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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삼남길 3구간 모락산길

의왕 백운호수 입구 ~ 지지대비

[경기옛길-삼남길]


삼남길 3구간 모락산길 


의왕 백운호수 입구 ~ 지지대비




# 3구간 모락산길


락산길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이들이 걸었던 길입니다. 백운호수와 연결된 이 길은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묘역을 지나 모락산 동쪽으로 이어집니다. 오매기 마을을 지나 의왕 시가지 쪽으로 길을 잡으면 정조 임금 능행차길의 중요한 지점인 사근행궁터(의왕시청 별관)를 지나 골사그내로 갈 수 있습니다. 골사그내에서 지지대비가 있는 지지대고개를 넘으면 삼남길은 수원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 사근행궁터


사근행궁은 지금의 의왕시청 별관 자리에 있었습니다. 정조는 화성과 현륭원으로 갈 때마다 사근행궁에 들렀다고 합니다. 효심이 지극한 정조 임금은 이곳에도 이야기 하나를 남겼는데요.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 19년(1795) 2월 10일,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기념 화성 행차 내용을 남긴 것입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정조는 어머니의 불편함을 살피려고, 어머니보다 먼저 사근행궁에 도착해 시설과 주변 민심을 모두 꼼꼼히 사전 점검한 후 어머니의 가마가 도착하자 직접 맞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사근행궁은 행궁이 있었던 것을 알리는 비석만 남아있을 뿐이고 실제 건물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한가지 더, 사근행궁터는 1919년 3월 만세 시위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합니다. 의왕면 고천리 주민 이봉근, 성주복, 이복길 선생 등 8백여 명은 의왕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를 포위하고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당시 면사무소였던 자리에는 의왕시청 별관이 들어섰고, 인근에 위치했던 경찰관주재소 터는 상업지역으로 바뀌었습니다.



# 임영대군 이구 묘역과 불천위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세종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물을 제작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1445년 세종의 명으로 총통 제작을 감독했고, 2년 후에는 종성지방의 경재소 일을 관장했습니다. 1450년에는 형 문종의 명을 받아 화차를 제작했습니다. 대군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활달하였고 무예와 의론(議論)에 뛰어났으며, 왕손이면서도 근검하였고 사람들을 대하는 데 교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영대군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 대군의 묘역과 사당에서 불천위를 지내고 있습니다. 



# 지지대고개와 노송지대


지지대고개는 정조가 현륭원 능행차길에 꼭 거쳐야하는 곳이었습니다. 정조 19년(1795) 윤2월 16일자 정조 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매번 현륭원을 참배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미륵현(彌勒峴)에 당도할 때면

고삐를 멈추고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오래도록 떠나지 못한 채

나 자신도 모르게 말에서 내려 서성이곤 하였다.

이번 행차에서 미륵현의 위쪽에 앉은 자리를

빙 둘러 대(臺)처럼 되어 있는 곳을 보고는 지지대(遲遲臺)라고 명명하였다.

이 뒤로는 행행(幸行)하는 노정(路程)에 미륵현 아래에다

지지대라는 세 글자를 첨가해

넣도록 할 일을

본부(本部)와 정리소(整理所)에서 잘 알아서 하도록 하라.



즉, 원래 고개의 이름은 미륵현이었는데 정조가 아버지 무덤인 현륭원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길에 좀처럼 미륵현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시간을 끌고 더디게 행차했다는 것이죠.


결국 정조는 자신이 머뭇거리던 미륵현의 넓은 고갯마루에 지지부진하다는 의미의 “지지대”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이후 미륵현은 지지대로 이름이 바뀌고 정조의 지극한 효심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지지대 바로 아래의 노송지대에는 마찬가지로 정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정조는 현륭원 식목관에게 왕의 개인 재산인 내탕금 1,000냥을 내리며 지지대고개에 아름다운 숲을 조성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나무가 자라자 인근의 백성들이 소나무를 땔감으로 베어 피해가 심해졌습니다. 정조는 엽전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땔감을 하러 오는 백성이 있으면 그 돈을 가져가 쓰도록 했답니다. 이후 임금의 마음을 헤아린 백성들은 더 이상 나무를 베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송지대에는 또 한 번의 시련이 있었습니다. 송충이로 인한 소나무 피해가 심각해진 것입니다. 현륭원 능행차를 다녀오던 정조는 이를 보고 “과인의 효심이 부족하여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송충이를 생으로 씹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까치 수천마리가 날아와 소나무에 붙어 있던 송충이들을 모조리 잡아먹었고, 이후로 노송지대의 소나무는 송충이 피해 없이 잘 자라 거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락산길은 삼남길 노선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손꼽히고 있으니 걸어보시길 추천합니다!  3구간은 지지대비와 사근행궁터 두 곳에 스탬프함이 있으니 꼭 도장을 찍고 가세요~ (경기옛길 홈페이지 http://ggoldroad.ggcf.or.kr/)



세부정보

  • 경기옛길/ 예술과 인문이 흐르는 역사문화탐방로

    경기옛길 홈페이지/ http://ggoldroad.ggcf.or.kr

    경기옛길 문의전화/ 031-231-8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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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출처/ 경기옛길 이야기책

    사진 출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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