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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역사문화유산원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소규모 도보탐방 의왕편

<2018 경기 옛길 지역연계 소규모 탐방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의왕 편)>



옛길 도보꾼! 삼남길 에서 의왕을 만나다.



경기옛길 청년기자단 김현진 기자


붉은 장미 덩굴이 고개를 내밀고 노란 금계국이 반가운 인사를 할 때쯤, 필자는 경기 옛길 소규모 탐방 프로그램을 신청해 의왕으로 도보 여행을 나섰습니다.


의왕시는 모락산, 청계산, 바라산을 고르게 두른, 녹지율이 무려 85%에 이르는 곳입니다. 비록 다른 지역에 비해 작은 도시이고 문화유적이 많지 않지만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져, 지역적 가치가 높습니다.


<사진 1> 의왕시청별관 입구


<사진 2> 사근행궁터


답사길엔 의왕 향토문화연구소 고문인 박철하 선생님과 경기 옛길 참가자 서른 명이 함께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삼남 길 3구간의 시작점인 의왕시청 별관 (구 사근행궁지 /사근평해궁, 사근창행궁 으로 불림 )에 모였고 설명을 통해 숨겨진 의왕의 매력을 하나둘씩 배워갔습니다.


코스는 삼남 길 3구간 중 사근행궁터- 통미 마을- 골사그네- 의왕중앙도서관- 사근행궁터 로 약 3시간 반, 순환코스로 진행됐습니다.



<사진 3> 사그내 11번지 골목길. 좀 더 걸으면 의왕시청 별관에 도착한다.


사근행궁지는 사그내 11 번지에 위치합니다. 지하철로는 1호선 의왕역에서 버스로 약 20분정도 이동하는데, 버스가 잘 오는 편이라 그리 먼 거리는 아닙니다.


사근행궁터 는 정조 이전 현종 때부터 조선 국왕이 행차 때 머물렀던 주정소 입니다. 행궁이란 임금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던 별궁을 말하는데 고려 시대 에는 ‘이궁’ 이라 불렀습니다. 정조는 1790년부터 수원에 이르는 경유지마다 행궁을 총 6곳 (과천, 사근, 시흥, 안양, 안산, 화성) 설치했습니다. 그중 이곳 의왕 사근행궁 이 도성에서 삼남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길목으로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했습니다.

수원으로 가기 위해선 높은 언덕을 올라야 했는데 의왕이 쉼터 역할로 안성맞춤이었던 것이죠.


<사진 4> 사근행궁터 맞은 편에는 의왕의 민속주 '오봉주조'를 제조하는 양조장이 있다.


행궁과 주정소 가 있는 곳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 놓습니다. 때문에 의왕은 점차 큰 동네로 완성될 수 있었는데요. 행궁 주변에는 주막과 떡을 파는 가게가 한 두개 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인근의 주민들은 임금의 행차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정조가 사근행궁을 지날 땐 주민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는데, 그 모습은 풍속화 시흥환어행렬도에 잘 묘사돼 있습니다.


사근행궁터는 주정소 이기도 하지만 의왕지역의 3.1운동 중심지 이기도 합니다. 1919년 3.31일 수 백명 의 사람들이 모여 당시 면사무소였던 이 자리를 중심으로 800 여명 의 시위대가 독립만세운동 을 전개했고 일부는 지지대고개에 올라 횃불을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유,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피땀 어린 노고와 희생으로 이뤄진 것.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필자는 사실 첫 모임지가 의왕시청별관 이라 의아해 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길을 걸어보니 왜 우리가 이곳에 모였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의 무지를 반성하며, 모든 경험하고 배워야 함을 깨닫습니다.


<사진 5,6> 왕림마을 입구엔 두 정승과 청품 김씨 묘문비가 서 있다.


<사진 7> 백운산 자락을 배경으로 왕림마을에 대해 설명하는 박철하 선생님


이제 사근행궁터를 떠나 산길과 농로, 시골풍경이 펼쳐지는 왕림마을로 향합니다. 왕림마을은 왕곡천 과 백운산이 드리우는 예쁜 마을입니다. 과천-의왕 고속국도 왼편에 위치해 있는데 도시의 분주함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고요함이 있습니다. 마을 입구엔 은행나무를 그려 넣은 표지판이 있고 정승 뒤로는 청풍김씨묘문비가 자리합니다. 은행나무를 그려 넣은 이유는 왕림마을에 있는 수령 540년된 보호수인 은행나무와 400년된 회화나무가 이곳 왕림마을에 있기 때문입니다.


왕림마을은 연산군 때 정주목사를 역임하고 중종반전에 공을 세운 공신이 된 김우중 (청풍김씨)이 정승나무를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오봉산, 남쪽으로는 지지대, 북쪽으로는 모락산을 사패지 (총 사방십리)로 하사받으면서 마을이 형성됐습니다. 정조의 스승이었던 김종수 (정주시대 탕평정국을 이끈 동반자) 는 이곳에 거처를 옮겨 한동안 거주했고 청풍 김씨가문은 영, 정조 연간 최고의 권력을 가질 만큼 유명했다 합니다. 현재 왕림마을엔 청풍김씨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사진 8> 왕림마을에 위치한 은행나무와 회화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 왼편이 회화나무/오른편이 은행나무(정승나무)이다.



<사진 9> 쭉쭉 뻗어 올라온 양귀비. 색이 참 곱다.


빨간 양귀비꽃을 벗 삼아 길을 더 걷다 보니 연둣빛 은행나무와 회화나무가 반깁니다. 높고 굵직한 나이테는 그간의 세월과 역사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본래 이곳엔 권세가 있던 분의 기와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와집이 팔려 그 자리엔 공장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죠. 잠시 엉뚱한 상상이지만 기와집 친구를 잃은 은행나무는 꽤 오랫동안 마음을 아리며 이 자리를 지켰을 것 같습니다.

도시개발. 대체 어디까지 지속되고 발전 되어야 할까요?


은행나무를 정승나무로 부르는 이유는 나뭇가지 하나가 뚝 부러지면 정승이 하나 나오기 때문이랍니다. 마을 주민들은 은행잎이 한 번에 떨어지면 풍년을, 은행잎이 힘 없이 떨어지면 흉년을 점쳤습니다.


<사진 10> 눈길을 끈 문구 '맑은 바람 머물러서 좋은.' 왕림마을과 잘 어울린다.


왕림마을을 나서니 '맑은 바람 머물러서 좋은' 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끕니다. 10 글자 뿐 인데 마음에 진한 감동이 전해집니다. 다시 이곳을 찾으면 지금보다 더 천천히 마을을 담아봐야겠습니다.


<사진 11> 왕곡천 다리를 건너면 통미 마을로 가는 길이 등장한다.


<사진 12> 질서 정연하게 심어진 여러 작물들


왕곡천 다리를 지나 통미 마을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연둣빛 녹음이 반짝거립니다. 농로 사이에 비추는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시원합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낙원이 있다면 이곳이 낙원일 것 같습니다.



<사진 13, 14> 소나무 숲 소림고개와 푸른 나무로 우거진 녹음


사사삭 나무들이 부대끼는 소나무 숲 소림고개를 넘어 아담한 골목길이 있는 통미마을에 도착합니다.



<사진 15, 16> 기차 놀이를 하는 기분이 들었던 통미마을 골목길. 곳곳이 앙증맞고 소담하다.


골목길은 한 두 사람정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인데 기차놀이를 하는 기분입니다.

통미마을은 나즈막하지만 통처럼 하나로 둥글게 터 잡은 무덤과 같은 언덕이라는 뜻의 귀여운 어감을 가졌습니다. 마을이 앙증맞고 소담해 청주 수암골 혹은 섬마을로 여행 온 착각을 일으킵니다.


<사진 17> 알록달록한 빨래가 바람과 함께 살랑~


<사진 18> 통미마을길 빨래터 외관


<사진 19> 통미마을길 빨래터 내부. 물이 맑고 깨끗하다.


곳곳엔 알록달록한 빨래가 널어있고 산들산들한 들꽃은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분주합니다. 마을 내에 있는 통미길 빨래터는 지금도 이용 가능합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이곳으로 자리가 날뻔해 잠시 위기에 처했으나 기특하게도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며 보존돼있습니다. 통미 마을 빨래터는 새마을 운동 시기에 만들어진 빨래터입니다. 시멘트로 물길을 정리하고 검은 천막을 쳐 놓았는데 그 모습이 꽤 인상깊습니다. 물도 맑고 돌 사이엔 다슬기가 옹기종기 모여 삽니다. 골사그네 에도 빨래터가 있는데 규모는 약간 작은 편 입니다.

도시에선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기에 옛적 빨래를 했을 당시 모습을 상상하며 손을 적셔봅니다.



<사진 20, 21> 통미마을에서 골사그네로 가는 길.


<사진 22> 골사그네에서 의왕도서관 쪽으로 향하는 도보꾼들.



<사진 23, 24> 골사그네에서 만난 파꽃과 들꽃


고고리에서 언덕길을 오르니 골사그네에 도착합니다. 골사그네는 안양천 최상류로 지지대 고개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입니다. 삼태기처럼 오목한 곳에 자리 잡아 산림이 우거지고 산세가 험합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목화송이 위를 걷듯 보송보송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골사그네 마을은 전주 이씨, 마씨, 경주 배씨 등이 세거한 곳으로 지금은 그의 후손들이 논과 밭을 일구며 거주하고 있습니다.


<사진 25> 오봉산 자락에 위치한 의왕중앙도서관


마지막 코스는 오봉산 자락 에 위치한 의왕 중앙 도서관 입니다. 의왕도서관은 전국도서관 최초의 친환경건축물로 2008년 경기도 건축 문화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계단과 건축 소재 모두 친환경 소재입니다.


<사진26> 연사록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박철하 선생님과 경청하는 도보객들.


답사단은 2층에 위치한 의왕 향토사료관에서 8.3일까지 전시되는 "옛날 의왕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를 관람했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문인 김직연 선생님이 사은겸동지사로 북경에 갔다가 1858년에 귀국해 하루하루 여정을 빠짐없이 기록한 연사록이 기억에 제일 남습니다. 일종의 기행문인데 한문본과 한글본이 함께 마련돼 관람하는 즐거움이 쏠쏠했습니다. 연사록을 보니 문득 풍랑을 만나 1653년 제주도에 표착, 우리나라에서 13년간의 생활을 기록한 기행문 하멜표류기가 생각납니다.


<사진 27> 조선에서 최고 가는 명당자리라 알려진 청풍 김씨 가문의 묘역


의왕중앙도서관 주차장 바로 맞은편엔 조선에서 최고가는 명당자리가 있습니다. 규모가 꽤 크며, 묘역이 자리한 후엔 6명의 정승이 났다고 전해집니다. 의왕이 규모는 작지만 조상들의 사랑은 정말 한가득 받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개발과 그린벨트 속에서 아웅다웅 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바람은 무분별한 개발, 이제 지양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출처 : 모두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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