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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게, 즐겁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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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게, 즐겁게, 함께


고양시 인문학모임 <귀가쫑긋>


하루하루가 다른,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추억이 담긴 공간들도 쉬이 사라지고, 즐겨 찾던 거리도 금세 다른 풍경이 되곤 한다. 씁쓸하고 쓸쓸하다. 이전에 여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면 마음은 더욱 허전해진다. 이렇게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같은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일이기도 하다. 꾸준히 이어지는 모임이나 공간을 만나게 되면 참 반갑고, 고맙다.

그런데 놀이도 사업도 아닌 ‘공부’를 벌써 7년째 계속해오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육시설도 기관도 아닌 ‘보통’ 사람들의 모임이란다. ‘귀가 쫑긋’했다.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가보았다. 대체 어떤 곳일까?


‘귀가쫑긋’은 고양시에서 일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다 풍성한 삶을 함께하고자 시작한 인문학 모임이다. 2010년 첫걸음을 내딛었고,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면서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를 더욱 풍요로운 공간으로 가꿔오고 있다.




철학과 문학, 역사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귀가쫑긋에서는 인문학의 다양한 영역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있다. 사과나무 치과병원에서 강의실을 지원해주어 함께 공부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매월 첫째주 금요일에는 인문학 정기강좌가 열리는데, 무려 80여회를 바라보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정기강좌에서 어떤 내용을 공부할지, 어떤 분들을 강사로 모실지, 회원들이 매해 머리를 맞대고 한해 일정을 꾸린다. 여러 대학의 석학들은 물론, 소설가 김훈, 도종환 시인 등 문학가들, 그리고 진중권, 고미숙, 유홍준 등 널리 알려진 연구자들도 귀가쫑긋 정기강좌에 함께해왔다.

매월 좋은 강사들을 모시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오래 이어오고 있는지 궁금하여 물어보니, 특정 기관의 프로그램이 아닌, 함께 공부하려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라는 점 때문에 강사들이 강의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신다고 한다. 그리고 강의실의 열기에 깊은 인상을 받아, 다른 강사들을 모시는 데에 적극 도움을 주시기도 한단다.

크지는 않은 공간이지만 매월 70여명이 모여 강의실을 가득 채운다. 고민하며 준비하고 진지하게 참여하는 시간이기에 80여 회까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정기 강좌는 귀가쫑긋 정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며, 회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참석하여 무료로 들을 수 있다.



▲ 정기강좌


기강좌에서 인문학의 여러 분야를 폭넓게 살펴본다면, 소모임에서는 주제별로 보다 깊이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 매주 경전 강독 시간에는 사서삼경과 주역을 읽고,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강좌, 글쓰기 모임이 격주로 진행된다. 격월로 주말에 진행되는 독서모임도 있어서, 공부모임을 자주 찾기 어려운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다.

넷째 주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정회원 모임에서는 고양시의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간다. 박물관이나 공연장은 물론, 유적이나 언론사 등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의미 있는 공간들을 꾸준히 방문해왔다. 회원들은 매월 산행도 함께하면서, 책 바깥의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 정회원 모임 열화당 책 박물관 / 서오릉 방문


지난 7월 18일에는 경전공부 소모임의 공개강좌가 있었다. 『논어(論語)』의 여덟 번째 장인 <태백(泰伯)>편의 강독을 마무리하며 총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4개월에 걸쳐 공부한 내용을 돌아보려니 분량이 적지 않았는데, 빽빽한 한문을 들여다보면서도 아무도 지루한 기색이 없었다. 강의실의 진지한 모습은, 태백 편에 나오는 “學如不及, 猶恐失之(학여불급 유공실지)” 구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배울 때에는 마치 힘이 미치지 않는 듯이 열심히 하며, 그렇게 하여 배운 것은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하며 소중히 간직한다.”

전체 내용 정리를 마친 뒤, 다과를 함께하면서 그동안 공부하며 느낀 점들을 나눠보았다. 원문을 강독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공부할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공자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논어를 통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는 데에도 다들 공감했다. 지식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문학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경전공부반의 회비는 지역사회 청소년들의 학업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더불어 공부하고 나누며 살아가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 논어반 경전 공부를 마치고


경전 강독은 한 부분에만도 여러 달이 걸리고, 전체를 보려면 여러 해가 필요한 긴 여정이다. 웹툰과 웹드라마 등 ‘스낵 컬쳐(Snack Culture)’라 불리는 짧은 콘텐츠들이 주류가 되고 있는 시대에, 이런 긴 호흡의 공부를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인문학을 유행처럼 잠시 들여다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천할지를 고민하며 차분하게 공부해나가는 모습은, 학문과 삶에 대한 배움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 송년 모임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귀가쫑긋 덕분에 공부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며, 회원들은 변함없이 존재해주는 공간과 사람들이 있음에 고마움을 표했다. 긴 시간이 필요한 공부가 지속될 수 있게 하는 힘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꾸준하게, 즐겁게 함께하는 것.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이 공간이 계속해서 자리를 지켜나갈 것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한 삶을 일궈낼 노력들이 기대된다. 진지하고도 따뜻한 이 모임에서 또 어떤 멋진 이야기가 들려올지, 벌써 귀가 쫑긋 해진다.



사진= 귀가쫑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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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소개 자세히보기] 귀가쫑긋


*관련링크카페 http://cafe.daum.net/human-inquiry





*꼭 공유하고 싶은 소식!


좋은 책을 함께 읽고 나누려는 뜻을 모아, 귀가쫑긋에서 ‘사피엔스 축제’를 마련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독서와 사유의 경험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여 공유하는 소통의 장이다. 순수한 공부모임에서 자발적으로 기획된 이 축제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고양시 도서관센터, 지역사회 서점 한양문고, 지역사회 언론 고양신문도 함께하기로 했다. 귀가쫑긋 회원이 아니더라도, 고양시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서평은 물론 문학, 음악, 그림과 영상 등 다양한 방식의 창작물이 모두 가능하다. 전국 어디에 있는 누구든지 함께해보기를 추천한다. 생각은 더욱 깊어지고,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2016.08.24




경기 엄소연

[인문쟁이 1,2기]


엄소연은 경기 고양시에 살고,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한다. 춤과 음악에서 힘과 용기를 얻고 있으며, 이를 무대에서 사람들과 나눌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서든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더 많은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함께할 수 있길 기대한다. like_ball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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