회용품 안 쓰는 전시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스티커 같은 것도 인쇄를 안 했어요. 작품 몇 개가 팔리게 되었는데, 작품이 몇 개 팔렸는데 스티커를 안 쓰고 싶어서 종이에 빨간색 칠해서 옆에 붙이고, 전시 여는 날에 음식도 일회용 접시가 아니라 뻥튀기를 접시 삼아 드리고, 전시 소개글도 제가 글로 작성한 것을 전지 종이에 손글씨가 예쁜 마을 언니가 써주었어요. 전시 준비로 정신 없고 바쁜 것을 알아서 중간에 참을 챙겨주기도 했어요. 영상도 영상전문가 오빠가 만들어준다는 거예요! 넙죽 받았죠. 정말 고퀄리티 영상입니다. 나중에 언니, 오빠들 일을 도와서 보답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존재 자체가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일회용품 없는 전시장


전시 여는 날에는 마찬가지로 친구들이 공연을 해주었어요. 초등학생 친구들의 기타 연주, 언니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 사물놀이까지! 일은 제가 벌이고 동네 친구들 도움을 왕창왕창 받았어요. (웃음)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개인전을 절대 할 수 없었어요. 사랑합니다.

<화해>전 여는 행사



Q. <화해>전 이후에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다운 개인전이었다고 생각해요. 지역활동가로서 정체성이 있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개인전을 지역의 공간에 열었다는 것.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시 때 예상치 못하게 느꼈던 것은 우리의 삶에 ‘화해’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작품과 전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화해라는 작업과 단어 앞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화해가 필요한 기억을 더듬고 감상을 나누어주셨어요. 귀한 마음과 기억 들려주신 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이 전시를 통해서 감상하신 분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자신의 삶에 화해가 필요한 곳에 화해가 일어났다면 참 감사한 일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또 예상치 못한 즐거운 만남과 추억이 있었어요. 이 전시 이후로 동네 할머니들이 만나고 저를 보시면 ‘그림!’ 하시기도 하고 잘 몰랐던 동네 분이 ‘용진 정미소에서 전시하신 분이죠?’하며 인사를 건네기도 하셨어요. 우연히 전시를 철수하다가 100호를 들고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그 모습으로 저를 기억하신 분도 있고요. 예상치 못한 동네분들과 인연이 맺어져서 신기하고 즐거웠어요. 그리고 양수리 친구들과 특별한 만남을 이어주기도 했어요. 시작과 과정, 마무리까지 고마운 것뿐인 <화해>전이었어요.



Q. 인간관계와 작품활동이 연결되는 다른 지점이 있을까요?


덕분중학교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만든 엽서 및 두물뭍 농부시장에서의 판매 제가 우리 마을 ‘덕분중학교’에서 미술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어요. 덕분중학교는 대안중학교예요. 미술수업은 아이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림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엽서가 되는 것 같은, 사회적 물건이 되는 것에도 흥미가 있는데 아이들도 호기심을 느끼더라구요.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을 엽서로 만들다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 새롭게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주면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어요. 이번 2학기 때 오일파스텔 재료를 사용하고 아이들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서 두물뭍 농부시장 때 팔았어요. 아이들이 정말 잘 팔더라고요. 오히려 약간 위기감이 든 것이 아이들이 그림과의 관계를 잘 쌓아야 하는데, 상업적인 재미에 먼저 빠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미 그림과의 관계가 사고 파는 관계로 된 것 같기도 해요. (웃음) 올해 상품화는 그걸로 끝이다! 선언하고 자제하도록 주의하면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어요. 시장에서 마을의 이모, 삼촌 많이들 오셔서 많이 사주셨어요. 처음 뵙는 어른들이 응원의 말과 함께 많이 사주시기도 했구요. 감사하게도 재료비를 꽤 충당할 수 있게 되어서 상당히 플렉스했어요. 미술 수업을 할 때 은근히 잔잔바리로 돈이 들거든요. 아이들이 잘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을 물질로도 표현해 주시고 실제 말로도 많이 표현해 주셔서 무척 감사한 기억이에요.

덕분중학교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만든 엽서와 두물뭍농부시장에서의 판매


다산의 미술학원에서도 일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 만나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요. 미술학원이 좀 특별한 것은 다른 과목처럼 막 채점이 일어나는 곳이라기보다는 스승과 제자 같은 관계성이 각별하게 만들어지는 공간이라는 점이에요. 미술학원은 아이들 마음을 기르고 삶에 대한 태도를 기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재료를 다루는 손기술 같은 섬세함도 배우면서 정서적인 자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거죠. 다산에서 한 2년 일하면서 아이들하고 관계가 무척 끈끈해졌고 나름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있거든요. 하지만 거기는 도시고 제가 거기 원장도 아니고 거기에 살지도 않으니까 지역에서 공유되는 삶의 형태와는 거리가 있어서 더 다양하게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어요. 덕분중학교 아이들과 학원 아이들과의 관계는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덕분중학교 아이들은 저 혼자 뭔가 교육을 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일단 마을과 함께 자라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덕분중에서는 일상적인 자기 표현이나 생활 이야기, 지역에 대한 이야기에 중심을 둔다고 할 수 있어요. 협업 같은 시도도 할 수 있고요. 그렇지만 학원은 뭐랄까 개별 맞춤 수업을 하게 되지요. 특히 학원에서는 그림에 좀 더 흥미를 가지는 친구들이 오잖아요. 미술이라는 과목에 대한 열의도 더 있고요. 수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 두 가지 차이도 아주 흥미로워요.



Q. 송촌에 오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신 것인가요?


서울시 미래유산 사업을 3년 기획, 운영, 진행했어요. 그 사업은 최대 3년 할 수 있어요. 한국 경제성장에 있어서 그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자라날 수 없었는데 그런 그분들의 유산적 가치를 조명하는 활동이었어요.

2017년에 활동할 당시 대학생이었고 친구들 6명과 돌아다니면서 성북구에 봉제 공장이 몇 개 있는지 일일이 찾아보면서 설문조사도 하고 지도도 만들었어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이죠. 장위동 봉제공장 단지를 조사했고 그 후 재개발 지역이 되어서, 본의 아니게 우리 작업이 귀중한 자료가 되었어요. 구청과 봉제 협회에서도 달라고 해서 자료를 전달하기도 했어요.


2년 차에는 봉제가 옷을 만드는 일이니까 패션과 결합해서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찾아보자고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님하고 봉제협회 본부장님하고 활동가, 봉제공장 사장님 등을 같이 어울러서 상생의 길을 도모하는 간담회 자리도 마련해 보았고 다른 팀하고 협업해서 ‘봉제 장인’이란 컨셉으로 ‘패션 메이커’라는 얼마간 실험적인 전시도 했었고요. 그런데 그 즈음에 현타라고 하죠. 회의감이 밀려왔어요. 너무 그분들을 소비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분들한테는 진짜 도움이 되는 것, 결국 경제적인 모델이 필요했어요.


3년 차에는 그것이 뭘까 생각해서 ‘원데이 클래스’를 시도했어요. ‘봉제공장이 열린다’는 컨셉으로 공장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열고 주민을 초청하는 행사를 했죠. 그러면서 “행사를 운영하는데 얼마 정도가 적당할까?”, “봉제공장 사람들이 기획과 같은 업무를 할 수 있나?”를 고민을 했어요. 이런 경험을 자료화해서 각 지역에 있는 봉제협회에 전달했어요. 우리 ‘봉제양명’ 팀의 할 일은 사실상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봉제협회에서도 받으면서 고마워하셨어요. 우리 열정 같은 것도 인정 받아서 서울시 미래유산팀에서 우수사업으로 선정도 되었고요. 그 외에는 지역에서 쫌쫌따리 문화재단에서 하는 행사에 기획도 좀 하고 청년 정책 관련된 곳에서도 있었어요.


Q. 지역 활동가 분위기가 물씬합니다. 실·실·실 프로젝트에서 차이가 있나요?


저는 지역일이라는 게 비슷한 것 같아요. 지역에 있는 자원을 찾는 거죠. 자원은 사람도 있고 공간도 있고 여러 가지죠. 구슬은 꿰어야 보배니까, 이 여러 가지를 잘 꿰어서 보배를 만드는 게 지역 활동가의 역할이다 싶어요. 그래서 큰 차이는 없는 거죠. 실·실·실 프로젝트도 실학박물관에서 시도한다는 점에서 박물관 쪽에서는 특별한 것이겠지만 지역의 일로 볼 때는 일반적이죠.


그렇지만 재미있는 것은 확실히 이 지역이 자연이 특별하고 자연에 대한 생태 감수성도 높기 때문에 뭔가 허례허식이 없고 진정성이 느껴져서 무척 좋아요. 제 가치관이나 지향에 더 맞아서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거든요. 전에 일했던 곳과는 다르죠.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분들은 훨씬 실질적이에요. 전에 서울에서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난 분들은 잘 모르는 분들이었잖아요.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분들은 이미 생활 공간 안에 있던 분들이니까 일상과 가깝고 관념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잖아요. 공간으로 보면 용진정미소도 그렇고, 모퉁이놀이터도 그렇고 일상이 내포된 공간이고 예를 들면 ‘삼치와 이기리’의 노래만 봐도 자기가 있는 그 공간에서, 그 공간의 노래를 하잖아요. 이런 것이 실용학문, 실학에 어울리는 것 같아서 정말정말 재미있어요. 무궁무진하고요.


그리고 이렇게 만난 사람들과 친분이 생기고 도움을 받고 친구 같고 고민도 나누게 된 것도 좋아요. 실·실·실 덕분에 연두나 파람과 같은 양수리 벗들과 꽤 친해졌고 나를 지지해 줄 거라는 믿음도 생겼어요. 그런 것이 무척 신기하고 감사해요.



Q. 내년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요. 우선은 내년에 작업을 좀 더 해보려고 해요. 섬을 그리는 작업을 하려 합니다. 영혼의 집과 같은 공간의 의미를 띄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어요. 소재를 못찾고 있었는데 섬이라는 자연물이면서 공간의 의미를 띄는 것을 발견했지요. 하고 싶은 마음이 두근두근 피어오르고 있어요. 연작을 많이 해서 내년에는 단체전에 많이 참여하고 싶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참 즐거워서 내년에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화실을 시도할까 생각중이예요. 화실 창업을 두고 양평 와이플래닛 선생님이 해주신 말 중에 품고 있는 말이 있어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사랑할 수 있는 아이는 어딜 가든 행복한 아이다’라는 말이요. 아이들이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작품의 전시 기회도 만들어내면서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더 이 지역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어떤 것, 그런 목표를 갖고 있답니다. 화실 이름은 ‘그림섬’으로 정했어요. 제 개인 작업의 소재가 될 섬에서 따왔어요.




공간을 먼저 얻을까 하다가 일단은 내용이 중요하겠다 싶어서 지금은 화실에서 사용할 교재를 만들고 있어요. 외국 어느 나라에서는 역사나 세계사를 그림으로 배운대요. 그림이 사회, 문화 등등 다방면의 영향을 받아서 그려지는 거니까 그림으로 그런 것도 배울 수 있죠. 우리가 학습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 그런 방향과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한국미술사, 서양미술사 같은 교재를 만들고 그러고 나면 수채화나 아크릴, 오일파스텔 다루는 교재도 만들 거예요. 그렇게 네 가지 내용을 담은 교재를 만든다면 ‘창업’을 하려고 해요! 만약 화실이 안정적으로 잘 운영이 된다면 예술가들의 모임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도 미래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오전이나 좀 늦은 밤에는 비어 있을 테니까 그럴 때, 예술가들끼리 만나서 뭔가 작당을 할 수 있는 거점 공간이 되면 진짜 재미있겠다 싶어요.



Q. 같이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이세요?


사실 저는 이전의 부정적인 경험을 해소하고 그것을 보완하는 다음 걸음으로 도전해보자는 식으로 이 동네에 왔을 뿐이잖아요. 그래서 실은 기대가 많지 않았어요. 동네는 물론이고 처음에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엄청난 믿음이나 두터운 신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이런 상태에서 도전하니 처음에는 굳이 말하자면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었죠. 친구들이 삶의 지향이나 방향이 맞다고는 생각했지만 같이 사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잖아요.


그런데 같이 살아보니 사람들이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무척 큰 축복인 것 같아요. 그렇게 크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이 삶을 이어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같아요. 아무 기대 없이 왔지만 기대 이상? 아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아주 많이 배우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저는 제가 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안 했고 토종씨앗 같은 소중한 운동을 배우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친구 두 명과 함께 산 지 벌써 햇수로 5년이예요. 그런데 처음에 정말 많이 싸웠어요. 성격이나 기질이 맞지 않아서요. 실은 셋 다 여기 ‘없이있는마을’을 보고 왔던 거지 서로를 보고 선택해서 온 관계가 아니었거든요. 사회에서 경험하는 대부분 관계는 원래 가족이거나 아니면 성격이나 취향이나 기질이 맞아서 친구든 애인이든 사귀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마을에 오기 전에는 저도 경험한 관계가 그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걸 넘어서 서로 사랑하고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인생에 정말 큰 축복인 것 같아요.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싶고 지금은 성격, 기질, 성향을 넘어서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제 인생에 있어서 큰 자부심이에요. 그리고 양수리에 사시는 요상하지만 정말 순수하고 밝은 분들이 너무 놀라워요. 4대강이라는 불의에 저항하는 운동 끝에 지금은 서로의 삶 터가 되어서 함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정말 힘이 있구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출발점이 되어서 예상치 못하게 서로의 삶에 깃든 생을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서로에게 참 소중한 열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튼 이웃 동네 사는 양수리 분들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 함께 더 관계를 쌓아가고 싶어요!


이야기가 곁길로 갔지만 어쨌든, 저는 노년이나 먼 미래까지 계획해서 온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고 주변에 부모님들이 편찮으신 경우가 생기더라구요. 그러면서 돌봄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고 노인, 노년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졌어요. 그런데 이 동네에서 원래 살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정말 밝으세요. 비슷한 나이에 시집와서 같이 애 키우고 지역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살다보니 서로 투닥거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밥 한 끼 같이 먹고 나면 서로 마음을 풀고 같이 김장하고 운동하고 서로를 돌봐요. 도시의 노인들은 외롭단 말이에요. 할머니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아, 나도 나이 들었을 때 할머니들처럼 밝게 살고 있겠다는 점이예요. 이 더불어 사는 삶을 마을과 함께 살아내고 가꾸어간다면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예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동네 할머니들을 보면서도 더불어 사는 삶의 힘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어요.


Q. 힘든 부분도 있으실 것 같은데 궁금합니다.


물론 그만큼 어려움도 있어요. 혼자라서 외로운 게 문제였다면 같이 있어서 괴로운 점도 있으니까요. (웃음) 결혼 같네요. 원래 결혼을 외로움과 괴로움의 싸움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괴로운 것이 나은 것 같아요. 얼마간의 괴로움, 어려움도 있지만 그걸 감당하면 엄청난 보물들이 많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어요.

저도 도시에서는 고통받는 청년이었는데, 청년들이 꼭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압박을 견디면서 살아야 하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에요. 도시에서 나와서 이렇게 함께 먹고 놀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살 수 있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같이 함께 살고 싶어요. 시골, 마을에서는 쓸모가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한 생명, 한 생명 모두 소중한 구슬입니다. 귀중한 구슬이더라도 따로 쌓아 두면 소용없게 느껴지지요. 꿰어야 합니다! 함께 송촌이라는 이 터에서 서로를 사랑으로 꿰고 자신다움의 빛깔로 반짝이는 삶을 살 생명들을 손꼽아 기다려요. 관심이 있는 청년은 이곳에서 함께 해요!







2025 실학박물관 지역활동가 아카이브 <모종의 발견>

조선 후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하던 학자들을 실학자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활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모종의 발견>은 지역 곳곳에서 싹트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찾아 숨겨진 가능성과 가치를 세상에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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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