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경기천년 장인발굴단 44

이명수, 동두천, 기타

우리 고장의 역사와 흔적을 수집하는 향토유물수집의 대가,

이명수 장인







이명수님은 현재 동두천문화원부설 향토문화연소장겸 동두천향토사료관장으로 있다.

그는 향토유물수집의 대가라 할 수 있다.


동두천향토사료관에 천 여 점에 달하는 수집품을 기증한 이명수님은 1948년에 연천군 초성리 학담마을에서 2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포천에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데 당시에는 포천이었던 곳이 1984년에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지금은 연천이 된 지역이다.


이명수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에 바로 해군에 입대했는데 선배가“해군에 가면 밥을 많이 준다.”는 말에 시험을 치고 들어간 일화가 있다. 병장을 달고 월남 사이공에서 근무하다가 38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바로 외향선원으로 취직하여 1985년까지 10 여 년간 배를 탔다. 그 와중에 휴가를 나와서 여동생의 소개로 부인을 만나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가족을 휴가에만 만나는 것이 힘들어 외향선을 타는 직업을 그만두고 1985년에 동두천에 자리를 잡았다. 지인과 같이 농산물 공판장을 운영했다. 당시 농사를 짓는 분들을 만나다 보니 농기구며 예전 생활용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노인 분들이 쓰지 않는 물품을 가져다주면 술도 사드리고 담뱃값도 드리면서 지금은 없어졌을 게 분명한 그런 생활용품들을 수집했다.


이때부터 생활용품을 비롯한 향토유물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1995년에는 동두천시민회관에서 자비를 들여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996년부터는 공판장을 그만두고 가죽을 피혁 공장에 납품하는 일을 7년 정도 했다.


이명수님의 살아오신 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결코 부유한 자산가가 아니었다.“돈도 없으면서 정신 나간 놈처럼… 다 없어지기 전에 지켜야 후세에 할 말이 있다.”는 그는 지금까지 생활용품등을 수집해 오면서 연천군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남동생의 도움과 부인과 딸의 속을 많이도 태웠다는 슬픈 사연이 있을 정도로 그는 향토유물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수집유물은 이명수님의 삶과 관련되어 있다. 해군, 월남 파병 관련 용품, 새마을운동 관련 용품, 농기구, 의․식․주 생활용품, 관광서 사용 물품, 취미․오락용품, 미군 생활용품, 잡지, 교과서

등 매우 다양하다.


그가 평생동안 수집한 3 천여점 이상의 향토유물은 동두천향토사료관, 자택, 광암문화교육관 2층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값어치를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금도 틈만나면 생소한 향토유물을 만나면 빚을 내면서 까지 수집하는 그를 과연 향토유물 수집의 장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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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의/ ggma@gg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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