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메신저가 메시지다 (2)

지지봄봄 18호 좌담회


'지지봄봄'은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에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으로 경기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도민들과 공유합니다.

고영직 / 18호 편집장, 문학평론가

정은균 / 군산영광중 교사

송인현 / 극단 민들레 대표

박영길 /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대표

안태호 / 문화평론가

전지영 /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박아롬 /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팀원

한상은 / 녹취록 작성자



‘삶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왜 불가능한가


고영직 이제 질문을 바꿔 볼게요.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은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좌담회를 시작했지만, 불가능한 지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네요. 그렇다면 각자의 현장에서 왜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이 불가능한지에 경험적 진실을 말씀해주시면 논의가 훨씬 깊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영길 저는 문화예술교육의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교과 수업을 진행 할 때 아이들의 변화가 큰데요, 교수법이나 아이들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예술강사가 정규수업에 단순 결합될 때보다 학교에 대한 이해가 있는 교사가 직접 예술수업을 진행했을 때 효과가 더 큰 것 같아요. 학교가 예술가와 결합했을 때 원하는 방향은 단순 아카데미 교육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통해 사회와 삶, 관계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문화예술 교육을 향유하게 하는 것보다 마을에서 건강한 삶을 살기위해 문화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송인현 교육자가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고,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교육적 관점이 갖춰져 있지 않은 예술가에게 교육을 수행하라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교육은 예술가들이 쉽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예술가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한 지점은 ‘감상 교육’이에요. 미술관에 가야만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작품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유엔 헌장 중에 ‘어린이는 누구나 균등한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아이들이 예술을 감상하러 특정한 공간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문화예술을 향유 할 수 있기를 바라요. 예를 들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학교 느티나무 아래에서 음악회 감상한다면, 이 경험은 아이들의 인생에 있어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최고의 경험일 것이에요. 아이들에게 행복한 경험을 만들어준 다음에야 문화예술교육이 삶 속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영직 존 듀이는 행복한 경험을‘ 섬광(閃光), 불꽃놀이’라고 표현합니다. 행복한 경험을 해야만 상투적인 삶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갈 수 있어요,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은 왜 불가능한지 무엇이 막고 있는 것인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마 학교에 안 문화예술교육이 가장 힘들 것 같아요.


전지영 사실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이‘ 모두가 향유하는 문화예술’이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전국 학교에 예술강사를 파견하는 사업이에요. 하지만 갓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정도 자격증 취득 수업을 이수한 후 예술가적 정체성 없이 학교에 파견되는 경우도 꽤 있지요. 또한 중앙 기관에서는 그저 예술강사를 전국 학교에 파견하면 모든 아이들이 균등한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정은균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 교사, 학부모, 학생 등 교육 주체들의 시선이 너무 좁지 않나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문화예술이 우리의 삶에 행복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제도로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아요. 글쓰기와 관련된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2년 전 <어깨동무>라는 이름으로 한 학년 전체가 반 별로 모둠일기, 단체일기를 쓰는 활동을 했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어떠한 형태든 제약 없이 글쓰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 아이가 모둠일기 공책을 안 가져오는 거예요. 불러서 타일러도 보고 당부도하고 화도 내며 일주일간 실랑이를 했더니, 결국은 딱 두 문장을 써왔더라고요. ‘나는 김OO이다. 나는 15살 이다.’ 그 일기를 본 후 아 이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잘 봤어. 좀 짧구나. 이 문장을 왜 썼는지 궁금하다”, “ 저 15살이잖아요”“, 중 2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구나”, “네” 짤막한 대화였지만 스스로 본인이 15살이고, 중학교 2학년 시기를 건너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봅니다. 활동에 있어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유,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틈이나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훌륭한 의도를 가진 예술강사들이 오시더라도 효과를 내기가 쉽지 않아요. 또한 인성교육과 예술교육 두 가지 모두를 수행하려고 하니, 혁신학교가 아닌 이상 일반 학교에서는 더욱 힘들죠. 외부 예술강사가 아니더라도 학교 안에서 뜻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시기는 한데 모 둠수업을 한번 하려고 해도 학교나 학부모의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에요.


고영직 엄기호 선생님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라는 책을 보면 학교 안에서 뜻 있는 교사가 활동을 하려고 할 때 동료들의 ‘냉소적인’ 시각이 힘들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동료 교사 간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많이 깨져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전지영 ‘교육’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잖아요. 교육을 주관하고 담당하는 분들의 생각, 제도와 정책 안에서 교육이 비틀어져 있는 거지요. 제도권 교육이 기형적이기 때문에 ‘교육’ 자체를 버리려고 하는 태도가 생기는 것 같아요.


안태호 각 학교 풍토나 교사의 성향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더라고요. 몇몇 교사들을 만나보면 “교사로서 저렇게 폭 넓은 활동이 가능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한 분들도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폐쇄적인 학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학교와 지역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박영길 최근에 <학교밖청소년지원사업>에 대해 청주시와 이야기를 했는데요. ‘학교 밖 청소년’의 핵심은 ‘학교’인데 교육청은 “그 청소년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까”라며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시청 공무원에게 물어봤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학교 밖 청소년을 학교로 보내는 것 아니냐”라고요. 이 문제는 학교가 변하고, 교육부가 교사와 이야기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아요. 학교가 건강하면 지역 사회가 건강해지는 사례들이 있어요. 학교 안에서 마을축제도 하고 동네 주민들이 학교 시설도 이용하는 사례들이지요.


전지영 실제로 학교에 안 나가는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학교에 대한 ‘향수(鄕愁)’가 분명히 존재해요.


고영직 이태석 신부님이 쓴 책에 출소한 소년범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출소한 소년범들과 학교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는데 옆자리의 학생들을 보며 그 소년이 “나도 교복입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래요. 학교 밖 청소년들의 관심은 학교이고, 그 아이들도 학교의 시간표를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대낮에 학교 밖 청소년들이 돌아다니지 않죠. 여러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을과 학교 사이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담’이 있어요. 최근 학교와 지역이 만날 수 있는 움직임들이 있지만, 문제는 ‘교육’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교육부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 합니다. 문화부와 교육부가 협력체계를 만들어가기를 바라지만 교육부의 폐쇄성 때문 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요?




안태호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할 때‘ 문화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교사와 지역 사회의 노동운동/인권단체가 함께 커리큘럼을 짜서 한 학기 교육을 진행했어요. 서로 낯설었지만 재밌었던 경험이었지요.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이나 자유학기제 제도를 시행하면서 지역 단체들에게 이러한 커리큘럼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 습니다. 그런데 형태를 들여다보면 공동 기획으로 프로그램을 같이 짜는 것이 아니라 단체가 일회성 이벤트를 제공하는 것이더라구요. 저는 이런 방식에 큰 의미를 느 끼지 못하는데 학교에 공동으로 협력하는 사례나 노력들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은균 자유학기제 정책이 학교에 도입 되면서 외부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부천문화재단에서 실행하신 것처럼 커리큘럼을 같이 짜는 방식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재 출강하고 있는 예술강사들에게 학교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수준, 태도를 고려하여 새로운 커리큘럼을 짤 수 있게 한다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영직 작년에 안양문화재단에서 예술강사와 학교 교사(부림중학교)가 공동 기획하여 프로그램을 짜고 실행하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예술강사들은 자기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는 대부분 진로탐색 위주의 활동을 원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은 그저 하나의 방편이 되는 측면이 많고요.


송인현 삶에서 문화예술이 자리잡는 데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가정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정책부터 일반 가정까지 문화적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내세웁니다. 가정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가치가 생겨야만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교육이 중요한데요. 조상님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교육적인 가치를 감각적으로 전달했는데, 요즘은 구체적이고 지시적인 서양교육이 들어오면서 인지적 교육만을 중요시하니 문화예술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가난한 연극쟁이가 그림을 삽니다. 엄청난 사치 지요. 그런데 그런 사치가 굉장히 즐겁습니다. ‘좋은 사치’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삶 속의 문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삶’을 위하여!


고영직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내가 꿈꾸던 이상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이 하루하루 일상이 될 수 있는 경지는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 합니다. 아직 답은 없지만,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송인현 연극마을을 운영하면서 꿈꾸고 있는 것이 결국은 ‘삶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들레 연극마을’은 학생들이 마을에 와서 하루종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돌아가는 시스템입니다. 연극마을에 찾아온 학생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삶’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겉으로 엉성해 보여도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경험치를 얻고 갔으면 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체험 프로그램이 아닌 아이들의 삶에서 계속 반추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이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사회적으로는 예술가가 이만큼 고생하고 가꾸어 놓았으니 많이들 와서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안태호 감상교육으로 받는 감동 자체가 여전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풀편성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았을 때의 감동이라든가 과천 현대미술관에 처음 갔을 때의 짜릿함, 소극장 맨 앞줄에서 배우들의 숨소리를 들었을 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이 주는 고양감이 제 삶에 많은 영 향을 주었지요. 고등학교 때 시인 김남주(1946-1994)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에는 그분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대학에서 운동권을 그만두 고 김남주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내가 운동을 하며 김남주 선생님의 시를 읽었으면 결코 이탈하지 않았겠구나”하는 생각에 뒤늦게 각성했어요. 김남주 선생님의 시 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꾼 문화예술 텍스트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지지봄봄》 칼럼을 쓰기위해‘ 민들레 연극마을’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 뿐이지, 아이들만을 위한 연극은 만들지 않는다”라는 송인현 선생님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양철학자 배병삼 선생 말처럼‘ 위민(爲民) 이 아니라 여민(與民)이다(백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더불어 함께하는 것)’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과 예술도 그런 고민이 있어야 삶에 섞여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은균 ‘행위난지(行易知難)’라는 말이 있어요. 멋모르고 행하기는 쉬워도 진정한 앎이란 지독히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태전 선생님의 책에서 저 단어를 보면서 뜨끔했습니다. 저도 학습을 하려는 노력보다는 어설픈 지식을 바탕으로 “일단 하면 되겠지”라고 성급한 기대감을 가졌었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이 증명된 것인지 어느 정도 상식에 맞고 교육의 본질에 맞는 것인지를 꼼꼼하게 따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쉽게 빠지는 착각 중 하나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이고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안에서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요. 교사들이 꾸준히 ‘학습’을 하지 않으면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이 수업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선생님들의 의식변화 가 있어야 합니다. 제도적인 뒷받침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만들어져야 하고요. 쉽지 않겠지만 저부터라도 실천을 하겠습니다. 지역과 학교에서 변화를 위해 몸부림 치는 선생님들을 ‘밀알’, ‘소금’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저는 한국의 교사 자원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수하다고 믿습니다. 학교도 서서히 변해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박영길 교육이 문화예술을 도구로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며 부당하다고 느끼는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부모님 세대와 싸울 줄 알았으면 좋겠고, 학교의 시스템에 저항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싸움은 폭력적인 형태가 아닌 그림이든 낙서든 음악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기를 바랍니 다.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반항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과정이 없는 아이들은 어른이 됐을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현재 시스템에 불만을 느끼고 저항할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역할은 문화예술이 해야 합니다.


전지영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돌아보는 자리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영직 선생님을 18호 편집장으로 모셨을 때 문화예술 덕분에 살아가고 계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모신 선생님들도 각자의 삶에서 문화예술을 통해 고민하고 있는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영직 최근에 철학자 한병철 선생님의 『아름다움의 구원』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현대 문화와 자본주의 예술의 특징을 ‘매끄러움’이라고 표현을 하더군요. 그러나 우리의 삶은 울퉁불퉁, 좌충우돌하지만 함께 살며 연대하는 거잖아요. ‘매끄러움’이라는 현재의 징후야말로 ‘삶으로서 문화예술’을 가로막는 최대의적 인 것 같습니다. 괴테가 『파우스트』 마지막 부분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고 말했는데요. ‘여성적’이라는 것은 연약하고 보드랍고 사소한 것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자기 삶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일상을 꾸리며, 각자의 현장에서 자기의 사례를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오늘 선생님들을 모셨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삶을 위한 ‘불꽃놀이’를 위해서이고, 또 ‘다음의 불꽃놀이’가 계속 이어져야 우리 삶이 더 즐겁고 기쁘지 않겠습니까. 살아가면서 그 점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세부정보

  • 웹진 '지지봄봄'/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 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글쓴이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자기소개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는 문화예술교육으로 함께 고민하고, 상상하며 성장하는 ‘사람과 지역, 예술과 생활을 잇는’ 플랫폼으로 여러분의 삶과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