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실학박물관

성 평등한 사회, 실학과 여성 사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이순구_조선시대 여성 연구자

화창한 늦봄 한국여성사 연구자이자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인 이순구 박사를 만났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선배님으로서도 존경해왔던 터였는데 공적으로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니 여러 가지로 마음이 설렜다. 이순구 박사는 2017년 “여성, 실학과 통하다” 실학박물관 특별전을 개최할 때 전시 자문 위원이었으며, 전시도록에는 “조선 여성들은 성리학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라는 주제의 글이 실렸다.


실학박물관(이후 실) : 안녕하세요? 선생님. 얼마 있으면 정년이라고 들었는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근무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는지요?




이순구(이후 이) : 벌써 28년이 되었네요, 내년 6월이면 정년입니다. 세월이 정말 빨리 갑니다.


실 : 쉬신다면 제일 먼저 뭘 하실 계획이세요?


이 : 일단 1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싶습니다(웃음). 그런데 여러 군데에서 무슨 위원을 맡으라고 연락이 많이 와서 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실 : 우선 감회가 남다르시겠어요. 그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우리 역사에 관한 여러 편찬 사업들을 진행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일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 :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특히 조선왕조실록 전산화 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국편 홈페이지에 제공하면서 조선왕조실록을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고 또한 한류에도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아울러 사육신 문제 해결과 사료총서 간행 등을 꼽을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도 조선시대 일기자료들을 번역하면서 조선사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실제적으로 느끼기도 했습니다. 특히 노상추일기를 번역하면서 조선시대 여성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실 : 한국여성사연구회 회장도 역임하셨고, 특히 대표적인 조선시대 여성사 연구자인데, 여성사 연구를 한 계기가 있었나요?


이 :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지도교수인 고이성무 교수님으로부터 조선시대 가족 문제를 연구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가족 연구에 관심을 가지면서 범위를 좁혀서 곳간 열쇠를 가진 여성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실 : 조선시대 여성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이 : 저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매우 자존감이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엄같은 거라 할까요. 대표적인 사례가 종부들이죠. 그들은 일생동안 가정은 물론이고 문중에 큰 기여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인정받을만하다는 자존감들이 있었죠. 조선시대 여성들이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남성들이 바깥일을 담당했다면, 여성은 집안일 특히 육아와 가정 경제를 도맡아 했습니다. 오늘날 능력 있는 여성들은 이미 우리 선조 여성들의 DNA를 물려받은 탓이라고 할까요(웃음).


실 : 전통시대 여성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각이 궁금합니다.


이 : 전통시대 여성은 신분을 막론하고 남성의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함께한 존재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성 또한 동시대 남성들과 함께 사회변화를 공유한 일종의 파트너였다고 할까요.


실 : 과거 여성과 오늘날 여성들 간에 공통점 혹은 차이점이 있다면?


이 : 1991년 가족법 개정 이전에는 물론 법제적으로 남녀 간에 차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법제적으로 큰 차별은 없어졌다고 봅니다. 조선시대는 내외법처럼 남녀 간에 역할 구분이 있었지, 차별은 크게 없었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17세기 이후 여성의 지위가 낮아졌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 : 사실 실학과 여성을 연결시키는 연구자가 드문 현실인데요. 이빙허각 처럼 여성실학자의 존재도 19세기엔 드물지만 등장합니다.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 : 물론 이빙허각은 다른 여성들과 달리 가족 내에서 실학적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여성이긴 합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조선후기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느끼고 실천했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실학과 여성이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조선후기에 일군의 여성들이 성리학을 내면화하고 성숙화 했는데, 이러한 여성의 지성적인 측면도 실학이라는 관점에서 눈여겨볼 점이라 생각합니다. 여성 성리학자인 임윤지당이나 강정일당 같은 분들이 대표적인 분들이지요. 이들의 등장은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여성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거든요. 일부 조선후기 여성들은 과거와 달리 현실을 자각하고 실천적 삶을 살아갔습니다. 여성들의 삶이 사회 변화에 맞춰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죠. 어찌 보면 과거 우리 어머니들은 정말 현실 적응을 잘 하신 분들이었고,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진취성도 다 이분들로부터 물려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 : 실학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앞으로 실학박물관도 여성 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아야 될 것 같습니다. 바쁘신 데도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학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실학자의 어머니들은 어떤 분이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박제가의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면서 아들을 공부시켰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글 연구자이기도 했던 실학자 유희의 어머니는 『태교신기』의 저자로 유명한 이사주당이기도 하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조선시대 여성들이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치열하게 인생을 살다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그녀들로부터 진화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세부정보

  • 실학박물관/ 뉴스레터 83호

    실학가족/ 이순구 조선시대 여성 연구자

    / 정성희 수석학예연구사(실학박물관 학예팀)

    편집/ 김수미(실학박물관 기획운영팀)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

    문의/ 031-579-6000

    실학박물관 홈페이지/ http://silhak.ggcf.kr

    이용시간/ 10:00~18:00

    휴일/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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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자기소개
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