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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정몽주선생 묘 鄭夢周先生 墓

경기도기념물 제1호




고려 말의 충신 포은 정몽주圃隱鄭夢周(1337~1392)의 묘이다. 정몽주는 고려의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오부학당五部學堂과 향교를 세워 유학을 진흥시키고 성리학의 기초를 세웠다. 당시 이성계의 세력이 날로 커져서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 등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므로 우선 조준을 제거하려다가 1392년(공양왕4)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


정몽주선생묘,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전설에 의하면 정몽주가 순절한 뒤 개성 풍덕군에 묘를 썼다가 1411년(태종11)에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할 때 이장 행렬이 용인시 수지읍 풍덕천 지경에 이르자 앞에 세웠던 명정銘旌이 바람에 날려 현 묘소의 위치에 떨어졌는데, 운구하려던 행여가 움직이지 않아 이곳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 조정朝廷은 그의 고향인 영천까지 이장하는 것을 막았을 것으로 보인다.


정몽주선생묘,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은 단분單墳으로, 원래부터 있던 석물은 운수방부형雲首方趺形묘비,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 문인석 1쌍, 혼유석 등이고, 상석, 장명등, 망주석, 석양石羊, 곡장曲墻, 호석護石, 난간석, 그리고 새 문인석 1쌍 등은 1972년부터 1980년까지 추진된 묘역 정화 사업으로 추가·설치되었다.


정몽주선생묘 묘비,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1517년(중종12)에 건립된 묘비에는 ‛고려수문하시중정몽주지묘高麗守門下侍中鄭夢周之墓’라고 고려의 벼슬만을 쓰고 조선의 시호를 기록하지 않아 그가 두 왕조를 섬기지 않은 뜻을 분명히 하였다. 묘역의 입구에는 신도비가 세워졌는데 팔작옥개석八作屋蓋石, 비신碑身, 기대基臺의 형태이다. 이 신도비는 송시열宋時烈이 찬撰하고 김수증金壽增이 글을 쓰고 김수항金壽恒이 전액篆額을 써서 1696년(숙종22)에 건립된 것으로 왕조와 시대를 뛰어넘은 선생의 충절과 높은 학식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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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고려시대

    규모/ 1기

    / 단분, 호석, 묘비 1기, 혼유석 2기, 상석 4기(구·신), 향로석 2기, 장명등 1기, 망주석 1쌍, 문인석 2쌍(구·신), 석양 1쌍, 신도비 1기

    주소/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산3

    지정일/ 1972.05.04

    소유자/ 영일정씨 종중

    관리자/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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