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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산성리와 금림조합

남한산성을 지키는 사람들


<길 위의 이야기>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옛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토리북입니다.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 중 한 곳이었던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 왕의 행차길이자 떠돌이 보부상의 생계를 위한 길이었고,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올라오던 길이었습니다. <길 위의 이야기>는 남한산성 옛길에 새겨진 발자국을 따라 우리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한양 다음으로 큰 완전한 소비 도시, 산성리



남한산성 산성리 전경|1909년~1927년



조선시대 한양은 20만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시기 영국 런던의 인구가 5만명이었다는 사실에 비교해보면 가히 한양의 인구규모를 짐작할 만합니다. 남한산성 옛길이 위치한 산성리 지역은 한양에 인접한 소비도시였는데 토박이 주민의 제보에 따르면 산성 내 주민들 이 주변 마을사람들을 촌놈 취급했다는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1627년 (인조 5년) 광주부의 읍치(邑治 : 행정중심지)를 산성 내부로 옮기면서 산성리의 인구는 폭증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1895년 갑오경장 이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주유수부가 폐지되고,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까지 일어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그 규모가 서서히 줄어들게 됩니다. 일제에 의해 산성 내에 위치하고 있던 광주군청이 경안동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군사도시, 행정도시의 위용은 완전히 사라지고, 근대화 시기로 접어들며 주요도로가 남한산성을 제외한 채 건설됩니다. 이후 한강 이남에서 가장 번성했던 지역 중 하나였던 남한산성은 한적한 마을로 점차 변화하여 잠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화려했던 산성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남한산성은 방어시설에 적합한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일대는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로부터 공격하기가 어려우며 동시에 산의 안쪽은 분지지형으로 형성되어 있어 군사 주둔과 주민의 거주가 가능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은 남한산성에서 거주할 인구를 모집했는데, 모집한 호구 수는 모두 300여 호 정도였으며 모집된 사람들에게는 부역과 세금을 면제해주기로 약속합니다. 부역과 세금면제 약속 때문에 부역을 피하려던 많은 주민들이 산성으로 몰려들어 호구가 1,000여 호에 이르게 되자 1691년(숙종 17년)에 모민정책을 폐지하게 됩니다. 이후 산성 안의 주민은 19세기 말까지 1,000여 호, 약 4,000여 명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는데요, 이렇게 300년 간 북적거리던 산성마을 주민들은 광주유수부가 폐지되고 읍치의 위상을 잃게 되자 마을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마을을 떠나지 않고 남아있던 200여 명의 주민들은 상업활동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지금도 여전히 산성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의 귀중한 숲을 지켜 후손에게, 금림조합



금림조합장 석동균(우),김영래(좌)를 기리는 영세불망비



남한산성의 산림은 매우 잘 보존되어온 아름다운 생태유산입니다. 이는 오래 전부터 산성 내의 숲을 보호하고자하는 산성 주민들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근대화 이전의 생활연료는 나무였기에 20세기 초반 대부분의 산들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산성 안의 나무들은 예외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금림조합’을 만들어 순산원을 두고 도벌을 막아 보호한 덕택에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금림조합은 남한산성의 숲을 보호하기 위해 산감(山監 : 산림감시원) 50명을 선출하여 매일 6명 씩 교대로 산림을 감시하도록 하였습니다. 산감은 극빈자 계층에서 선발하였기 때문에 숲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취약계층의 구제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남한산 금림조합의 노력은 이후 2016년까지 90년에 가깝게 지속되어 왔으며, 덕분에 남한산성은 귀중한 생태문화자원을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information

  • 길 위의 이야기

    발행처/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발행일/ 2017년 11월

    총괄/ 이지훈(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센터장)

    기획 및 진행/ 채치용(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선임연구원) / 박다슬(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연구원)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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