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경기천년 장인발굴단 20

김정주, 고양 , 민예기술

할아버지의 손에서 손녀의 손으로 이어지는 기술과 마음,

우리 동네 짚공예가













  1950년 고양시 식사동에서 출생한 김정주씨는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 함께 사시던 할아버지로부터 짚공예를 배웠다.

  당시 이 일대에서는 추수가 끝나면 짚으로 여러 가지 생활용품(맷방석, 둥구미, 새둥우리,

짚항아리 등)을 만들어 도시에 팔아 생활에 보탰다.


  김정주씨의 가족들 중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짚공예를 하셨다. 김정주씨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가 “추운데 사랑방으로 들어와 녹여라” 라고 불러들이셨다. 어린 손녀딸이

손재주가 있어 새끼를 잘 꼬는 것을 아셨던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새끼꼬기를 시켰고,

이어서 꼰 새끼로 맷방석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다.


"멧방석을 만들려면 새끼를 먼저 꽈야했는데, 짚을 물에 축여서 밑동을 절구괭이로 찧어서

부드럽게 만들었죠. 그래야 새끼꼴 때 손이 덜 아팠거든. 꼰 새끼를 다리 사에에 사려 묶은 후

볕에 말려야해요. 그래야 새끼가 풀리지 않았어요." 김정주씨는 이렇게 사린 새끼줄을 방마다

벽에 못을 박아 걸워 말렸다고 한다.


  한여름 농한기에도 했는데, 이 당시는 평상이 없었고 대부분의 집이 부엌문을 떼다가 대문

문지방에 걸쳐놓고 평상대신 사용했다. 김정주씨의 집이 넓어 동네 사람들이 밤이면 저마다 새끼

꼴 재료를 갖고 그녀의 집에 와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꼬았다. 모기 쫓는 모닥불 펴놓고 감자, 옥수수 삶아 먹으며 새끼를 꼬았다. 어른들이 도깨비불이 데굴데굴 지나갔다는 이야기를 해서

밤만 되면 도깨비불 지나가는 걸 보려고 애썼던 기억도 난다.


  멧방석 크기에 따라 몇 뼘으로 할지와 멧방석 운두 높이를 정한 후 12가닥을 만들어서 사이사이에 새끼를 위 아래로 넣어가며 꼬는 것이다. 운두를 올릴 때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운두가 넓어지거나 좁아지게 만들면 멧방석을 제대로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드신 맷방석은 다소 차이가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탄탄하고 매끈하게

만드셨지만, 아버지는 탄탄하지만 매끈하지는 않으셨죠. 짚에 있는 북데기 처리를 잘 못하셨던

같아요. 할아버지는 다 만드신 후 짚으로 불을 펴서 안과 밖에 너덜거리는 북데기를 불에 그슬리고 수수빗자루로 쓸어내려서 매끈하게 만드셨어요." 김정주씨는 할아버지와 마주 않아

각자 자기 쪽 맷방석을 찬찬히 만들어 갔다. 언니가 있었지만 언니는 바느질을 할 뿐 짚공예는

못했다고 한다.


  세 명이서 열흘 정도 걸려 15~16개 정도의 생활용품을 만들면 아버지가 차곡차곡 쌓아 한 짐을

만들어 멜빵으로 메고 버스를 타고 서울 가서 팔아왔다. 돌아올 때는 공책, 연필 등을 한아름

사오셨고, 쌀가게에서 주문을 받아오기도 했다.



  2015년 경 광화문에서 전통문화관련 축제가 있을 때 초대되어 맷방석 만들기를 보여줬고,

새끼꼬기 등을 가르쳐주며 '사라져가는 것을 알리는 일이 꼭 필요하다' 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세부정보

  • 문의/ ggma@ggcf.or.kr

    작성/ 경기도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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