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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개미에게 배우는 인간의 삶

과학 분야 『개미제국의 발견』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미제국의 발견』

최재천, 사이언스북스, 1999





개미에게 배우는 인간의 삶


이정모 - 서울시립과학관장




나는 지구다. 내 안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내가 만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다. 이게 원칙이다. 그런데 1만2천 년 전부터 나는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자기 멋대로 산다. 내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 적응하기는커녕 환경을 제멋대로 바꾼다. 멀쩡하던 벌판에 불을 지른다. 물줄기를 제멋대로 돌려놓는다. 거대한 포유류들을 삽시간에 멸종시키고 내가 애써 일궈놓은 종의 다양성을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모진 애를 쓴다. 이것을 저들은 ‘농사’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한다.


호모사피엔스들은 잘 들어라. 지구에서 가장 먼저 농경 생활을 시작한 생명은 너희가 아니다. 이미 5천만 년 전에 개미들이 시작한 일이다. 벌써 기분 상할 필요는 없다. 호모사피엔스의 농업은 나쁘고 개미의 농업은 좋다고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개미도 너희 호모사피엔스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다.


농사는 계급을 낳기 마련이다. 개미들도 농사꾼이 따로 있다. 그리고 전투병, 보초병, 짐꾼으로 철저하게 분업을 한다. 분업이 얼마나 철저한지 번식마저 분업을 통해 해결한다. 자기 스스로 자식을 낳아 키우기를 포기하고 평생토록 여왕을 보좌하는 일개미들의 행동처럼 불가사의한 일도 지구에는 또 없을 것이다. 개미사회의 자본은 축적해 놓은 식량이고, 이들이 궁극적으로 생산하는 제품은 차세대의 여왕개미와 수개미들이다.


대표적인 농사꾼은 잎꾼개미다. 지금도 아메리카 대륙의 열대지방 전역에 살고 있다. 이들은 자기 몸보다 더 커다란 이파리를 입에 물고 수백 미터의 행렬을 이룬다. 그들이 이파리를 먹는다면 농사꾼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터. 잎꾼개미들은 이파리로 버섯을 키운다. 지금 지구에서 버섯을 키우는 개미는 200종이 넘는다. 잎꾼개미처럼 나뭇잎으로 버섯을 키우는 종이 있는가 하면 동물의 똥이나 썩은 시체에서 버섯을 키우는 개미도 있다.


개미가 농사를 짓는데 가축이라고 기르지 않겠는가? 개가 첫 번째 가축이기는 한데, 사실 사람이 늑대를 개로 길들였다기보다는 늑대가 자신들을 보살피고 자신들과 놀아줄 상대로 사람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맞다.


개미는 진디를 키운다. 진디가 식물에서 빨아들인 영양분을 받아먹는다. 마치 풀을 먹고 젖을 만든 소에게서 호모사피엔스들이 우유를 받아먹는 것처럼 말이다. 호모사피엔스가 소고기와 우유를 얻으려면 그들을 포식자로부터 지켜야 하듯이 개미도 무당벌레나 풀잠자리 같은 사나운 곤충에게서 진디를 보호한다. 진디를 키우는 개미는 식량의 75퍼센트를 진디에게서 빨아먹는 단물로 채운다. 그야말로 낙농 전문 개미인 셈이다. 잎꾼개미 군집이 분가를 할 때, 그러니까 새로운 여왕개미를 내보낼 때 씨버섯 한 줌을 입속에 있는 조그만 주머니에 넣어서 신혼 지참금으로 보내는 것처럼, 진디를 키우는 개미들은 진디 떼를 몰고 다닌다.


가축을 키우는 개미들은 가축을 들판에 놓아서 키우기도 하고 우리에 가둬서 키우기도 한다. 어떤 개미는 아예 집 안에 들여다 놓고 키운다. 호모사피엔스가 키우는 가축들이 초식 포유류이듯이 개미들이 가축으로 키우는 곤충들도 몸이 연하고 방어 능력이 없는 초식동물들이다. 늑대가 호모사피엔스를 선택해서 개가 되었듯이, 진디도 개미를 선택했다. 식물의 즙을 빨아 먹은 진디는 물을 배설한다. 이때 일부 당분도 빠져나가서 주변이 끈적끈적해진다. 냄새도 난다. 이 냄새를 맡고 포식자들이 나타나고 곰팡이가 피고 병균이 꼬인다. 진디는 자신들을 위해 청소를 대신해 줄 존재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개미다.


호모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언어 능력 때문이다. 개미도 대화를 한다. 그들은 음파 같은 물리적인 요소 대신 페로몬이라는 화학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한다. 화학 언어는 매우 효율적이다. 페로몬 1밀리그램으로 지구를 세 바퀴나 돌 만큼 긴 냄새 길을 만들 수 있다.


개미는 여러모로 호모사피엔스들에게 자신을 돌아다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존재다. 그런데 호모사피엔스들은 어지간히도 개미에 대해 잘 모른다.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지구에 있는 개미는 최소한 1만2천 종에 달한다. 세계는 넓고 개미는 많다. 하지만 곤충도감에는 몇 종류 나오지도 않으며 특별한 설명도 없다. 기껏해야 개미는 흰개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대신 벌과 같은 목(目)에 속한다는 정도만 알려준다.


그런데 1999년부터 한국 사회에서 개미의 위치가 달라졌다. 개미가 지식인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미제국의 발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오자 상황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이 책의 부제는 ‘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사회 이야기’다. 부제에서 말하는 소설의 작가는 아마도 베르베르일 것이다.


부제는 옳다. 정말이다. 소설보다 재밌는 과학책이다. 이 책은 재밌기만 한 게 아니다. 한국 교양 과학도서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정확히 ‘과학책’인 것이다. 과학과 대중의 소통에 관심 있는 과학자들은 그때까지 오로지 ‘과학의 대중화’만을 이야기했다. 어려운 과학을 단지 쉽게 설명하는 데 무진 애를 썼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 책은 ‘대중의 과학화’를 시도한 첫 번째 과학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최재천 교수는 단지 과학에 쉽게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의 본령으로 대중 끌어올리기를 시도했고 성공했다.


지금은 여섯 번째 대멸종기다. 호모사피엔스들은 이것을 인류세라고 부른다.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은 지구의 의지대로 이뤄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지구가 아니라 호모사피엔스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참으로 염치 있는 자세다.


인류세는 인간의 생물량이 너무 많아서 생긴 일이다. 75억 명을 모두 모으면 가로, 세로, 높이 2킬로미터의 상자를 가득 채울 수 있다. 그런데 개미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 있다. 그런데 아무도 지금을 개미세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개미는 최소한 1만2천 종이 있기 때문이다. 개미는 1만2천 개의 생태적 틈새(niche)를 채우면서 생태계의 먹이그물을 촘촘하게 유지하지만 호모사피엔스는 겨우 한 개의 틈새만을 차지하고 있다.


지구가 보기에 호모사피엔스와 개미는 아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개미에게 좀 배워라.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지 않겠는가!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초유기체』

에드워드 윌슨·베르트 휘도블러 지음, 임항교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7


『까막딱따구리 숲』

김성호 지음, 지성자, 2011


『공생 멸종 진화』

이정모 지음, 나무나무, 2015




이정모 - 서울시립과학관장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시립과학관장으로 일하면서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해리포터 사이언스』 『유전자에 특허를 내겠다고?』 등을 썼으며 『인간이력서』 『매드사이언스북』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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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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